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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499

꽃봉오리는 꽁꽁 움켜쥔 조막손 손안에 힘이 풀리면 다섯 손가락 꽃이 핀다 2021. 4. 25.
세작 하늘이 땅을 적시우는 곡우 땅에 엎드린 씨앗과 어린 초목들이 푸른 날 감사의 기도를 하얗게 피워 올리우는 산안개에 찻잎이 살을 찌우는 날 올해도 차밭에 갈 수 없는 아쉬움이 이제는 미안함이 되고 나는 갈 수 없지만 오늘 아침 이마에 닿은 공평하신 빗물 세례에 제자리에서 마음 놓이 감사의 기도를 하얗게 올리우는 날 2021. 4. 24.
무화과 잎과 열매 무화과 잎과 열매가 가위바위보를 한다 하늘땅 걸고서 내기를 한다 누가누가 이기나 가위바위보 무화과 잎은 빈 손 맨날 보자기 무화과 열매는 쥔 손 맨날 바위 이기기만 하는 잎은 신이 나서 하늘을 우러러 푸르게 웃음 짓고 지기만 하는 열매는 열받아서 잘도 잘도 영글어간다 2021. 4. 22.
동중정(動中靜) 오늘도 나는 달린다 빙빙빙 날아다닌다 사분사분 가벼웁게 사월의 산새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배달의 기사님들처럼 공양간 초발심의 행자처럼 119구급대원들처럼 기도의 타종소리에 뛰어가는 수녀처럼 분과 초 단위로 살아간다 성성적적(惺惺寂寂) 매 순간을 깨어서 땅과 하늘을 빙빙빙 춤을 추듯 날아다닌다 12시간을 앉았던 정중동(靜中動)으로 12시간을 달리는 동중정(動中靜)을 산다 심심한 생각 한 자락이 이마를 스친다 어느 쪽이 더 쉬운가? 12시간의 정중동일까? 12시간의 동중정일까? 2021. 4. 20.
진선미의 사람 집을 나서기 전 아들에게 묻는다 너는 탐진치의 사람이 될래? 진선미의 사람이 될래? 먹방을 보던 아들은 말뜻을 이해를 못해 한시가 급한 엄마는 잘 들으라며 진선미의 말뜻만 얼른 알려주었다 진은 참되고 진실된 진 선은 착하고 선할 선 미는 아름다울 미 그런데 아들은 들은 체 만 체 그래서 엄마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라고 했다 안하면 용돈도 밥도 없을 거라며 아무 것도 없을 거라며 이윽고 아들 입에서 새어나오는 말소리 한낮의 봄바람처럼 장난스럽게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새차게 밤하늘의 별빛처럼 멀어지는 말소리 비록 작지만 한 방울의 물이 바윗돌을 적시듯 아들의 몸에 진선미의 말이 점점 새겨지기를 6학년이 된 아들이 유튜브와 세상을 검색할 때면 진선미의 말이 어둔 세상 별자리가 되어주기를 진선미의 말씨 한 알을 아.. 2021. 4. 19.
새순 내게 있는 모든 의지를 떨구십니다 봄날의 꽃잎처럼 사방 흩어 놓으십니다 이 땅에 내 것이라 할 것 없는 나는 가난한 나무처럼 제 자리에 머물러 가만히 눈 감고 안으로 푸르게 깊어질 뿐입니다 2021. 4. 15.
없는 책 돈냄새가 없는 책 추천사가 없는 책 전쟁 후 서울에서 태어나 이 땅을 살아오는 동안 반평생의 구비길을 넘고 넘으며 글에서 없는 냄새를 풍길 수 있다니 글을 읽으면서 있음을 찾으려다가 이 땅에서 나를 세운 흔적이라고는 마땅히 없고 또 없어서 눈물을 지우고서 바라보는 제주의 푸른 바다와 하늘처럼 출렁이며 때론 잠잠한 맑은 글에 비추어 되돌아볼 것은 없는 나 자신 뿐이었다 , 최창남 2021. 4. 14.
꽃잎비 꽃잎이 꽃잎을 감싸며 꽃잎이 꽃잎을 안으며 작고 순한 이름들이 꽃잎비로 내린다 가장 작은 목소리로 가장 순한 몸짓으로 서로를 감싸며 서로를 안으며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산을 감싸며 한 잎의 시가 되고 들을 안으며 한 잎의 노래가 된다 2021. 4. 8.
둘레길 둘레둘레 민둘레 둘레길에 민둘레 민둘레가 피어서 둘레둘레 둘레길 2021.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