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태워줘!

신동숙의 글밭(60)


엄마, 태워줘!





엄마, 태워줘!

버스 타고 가거라


골목길 걷다가

강아지풀 보면

눈인사도 하고


돌부리에 잠시

멈춰도 보고

넘어지면 

털고 일어나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콩나물 시루 속 

한 가닥

콩나물이 되면


옆에 사람 

발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옮기는


함께 걷는 길

평화의 길

사랑의 길

버스 타고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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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맞추기

  • 나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그 분의 그림 안에서 살아가기에,나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만남 앞에 사심없이 다가가려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의가 나의 사심으로 인해서 가리워지지 않기를 빌고 또 빕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 동안에 나의 욕심으로인해 실족하는 자가 없기를요.

    신동숙 2020.01.18 13:30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0)

 

퍼즐 맞추기

 

몰랐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이끄시는 방법 중에는 새로운 만남이라는 방법이 있지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두 사람과 점심 식사를 했다. 정릉교회에 부임을 한 뒤로 예배 시간에 자주 얼굴을 대하게 되는 젊은 내외가 있었다. 새벽예배는 물론 금요심야기도회에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설교 내용을 열심히 적을 만큼 예배에 집중하는 내외였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다가 두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고, 처음으로 차 한 잔을 나누게 되었다. 남편이 국민대 교수라는 것, 주일에 출석하여 섬기는 교회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점심을 약속하게 되었던 것인데, 함께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음속 기도제목도 나눌 수가 있었다. 이야기 중에 들려준 퍼즐 이야기가 고마운 메아리처럼 들렸다.




“목사님이 설교 중에 퍼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이해하기 힘든 일과 시간들은 왜 이런 것이 내 삶에 주어졌을까 이상한 퍼즐 조각처럼 보이지만, 그 조각이 없으면 하나의 그림은 완성될 수가 없다고 말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동안 힘들었던 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허락되는 새로운 만남도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만남이라는 조각 하나를 건네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생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그림으로 그려가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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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좋은 거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9)

 

좀 좋은 거울

 

고흐가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 중에 거울 이야기가 있다. 지금이야 위대한 화가로 칭송과 사랑을 받지만, 살아생전 고흐는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 가난과 외로움이 그의 밥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형의 처지와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었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며 고흐는 어느 날 이렇게 쓴다. 

“모델을 구하지 못해서 대신 내 얼굴을 그리기 위해 일부러 좀 좋은 거울을 샀다.”(1888년 9월)    


고흐의 이 짧은 한 마디 말을 떠올릴 때면 나는 먹먹해진다. 비구름에 덮인 먼 산 보듯 막막해진다. 울컥, 마음 끝이 젖어온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절대의 고독과, 물감조차도 아껴야 하는 극한의 가난, 그런 상황에서도 놓을 수 없었던 그림, 그림은 고흐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다. 고흐에게는 그림이 유일한 숨구멍이었을 것이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대신 자기 얼굴을 그리려고 좀 좋은 거울을 산 사람, 그러면서도 그것조차 조심스러워 하는 고흐의 떨림이 오늘 우리에겐 없다. 고흐 그림 속에 담긴 근원이, 근원을 향한 그리움이나 절박함이 우리에게 없는 것은 ‘좀 좋은 거울’을 사는 가난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좋은 거울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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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하는 시간

신동숙의 글밭(59)


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하는 시간



모처럼 찾은 산동네, 다들 바쁜 일정 중에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중국집에서 시켜 먹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걸어서 올라오고 내려가는 데만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아찔한 이 까꼬막을 오토바이가 올라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자칫 뒤로 자빠질 것 같고, 비가 오거나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배달을 해야하는 사람은 눈물이 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크고 밝다는 의미의 우리말 옛이름은 '배달'입니다. 우리는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달의 민족을 배웠다면, 오늘날 초등학생들은 매스컴에서 듣고 또 듣는 이름 '배달의 민족'. 광고의 요지를 보면, 어디든 달려 가고, 무엇이든 배달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보다 더 편리할 수 없는 자본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제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은 이유를 두고 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합니다.




저녁답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걸어가는 주부의 모습이 귀합니다. 얼마 이상 주문을 클릭하면, 원하는 시간에 맞춰 집 앞까지 배달이 되니까요. 아파트촌과 평지 마을이 배달하시는 분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십니다. 생계를 위해 배달을 해야하는 이웃들에게 산동네의 까꼬막은 어떤 무게로 다가갈까를 두고 묵상을 합니다. 무리를 떠나 산으로 가시던 예수의 마음을 제 어둔 가슴에 해처럼 떠올려서 잠시나마 산동네와 배달음식, 택배 문화를 비추어봅니다.


그리고,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청년들의 잔뜩 움츠러든 몸과 피어나지 못한 체 접혀 있는 씨앗 같은 마음을 묵상합니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어도 먹거리부터 생계가 해결 되기에, 연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몸과 마음이 편안한지, 삶이 행복한지, 가치와 의미를 먹고 살아야 하는 영혼이 배달 음식으로인해 자유로움을 얻는지. 자본주의가 낳은 편리함이라는 두터운 이불 속에 갇혀 연명하고 있는 젊음.  젊은 육체의 세포들을 알알이 깨어나게 해줄 한 줄기 햇살을 구합니다.


자본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산골이나 시골로 들어가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 속에서 비로소 마음의 행복을 찾았다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한 줄기 맑은 바람처럼 가슴으로 불어옵니다. 언젠가 불어온 푸른 바람과 밝고 따스한 햇살이 피부에 닿았던 느낌을 기억한다면, 마음까지 가벼워져 겨드랑이께로 날개가 돋힌 듯 홀가분해지던 느낌을 몸이 기억한다면 좋겠습니다. 


내리는 빗물이 산비탈 마을의 낮아진 웅덩이마다 고여서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햇살이 포근하게 깊은 곳까지 감싸 안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오르내리는 걸음마다 부디 안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좁다란 오름길에 봄이 오고, 오르락내리락 가쁜 숨을 고르어 평온히 걸으면 집집마다 틈새마다 피어난 색색깔꽃들이 눈맞춤하며 반길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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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다

  • 빠른 회복 빕니다.

    이진구 2020.01.16 15:07
    • 고맙습니다.

      한희철 2020.01.18 07:17 DEL
  • 몸의 아픔으로인해 가라앉은 시간이 저절로 주어지신 듯합니다. 깊이 침잠하는 고요함 속에서 쉼을 선물로 주시는 그 조차도 은총일 테지요.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깊어진 만큼 더 맑고 환하게 다가올 일상으로 평온히 인도해 주시기를요. 하지만, 건강 또 건강하시기를요..

    신동숙 2020.01.16 19:00
    • 따뜻한 배려와 격려,
      고맙습니다.

      한희철 2020.01.18 07:19 DEL
  • 한목사님...탈이 제대로 났군요. 건강을 타고 나신분도... 쾌유하시길 빕니다.

    기쁨지기 2020.01.17 16:11
    • 그러게요,
      고맙습니다.

      한희철 2020.01.18 07:20 DEL
  • 아이구 이런.. 목사님.. 쾌유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혁 2020.01.17 16:50
    • 고맙습니다.
      이 목사님도 늘 건강하세요.

      한희철 2020.01.18 07:21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8)

 

가라앉다

 

탈이 난 것은 알아차린 것은 집회 마지막 날 새벽이었다. 오전과 저녁에만 모이는 집회여서 푹 자도 좋았는데, 여전히 이른 새벽에 일어났던 것은 아픈 배 때문이었다. 그런데 탈이 난 것은 배 만이 아니었다. 욱신욱신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계속되었던 무리한 일정들, 몸에 탈이 날만도 했다.

아침에 교육부총무에게서 연락이 왔다. 몸이 괜찮으냐고. 의례적인 안부 인사인 줄 알고 괜찮다고 하자 지방 교역자들 중 여러 명이 탈이 났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전날 먹었던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조심하는 마음으로 집회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몸은 여전했다. 복통과 두통, 거기에다가 몸 곳곳이 쑤시는 것이 이어졌다. 목은 가라앉으며 된 기침이 이어졌고, 입술은 터졌다. 웬만한 증세야 참고 견디면 지나갔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주일을 지나면서도 증세는 호전되지를 않았다. 1년 예산을 결정하는 구역회와 오후예배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혼곤하게 잠에 빠졌다. 걱정이 된 아내가 약사 권사님께 이야기를 하여 약을 지어왔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몸의 탈, 몸이 어딘가로 가라앉는 것 같다. 돌멩이를 매단 채 깊은 수심으로 잠기는 것 같은데, 신기한 것은 덩달아 마음도 잠기는 것이다. 몽롱하기도 하고, 희미하기도 하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들떠 있었던 것이라면 이런 경험도 필요할 것이다. 가라앉을 만큼 가라앉아 이게 바닥이다 싶을 때, 그 자리에서 어머니 태속인 것처럼 몸과 마음을 웅크린 채로 얼마간을 지내면 조금씩 다시 떠오를 것이다. 싹이 눈을 뜨듯이 새로운 기운을 찾아들 것이다. 그러면 일상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지금은 다만 몸의 증세에 맡기고는 가만히 가라앉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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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유머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15 00:24
    • 반갑습니다.

      한희철 2020.01.16 08:24 DEL
  • 따뜻한 유머가 어둔 마음을 맑고 환하게 해주는 듯합니다.

    신동숙 2020.01.15 06:52
    • 따뜻한 유머는 눅눅한 가슴에 켜는 등불 같지요.

      한희철 2020.01.16 08:25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7)

 

교황의 유머

 

“가만히 계세요. 깨물면 안 돼요.” 


그 한 마디 말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버럭 교황’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연말 자신의 손을 세게 잡아당긴 한 여성 신도에게 화를 냈고, 화를 낸 것을 사과하여 논란이 됐던 일로부터 말이다. 

그런 일로부터 며칠 뒤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을 찾았다. 많은 신자가 몰렸는데, 맨 앞줄에 있던 수녀 한 명이 손을 뻗으며 “바초, 파파!”(키스해 주세요. 교황님) 외쳤다. “오, 나를 깨물려고요?”라고 묻는 교황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자 교황은 “당신에게 키스할 테니 그대로 있어야 해요. 깨물면 안 돼요.”라고 말하며 수녀의 오른쪽 뺨에 입술을 맞추고 얼굴을 쓰다듬어 줬다. 유머러스한 교황과 감격에 겨워 좋아하는 수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주변 신도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바티칸 미디어·로이터연합뉴스



그런 교황을 보며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라는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린 글을 읽고 빙긋 웃었다. 적절한 이해라 여겨졌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제가 중에서 누가 학문을 좋아하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안회가 학문을 좋아했습니다. 성냄을 옮기지 않고, 실수를 두 번 되풀이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불행히도 단명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안회가 30대 초반 나이에 죽자 공자는 “天喪予(천상여) 天喪予(천상여)” 하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며 탄식을 한 것이었으니, 스승이 제자를 얼마나 아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 마음에 새겨둘 만한 말이다. 잘못이나 어색함을 덮고 지우는 것은 역시 따뜻한 유머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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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15 00:18
    • 고맙습니다.

      한희철 2020.01.16 08:26 DEL
  • 한국에 내리는 겨울비가 호주에서 내렸으면 하는 저도 그런 마음입니다. 말씀 앞에서 호불호가 사라지는 복된 자리,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신동숙 2020.01.15 06:55
    • 겨울비 치고는 많은 양의 비를 보면서 호주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했답니다.

      한희철 2020.01.16 08:27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6)

 

호불호

 

강화서지방 연합성회에 다녀왔다. 연초(年初) 첫 번째 주에 말씀을 나누는 것이 강화서지방의 전통이었다. 연일 겨울비가 내렸지만 한해를 말씀으로 시작하려는 교우들의 열심은 날씨와는 상관이 없었다. 겨울비 치고는 많은 양의 비, 생각하니 눈이 아니길 다행이었다. 눈이었다면 폭설, 오히려 길 나서기가 어려웠을 터였다. 이 비가 산불로 재난을 겪고 있는 호주에 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화서지방에는 섬에 있는 교회들도 있었다. 석모도에 다리가 놓여 육지화 되었음에도 볼음도, 주문도, 아차도, 말도 등 5개의 교회는 여전히 섬에 있었다. 섬에 있는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은 집회 기간 동안 뭍에서 지내며 집회에 참석을 했다. 둘째 날 아침에는 섬 교회 목회자 내외분들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섬에서 목회하는 목회자에게는 다른 이들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애환이 있었다.




연합성회를 인도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은혜를 사모하는 방식도 다르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이고, 교회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뜨거움을, 어떤 이들은 온전한 말씀을 기대한다. 어떤 기대에 부응하기보다는 내가 전할 수 있는 말씀을 전하기로 했고, 가능한 차분하게 말씀을 나눴다. 양해를 구하고 헌금에 대한 강조도, 헌금봉투에 적힌 이름을 호명하는 일도 삼갔다.


집회를 모두 마치는 날이었다. 마지막 저녁집회를 앞두고 잠깐 지방 감리사를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 너무 강사 방식대로 해서 걱정을 끼친 것 아닌가 조심스럽다고 하자, 감리사가 고마운 말을 한다. 강사의 성향에 따라 교우들과 목회자들의 호불호가 선명하게 갈릴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어 참 좋았다고 했다. 

물론 강사를 위한 배려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말이 고마웠던 것은 우리의 성향이 서로 다르다 해도 말씀 앞에서 갖는 우리의 마음은 서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 앞에서 호불호가 사라지는 자리가 복된 자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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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신동숙의 글밭(58)


심심해서



심심해서 하늘을 보면 심심해서 나무를 보면 심심해서 누굴 만나면 심심해서 어딜 가면 심심해서 영화를 보면 심심해서 해외 여행을 가면 심심해서 일을 하면 심심해서 시를 쓰면 심심해서 바다에 가면 심심해서 산에 가면 심심해서 잠을 자면 심심해서 해가 뜨면 심심해서 달이 뜨면 심심해서 별이 반짝이면 심심해서 고요히 머물면 심심해서 평온이 놀러오면, 




일상이 내쉬는 날숨 같은 

심심함 덕분에 

숨을 쉬고 움직이면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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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사람의 온전한 행복

신동숙의 글밭(57)


돕는 사람의 온전한 행복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은 모두가 다른 얼굴 다른 삶의 모습을 보입니다.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으며, 한 순간도 똑같은 순간이 없는 생생히 살아있는 삶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들 중에는 도움을 주는 손길도 있고, 도움을 받는 손길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서로가 조금씩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10대~20대를 지나면서 진학을 하고 또 취업을 위해 우리는 선택의 순간과 종종 만나게 됩니다. 대나무의 마디처럼 만나게 되는 그 순간에 어떠한 씨앗을 가슴에 품느냐에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모습은 달라질 것입니다. 대나무가 위로 곧은 것은 곁길로 가지 않고 높은 하늘만 선택했기 때문인지, 곁에 선 대나무에 제 마음을 비추어보며 그리고 둘러싼 하늘을 바라봅니다.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가려는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뭔지는 잘 모르지만, 대상이 분명하진 않지만 세상을 향해 돕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원을 세우는 삶이 있습니다. 똑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지만, 시간이 갈수록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지런히 바쁘게 일상의 삶을 꾸려가는 모습이 미덕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급속도록 그래프가 올라가던 경제 성장 속도에 발맞추어 소중한 하루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가쁜 숨을 쉬어야 했던 생활인들. 그리고, 언젠가부터 몰아쉬던 가쁜 숨을 천천히 내려놓으려는 잔잔한 물결들이 삶 곳곳에는 일렁이고 있음을 봅니다. 


저 역시도 20대 초반에는 취업에 대한 고민이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가슴을 누르던 터널과 같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 터널의 시기는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나 찾아오고 또 지나가며 삶의 마지막까지 그렇게 이어질 테고요. 그러한 삶 속에서 매 순간마다 저는 언제나 초보자이며, 어린아이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20대 취업을 앞두고, 부지런함보다는 게으른 모습이었습니다.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었으니까요. 공부만 시켜놓으면 알아서 척척 살아갈 줄 알았던 딸이었기에 지켜보던 부모님이 답답함에 가슴을 치시던, 혼돈과 공허함의 시기를 지나고 있던 무렵입니다. 저는 어둔 내면을 보고 있었고, 제 몸은 묶여 있었습니다. 식물과 같은 모습. 제게 주어지는 모든 한 순간의 선택이 영원의 숙제로 다가오는 그 무거움. 이제는 그 게으름과 무력감의 순간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멈춤.


학업과 일상이라는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고, 고요히 머무는 순간. 제 인생이 처음으로 멈추고 내면으로 시선이 향하게 된 전환점입니다. 종종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멈춤의 시기를 겪은 분들도 계시지만, 여전히 일상의 수레바퀴 위에서 발을 내려놓지 못하여 주저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는 눈빛도 언뜻 마주치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영혼으로부터 초대장은 날아올 테고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복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저에게 다가온 멈춤의 순간. 고요히 머물러 내면으로 시선이 향하던 그 순간. 따뜻한 온기를 구했고 삶의 행복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금방 사라질 온기와 표피적인 행복이 아니라, 진정한 빛과 온전한 행복을 구했습니다. 더욱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고, 그럴수록 나와 너는 둘이 아닌 하나의 뿌리임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어진 내면의 느낌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흐려진 것이 아니라 마치 뿌려진 씨앗이 자라는 모습처럼 더욱 선명해집니다. 내가 노력해서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느낌이었다면 금방 사라졌을 것입니다. 멈추고 고요히 머무는 순간, 저절로 주어지는 은총이 실체임을 봅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에 고요히 머물러 평온함과 쉼을 얻는 관상觀想의 기도.


삶의 물줄기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에서 보이는 한계들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고층 아파트 부촌에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늘의 공기, 미세먼지는 어디든 넘나듭니다. 함께 호흡하며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지향점으로 자연스레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할 때 제 마음은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행복은 도움을 주려는 마음과 가까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받으려고만 하면 작아지고 옹졸해집니다. 반대로 사랑을 주려고 하고 도움을 주려는 마음은 스스로의 가슴에 햇살을 품은 듯 넉넉한 가슴이 하늘처럼 내 속에 펼쳐지는 풍경을 봅니다.


제가 선택한 삶은 도움이 되는 삶, 섬기는 삶이 커다란 물줄기가 되었습니다. 제 자신이 온전히 행복하기 위해서 선택한 삶. 그 와중에도 물살이 오고 가듯, 스치는 이기심과 이타심은 서로가 잔잔히 부딪히며 윤슬처럼 반짝이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강물은 유유히 흘러갈 테고요. 우리의 삶이 눈물겹도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 위에 내려앉아 부딪히며 빈 곳을 채우는 하늘과 햇살의 반짝임이 아닌가 헤아려봅니다.


명상의 집에서 만난 안셀모 신부님의 모습이 반가운 것은 돕는 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원을 십 대 때 세운 그 발심입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토마스 머튼의 영성 강의. 이어지는 점심 식사 시간에는 맨 마지막에 식사를 하셔서 참석자들이 한 두 개씩 먹었던 생선 튀김을 못 드셨답니다. 적게 먹는 저보다 더 조금만 덜어 오셔서 국에 밥을 말아서 드십니다. 처음으로 나누는 인사가 반갑고 따뜻합니다. 


제가 난생처음 참석한 미사를 두고 옆에 앉은 대구에서 오신 분이 얘기를 하십니다. 저보고 오늘 처음 왔는데, 제일 큰 미사를 드렸다고 하십니다. 단상 위에까지 올라가서 예수님의 신상과 신부님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가 빙둘러 서서 다 함께 성찬 미사를 드린 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지 않았기에 제 차례가 되어서는 이마에 십자가 성호를 그으시며 안수 기도를 해주십니다.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한 명씩 각자가 받은 빵을 차례로 적셔가며 나누는 모습입니다. 맨 마지막에 신부님이 성찬빵 부스러기를 닦듯이 긁어모아서 성찬잔에 담으시더니, 물을 조금 부어 헹궈서 드십니다. 그리고 행주로 깨끗이 닦아서 뒷설겆이까지 말끔히 마치는 모습입니다. 수도자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또 살아가야 하는지 성찬 미사의 그 한 단면을 통해서 잠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자가 아닌 섬기는 자로 살아가려는 수도자의 삶. 나를 비우고 진리와 빛의 하나님으로 채우려는 삶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온전히 행복한 모습은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또한 온전히 행복한 삶일 테고요. 나와 너가 둘이 아니고 하나의 뿌리이기에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 마음에 싹 트는 돕는 마음. 그 마음 자리에서 꽃이 피고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하던 일을 잠시 멈추어 고요히 머무는 그 마음 자리에서 평온과 사랑과 쉼이 있는 온전한 행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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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중에 한 말

  • 말에 신중함을 말씀하시겠지요.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12 06:59
  •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한희철 2020.01.12 19:1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5)

 

 부지중에 한 말

 



손톱을 깎다가 잘못 튄 손톱은 뒤늦게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다.

부지중에 한 말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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