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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191

나의 소로우 그리고 하나 신동숙의 글밭(198) 나의 소로우 그리고 하나 눈을 감으면 바로 눈 앞으로 펼쳐지는 유년의 풍경이 있어요. 제가 태어나서 유년기를 보낸 부산의 서대신동 산동네입니다. 지금은 신평으로 이전한 예전의 동아고등학교가 있던 자리 바로 뒷동네입니다. 제가 살던 집 옆으로는 아침밥만 먹으면 숟가락을 놓자마자 달려가던 작은 모래 놀이터가 있었는데, 무쇠로 만든 4인용 그네는 언제나 선택 1순위였어요. 흔들흔들 왔다갔다 어지러워지면 땅으로 내려와서 그 다음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와 지구본까지 골고루 돌면서 한번씩 타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모래땅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놀이 기구인 지구본의 이름이 제가 제일 처음 들었던 지구의 이름이예요. 누군가가 장난 삼아 세차게 돌리면 어지럽고 .. 2020. 7. 26.
책 속에 글숲 신동숙의 글밭(196) 책 속에 글숲 세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 마음에 쉼과 평화를 주는 책은 따로 있습니다. 책 속에 자연과 자연을 닮은 사람의 마음이 스며든 글에서 저는 쉼과 평화를 얻습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경전과 고전에는 하늘과 땅, 자연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서양의 고전 음악을 들을 때면, 선율에 담긴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인간 내면의 율동과 더불어 깊은 호흡을 하게 됩니다. 어디서든 자연과 더불어 호흡을 한다는 것은, 그대로 제 무딘 감성에 불어넣는 생명의 기운이 됩니다. 그래서 책과 음악을 함부로 선택하지 않으려, 책장 앞에 서서 한동안 제목들을 곰곰이 마음에 비추어 보는 오랜 습관이 있습니다. 꽃과 나무와 한국의 자연을 사랑하셨던 법정 스님은 에서 를 .. 2020. 7. 23.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ㅡ 나무 선생님 편 신동숙의 글밭(195)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ㅡ 나무 선생님 편 어둑해 지는 저녁답, 집으로 가는 골목길 한 모퉁이에는 아주 작은 나무 공방이 하나 있습니다. 저 멀리서 보아 유리창 안으로 작고 노란 전깃불이 켜져 있는 걸 볼 때면, 어둔 밤하늘에 뜬 달을 본 듯 반가워 쓸쓸히 걷던 골목길이 잠시나마 푸근해져 오곤 합니다. 잠시 들러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나무 선생님이 문득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그러면서 나무에 글씨가 써진다는 도구와 나무 토막을 선뜻 내미시는 것입니다. 집에 가져가서 연습용으로 사용하라시며, 시와 글을 적는 저에게 유용할 것 같다시며 맡기듯이 안겨 주십니다. 저로선 난생 처음 보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2020. 7. 22.
오늘 앉은 자리 - 옥빛 나방과 능소화 신동숙의 글밭(190) 오늘 앉은 자리 - 옥빛 나방과 능소화 가지산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으레 나무 그루터기를 만나게 됩니다. 둥그런 그루터기 그늘 진 곳에는 어김없이 초록 이끼가 앉아 있고, 밝은 곳에는 작은 풀꽃들이 저절로 피어있습니다. 개미들은 제 집인양 들락날락거리는 모습에 생기가 돕니다. 저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잘려 나갔을 낮고 낮은 그루터기지만, 언제나 우뚝 키가 높고 높은 나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저 멀리 그루터기가 보이면, 점점 눈길이 머물고, 발걸음은 느려지고, 생각은 저절로 깊어집니다. 작고 여린 생명들에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집이 한껏 낮아진 나무 그루터기인 것입니다. 하늘로 뻗치던 생명을 잃은 후에도, 주위에 흔한 작은 생명들을 품고서 스스로 집이 된 나무 그루터기. .. 2020. 7. 17.
상처, 신에게 바치는 꽃 신동숙의 글밭(179) 상처, 신에게 바치는 꽃 먼 나라에 저녁답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강물에 꽃을 띄우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꽃을 바치는 이들에게 신이 말하기를, "아이야~ 이 꽃은 내가 너에게 보내준 꽃이잖니?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너에게 받고 싶은 꽃은 이 꽃이 아니란다. 해와 비와 바람으로 내가 피워낸 꽃이 아니란다. 아이야~ 네가 피운 꽃을 나에게 다오." 아이가 대답하기를, "내가 피운 꽃이요? 아무리 고운 꽃잎도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면 상처가 있고, 속에는 잔벌레들이 잔뜩 기어다녀요. 가까이 다가가서 꽃나무를 한바퀴 빙 둘러 낱낱이 살펴 보아도 상처 없는 꽃잎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는 걸요. 사람의 손이 조화를 만들면야 모를까. 조화를 생화처럼 보이도록 상처와 얼룩을 .. 2020. 7. 2.
밀양 표충사 계곡,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신동숙의 글밭(178) 밀양 표충사 계곡,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소리가 맑은 벗님이랑 찾아간 곳은 맑은 물이 흐르는 밀양 표충사 계곡입니다. 높은 듯 낮은 산능선이 감싸 도는 재약산 자락은 골짜기마다, 어디서 시작한 산물인지 모르지만, 계곡물이 매 순간 맑게 씻기어 흐르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주말이라 그런지, 표충사에 가까워질수록 휴일을 즐기러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런 날, 어디 한 곳 우리가 앉을 만한 한적한 물가가 남아 있을까 싶어 내심 걱정도 되었습니다. 해가 어디쯤 있나, 서쪽으로 보이는 바로 저 앞산 산능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기 전에, 하늘이 어둑해지기 전에는 산을 내려와야 하는 여정입니다. 널찍하게 누워서 흐르는 계곡물 옆에는, 줄지어 선 펜션과 식당과 편의점과 널찍한.. 2020. 7. 1.
술샘 신동숙의 글밭(174) 술샘 술을 마시고 글을 쓴 적이 없다. 글을 쓴 후에도 마신 적이 없고, 먼 데서 찾아온 반가운 남동생이나 남편이 바로 옆에서 막걸리나 맥주를 한 잔 기울일 때도,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니, 평소에 술을 아예 먹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가족 모임과 벗들의 모임에서도 그저 물잔에 물을 따라서 함께 하는 자리를 즐기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일이나 술을 마시지 않는 일이나 모두가 한 마음 먹기에 달린 일이지만, 나의 선택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것이다. 술 기운에 의지하지 않기로 결심을 한 것이 대학 신입생 시절 학과 동기, 선배들과 함께한 뒤풀이 자리였다. 어려선 종종 아빠의 술 심부름을 하곤 했었다. 아빠의 "소주 한 병, 콜라 한 통 사와라." 돈을 받으면 신나.. 2020. 6. 26.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신동숙의 글밭(172)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살아오면서 가끔씩 좋은 벗, 좋은 사람,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잠시 제 곁에 머물러 있는가 싶으면, 어느덧 혼자 있게 됩니다. 제게는 늘 함께 있어 좋은 벗, 좋은 사우(師友)가 있습니다. 밤하늘에 뜬 몇 안되는 별이라도, 먼 별을 바라보는 내가 좋습니다. 밤이면 매일 변하는 밤하늘의 달이 오늘은 어디에 떴는지, 건물들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찾는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합니다. 아침이면 하늘 낯빛을 수시로 살피어 마음의 결을 고르는 내가 괜찮습니다. 나무 아래를 지나며, 가슴 설레어 하는 내 모습에, 혼자서 어쩔줄 몰라 하고, 여름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환하게 꽃을 피우는 박꽃을 보며,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순합.. 2020. 6. 24.
다석, 도올, 머튼, <시편 사색>을 주워서 소꿉놀이 신동숙의 글밭(168) 다석, 도올, 머튼, 을 주워서 소꿉놀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심심해진다. 한때 바깥 일도 해보았지만, 제 스스로가 이 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사람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본과 경제 논리로 형성된 이 사회구조 안에선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물론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이 사회 안에서 있음직한 성공에 대한 꿈을 꾸어본 적 없이, 몸만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서로가 아쉬울 것도 없는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혼자 놀기로 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종종 쪽창으로 창밖을 본다. 마당 위에 하늘을 보고, 나무도 보고, 풀꽃도 보고, 새소리에 귀가 맑아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본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이 세상은, 자연은 참! 신기.. 2020.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