밤은 밤에게 낮은 낮에게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시 19:1-4a)

주님의 은혜와 평화를 빕니다. 한 주간 동안도 무탈하게 지내셨는지요? 우리 인생은 하루의 점철(點綴)이라지요? 점철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수없이 많은 점을 찍어 형태를 드러내는 점묘법 화가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의 점 찍기는 일종의 수행이 아닐까요? 지루함의 악마와 싸우며 끝없이 반복되는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사는 모습 속에 우리 인생 전체 모습이 반영된다고 합니다. 부분은 전체를 닮고 전체는 부분을 내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전에 산에 자주 다닐 때가 생각납니다. 숲 그늘 아래로 걸어갈 때도 있지만 그늘조차 없는 오르막길을 허위단심으로 올라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지간히 지쳐있을 때면 그 길을 걷는 것이 여간 곤혹스럽지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이 고역입니다. 그때마다 ‘이 길은 우리 인생을 닮았구나’ 하고 혼잣소리를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주 힘겹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인생이 도전 아니던 순간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고맙고 정겹고 그렇습니다. 매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지금, 그저 상상 속에서라도 여러분들의 길에 동행이 되고 싶습니다.

매일 새벽,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 저는 산책에 나섭니다. 걷는 순간은 오롯이 혼자입니다. 내 영혼의 풍경을 살피기도 하고, 산지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생각들을 붙잡아 가지런히 만들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는 교우들을 생각하며 기도를 올리기도 합니다. 새벽 숲 사이를 걸으면 청량한 기운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풀벌레와 매미 울음소리가 배경음이라면 그 소리를 단속적으로 뒤흔드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흔듭니다. 까마귀의 ‘까악 깍’ 하는 탁성, 다소 신경질적으로 ‘깍깍깍깍’ 우짖는 까치 소리, 그리고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울리는 멧비둘기의 구슬픈 소리…. 그 소리의 향연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시편 19편의 말씀이 저절로 실감납니다. 창조의 신비를 보고 누릴 수 있는 감각이 열린 사람은 행복합니다. 비록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진다는 그 말씀을 얼핏 감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늘 다니는 산책로에서 만나는 풍경 또한 정겹습니다. 길 위에서 하루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철역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김밥이나 떡 같은 먹을거리를 진설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가 계십니다. 그분이 그 장소에 이르러 맨 먼저 하는 일은 간밤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주워 주변을 말끔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제게는 묵묵히 수행하는 그 행위 자체가 경건함으로 보입니다. 트럭에 싣고 온 각종 건축자재들을 가게로 옮기는 건재상 아저씨도 보입니다. 늘 입고 계신 낡은 셔츠는 그분의 건강한 노동의 증거처럼 보입니다. 프랜차이즈 빵집 틈바구니에서 구멍가게와 다를 바 없는 빵집을 운영하시는 아저씨는 앞치마를 두르고 상을 닦는 일로 새벽을 깨웁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로 옆에 트럭을 세워놓고 생선이나 채소 등의 찬거리를 파는 모자도 있습니다. 새벽부터 생선 비린내를 풍기니 상쾌하진 않지만 그 트럭 주변에서 일고 있는 활기가 싫지는 않습니다. 맞은편에는 과일 트럭이 있는데,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슬쩍슬쩍 건너편을 바라보며 아저씨는 애꿎은 과일의 위치를 바꾸며 시간을 견딥니다. 그 모습이 늘 안쓰러워 보입니다. 아마도 손님이 모이는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산균 음료를 파는 아주머니는 공원을 드나드는 분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눕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의 풍경입니다.

공원 안에서도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것은 기본이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변형된 춤으로 몸을 흔드는 분들도 계십니다. 목책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걷는 분, 커다란 나무를 등이나 손으로 두드리는 분, ‘헙헙’ 기합 소리를 내며 걷는 분, 자기만의 건강법인지 독특한 자세를 반복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그만큼 진지합니다. 가끔 젊은이들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커다란 헤드셋을 낀 채 몸에 딱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고 달립니다. 이른 새벽임에도 이미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분들도 보입니다. 

저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걷기 때문에 무리 지어 걷는 분들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핏 들려오는 소리가 귀를 스칠 때가 있습니다.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간간이 몸 아픈 이야기들을 나누십니다. 소소한 그런 이야기들이 이제는 하찮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마음 따라 살지 말고 몸 따라 살라’는 말이 한때는 나약한 정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말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 속에 지혜가 있음을 압니다. 고생물학자이며 신부였던 테이야르 드 샤르댕은 어느 글에서 인간이 처한 가장 괴로운 정신적 딜레마는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그 말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젊어서는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보며 높이 그리고 빨리 나는 연습을 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에 감정을 이입한 채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강 하구에 몰려들어 밀려오는 물고기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끼룩거리며 다툼을 벌이는 갈매기 떼를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갈매기 떼를 비웃지 못합니다. 우리 삶이 사소한 것들에 의해 얼마나 크게 흔들리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동료 의식을 느낍니다. 나와 그들이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서로 안에 있다는 말이 이런 뜻일까요?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모든 시민의 의무이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내는 일에 몰두합니다. 그린랜드의 빙하가 하루에 85억 톤이 녹아내렸고 그것은 플로리다 주 전체를 5cm 높이로 채울 수 있는 규모라거나, 터키의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는 소식에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버틀란트 러셀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라는 책에서 “나는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온화한 것을 좋아하려 했다. 나는 이 세상이 한층 세속적으로 변해가는 시대에 살면서도 통찰의 순간들로부터 지혜를 이끌어내려 했다”고 말합니다. 80세 생일을 맞으면서 그는 자기 삶의 주요 가치를 세 가지로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의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그것입니다. 참 대단한 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비루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저마다 자기 몫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일상을 충실하고 아름답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거룩한 삶이란 남들이 하지 않는 종교적 실천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조율된 삶이야말로 거룩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식 솜씨는 상차림에서 드러나지만, 그의 인격은 설겆이에서 드러난다”. 어디선가 본 문장인데 보는 순간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을 벗어놓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의 풍경을 알 수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원에서 가끔 저를 알아보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일부러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건네는 분들도 계시지만, 가만히 목례만 건네며 지나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낫다고 평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품성이 다를 뿐입니다. 자기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남이 애써 준비해 놓은 것을 누리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것을 남겨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먹고 자고 입고 놀고 일하고 쉬는 일상의 일들을 떠나 어디서 하나님 경외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레 19:2b)는 말씀을 늘 떠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삶이 거룩한 삶인가요? 부모를 공경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우상을 섬기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기초입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밭에서 추수할 때 밭 구석구석까지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는 것, 이웃을 속이지 않는 것, 이웃을 억누르지 않는 것, 품꾼의 품값을 미루지 않는 것, 듣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하지 않는 것, 눈이 먼 사람 앞에 걸림돌을 놓지 않는 것,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 헐뜯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웃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이익을 보려 하지 않는 것, 앙심을 품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웃과 평화롭게 살 줄 모르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기 쉽습니다.

힘겨운 때일수록 자기 삶을 정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해치우기 위해 하지는 마십시오. 성과에 집착하여 너무 자기를 닦달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을 자비롭게 대할 수 있어야 다른 이들을 느긋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낙심과 절망과 공포의 얼굴을 직시하고, 그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우리 일상의 삶이 이루어지는 그 현장이야말로 우리의 도량임을 잊지 마십시오. 벌써 입추 절기가 다가옵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가을 농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평화와 생명의 씨를 곳곳에 뿌리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가 자라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름이 다 지나기 전에 교회 문을 다시 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시간이 다소 늦어진다 해도 초조해 하거나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사랑과 경외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야말로 하나님의 현존의 장소입니다. 평화의 주님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1년 8월 5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posted by

소에게 말을 걸다



오후에 작실에 올라갔다.
설정순 성도님네가 잎담배를 심는 날이었다.
해질녘 돌아오는 길에 일을 마친 이속장님네 소를 데리고 왔다.
낯선 이가 줄을 잡았는데도 터벅터벅 소는 여전히 제 걸음이다.
종일 된 일을 했음에도 싫은 표정이 없다.
그렇게 한 평생 일을 하고서도 죽은 다음 몸뚱이마저 고기로 남기는 착한 동물.


‘살아생전 머리에 달린 뿔은 언제, 어디에 쓰는 걸까?’


커다란 소의 눈이 유난히 착하고 맑게 보인다.
알아들을 리 없지만 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소에게 말을 건넨다.


‘소야, 난 네가 좋단다.’


소는 여전히 눈을 껌벅거릴 뿐이었지만.

<얘기마을> 1987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에게 말을 걸다  (0) 09:06:24
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0) 2021.08.05
창립예배  (0) 2021.08.04
첫 목양지로 가는 길  (0) 2021.08.03
한 목사님 아니세요?  (0) 2021.08.01
단강의 겨울  (0) 2021.07.31
posted by

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나무하러 가는 사람 왜 불러요?”


저만치 산으로 나무하러 오르다 잰 걸음으로 뛰다시피 내려오신 신집사님, 말은 그렇게 하지만 환한 얼굴, 마음이 그런 게 아니다. 체구에 맞게 만든 작은 지게를 마당에 세워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2월이 다가오자 집사님은 고민이 된다. 2월 1일부터는 용암 쪽으로 일을 나가기로 했는데 갈까 말까를 망설이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재배하는 곳에 ‘취직’을 한 것이다. 한 달에 세 번 쉬고 점심은 각자 지참. 그리고 월급은 18만원이다. 오가는 차비 빼고 나면 뭐 그리 크게 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고정된 수입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것만 생각하면 취직을 하는 게 집에서 품 파는 것보다야 열 번 편한데, 문제는 땔감이다. 연탄도 기름보일러도 없기 때문에 천생 나무를 해서 때야 한다.


‘개미 역사하듯 부지런해야’ 그나마 끼니를 잇고 방안 온기를 지키는데 왜 그리 나무는 잘 타는지, 한 짐 만들어 와야 두 끼 때고 나면 그만이다. 여자가 하는 나무란 잔가지뿐 굵은 나무는 엄두를 못 낸다.


형편이 그런데 출근을 하면 나무할 시간이 없게 되고, 그러면 끼니도 그렇고 난방도 그렇고, 그렇다고 집에 남아 있자니 생활이 걱정이다.


오래 해왔기에 잘 아는 일이지만 품 파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땀에 젖는 하루 수고도 수고지만 쉬는 날도 많다.


“까짓것 품 팔아야 손에 묻은 밥풀이에요.”


그저 끼니를 이을 수 있을 뿐, 집사님은 품을 손에 묻은 밥풀이라 했다.

안쓰러운 표정 한줌 보탤 뿐 난 더 할 말이 없다. 이야기를 나누고는 더듬더듬 기도를 한다. 큰 목소리, 자신 있는 기도는 언제부터인지 멀어진 일이다. 모질게 살아가는 집사님이지만 집사님은 눈물도 많다. 그래도 주먹으로 눈물을 닦곤 이내 웃음이다.


“어떡하죠?” 


어려운 이야길 들었을 뿐 아무 대답도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신을 신으며 묻자 “어떻게든 되겠죠. 너무 걱정 마세요.” 하신다.

2월이 왔고 집사님은 출근을 했다. 그렇다면 나무는? 집사님 말마따나 모든 게 어떻게든 돼야 할 텐데. 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얘기마을> 1989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에게 말을 걸다  (0) 09:06:24
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0) 2021.08.05
창립예배  (0) 2021.08.04
첫 목양지로 가는 길  (0) 2021.08.03
한 목사님 아니세요?  (0) 2021.08.01
단강의 겨울  (0) 2021.07.31
posted by

창립예배

사진/김승범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를 두고 분명 거룩한 땅이라 이름 부를 것입니다.’


끝내 목이 멨다. 창립예배를 드리며 인사말을 하는데 가슴이 떨렸고 빈말은 삼가고 싶었다. 먼 길을 달려와 마당 한가운데 둘러선 사람들. 무엇보다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실명한 창식이 와준 게 고마웠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려오던 목회의 첫발. 오늘은 1987년 3월25일 수요일, 눈바람 불고 무지 추움.


이정송 감리사님과 유상국 목사님의 뒤를 이어 ‘기독교대한감리회단강교회’라 쓰인 현판을 작은 사랑방 모퉁이에 힘차게 못질을 한다.


‘이제 시작이다.’ 안쓰러운 표정을 남기고 모두들 돌아갔지만 외롭진 않았다. 삶의 터전은 다르지만 우린 모두 하나님 품속에서 사는 거니까. 난 또 이곳에서 새로운 이웃을 만나야 하니까.


한 흐름의 앞쪽에 선다는 건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잘 견디며 깨어 있어야지. 흔들릴수록 방향감각 잃지 않으며.

-목회수첩은 가능한 계속 쓰도록 하겠다. 어쩜 난 쉽게 실어증(失語症)을 앓게 되겠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계속 기록해 보련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은 아니다. 짧은 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기록함이 내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향한 내 가장 큰 애정임엔 분명하니까.

<얘기마을> 1987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에게 말을 걸다  (0) 09:06:24
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0) 2021.08.05
창립예배  (0) 2021.08.04
첫 목양지로 가는 길  (0) 2021.08.03
한 목사님 아니세요?  (0) 2021.08.01
단강의 겨울  (0) 2021.07.31
posted by

첫 목양지로 가는 길



3月25日 이른 아침, 원주로 향하는 영동 고속도로엔 춘삼월에 어울리잖게 세찬 눈발이 휘날렸다. 이따금씩 비취는 햇살에 현란함을 더한 춘설은 창가보다는 창가에 기댄 가슴으로 부딪쳐 왔다.


첫 목양지로 향하는 빈 가슴이 오히려 든든했다. 내 떠남을 춘설로 기억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고마웠다. 그 길밖엔 없었다.


강원도행이 좌절됐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친구와 몇몇 선배의 얼굴이었다. 지금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하여 나는 무조건 떠나야 했다. 


나를 위해 다시 한 번 마련된 그 자리로 떠나는데 자존심 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한 공동체가 잃어서는 안 되는, 내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였다.


황동규의 시구 하나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살고 싶다, 누이여, 하나의 피해자로라도.’
친구야, 그리고 선배님들, 더 이상은 마십시오. 모두 저를 위한 격려임을 알지만 더 이상은 단강에 대해 염려를 말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변경할 수 없는 사실, 내가 단강에 왔다는 엄연한 사실을 이제부터 저는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약속하며 마련해준 따뜻한 배려, 그것이 제게 힘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저는 그것 아닌 것들과 싸워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마주해야 할 것은 불편함과 부족함일 것입니다. 넌지시 지켜봐 주십시오. 누구보다도 당신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얘기마을> 1987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0) 2021.08.05
창립예배  (0) 2021.08.04
첫 목양지로 가는 길  (0) 2021.08.03
한 목사님 아니세요?  (0) 2021.08.01
단강의 겨울  (0) 2021.07.31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0) 2021.07.29
posted by

한 목사님 아니세요?


주일저녁예배를 원주 시내에 나가 드리게 되었다. 성도교회 선교부 헌신예배에 설교를 부탁 받았다.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귀래 쪽으로 나가는데 용암을 지날 즈음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아가씨였다. 묘한 불신이 번져 있는 세상, 믿고 차를 세우는 아가씨가 뜻밖이었다. 


아가씨는 뒤편 의자에 앉았다. 아무 말도 안 하며 나가는 것도 쑥스럽고, 그렇다고 뭐라 얘기하자니 그것도 그렇고, 무슨 얘길 어떻게 할까 하고 있는데 뒤의 아가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 한 목사님 아니세요?”


설마 나를 아는 사람? 룸미러로 뒤의 아가씨를 다시 한 번 쳐다보지만 아는 사람이 아니다.  “저는 모르겠는데, 어떻게 저를 알죠?” 아가씨가 웃으며 대답을 했다. 


“제가 목사님을 처음 본 건 중학교 때 버스 안에서였어요. 귀래중학교를 다녔는데 버스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책을 읽는 것을 여러 번 보았어요. 뭐하는 분이기에 버스에서 책을 읽나 궁금해서 친구들께 물었더니 단강교회 목사님이라는 것이었어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학생은 용암에 사는 학생이었고,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원주 시내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어떤 할머니가 고추 자루를 여러 개 가지고 버스에 탄 적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짐을 싣느라 혼나시는 걸 보면서 도와드려야지 마음은 그러면서도 나서질 못했어요. 왠지 창피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뒷자리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나와 할머니 고추 자루를 받아 실었죠. 그 사람이 바로 목사님이었어요. 그때 굉장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기억에도 없는 일을 그 학생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도 좋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뜨끔했다. 저 학생은 또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때때로의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그 학생의 기억 속에 혹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면서도 생각은 그랬다. 


언제 어느 때라도 부끄럽지 않게 살기! 남의 시선 의식함 없이 할 도리를 다하기! 난 새삼 마음속으로 몇 가지를 다짐해야 했다. 

  <얘기마을> 1993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립예배  (0) 2021.08.04
첫 목양지로 가는 길  (0) 2021.08.03
한 목사님 아니세요?  (0) 2021.08.01
단강의 겨울  (0) 2021.07.31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0) 2021.07.29
새로운 이름을 안다는 것  (0) 2021.07.28
posted by

단강의 겨울



눈이 오면 가장 신나는 게 아무래도 아이들과 개들이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동네 개들은 개들대로 모여들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등허리에 옷 하나 걸치곤 질금질금 되새김질하며 한가로이 쉬고 있는 소나 그 옆 송아지에게 장난을 걸기도 한다. 껌벅이는 소의 큰 눈에도 내리는 눈이 가득하다.


아이들을 가장 아이답게 하는 것도 눈이다. 대번 마음이 열리고 열린 마음엔 날개가 달린다. 날리는 눈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영혼들, 여기 저기 자기 키만 한 눈사람이 세워지고, 툭툭 던지기 시작한 눈뭉치가 어느새 편싸움이 된다. 하하하, 하얀 입김, 하얀 웃음들, 온통 하얀 세상이 된다.


토끼 발자국을 쫒아 올무를 놓기도 하고 틈틈이 올무를 확인하곤 한다. 성급하면 안 되지, 성급하면 안 돼, 빈 올무를 볼 때마다 자신에게 이르고는 한다.


낙엽송 곧게 솟아오른 앞개울 건너 담안 골짜기, 사과 과수원 뒤편 백수네 담배 밭 바로 옆, 백수 네가 돌봐온 산소자리 언덕, 참 잔디 고운 곳. 눈이 오면 그곳은 천연 스키장이 된다. 비료 부대 위에 주저앉아 언덕 꼭대기부터 신나게 달려 내려오기도 하고, 내려오다 넘어지면 신나게 언덕을 구르고, 그렇게 눈사람 되고, 혼자서도 타고 앞자리에 동생도 태우기도 하고, 오줌 싼 듯 모두의 엉덩이는 펑퍼짐히 젖어들고. 


막걸리 빈병이나 플라스틱 소주병 또한 아이들의 스키 도구. 양쪽 발을 하나씩 올리고 앞으로 향하면 왜 그리 속도가 빠른지. 어, 어, 어, 어 대다 중심을 잃고.


종설아, 종하야, 정희야, 밥 먹어라. 골짜기 울리며 엄마, 할머니 불러대는 소리에 아쉬운 듯 집으로 향하면 집마다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들.


곱은 손을 불어 녹여 저녁을 먹고 쓰러지듯 잠이 들면 하얀 꿈은 밤새 하얗게 이어지고 다음날도 하얀 세상, 아이들과 개들은 다음날도 바쁘다.

눈이 오면 온통 하얀 세상, 단강의 겨울은.

-<얘기마을> 1989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목양지로 가는 길  (0) 2021.08.03
한 목사님 아니세요?  (0) 2021.08.01
단강의 겨울  (0) 2021.07.31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0) 2021.07.29
새로운 이름을 안다는 것  (0) 2021.07.28
귀소본능  (0) 2021.07.27
posted by

스스로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하여



“주님, 제가 아직 짓지 않은 많은 죄에서 저를 지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저지른 모든 죄를 슬퍼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만난 모든 사람들, 그들이 저의 친구이든지 적이든지, 그들을 만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들 모두가 결국 제 친구로 되기를 기도합니다.”(Margery Kempe, 1373-1440)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무더위를 잘 견디고 계시는지요? 날이 얼마나 더운지 모기들도 활동을 쉬고 있다지요? 물것을 많이 타는 분들에게는 이 여름이 주는 작은 위안인 것 같습니다. 낮에는 차마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아 이른 새벽에 공원을 걷고 있습니다. 걷는 시간은 기도의 시간인 동시에 얼크러진 생각의 타래를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한낮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동시에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누리고 사는 것들이 실은 다른 누군가의 수고의 결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하계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올림픽은 편안한 거실에서 즐기는 소일거리이지만,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그날만을 학수고대했던 선수들에게는 수확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메달을 따든 따지 못하든 일단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모든 선수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무관중 경기가 많다고 합니다. 관중들의 박수소리를 듣지 못하며 고독한 싸움을 하는 이들을 크게 위로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단련된 몸이 그리고 고도로 집중된 정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표지들입니다. 나이가 이미 전성기를 지난 장년의 선수들도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운동 경기도 즐기지만, 그들이 빚어내는 삶의 이야기에 더 크게 반응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말 그대로 평화의 제전이었습니다. 올림픽이 열리면 전쟁도 중단하고,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적대적인 국가를 통과할 때도 그 안전이 보장되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올림피아 제전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르테미시온 해전이 벌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나고 식량도 바닥을 드러내자, 소수의 (그리스)아르카디아인들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페르시아 진영으로 탈주를 감행했습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군의 행동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그들을 신문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리스군이 올림피아제전을 벌이면서 체육 경기와 전차 경주를 관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경기의 상품이 무엇이냐고 묻자 탈주자들은 승리자들에게는 올리브 가지로 엮은 관이 수여된다고 답했습니다. 상품으로 금품이 아닌 화환이 수여된다는 말을 듣은 트리탄타이크메스는 탄식하듯 말했습니다.

“아 마르노니오스여,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필이면 이런 인간들과 싸우게 만들었는가? 금품이 아닌 명예를 걸고 경기를 행하는 자들과!”(헤로도토스, <역사 下>, 박광순 옮김, 범우사, p.305)

물론 이 기록은 페르시아의 전제정치와 그리스의 자유 정신을 대조하기 위한 헤로도토스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물질적인 보상보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그리스 정신임을 자부심을 담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객관적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역사에 대한 기록자인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후대의 사람들의 DNA 속에 그런 도도한 자유혼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은 시대입니다. 건강이 유사 종교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뜻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로마시대 문장가인 유베날리스(Decimus Junius Jubenalis)의 풍자시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의 원래 의미는 조금 다른 듯합니다. 라틴어의 표현을 직역하면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기를 기원해야 할 일이다”가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의 속뜻은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김용석, <일상의 발견>, 푸른숲, p.139). 몸을 단련한다고 하여 곧 정신이 맑아지거나 아름다워지지는 않습니다. 그 둘은 함께 가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올림픽 경기에 빗대 설명했습니다. 올림픽은 그 시대에도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는 행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고전 9:24) 꼭 신앙생활의 목표가 ‘상’을 받는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그 목표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고백’을 ‘삶’으로 번역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삶은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일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일을 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네 일상입니다. 일상은 너무나 평범하고 반복적입니다. 사람들은 일상을 지겹게 느끼기에 뭔가 짜릿하고 특별한 경험을 구하거나,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사실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마치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상이야말로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 일상을 충실히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의 비결입니다. 김용석 교수의 말이 우리 폐부를 찌릅니다. 

“적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은 새콤달콤 ‘잘사는’ 삶이 아니라, ‘남들에게 좀더 잘사는 것처럼 보이려고’ 아등바등하는 삶이거나 ‘이미 잘살고 있다’는 것을 크렁크렁 과시하는 삶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의미 있는 일상이 그들에게서 멀리 있기 때문이다.”(김용석, 앞의 책, ‘머리말’ 중에서)

‘만일 예수님과 동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이란 가정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복음서 가운데서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을 상세하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할까?’ ‘도무지 풀리지 않는 신정론의 문제를 여쭤볼까?’, ‘당신을 배신하기로 이미 마음 먹은 유다의 발을 닦아주실 때 심정이 어떠셨는지 여쭤볼까?’ 제게 정말 그럴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깊은 침묵 속에서 예수님의 일상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주무시는 모습, 음식을 잡수시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길을 걸으시는 모습, 가련한 이들과 만날 때의 눈빛, 그리고 영혼의 목마름에 시달리는 이들을 향해 가만가만 말을 건네시는 주님의 음성, 귀신을 꾸짖으실 때의 어조, 적대적인 질문을 하는 이들을 대하실 때의 호흡... 누군가의 일상을 보면 그의 내면을 살필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 삶을 뒤흔들어놓는 것은 누군가의 심오한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자기 일상을 살아내는 이들의 아름다움에 눈을 뜰 때가 아니던가요? 신앙생활은 일상과 무관한 가외의 생활이 아니라, 일상 속에 하나님의 뜻이 배어들게 하는 것입니다. 일상을 거룩하게 살아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훈련 없는 거룩한 삶은 불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독려하기 위해 믿음을 올림픽 경주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말합니다. 절제란 자기 훈련 혹은 자기 통제를 의미하지만 실은 많은 것을 포기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 욕구,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구, 느긋한 시간을 누리고 싶은 욕구, 친한 벗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욕구, 이기적으로 처신하고 싶은 욕구. ‘절제’는 욕망과의 거리두기입니다. 바울이 그렇게도 위대한 전도자로 살았던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치열한 노력 덕분입니다. 그는 자기 몸을 쳐서 굴복시켰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고전 9:27b)

자기 기만에 빠져 결국 영혼이 텅 빈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그랬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버림을 받는다’는 말이 통렬하게 다가옵니다. 스스로 잘 믿는다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자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올림픽 선수들은 피땀을 흘리며 훈련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기 위한 것이라 말합니다. 아마 요즘 같으면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실 이 자극적인 표현은 신앙의 길을 걷는 이들이 얻게 될 ‘썩지 않을 월계관’을 더 도드라지게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표현일 겁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절제하면서 자기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운동선수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욕망과의 거리 두기가 더욱 필요한 시기입니다. 교우들의 애경사가 있어도 공동체가 함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매미 울음소리가 여름을 처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배롱나무에 고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저마다 한 세상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투덜거리지 말고, 기쁘게, 깨어서 우리 일상을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한 주간도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빕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주님의 현존을 알아차리는 기쁨도 누리시기를 빕니다. 평화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2021년 7월 29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posted by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흙벽돌로 지은 허름한 방, 임시로 마련된 예배처소도 그러하고 내 기거할 방도 그러하다.
문득 생각하니 묘하다.


동화작가 권정생에 대한 얘길 듣고부터는 흙벽돌집에 대한 기대를 은근히 가져왔지 않았는가. 


맑게 설움이 내비치는 사람, 그는 동내 청년들이 빌뱅이언덕에 지어준 작은 흙벽돌집에서 꽃과 함께 생쥐와 함께 살고 있다.


겉은 더 없이 허술해도 방안은 아늑한 집, 다른 건 없어도 좋아하는 책들이 빼곡히 들어있는 곳, 많진 않지만 책을 둘러쌓으니 마음속 바래왔던 기대 하나가 이루어진 셈이다. 낮에도 문을 닫으면 불을 켜야 하지만 족하다.


작은 카세트임에도 FM 방송이 두개씩이나 나오고, 커피와 촛불과 노래가 있으니까. 고요한 시간은 보다 창조적일 수 있을 테니까. 책상 앞 벽에 “所有는 적으나 存在는 넉넉하게”라 써 붙인다.

<얘기마을> 1987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목사님 아니세요?  (0) 2021.08.01
단강의 겨울  (0) 2021.07.31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0) 2021.07.29
새로운 이름을 안다는 것  (0) 2021.07.28
귀소본능  (0) 2021.07.27
귀향(歸鄕)  (0) 2021.07.26
posted by

새로운 이름을 안다는 것



웬만한 지도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이곳 단강. 걸어서도 하루에 강원도, 충청북도, 경기도, 삼도를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곳.


앞쪽으론 남한강이 흐르고 뒤쪽엔 이름 모를 산들이 그만그만한 크기로 동네를 품고 있다.


단군이 목욕해서 단강이 되었다고 떠나올 땐 그렇게 들었는데 와서 보니 그게 아니다. 단종이 피난 가다 잠시 쉬어갔다 해서 생긴 이름이란다. 아쉽다, 먼저 번 것이 훨씬 그럴듯한데.


단강리는 끽경자와 섬뜰과 작실 3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이 재미있다. 끽경자는 경자라는 여자가 강물에 빠져 죽어 붙여진 이름이고, 섬뜰은 마을의 4면이 강과 저수지 그리고 두개의 개울로 감싸져 있어 섬뜰이 됐고, 작실은 作室이라 쓰는데 ‘집을 짓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다.


내 숙소는 섬뜰에 있는데 여차하면 난 孤島에 갇히는 게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동네 이름과 길, 그리고 산이름 등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민요나 노동요 등도 찾아 봐야지. 새로운 이름을 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에 익숙해진다는 것. 그게 삶의 과정일 테니까. 성숙을 향한.

<얘기마을> 1987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강의 겨울  (0) 2021.07.31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0) 2021.07.29
새로운 이름을 안다는 것  (0) 2021.07.28
귀소본능  (0) 2021.07.27
귀향(歸鄕)  (0) 2021.07.26
때로는  (0) 2021.07.24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