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06 "먹을 거 함부로 두지 마세요" 신동숙의 글밭(52) "먹을 거 함부로 두지 마세요" 아이들이 한창 어릴 때, 달리는 차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딸아이가 빵을 먹다가 흘린 부스러기를 모으더니 차 창밖으로 냅다 던집니다. 순간 아찔한 마음이 들어서 물었습니다. 딸아이의 대답은, 이렇게 땅바닥에 던지면 개미가 와서 먹을 거라며 순간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옵니다. 평소에 마당이나 공원에서 음식을 먹다가 흘리면, 땅에 흘린 음식을 개미나 곤충이 먹으라고 한쪽에다 놓아두던 습관이 무심코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다릅니다.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린 곳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입니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어린 딸아이와 얘기를 나눕니다. "만약에 개미가 빵 부스러기를 먹으러 찻길로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딸아이는 놀란 듯 자기가 큰 잘못이.. 2020. 1. 7. 하늘에 기대어 신동숙의 글밭(51) 하늘에 기대어 강아지풀은 하늘에 기대어 꾸벅꾸벅 기도합니다 마른잎은 하늘에 기대어 흔들흔들 기도합니다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다 맞으시고 눈이 내리면 그 눈을 다 맞으시고 하늘에 기대어 기도합니다 감자를 먹으며 감사합니다 고구마를 먹으며 고맙습니다 2020. 1. 6. 단무지 한 쪽의 국위 선양 신동숙의 글밭(50) 단무지 한 쪽의 국위 선양 이 이야기는 30년 직장 생활을 하시고, 정년퇴직 후 중국 단체여행을 다녀오신 친정아버지의 실화입니다. 정해진 일정을 따라서 들어간 호텔 뷔페에서 어김없이 새어 나온 아버지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드실 만큼 조금만 접시에 담아오셔서 배가 적당히 찰 만큼만 드시고는 다 드신 후 접시에 묻은 양념을 단무지 한 쪽으로 삭삭 접시를 둘러가며 말끔히 닦으신 후 입으로 쏙 넣으시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모습을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던 중국 뷔페 식당의 직원이 마지막 마무리까지 보시고는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짝짝짝 박수까지 쳤다고 합니다.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는 한화로 1만원 정도의 팁을 건네시고는 일행들과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를 뜨셨다.. 2020. 1. 5. 무릎을 땅으로 신동숙의 글밭(49) 무릎을 땅으로 "넌 학생인데, 실수로 신호를 잘못 봤다고 말하지!" 함께 병실을 쓰시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면회 온 언니들, 아주머니들, 어른들의 안타까워서 하는 말들. "어쨌거나 횡단보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앞둔 4월, 벚꽃이 환하던 어느날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넜으니까. 그 순간엔 마치 빨간불에 건너도 될 것처럼 모든 상황이 받쳐 주긴 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건 교통 법규, 약속을 어기는 일이니까. 내일 시험을 앞둔 일요일 밤, 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밤 9시가 넘어서 버스에서 내렸다. 집에 올 때 바게트 빵.. 2020. 1. 4. 햇살이 온다 신동숙의 글밭(48) 햇살이 온다 햇살이 온다 환한 그리움으로 산산이 부서져 땅의 생명 감싸는 당기는 건 가슴 속 해인가 뿌리가 깊어진다 선한 그리움으로 산산이 실뿌리로 땅 속 생명 살리는 당기는 건 지구 속 핵인가 2020. 1. 3. 설거지산을 옮기며 신동숙의 글밭(47) 설거지산을 옮기며 먹고 돌아서면 설거지가 쌓입니다. 식탁 위, 싱크대 선반, 개수대에는 음식물이 묻거나 조금씩 남은 크고 작은 냄비와 그릇과 접시들. 물컵만 해도 가족수 대로 사용하다 보면 우유나 커피 등 다른 음료컵까지 쳐서 열 개는 되니까요. 가족들이 다 함께 한끼 식사를 맛있게 먹고 난 후, 빈 그릇들을 개수대에 모으다 보면 점점 쌓여서 모양 그대로 설거지산이 됩니다. 그렇게 설거지산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일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한 생각이 듭니다. 하루 동안 우리의 눈과 귀, 의식과 무의식 중에 먹는 수많은 정보들. 읽기만 하고 덮어둔 책 내용들이 내면 속에선 정리되지 못한 채 쌓여만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사색과 묵상을 통해 정리되거나 .. 2020. 1. 2. 붕어빵 한 봉투와 첫 마음 신동숙의 글밭(46) 붕어빵 한 봉투와 첫 마음 마당가 복순이 물그릇에 담긴 물이 껑껑 얼었습니다. 얼음이 껑껑 얼면 파래가 맛있다던 친정 엄마의 말씀이 겨울바람결처럼 볼을 스치며 맑게 지나갑니다. 개밥그릇엔 식구들이 아침에 먹다 남긴 삶은 계란, 군고구마, 사료를 따끈한 물에 말아서 부어주면 김이 하얗게 피어오릅니다. 그러면 복순이도 마음이 좋아서 잘도 먹습니다. 거리마다 골목 어귀마다 눈에 띄는 풍경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밤길을 환하게 밝히는 붕어빵 장사입니다. 검정색 롱패딩을 입은 중·고등학생이,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선 젊은 엄마가,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퇴근길의 아버지가 재촉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서서 착하게 기다리는 집. 따끈한 붕어빵 종이봉투를 건네는 손과 받아든 얼굴이 환하고 따끈.. 2020. 1. 1. 무말랭이가 먹고 싶다는 딸아이 신동숙의 글밭(46) 무말랭이가 먹고 싶다는 딸아이 학교를 가야 하는데 딸아이가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목도 따갑고, 코도 막힌다며 이불을 끌어 안습니다. 학교를 가든 병원을 가든 한 숟가락이라도 떠야 움직일 수 있다고 했더니, 담백하게 끓인 김치찌게를 밀어내고는 삶은 계란만 겨우 집어 먹습니다. 아이들이 열이 나거나 아프다고 하면 동네에 있는 소아과를 갑니다. 진료를 받는 이유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더 자세하게 알기 위해서입니다. 독감이면 A형인지 B형인지 검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진료 확인서를 제출해야 병결이 인정이 됩니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해열제, 소염제, 소화제, 항생제를 먹지 않고 신종플루와 독감을 지나온 게 어느덧 7년이 넘어갑니다. 그리고 타미플루는 먹은 적이 없답니다. 양약 대신.. 2019. 12. 31.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신동숙의 글밭(45)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작은 찻잔에 담긴 차 한 잔이 있습니다. 내려오던 햇살은 율홍빛 속에 머물고, 차향은 30년 전 스치운 푸른 바람 냄새를 아련히 기억합니다. 천천히 서너 모금으로 나누어 마십니다. 그리움으로 출렁이던 잔은 빈 잔이 되고, 빈 잔은 하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빈 잔 바닥에 내려앉은 햇살은 한 점 하얀 별빛으로. 없는 듯 계시는 빛의 하나님이 잠시 내려앉아 고요히 머물러 쉬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찻잔에 담긴 찻물을 비우는 순간 얼른 들어차는 하늘처럼 허전한 나를 하늘로 채우길 원합니다. 나의 좁은 창문을 열면, 작고 여린 가슴으로 밀려드는 공허감, 무력감, 가난한 내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길 원합니다. 이제는 알든 모르든 내 안에 있는 나의 연약함과 부.. 2019. 12. 30. 이전 1 ··· 48 49 50 51 52 53 54 ··· 5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