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8 태양과 장마가 만나면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2) 태양과 장마가 만나면 태양과 장마가 서로 엇갈리면서 여름을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숨이 막히도록 더운 공기와, 축축하게 습기가 찬 날씨를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것도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묘한 것은 이 두개의 세력이 서로 반목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글거리는 태양만이 존재한다면, 나무와 풀과 강은 질식하고 말 것입니다. 흙은 먼지가 되고 사막은 점점 몸이 불어나, 화산이 폭발한 뒤에 쏟아져 나온 마그마처럼 숲과 도시를 기습해 들어올지 모릅니다. 바다조차 더 이상 해초와 물고기들의 안전한 서식처가 되지 못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태양의 신”은 저주를 내리는 존재가 되고 이를 떠받들던 사제들은 모두 깊이 절망.. 2016. 7. 5. 타부의 경계선이 없는 사회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0) 타부의 경계선이 없는 사회 “타부”라는 말은 본래 폴리네시안 즉,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 뜻은 “금기”, 또는 “접촉하면 안 되는 대상”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애초의 의미에는, “신성한 존재”, “신적 두려움”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말하자면, “타부”란, 그 어떤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사회적 금기로까지 확대된 문화인류학적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부”는 그 사회의 정신적 중심에 무언가 성스러운 영역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시상태에서부터 문명의 상태로 진화해나가는 과정의 현상입니다. 그것이 그 사회의 질서를 나름대로 유지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자신을 보다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2016. 5. 20. <서울 1964년 겨울>, 그리고 <서울 2016년 겨울>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9) , 그리고 이제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에 너무 늙어버린다면 그것은 어떤 뜻일까요? 작가 김승옥의 단편 소설 은 그렇게 너무 빠르게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면서, 우울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던 세대의 자전적 독백을 담고 있습니다. 한강을 건너는 군화소리가 들리면서 혁명은 안개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가난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추격자처럼 바짝 뒤쫓아 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소설은, 이십대 중반의 청년 둘이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얼핏 그야말로 시시겁쩍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삼십대 중반의 사나이의 마구 헝클어진 인생과 기묘하게 얽혀 하루를 지내다가 그 사나이의 역시 돌연한 죽음과 함께 서로 헤어지게 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사나이의 아내는 그날 죽었으.. 2016. 2. 1. 찢긴 채 허공에 흩날리는 소녀, 위안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8) 찢긴 채 허공에 흩날리는 소녀, 위안부 위안부 문제 한-일 외교협상은 일본 아베정권의 자위대 확대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위한 것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여기에 조력한 것입니다. 1. 시한이 없는 반인륜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불가역적”이라는 말로 면죄부를 준 사건입니다. 반인륜적 범죄 규탄과 응징에는 시한이 없다는 국제법적 원칙을 스스로 저버렸습니다. 2. 일본의 과거 식민지 통치의 피해에 대한 법적 정리를 졸속으로 처리한 1965년 한일협정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입니다. 일본은 이로써 한일협정에 규정된 법적 책임 해결문제를 재확인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의 역사.. 2016. 1. 6. 도리어 애틋한 시작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6) 도리어 애틋한 시작 시간이 빈틈을 보이는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어김없는 순서로 계절은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오고,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마치 기습이나 당한 것처럼 여기기조차 합니다. “어느 새”라는 말은 우리의 무방비한 자세를 폭로하는 것이지 시간의 냉혹함을 일깨우는 말은 아닙니다. 활을 한번도 쏘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한해의 마지막 달력을 응시하는 순간, “세월이 쏜 살 같다”는 표현이 전혀 낯설거나 또는 자주 들었다고 해서 구태의연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만큼 그 속도는 비례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리 헛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자세의 차이가 가져오는 속도감의 격차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수는 또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나이보다는 지금 서 있는 .. 2015. 11. 30. 지하도의 냉기, 그리고 도시의 슬픔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5) 지하도의 냉기, 그리고 도시의 슬픔 지하도를 지나면서 라면 상자로 추위를 막을 준비를 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시울에 아프게 담겨왔습니다. 한 사람이 누워 지낼만한 자리가 머릿속의 허름한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상의 세계에서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해 가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무력하게 잠겨드는 삶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일깨우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도시의 풍경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이는 그 익숙함이 결코 편안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집 없는 이들의 거리 노숙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하나의 깨우침을 던져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결국 자기 한 몸 누일 공간으로 돌아.. 2015. 11. 19. 식민지 정신의 찬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4) 식민지 정신의 찬가 “인도가 영국에 식민지가 되어 안락을 누리고 있으며, 필리핀은 미국에게 통치를 받고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서 다들 안전한 생활을 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이 말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미국에서 운영하던 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일본의 식민지보다는 서양제국의 식민지, 특히 미국의 식민지가 되는 편이 낫다는 시사를 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의 프린스턴 대학 학위 논문 제목은 이었습니다. 1910년에 발표된 이 논문의 논지는 제국주의 열강의 포위망에 갇혀 있던 조선의 영세중립이나 국제정치적 균형을 위한 주체적인 선택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립화였습니다. 이때 중립화는 미국이 조선에 대한 다른 나라의 개입과 간섭을 저지하는 것을 전.. 2015. 11. 10. “미생(未生)을 위한 철학”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3) “미생(未生)을 위한 철학” 비정규직의 모멸감과 격차사회의 모순을 드러낸 드라마 은 끝났지만, 현실의 미생은 여전히 미생인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일까? 이 드라마를 패러디한 방송 프로의 이름은 이었다. 아예 육안(肉眼)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존재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시인 이문재의 라는 시의 전문이다. 어쩌면 이리도 고마운 시가 있는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나”라는 존재가, 어느 한 사람에게는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는 깨달음은 누가 뭐래도 뜨거운 사랑이다. 그 “나”는 우리 모두다. 이.. 2015. 9. 25. 우리의 에드몽 단테스는 어디로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3) 우리의 에드몽 단테스는 어디로 1815년, 프랑스 마르세이유 항구에는 오랜 항해를 마친 범선이 들어섰습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되었을까 말까한 한 청년이 입항의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물건과 사연을 싣고 온 배를 보기 위해 항구에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정세는 아직 불투명했습니다. 엘베 섬에 귀양 간 나폴레옹의 파리 복귀 작전이 비밀스럽게 새어나오고 있었고, 반 나폴레옹 파의 권력은 충분한 민심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국제정세도 나폴레옹의 귀환이 유럽에 새로운 폭풍을 몰고 올 것을 예감하고,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에드몽 단테스. 범선의 진두지휘를 맡고 있던 청년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마르세이유에 도착하자마자 병들고 늙은 아버지를 만나러 달려갔.. 2015. 9. 25.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