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짐승 같은 이들이 발견한 아름다운 슬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8) 짐승 같은 이들이 발견한 아름다운 슬픔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을 조사하던 과학자들이 뜻밖의 성분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꽃가루였다. 네안데르탈인의 유골 곁에 있는 흙에서도 다량의 꽃가루가 발견되었다. 대체 꽃가루의 의미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추정을 한다. 네안데르탈인들은 같이 살던 누군가가 죽으면 죽은 이를 야생의 꽃이불 위에 눕히고 그 위를 다시 꽃으로 덮었던 것 같다. 죽은 이를 아무렇게나 버리거나 처리한 것이 아니었다. 사방에 피어난 온갖 꽃을 따서 바닥을 장식한 후에 죽은 이를 눕히고, 다시 그 위에 꽃을 수놓았을 것이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를 아무렇게나 돌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라는 책을 쓴 .. 2019. 5. 30. 그래서 어렵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7) 그래서 어렵다 처음으로 그 말을 듣던 때의 떨림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직한 목소리, 그러나 울림은 묵중했다. 孰能濁以靜之徐淸(숙능탁이정지서청) 노자 에 나오는 말로 ‘누가 능히 흐린 것들과 어울리기 위하여 자신을 흐리게 만들어 고요함으로써 더러움을 천천히 맑게 해줄 수 있겠느냐’는 뜻이었다. 문득 아뜩하면서도 환했다. 어려울 것이 없다. 그래서 어렵다. 2019. 5. 29. 대답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6) 대답 벽에다 대고 방뇨를 하는 이들을 위해 벽에다 작은 거울을 달았던 것은 일종의 대답이었다. 자기 얼굴을 보며 방뇨하는 일은 공존할 수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목양실에 앉아 있다 보면 갑자기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새다. 날아가던 새가 유리창을 분간하지 못한 채 되게 부딪치고 마는 것이다. 깜짝 놀라 다시 날아가는 새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다. 엊그제는 바닥에 떨어져 죽어 있는 새를 보았다. 생각을 하다가 교회 조경위원회를 맡고 있는 홍 권사님께 부탁을 했다. 창문 쪽 마당에 느티나무를 심으면 좋겠다고. 느티나무가 자라면 창가에 푸른 그늘을 드리워 줄 뿐만이 아니라 새들이 부딪치는 일도 사라질 터. 나무를 심는 것이 대답.. 2019. 5. 27. 농부의 알파벳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5) 농부의 알파벳 사막 교부들의 금언 중 아르세니우스와 관련된 것이 있다. 어느 날 압바 아르세니우스가 어떤 연로한 이집트 수도승에게 자기 생각들에 관해 조언을 구했다. 누군가 그것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압바 아르세니우스, 그렇게 훌륭한 라틴어 교육과 그리스어 교육을 받은 압바가 어째서 이 농부에게 당신 생각들에 관해서 묻는 것입니까?” 아르세니우스가 대답했다. “나는 참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지만 이 농부의 알파벳조차 모릅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그에게서 새로운 알파벳을 배울 것, 아르세니우스의 말을 그렇게 새긴다. 2019. 5. 27. 미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4) 미늘 낚시 바늘을 유심히 보면 바늘 끝만 날카로운 것이 아니다. 또 하나 날카로운 부분이 있다. 낚시 바늘 끝의 안쪽에 있는, 거스러미처럼 되어 고기가 물면 빠지지 아니하게 된 작은 갈고리, 미늘이다. 미늘은 낚시를 사용하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인지, 한문으로는 ‘구거’(鉤距)라 한다. 살펴보니 ‘갈고랑이 구’(鉤)에 ‘떨어질 거’(距)를 쓴다.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빠져 나가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그럴 수 없는 것은 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 또 하나의 갈고리인 미늘이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미늘을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어떻게 미늘을 생각해 냈을까? 사람을 만나다 보면 미늘을 느낄 때가 있다.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 외에 또 다른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2019. 5. 26. 달팽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3) 달팽이 오랜만에 달팽이를 보았다. 어릴 적 흔하게 보았던, 적당한 크기의 달팽이였다. 돌돌 감긴 황금빛 껍데기를 등에 지고 부지런히 길을 가고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정한 곳이 있는 것인지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더듬이로 연신 사방을 더듬으며 방향을 찾는 듯했다. 달팽이의 더듬이는 두 쌍이다. 큰 더듬이 끝에는 눈이 한 개씩 있고, 작은 더듬이 사이에 입이 있다. 입에는 까칠까칠한 이가 있어 풀잎이나 이끼 등을 먹는다. 달팽이를 보면 하나님이 유머가 참 많으신 분이라는 걸 생각하게 한다. 어찌 달팽이를 만드실 생각을 했을까 싶기 때문이다. 구조나 형태가 생존과는 상관없이 심미적이다 싶어 저런 모습으로 어찌 사나 싶은데, 달팽이에게도 있을 것은 .. 2019. 5. 25. 저물 때 찾아온 사람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2) 저물 때 찾아온 사람들 저물어 해 질 때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데리고 왔다.(마가복음 1:32) 그들은 왜 해가 질 때에 왔을까? 하루 일이 바빴던 것일까,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날이 선선해지기를 기다렸던 것일까? 짚이는 이유가 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21절) 안식일 법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 외엔 고칠 수가 없었다. 필시 그들은 안식일 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안식일의 해가 질 때를 기다려 병자들을 데리고 왔을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신다. 예수님은 굳이 안식일 법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었다. 안식일이라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마가복음 3.. 2019. 5. 23. 거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1) 거울 의식하지 않아도 보게 되는 모습이 있다. 목양실 책상에 앉으면 책상 오른쪽으로 큰 창문이 있고, 고개만 살짝 돌려도 창밖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따금씩 마주하게 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있다. 정릉교회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네모난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고, 그 기둥을 시작으로 담장이 이어지는데, 볼썽사나운 모습은 그 기둥 뒤에서 일어난다. 남자들이 문제다. 콘크리트 기둥을 핑계 삼아 벽에다 오줌을 눈다. 벽을 향해 돌아서면 기둥이 자신을 가려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는 지나가는 행인으로부터 겨우 자신의 얼굴만을 가려줄 정도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벽에다 대고 오줌을 누는 뒷모습이 2층에서는 빤히 내려다보인다. 벌건 대낮에 남자 망신을 사는 모습.. 2019. 5. 22. 이팝나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40) 이팝나무 언제부터 저리 많았나 싶게 요즘 도로를 달리다 보면 그 중 흔하게 보게 되는 것이 이팝나무다. 눈이 부실 만큼 나무 가득 하얀 꽃을 피워낸 모습을 보면, 이팝나무만 골라 폭설이 내린 듯 눈을 뒤집어 쓴 것처럼 보인다. 꽃을 볼 때면 슬쩍 군침이 돌기도 하는 것은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쑥버무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뜯어온 쑥 위에 쌀가루를 뿌려 만든 쑥버무리, 이팝나무엔 하얀 쌀가루와 푸른 쑥이 그럴 듯이 어울린다. 하지만 이팝나무 꽃을 바라보는 종국엔 괜스레 눈물겹다. 저 하얀 꽃을 바라보며 하얀 이밥을 떠올렸던 배고프던 시절을 생각하면. 먹을 게 넘쳐나 이팝나무를 바라보면서도 이팝나무의 유래를 모르는 오늘을 생각하면. 2019. 5. 21. 이전 1 ··· 37 38 39 40 41 42 43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