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두런두런'39 담배 먹고 꼴 베라 한희철의 두런두런(17) 담배 먹고 꼴 베라 작실 마을에 올라갔다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 김천복 할머니를 만났다. 연로하신데다 건강도 안 좋으신데 일을 하는 모습이, 일을 해야만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땅콩을 심고 있던 할머니는 한 움큼 땅콩을 집어주신다. 이마에 맺힌 땀을 흙 묻은 손으로 썩 닦아내며 “어여 드셔!” 하신다.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밭고랑처럼 주름이 깊도록 땅을 일궈 오신 할머니는 땅에 대해, 땅에 심는 곡식에 대해 훤히 알고 계시다. 설교 시간에 혼자 아는 체 떠들어대는 젊은 전도사에게 뭔가를 일러줄 것이 있다는 것이 할머니에겐 적잖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류연복 판화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맑은 새소리가 들려왔다. 어릴 적 호루라기에 물을 넣고 불면 났던 소리.. 2015. 3. 12. 겨울나무 한희철의 두런두런(6) 겨울나무 - 동화 - 정말로 추웠던 그 밤, 난 내 앞에 있는 나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꼭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추워도, 추워도 그렇게 추운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밤중까진 그런 대로 견딜 만 했지만, 새벽이 되자 몸이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가느다란 가지 끝에서 땅 속 실뿌리 끝까지 구석구석 온 몸을 흐르며 마실 물을 전해 주었던 작은 물줄기가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잎사귀 하나 걸치지 못한 온 몸이 그냥 추위 앞에 꽁꽁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늘 정겹던 밤하늘 별들도 그 날은 왜 그리 차갑고 멀던 지요. 그렇게 온 몸이 얼어붙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찾아온 건 놀랍게도 졸음이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와락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아.. 2015. 3. 6. 소주병 꽃꽂이 한희철의 두런두런(18) 소주병 꽃꽂이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 설교 시간에 들어온 광철 씨의 손엔 꽃병이 들려 있었다. 기도도 드리지 않은 채 성큼 제단으로 나온 -사실은 두어 걸음이면 되지만- 그는 “전도사님, 여기 꽃 있어요.” 하며 꽃병을 내밀었다. 산에 들에 피어난 꽃을 한 묶음 꺾어 병에 담아온 것이었다. 잠시 설교가 중단되긴 했지만 그 순박한 마음을 웃음으로 받아 제단 한 쪽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올려놓고 보니 꽃을 담아온 병이 다름 아닌 소주병이었다. ‘백합 소주’였다. 모두들 악의 없이 웃었다. 혹 광철 씨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좋게 말하며 나도 함께 웃었지만 마음 찡하니 울려오는 게 있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꽃꽂이는 이런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시골 전도사 한 달 생활비.. 2015. 2. 24. 우리는 모르는 만큼 말한다 한희철의 두런두런(5) 우리는 모르는 만큼 말한다 헨리 나우웬의 책을 읽고 있던 아내가 내게 물었다. 한 문장을 읽을 터이니 그것이 무엇을 두고서 한 말인지를 알아 맞춰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뒤 아내가 읽어주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탄광의 본고장 뉴캐슬에 석탄을 지고 가는 기분이요, 네덜란드 사람의 표현대로라면 ‘올빼미 천지인 아테네에 가면서 올빼미를 데리고 가는 격’이며, 프랑스 사람의 말로는 ‘물을 들고 강에 가는 꼴’이 아닐 수 없다.” 동병상련 때문이었을까, 아내가 읽어주는 문장을 들으며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강론(설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헨리 나우웬이 온종일 사전을 들여다보면서 다음날 해야 할 강론에 필요한 단어를 찾으며 썼던 글이었다... 2015. 2. 20. 소가 울었다, 엄마소가 밤새 울었다 한희철의 두런두런(19) 소가 울었다, 엄마소가 밤새 울었다 흐린 조명 처음엔 흐린 조명 때문이라 했지만, 실은 아니었다. 앉으면 앞사람 등에 코가 닿을 듯 작은 방, 가운데 달려 있던 백열전등 대신 형광등을 앞뒤로 두 개 달아 밝혔는데도 교우들은 성경 찬송을 잘 찾질 못했다. 그 사실을 말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래요, 맨 처음부터 시작하죠.’ 얼마간 교회를 다녔던 분들이지만, 바쁜 농사일을 두고 염태고개 너머에 있는 먼 교회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것이다. 맨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한다. 애정과 끈기 잃지 않으며. 쓸데 즉은 얘기 수요일 저녁예배를 마쳤는데, 경림이가 빨리 집으로 가잔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가보면 안다 하며 대답을 안 한다. 반장님 생일이었다. 작은 케이크가 마련된 상을 중심으로 가족.. 2015. 2. 11.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한희철의 두런두런(4)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어느 유머 코너에 적힌 글을 읽다보니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이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질문을 대하며 대뜸 들었던 생각은 당연히 ‘물’, 혹은 ‘솔벤트’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물’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그러나 정답은 의외였다. ‘진짜 휘발유’라는 것이다. 이런,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진짜 휘발유’라니! 정답을 확인하는 순간 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다. 기가 막힌 역설! 머리가 환하게 맑아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진짜 휘발유라는 사실은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가짜 휘.. 2015. 2. 6. 천천히 가자 한희철의 두런두런(20) 천천히 가자 창립 예배를 마치고는 모두들 돌아갔다. 지방 교역자들도, 몇 몇 지인들도, 부모님도, 결혼을 약속한 사람도 모두 돌아갔다. 흙벽돌로 만든 사랑방에서 혼자 맞는 밤, 얍복 나루의 야곱이 생각났다. 그래, 편안히 가자. 맨 앞장을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럴수록 천천히 가자. 비를 처음 맞을 때에야 비를 피하기 위해 뛰지만, 흠뻑 젖은 뒤엔 빗속을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법,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갈라진 틈이나 옹이 구멍을 통해 보더라도 세상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했던 H.D. 소로우의 말이 떠올랐다. 아니라 하십시오 아니라 하십시오. 동정이나 연민으로, 안쓰러움으로 내 손을 잡질랑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2015. 2. 3. 이 땅 이 시대가 피워 올리는 눈물의 봉화 한희철의 두런두런(3) 이 땅 이 시대가 피워 올리는 눈물의 봉화 언젠가 저 남쪽 끝에 있는 교회를 찾아가 말씀을 나눈 일이 있습니다. 잘 아는 후배가 섬기고 있던 교회였지요.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 후배와 길을 나섰습니다. 답답하고 힘들 때 자신이 찾는 곳을 보여주고 싶다 했습니다. 바다와 섬이 그림처럼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이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왔지요. 하지만 후배가 찾는 곳은 빼어난 조망대가 아니었습니다. 언덕 위엔 돌을 쌓아 만든 봉화대가 있었습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불을 피워 다급한 상황을 알리는 봉화대였습니다. 마음 답답하고 힘들 땐 그 봉화대 위에 올라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봉화를 피워 올리듯 드리는 기도, 세상에 그만한 기도가 어디 흔할까 눈시울이.. 2015. 1. 29. 개구리 함정 한희철의 '두런두런'(2) 개구리 함정 종례 시간에 들어온 선생님 얼굴은 무서웠다. 오늘은 집에 늦게 가야겠다며 지금부터 밖에 나가 개구리를 한 마리씩 잡아오라 했다. 이유를 묻지도 못한 채 우리들은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매운, 땅이 얼어붙은 그 때 웬 개구릴까, 도무지 영문을 모르는 채 우리는 각기 흩어져 학교 주변을 헤집고 다녔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우리는 다시 교실로 모였다. 교탁 위에는 무엇인가 시커먼 보자기에 덮인 것이 놓여 있었다. 어항이었는데 어항 속엔 우리가 잡아온 개구리 중(세 마리를 잡았다 했다) 제일 큰 놈 한 마리를 넣었다고 선생님이 설명을 했다. 그리고는 한 사람씩 차례대로 나와서 어항 속에 손을 넣으라 했다. 검지가 어항 바닥에 닿도록 끝까지 쑥 넣으라고 했다. (출처:Oli.. 2015. 1. 24.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