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8 여정을 향한 용기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2) 여정을 향한 용기 인간은 아득히 오래전부터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평생을 아무런 불만 없이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지금껏 알지 못했던 이들과 만나고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인생사의 동력이기도 합니다. 때로 그 여정의 과정에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이 움츠리고 있다 해도, 그건 이미 떠나기로 작정한 이들의 발길을 막아낼 수 있는 장애물은 되지 못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물론이고,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西遊記)》도 모두 일상의 궤도에서 탈출한 존재들의 모험에 찬 열망의 기록이라고 할만합니다. 종교가 인간사를 지배한 시절에는, 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익숙했던 .. 2015. 9. 23. 가을이 홀로 산책하는 소리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1) 가을이 홀로 산책하는 소리 가을 바람이 창문 넘어 허공을 그득 채우더니 이내 흔적없이 방을 비웠습니다. 그러나 바람의 존재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 뜨겁던 여름의 기억은 이렇게 소멸되어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력하게 추방당하고 만 것 같은 여름은 또다른 여름을 준비하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어떤 계절에도 승리와 패배는 없습니다. 각기 자신의 할일을 열심히 하면서 머물러 있다가 홀연 종적을 감출 뿐이지요. 그래서 계절마다 우리는 그리움을 간직합니다. 그런 애틋함이 켜켜이 쌓여가면서 세월은 이야기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풍경을 그려나가는 것이지요. 나이가 들어가면 몸은 쇠해지기 마련이고 몸이 쇠하면 영혼조차 흔들립니다. 그러나 초월에 대.. 2015. 9. 16. 은하철도와 천일야화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0) 은하철도와 천일야화 서울과 평양, 동경과 베이징이 하나로 이어져서 우리의 삶 속에서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건 우리말과 일본어 그리고 중국어가 소통의 능력으로 보다 자연스럽게 나누어졌던 때의 풍경입니다. 다만 그것이 일제시대의 역사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동아시아는 하나의 생활권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동아시아는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들어서면 주춤거리게 됩니다. 돌아가야 하는 길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은 북경을 거쳐 평양을 갑니다. 하얼빈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원산에서 동경을 가는 것은 왠지 까마득합니다. 오사카에서 신의주로 가는 통로도 단절된 지 오래입니다. 서울역에서 철로로 한참을 달려 압록강을 .. 2015. 9. 1. 가난한 노래의 씨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9) 가난한 노래의 씨 육사(陸史)의 본명은 “원록”입니다. 그의 필명이 성을 포함하여 “이육사”가 된 까닭은 1925년 중국에서 항일 독립단체인 의 일원으로 국내에 잠입,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 구금되었을 때 수감번호가 264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29년 출옥 후, 중국 북경대학에서 공부하고 난 뒤 1933년 국, 십년 뒤인 1943년 다시 서울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북경감옥에서 옥사하기까지 그는 “육사”라는 필명으로 시작(詩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삶의 경로를 보면, 그의 시에 과연 무엇이 담겨 있을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필명이 육사, 즉 “대륙의 역사”라는 뜻을 가진 이답게 그의 시는 광활한 대륙의 기상과 민족적 혼의 웅대함이 깃들어 .. 2015. 8. 24. 산의 비밀스러운 영토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8) 산의 비밀스러운 영토 산을 오르는 것은 산이 품고 사는 사연들을 만나는 일이 됩니다. 산의 높이와 크기, 그리고 가파른 정도만을 우선 눈여겨보았다가, 그때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스러운 영토로 들어서는 순간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주인 몰래 잠입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벌이는 은밀한 정찰이 아니라, 예의를 갖추어 정중한 자세로 상대와 새로운 교제를 시작하는 경건한 시도에 속합니다. 사실 평지에서 무심히 바라보는 산은 하늘과 능선이 맞닿아 있는 경계선으로 그 윤곽을 드러낼 뿐입니다. 때로는 계절이 허락하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일상에서는 예상치 못한 면모를 불현듯 확인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그로써 우리는 산의 전체적인 인상을 대강이나마 포착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 .. 2015. 8. 18. 생애 단 한번, 부르고 싶은 노래하나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7) 생애 단 한번, 부르고 싶은 노래하나 매미소리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방불케 합니다. 여름의 절정에 대한 자연의 찬가(讚歌)이기도 합니다. 도시는 이때쯤이면 탈출이 부추겨지는 곳이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와버리고 말았는가는 새삼스럽게 깨우쳐지기 때문입니다. 여름은 그래서 탈출이라는 방식으로 귀환을 이루어냅니다. 벗어나면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래 있던 곳으로 가는 겁니다. 그가 태어난 곳이 도시라도 그건 상관없습니다. 흙과 물과 태양과 별, 그리고 바람과 나무숲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지 않은 이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저 목적지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 보는 일도 잊어버리고,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무언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간도 사라.. 2015. 8. 12. “우리의 인텔리겐차는 어디에?”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5) “우리의 인텔리겐차는 어디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나오는 “대심문관 대목”은 신앙으로 포장된 중세의 조작된 신화에 갇혀 있는 사회의 비극을 환상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지상에 내려온 그리스도를 도리어 귀찮게 여기고 배격하는 종교 지도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들도 믿지 않은 교리를 대중들이 신봉하도록 하면서, 자신들만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성채를 수호하려는 자들의 위선적인 정체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들이 정작 원했던 것은 평소에는 그토록 신실한 자세로 고백하고 있는 예수의 재림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세가 대중들의 뇌리에 영원히 뿌리내리는 것임을 우리는 대심문관의 발언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라는 깃발은 단지 이들의 영토를 성역(聖域)으로.. 2015. 8. 5. “여름밤 기차의 행선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4) “여름밤 기차의 행선지” 흑판의 글씨처럼 쉽게 지우기를 거듭하면서 새로 쓰는 서툰 문장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념(想念)으로 뒤척이다가, 그만 때를 넘기고 미처 잠들지 못한 여름밤은 여느 때보다도 고독해집니다. 순간, 오후 내내 몰인정하게 작열하던 태양을 껴안고 간신히 열기를 식힌 적막(寂寞)을 불현듯 가르며, 홀로 그 긴 몸을 앞세워 어디론가 돌진하기 시작하는 기차의 움직임이 들리는 작은 창문은 “목표를 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의 무임승차(無賃乘車)”를 허용하는 출구가 됩니다. 마치 대단한 일을 벌일 것처럼 머리끝에서 흰 연기를 뿜으며 저 멀리 고갯마루를 넘어서야 비로소 흩어질 기적소리를 울리던 시절의 기차라야 비로소 기차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흑백사진 속의 안타까운 추억.. 2015. 7. 29. 태양의 계절, 생명성숙의 기회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3) 태양의 계절, 생명성숙의 기회 여름의 태양이 작열하지 않는다면 생명은 성숙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물론 너무 뜨겁게 대지를 달구어 버린다면 만물이 기진맥진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절묘한 균형을 잡는 일은 그러나 우리에게 속한 능력과 권한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어, 태양의 자비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고대 인류에게 태양은 신적 존재가 되었던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원시적 생존을 좌우하는 것은 날씨입니다. 날씨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그 날의 운명을 결정하는 씨앗이기도 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과 해가 쨍쨍 비치는 날에 할 수 있는 일은 달라집니다. 빙하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해도, 추운 동토에서 견뎌낼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 2015. 7. 20.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