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하듯



모든 게 올랐다. 정말 모든 게 겁나게 올랐다.


‘제사상 차리기도 어려워졌다’는 말이 빈 탄식이 아니다. 
단하나, 농산물만이 멀뚱멀뚱 한다. 바보처럼. 


무엇 그리 억센 놈에게 발목 잡혔는지 땀 벅벅 한숨 벅벅 농산물만 남겨두고, 비웃듯 조롱하듯 모든 게 올랐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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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축제의 모임. 환희와 찬미소리 드높던 그 행렬, 무리들 앞장서서 성전으로 들어가던 일,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집니다.”(시 42:4)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시인의 마음 충분히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떠나간 이 모두 돌아와 함께 예배할 그날은 언제일지, 이 작은 땅에서 그려보는 그날이, 옛일 그리는 옛 시인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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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함께 본다는 것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을 네게 들려주고 싶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동해야 할 때이다. 에너지가 차올랐다. 그러니 쟁기를 손에 잡아라. 우리는 강해짐으로 강해질 수 있고, 믿음으로 믿음을 배울 수 있고, 사랑함으로 사랑을 배울 수 있다.”(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 중에서, Carol Berry, <Vincent van Gogh>, His Spiritual Vision in Life and Art, Orbis, p.68)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10월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계절은 벌써 상강(霜降)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교회에 작은 국화 화분 12개를 보내주셔서 현관 앞에 두었습니다. 국화가 외로울까봐 가끔 밖으로 나가 눈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슬그머니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지나치게 화려하여 눈길을 끌지도 않고, 수수한 듯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국화꽃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크고 좋은 국화 화분을 장만하여 교우들 맞을 생각입니다. 화단에 있는 양달개비는 때를 잊었는지 새로운 꽃을 피웠다 지기를 반복하고 있고, 꽃댕강나무도 여전히 꽃을 피워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지난 6월경부터 예쁘게 피기 시작한 일일초는 조금 기운이 약하여지긴 했지만 며칠마다 새로운 꽃을 피워내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꽃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안간힘을 다하여 꽃을 피워올리는 나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월요일, 교우 아버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에 다녀왔습니다. 창밖으로 산을 내다보며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단풍의 시간은 다가오지 않았는지 산은 아직 형형색색으로 물들지 않았더군요. 추수를 이미 끝낸 논도 보였고, 가지런하게 서 있는 벼포기가 바람에 일렁이는 논도 보였습니다. 길가에 선 은사시나뭇잎이 오가는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빈소는 대개 슬픔의 공간이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고인이 아름다운 인생을 사셨고, 가족들의 우애가 깊을수록 빈소는 따뜻한 공감과 사랑이 깃드는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왠지 가을산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인근에 있는 계족산을 찾아 한 시간 정도 황톳길을 걸었습니다. 검은 양복에 구두를 신고 있었지만 마음은 사뭇 유쾌했습니다. 흙을 느껴보고 싶어 맨발로 황톳길을 조금 걸었습니다. 발은 아리도록 시렸지만 흙이 주는 탄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월요일이면 가까운 산에 오르곤 했습니다. 월요일에는 아예 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산을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졌습니다. 주중에는 시간을 토막을 내 사용해야 하기에, 옹근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할 일은 늘 월요일로 미루곤 했던 것입니다. 일단 그런 일이 습관이 되자 더러 일정이 비어 있는 날에도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갈 생각을 품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우들 가운데 산에 가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SNS에 올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얼마 전 설악산 공룡능선을 걸으며 찍은 교우의 영상을 보며 ‘와우, 와우’ 감탄사만 터뜨렸습니다. 절경 앞에 서면 사람은 말을 잊게 마련입니다. 아름다움 앞에 설 때 사람은 오염된 말을 버리고 침묵 속에 젖어듭니다. 정화의 시간입니다. 땀 흘림이 없다면 그런 체험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 영상을 보다가 문득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방문했던 지리학자의 별이 떠올라 쓰디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별은 어린왕자가 지구에 오기 바로 직전에 들렀던 곳입니다. 어린왕자가 그 별에 도착하자 책상 위에 커다란 책을 펼쳐놓고 있던 늙은 신사가 그를 맞아줍니다. 그는 어린왕자에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묻고는 자기를 지리학자라고 소개합니다. 지리학자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바다와 강과 도시와 산 그리고 사막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린왕자가 그 별에도 강이나 산 그리고 사막이 있냐고 묻자 지리학자는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자기는 탐험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걸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탐험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기억이 진실하다는 판단이 들 때면 기록하는 것이 자기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현실과 학자적 거리를 두고 사는 판단 강박증 환자입니다. 


학자다운 호기심을 품고 그는 어린왕자의 별에 대해 묻습니다. 어린왕자가 자기 별은 아주 작다면서 그 별에는 불이 있는 화산이 둘이 있고 불이 꺼진 화산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꽃 한 송이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지리학자는 자기는 꽃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니, 왜 그 예쁜 것을 기록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꽃이 ‘덧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자기는 영원한 것, 변치 않는 것만 기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왕자가 덧없다는 게 뭐냐고 묻자 지리학자는 “그것은 ‘머지않아 사라져버릴  위험이 있다'는 뜻”(앙투안 마리 로제 드생텍쥐페리, <어린왕자>,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p.80)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어린왕자는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세상에 맞서서 자기를 보호할 수단이라곤 가시 네 개밖에 없는 꽃을 홀로 두고 왔다는 자책감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생텍쥐페리는 슬그머니 덧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새별오름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만 소중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견고한 토대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작고 여려 언제라도 소멸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둘 때 우리는 비로소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날이 차갑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산이나 강가에 있는 나무에 서린 상고대를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그 앞에 서면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 해도 신비감에 사로잡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상고대를 사시사철 볼 수 있다면 그 감성이 살아날 리 없습니다. 쉬 스러지는 것이기에 더욱 애틋한 눈길을 받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노래로 알려진 아가(雅歌)에 나오는 사랑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나는 임의 것, 임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 임이여, 가요,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 나무 숲 속에서 함께 밤을 보내요. 이른 아침에 포도원으로 함께 가요.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이 피었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함께 보러 가요. 거기에서 나의 사랑을 임에게 드리겠어요.”(아 7:10-13)


작고 여린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본다는 것, 바로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자기에게 골몰하던 삶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자기를 개방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에 눈길을 주는 순간 나와 타자를 가르는 담장들이 무너지고 잠시나마 하나 됨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쓸모와 유용성이 지배하는 세상은 늘 우리의 몸과 마음을 긴장시키지만,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긴장에서 벗어나 홀가분함을 느낍니다.


벌써 몇 해가 흘렀군요. 이맘때면 우리는 가을 기차 여행을 하거나, 한적한 곳으로 소풍을 떠나곤 했습니다. 설렘으로 가득 찼던 교우들의 표정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함께’라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마을 고샅길을 천천히 걸으며 꽃들에 눈길을 주기도 했고, 산길을 걸으며 식물들의 이름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이 밝았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간간이 끼어드는 예배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습니까? 어느 동시에서 본 구절입니다만 우리는 ‘나무의 웃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리운 시절입니다. 이제 다시 그럴 때가 곧 오겠지요? 올해는 모두 함께 그런 시간을 누릴 수는 없지만, 일부러라도 시간을 마련하여 한적한 곳을 찾아가시면 좋겠습니다. 멋진 숲길을 걸을 때 저를 초대해주셔도 좋겠습니다.


교회의 영상장비와 조명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린다 해도 예배 영상을 송출하는 일은 중단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 늘 질 좋은 영상을 접하는 이들은 영상의 품질이 떨어지면 매우 힘들어한다고들 하시더군요. 저는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거나 교체하는 일에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곤 하지만 이번만큼은 모른 체하며 젊은 세대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강대상을 향해 달린 여러 대의 조명 장비가 조금은 낯설 수도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영상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방송실에서 봉사하는 이들의 수고를 기억하며 사랑으로 격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의 헌신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1월 첫째 주는 우리 교회가 해마다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마침 그 주간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며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교우들이 예배에 동참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교우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찬송을 바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힘겨운 일상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꾸만 헤아려 보십시오. 나무가 가을볕을 머금어 아름다운 색을 만들듯, 우리도 주님의 빛과 사랑을 받아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평강이 모든 가정에 머무시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1년 10월 21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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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몰이



쉽게 생각했던 토끼도 이젠 잔뜩 겁을 집어 먹었습니다. 점점 포위망이 좁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겨울 방학 중 임시 소집일을 맞은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눈 쌓인 뒷산으로 올라 토끼몰이에 나선 것입니다.


몽둥이를 든 아이에 깡통을 두드리는 아이, 산을 빙 둘러 몰이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구경하듯 느긋하던 토끼가 아이들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행동이 빨라지자 차츰 당황하게 된 것입니다.


발자국 소리에 놀라 저쪽으로 도망가면 “와!”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막아섰고, 이쪽으로 뛰면 기다란 작대기를 든 아이들이 막아섰습니다.


이리 뛰고 자리 뛰고 하는 사이에 산을 에워싸던 아이들의 원은 점점 좁혀들었고, 그제야 토끼는 자기가 위태로워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간 게 종대 앞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토끼를 잡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상부 주장을 맡고 있는 종대는 누구보다도 몸이 빠른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었던 종대는 토끼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쓰러지며 토끼를 덮쳤지만 토끼가 그 틈을 살짝 피해 산 저쪽으로 도망을 쳤던 것입니다. 종대는 눈만 한 아름 안고 일어섰습니다.

허탕치고 내려오는 길, 토끼 놓친 걸 모두들 아쉬워했지만 종대만은 달랐습니다. 자기에게로 달려온 토끼를 마주했을 때, 잠깐이긴 했지만 종대는 토끼의 두 눈을 본 것인데, 잔뜩 겁에 질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토끼의 두 눈이 그렇게도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까짓 맘만 먹었다면 지친 토끼를 잡는 것은 종대에겐 쉬운 일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순 없었지만 종대의 마음은 여간 흐뭇하질 않았습니다. 일부러 한 자신의 실수가 토끼를 살렸기 때문입니다.


다 잡은 토끼 놓쳤다고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까지 아쉬워했지만 그럴수록 종대의 흐뭇함은 더했습니다. 흰 눈에 덮인 학교 뒷산 상자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할 뿐이었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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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의 소맷자락



트실트실 튼 소맷자락
엉긴 나무 톱밥이 귀여워서 

모른 척하며
슬쩍슬쩍 눈에 담았다

목수의 소맷자락은
찬바람에 코를 훔치지도 못하는 바보

트실트실 반 백 살이 되는
나무 문살 백 분을 떠안기며

돌아서는 저녁답에
톱밥 같은 눈물을 떨군다

아무리 눈가를 닦아내어도
아프지 않은 내 소맷자락이 미안해서

오늘 보았던
그리고 어릴 적 보았던

트실트실 흙과 풀을 매던 굽은 손들이
나무 껍질처럼 아름다워서 

경주 남산 노을빛에 기대어 
초저녁 설핏 찾아든 곤한 잠결에 

마음에 엉긴 톱밥들을 하나 둘 헤아리다가
오늘도 하루가 영원의 강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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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소리



내 기억 속에는 몇 가지 소리가 남아있다. 메아리 울리듯 지금껏 떠나지 않는 소리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고향집 뒤편 언덕에서 들려왔던 통곡소리다.


쌓인 눈이 녹았다가 간밤 다시 얼어붙어 빙판길이 된 어느 겨울날 아침이었다. 갑자기 집 뒤편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울음이 아니라 통곡소리였다.


바로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였는데, 그때 그 아주머니는 언덕너머 동네에서 계란을 떼다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계란을 떼 가지고 오는 길이었는데 빙판이 된 언덕길에 미끄러져 그만 이고 오던 계란을 모두 깨뜨려버린 것이었다.


듬성듬성 미끈한 소나무 서 있던 뒷동산, 털버덕 언 땅에 주저앉은 아주머닌 장시간 대성통곡을 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을 어릴 적 기억, 그러나 그때 계란 깨뜨린 아주머니의 통곡소리는 아직껏 남아 있다.


무얼까? 세월로도 지워지지 않은 그 소리는 무엇 때문일까? 내 가난한 이웃의 슬픈 소리가. 언 땅에 주저앉아 터뜨린 울음소리가 통곡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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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하고 못 사귄



단강으로 들어오는 직행버스 안에서의 일입니다. 용암에서 한 남자가 탔는데, 못 보던 분이었습니다.


운전기사 바로 뒤에 앉은 그 남자는 버스기사와 열심히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얘기 중에 이어진 것이 교회 욕이었고 신자 욕이었습니다.


자리가 빈 버스인데다가 남자의 목소리가 여간했던 탓에 일부러 귀 기울이지 않아도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욕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내용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기사 아저씨가 욕을 해대는 남자의 말을 받았는데, 그 말을 듣고는 풉, 웃음이 났습니다.“ 어째 아저씨는 하나님하고 그리 못 사귀셨어요?”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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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 오르는 꿈



친구와 함께 백두산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이었지만 가슴은 얼마나 뛰고 흥분되던지.
오르다말고 잠에서 깨어서도(아쉬워라!) 설레는 가슴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 기똥찬 꿈을 꿨으니 꿈을 사라 했다. 거참 신나는 일이라고 친구도 덩달아 좋아한다.

언제쯤일까, 먼 길 빙 돌아서가 아니라 내 나라 내 땅을 지나 백두에, 天地에 이를 날은. 설레는 오늘 꿈이, 꿈만으로도 설레고 고마운 오늘 꿈이 정말로 가능한 그날은.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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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은 건



잘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을 
오늘은 보고 싶습니다.


내 어디쯤인지
어떤 모습인지 
어디로 가는지
거울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일 없이 
턱 없이 밤이 깊은 건 
그 때문입니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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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잘 나았심니더



“기도해 주신 덕분에 아기 잘 나았심니더.”


김남철 씨의 전화였습니다. 지난 봄 마을 보건진료소 소장님과 결혼한 김남철 씨가 아기 아빠가 되고 나서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저를 꼭 닮았심니더.”


전화였지만 목소리만 듣고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입이 귀에 닿은 웃음이 눈에 선했습니다.


낮선 마을로 들어와 마을사람들과 따뜻한 이웃되어 살아가는,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김남철 씨가 이젠 아기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기를 보면 가만있지 못하는, 아기 유난히 좋아하는 평소 그의 성품으로 보아 가뜩이나 정겨운 신혼살림에 더욱 더 웃음꽃 피어날 것이, 전화 속 전해온 웃음만큼이나 눈에 선했습니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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