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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191

핸드폰 안에도 양심이 살고 있어요 신동숙의 글밭(128) 핸드폰 안에도 양심이 살고 있어요 집 밖에선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고, 집 안에선 자녀들 손 안에 든 핸드폰과 전쟁 중입니다. 바이러스와 핸드폰 속의 온라인 세상, 둘 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처럼, 진리의 성령처럼, 부활하신 예수가 공평하게 주고 가신 양심처럼, 이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사라진 적 없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핸드폰 속 온라인 세상은, 없는 듯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입니다. 요즘 내내 자유로워야 할 양심이 가볍지 않고 바윗돌을 얹은 듯 무거운 이유를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풀리지 않는 체증처럼 답답한 마음을 스스로 헤집어 봅니다. 그 답은 마음 밖에서나 타인이 아닌, 언제나 제 마음.. 2020. 4. 10.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신동숙의 글밭(127)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언젠부터인가 저의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생겼어요. 일어나서, 씻고, 먹고, 비우고, 만나고, 일을 하고, 산책을 하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놀고, 글을 쓰고, 잠을 자고, 꿈을 꾸는 등 어느 것 하나 우리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 없지만요. 그래도 이 시간을 위해서 먹고, 이 시간을 위해서 읽으며, 이 시간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면서 어느덧 이 시간은 저의 하루가 품은 소중한 알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그처럼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은,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이제는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겠지만, 짧더래도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요. 윤동주 시인의 다 헤아리지 못하는 별처럼, 다 헤아릴 수 없는 봄날의 .. 2020. 4. 8.
단단한 흙밭에 호미질을 하다가 신동숙의 글밭(124) 단단한 흙밭에 호미질을 하다가 이웃에 두 평 남짓 화단이 있습니다. 시멘트와 벽돌로 담을 두르고 마사토를 쏟아 부워서 만든 작은 공간입니다. 로즈마리, 라벤더, 페퍼민트, 애플민트 등 각종 허브 모종을 한 뼘 남짓 간격을 두고 심은 곳입니다. 그리고 화단의 가장 먼 둘레에는 꽃을 볼 작은 묘목 대여섯 그루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작년 여름에 만들어 두고는 하늘만 믿는 천수답처럼 알아서 크겠지 하고 무심히 겨울을 지났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쏟아 부은 마사토의 높이가 울타리보다 높다는 점입니다. 비가 뜸하다 싶은 날 호수로 마른 흙밭에 물을 주면, 흙으로 스며 드는 양보다 밖으로 흘러 내리는 양이 많아 보였습니다. 입이 짧은 딸아이를 볼 때면 애가 타는 마음 같습니다. 때때로 교만으로 .. 2020. 4. 2.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말, "제발, 꽃 보러 오지 마세요!" 신동숙의 글밭(122)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말, "제발, 꽃 보러 오지 마세요!" 봄이 오면 장사익 소리꾼의 곡조가 봄바람처럼 불어오는 듯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둘째가 세 살이 되고 엄마 품을 벗어나려던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거실에 펼쳐둔 신문을 넘기다가 하얀 목련꽃 한 송이처럼 눈에 들어온 사진이 있었습니다. 하얀 한복을 곱게 입은 장금도 명인의 하얀 춤사위. 진옥섭 연출가의 땀으로 장금도 명인의 민살풀이를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생애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글줄에 예약을 부탁했습니다. 그해 6월, 저는 그렇게 십 여 년만에 자유의 몸이 되어서 혼자서 호젓이 서울행 KTX에 올랐습니다. 6월의 서울 거리는 따사로웠습니다. 졸업 .. 2020. 3. 29.
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 신동숙의 글밭(121) 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 세상에서 불어오는 무거운 소식들로 연일 답답하고 무거운 가슴입니다. 답답하고 무거운 가슴을 내려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어설프게 안고서 주신 하루의 언저리를 서성거렸습니다. 유튜브로 법정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의도 듣다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가는 곳마다 법정 스님의 저서 을 끼고 다닌 하루였습니다. 저녁밥을 먹은 후 마저 치우지도 못하고, 법정 스님의 을 챙겨서 떠들썩한 식구들의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출가를 하였습니다. 식구들로부터 떠나와서 출가를 하는 장소는 거실 쇼파가 되기도 하고 제 방이 되기도 합니다. 식구들과 함께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가 참 다르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다 챙겨주고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2020. 3. 28.
예배 금단 현상인가, 예수 따르기인가 신동숙의 글밭(120) 예배 금단 현상인가, 예수 따르기인가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면 침묵을 해야 하지만, 예배당 안에서 무리하게 예배 모임을 강행하려는 일부의 교회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연일 드물게 올라오는 포스팅에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서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현재 코로나 집단 감염 예방을 위한 공공수칙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현 시국입니다. 그런 중에 일부의 기독교 목회자와 성도들의 모습에서 예배 금단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중독과 금단 현상이란 곧 나의 신앙이 깨어 있지 못한, 졸음 운전처럼 졸음 신앙이라는 증거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종교란, 나와 이웃의 생명을 살리려, 깨어 있는 사랑이 될 때에만, 존재의 의미를 지닐.. 2020. 3. 26.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에게 신동숙의 글밭(119)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에게 한 사람의 역할이 한 가지는 아닙니다. 생활하는 환경과 만나는 사람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역할이 때론 다양한 인격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선 순한 사람이 가정에선 엄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부족한 사람이다 보니 아이들한테 목소리가 올라갔다가 이내 후회하기도 합니다. 오래전 독립운동을 하기 위에서 집을 나서던 윤봉길 의사의 바짓단을 붙들고서, "아버지 제발 가지 마세요." 매달린 것은 여섯살 난 그의 어린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던 그의 아들에게 윤봉길 의사는 무정한 아버지였겠지요. 아들이 자라고 인생을 살아가면서는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을 테지만, 한국의 독립 .. 2020. 3. 24.
하얀 목련이 어진 마음으로 피었습니다 신동숙의 글밭(117) 하얀 목련이 어진 마음으로 피었습니다 봄을 들이려고 창문을 열어두었습니다. 방바닥이 가루로 버석입니다. 어김없이 찾아온 불청객 황사입니다. 황사가 방 안에까지 찾아오던 날, 마당에 돌담 위 하얀 목련은 최선의 모습으로 환하게 피었습니다. 하얀 날개를 단 흰새처럼, 백의의 천사 간호사들의 하얀 마스크처럼, 뛰어 다니는 국립검역원들의 흰방역복 날개처럼, 숨 돌릴 틈 없이 코로나 반응 검사를 하는 의료진들의 김 서린 하얀 땀방울처럼, 흰 꽃등처럼 하얗게 피었습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는 목련이 기침에 좋다며, 목련꽃이 피는 내내 꽃잎처럼 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목련꽃 봉오리와 목련 꽃잎을 차로 마시면 목이 환하게 시원해진다고도 합니다. 코로나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시는 모든 분들에게,.. 2020. 3. 22.
강아지 분유 먹이기 신동숙의 글밭(116) 강아지 분유 먹이기 시골 할아버지 집에 백순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백순이는 진돗개 어미입니다. 다섯을 낳았는데, 셋만 살아남았습니다. 아들은 주말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듯했습니다. 용돈을 챙겨서 강 건너로 강아지 젖병을 사러간다며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서 쌩 집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강아지 분유를 사야한다며 저 혼자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튜브로 뭘 그리 열심히 보는가 싶었더니, 강아지 분유 타는 방법입니다. 토요일 아침, 제일 먼저 일어나서는 아빠를 깨웁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얼른 가서 강아지 세 마리를 품에 안고서 분유 젖병을 입에 물려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때론 엄마의 밥 그릇에 있는 밥까지 푹 떠가는 식탐꾸러기 아들에게서 신기하게도 모성애를 봅.. 2020.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