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499 동지 팥죽 속에 뜬 별 하나 신동숙의 글밭(37) 동지 팥죽 속에 뜬 별 하나 얼마 남지 않은 2019년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한 해의 마지막엔 언제나 지나온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분위기가 스며있는 것 같다. 동지 팥죽 하면 문득 2000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가 새 천년이 시작된 직후였으니까. 당시에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보다는, 시대도 한 개인으로서도 걱정과 막연함으로 어수선하고 어둡던 시절이었다. 시절이 그랬고, 내 마음이 그랬다. 요즘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이 어떨지 더불어 헤아려 보게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이라는 전공을 살리기엔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취업 공부를 다시 시작할 때였으니까. 인문학이란, 질문을 씨앗처럼 심는 학문임을 이제야 돌이켜 헤아리게 된다. 결실을 .. 2019. 12. 22. 새가 난다 신동숙의 글밭(36) 새가 난다 먼 하늘, 새가 난다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날개를 평등하게 펼치고 단순함 안에서 마음껏 난다 날개를 바람에 맡기고 진리 안에서 아이처럼 난다 햇살 안에선 한 점 별빛으로 달빛 아래로 고이 접은 꽃잎은 작은 둥지가 집이다 부리 끝에 감도는 훈기 부푼 가슴엔 하늘을 품는다 깃털 끝이 등 뒤로 흐르는 것은 꽁지깃이 가리키는 한 점은 마음 속 먼 하늘 그 너머의 하늘인지도 모른다 2019. 12. 21. 아들 입에 달라붙은, 욕(辱) 신동숙의 글밭(35) 아들 입에 달라붙은, 욕(辱) 4학년이 된 아들에겐 갈수록 늘어나는 게 있답니다. 먹성과 욕(辱)이랍니다. 어디서 배운 건지, 어디서 들은 건지 아주 입에 찰싹 달라붙은 욕은 떨어질 줄을 모른답니다. "수박을 먹을 때는 씨발~라 먹어어" "시바 시바 시바새키" "스파시바" 욕은 아주 신나는 노래가 되어 흥까지 돋웁니다. 해학과 풍자의 멋을 아는 한국 사람 아니랄까봐요. 그럴수록 엄마의 마음도 같이 기뻐해야 되는데, 도리어 점점 무거워만집니다. 뭔가 바르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테지요. 엄마의 잔잔한 가슴에 마구 물수제비를 뜨는 아들의 욕. 참, "스파시바"는 욕이 아니라며 능청스레 당당하게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러시아 말로 "감사합니다" 라는 뜻이라면서요. 그러면서도 입에.. 2019. 12. 20. 고흐가 가슴에 품은 것은 신동숙의 글밭(34) 고흐가 가슴에 품은 것은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는 명성이 어울리는 고흐. 그가 남긴 그림과 편지글들은 내 영혼을 울린다.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빛깔로 내 가슴을 물들인다. 1853년 3월 30일, 네델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그는 엄격한 칼뱅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77년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한 후 작은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도 했으나, 그 시대가 감당하기엔 그의 가슴은 너무나 뜨거웠는지도 모른다. 고흐가 가슴에 품은 건 무엇인가?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뜨거운 심장을 지니게 했는지. 그의 그림과 글을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뿌리 깊이 고뇌하는 한 영혼과 만난다. 눈 오는 밤, 조금은 쓸쓸한 이 겨울에 어울리는 한때의.. 2019. 12. 19. "어디 있어요?", 고독의 방으로부터 온 초대장 신동숙의 글밭(33) "어디 있어요?", 고독의 방으로부터 온 초대장 잠결에 놀란 듯 벌떡 일어난 초저녁잠에서 깬 아들이 걸어옵니다. 트실트실한 배를 벅벅 긁으며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눈도 못 뜨고 "아빠는?" / "아빠 방에" "누나는?" / "누나 방에" "엄마는?" / "엄마 여기 있네!" 그렇게 엄마한테 물어옵니다 아들이 어지간히 넉이 나갔었나 봅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살풋 웃음이 납니다. 저도 모르게 빠져든 초저녁잠이었지요. 으레 잠에서 깨면 아침인데, 학교에 가야할 시간이고요. 그런데 눈을 뜨니 창밖은 깜깜하고 집안은 어둑합니다. 잠에서 깬 무렵이 언제인지 깜깜하기만 할 뿐 도저히 알 수 없어 대략 난감했을 초저녁잠에서 깬 시간 밖의 시간. 해와 달이 교차하는 새벽과 저녁은 우리의 영혼이.. 2019. 12. 18. 감자를 사랑한 분들(1) 신동숙의 글밭(34) 감자를 사랑한 분들(1) 감자를 사랑한 분들의 얘기를 꺼내려니 눈앞이 뿌옇게 흐려집니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가마솥 뚜껑을 열었을 때처럼, 눈앞이 하얗습니다. 감자를 사랑한 분들을 떠올리는 건 제겐 이처럼 구수하고 뜨겁고 하얀 김이 서린 순간과 마주하는 일입니다. 가마솥 안에는 따끈한 감자가 수북이 쌓여 있고, 제 가슴에는 감자를 사랑한 분들 얘기가 따스한 그리움으로 쌓여 있답니다. 감자떡 점순네 할아버지도 감자떡 먹고 늙으시고 점순네 할머니도 감자떡 먹고 늙으시고 ... 권정생 선생님의 中 삽화 그림 글 이오덕 · 그림 신가영 딸아이를 학원으로 태워주는 차 안에서, "점순네 할아버지는 감자떡 먹고 늙으시고~"(백창우曲) 노래를 불러 줬더니, 뒷좌석에 앉은 딸아이가 푸하~ 하고 웃.. 2019. 12. 17. <오페라의 유령>과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 신동숙의 글밭(33) 과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 나를 위해 언제나 기도하시는 백집사님, 그분의 정성과 성실함 앞에 더이상 거절을 할 수 없어서 동행한 25주년 공연 실황 녹화. 스크린으로 보는 . 화려하고 웅장한 노래와 춤, 의상, 배우들의 아름다움 앞에 내 마음 왜 이리 기쁘지 아니한가. 무대 위 200벌이 넘는 화려한 의상과 목소리와 배우들의 표정. 뼈를 꺾은 발레 무희들의 인형 같은 몸짓과 노랫소리. 지하실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 노래 노래 오페라의 유령.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저 화려함 현란함 요란한 박수 갈채 속에서 나는 그 뿌리를 보는 것이다. 건물 안과 건물 밖을 나누고 무대 위와 무대 아래를 나누고 주인공과 엑스트라를 나누고 공연자와 관람자를 나누고 로얄석와 일반석을 나누고 고용인과 .. 2019. 12. 16. 좋은 건 가슴에 품는다 신동숙의 글밭(32) 좋은 건 가슴에 품는다 좋은 건 가슴에 품는다. 거꾸로 말하면,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건 좋은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라 칭하지 않고 가슴이라고 한 것은 실제로 심장을 중심으로 가슴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슴이 넉넉하거나 이타적인 사람은 못된다. 내 마음에 들면 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지 않는 꽉 막힌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내겐 어려서부터 다른 무엇보다 늘 마음이 문제였다. 놀이터에서 땅거미가 질 때까지 흙투성이 땅강아지가 되도록 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며 온종일 배를 골아도 나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엄마 얘기로는 젖배를 골아서 그렇다는데. 태어날 때부터 몸에 배부른 기억이 없다면 상대적인 배고픔에도 무딘 것인지. 애초.. 2019. 12. 15. 겨울 바람 신동숙의 글밭(31) 겨울 바람 찬 손으로 내 양볼을 부비며 빨갛게 물들이는 겨울 바람 호오오오 하얗게 피우는 따신 입김에 겨울 바람이 언 손을 녹여요 2019.1.4. 詩作 2019. 12. 13. 이전 1 ··· 49 50 51 52 53 54 55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