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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흙먼지 날리는 객토작업 객토 작업을 합니다. 차라리 탱크를 닮은 15t 덤프트럭이 잔뜩 흙을 실고 달려와선 논과 밭에 흙을 뿌립니다. 땅 힘을 돋는 것입니다. 땅에도 힘이 있어 몇 해 계속 농사를 짓다보면 땅이 지치게 돼, 지친 땅의 힘을 돋기 위해 새로운 흙을 붓는 것입니다. 트럭이 갖다 붓는 검붉은 흙더미가 봉분처럼 논과 밭에 늘어갑니다. 객토작업을 보며 드는 생각 중 그중 큰 것은 고마움입니다. 그건 땅에 대한 농부의 강한 애착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농촌이 천대 받고 아무리 농작물이 똥값 된다 해도, 그렇게 시절이 어렵다 해도 끝내 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땀 흘려 씨 뿌리겠다는 흙 사랑하는 이의 눈물겨운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흙먼지 날리는 객토작업을 불편함보단 든든한 고마움으로 보게 됩니다. - 1991년 2021. 11. 17.
숨겨놓은 때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초등학교 시절 잊지 못할 일 중의 하나는 배급식량이었다. 강냉이 죽, 우유가루, 빵 등을 우린 학교에서 얻어먹었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얻어먹는 맛에 즐겁기만 했던 원조 식량들, 그건 먼 나라에서 보내온 구호식품이었다. 넉넉지 못한 양식, 왠지 모를 배고픔을 우린 원조식량에 의지해 한껏 덜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5학년 때였을 게다. 그때 우리에게 지급된 구호식품은 가루우유였다. 커다란 종이부대에 담긴 구호식품 우유가 나오면 우린 한 봉지씩을 나누어 받았다. 양은그릇으로 하나씩 나누어 주는 일은 반장인 내 몫이었다. 차례대로 한 사람씩 우유를 퍼 주다보니 자루가 점점 줄게 되었고 나중에 자루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몸을 옆으로 숙여 깊숙이 손을 집어넣고 우유를 펴내느라 애쓰고 있을 때 선.. 2021. 11. 16.
빵 배달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그때 우리에게 지급된 간식은 빵이었다. 그 또한 원조 식량이었는데, 겉이 우툴두툴하고 딱딱한 곰보빵이었다. 속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그저 밀가루를 구워 만든 빵이지만, 그건 훌륭한 간식이었다. 3학년 우리의 교실은 따로 떨어져 있었다. 관사라 불리던 일본식 집 한 채와 그 옆에 붙은 큰 차고가 언덕배기 예배당 아래쪽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창고를 개조한 것이 우리 반 교실이었다. 6.25때 맞았다는 총탄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반만 떨어져 있다는 오붓함에 불편함을 몰랐다. 간식 빵은 언제나 점심시간에 운반해 오곤 했다. 그날도 친구와 함께 학교로 넘어가 양동이 가득 빵을 담아 우리 교실로 오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몇몇 형들이 빵 몇 개를 .. 2021. 11. 15.
“야, 야, 얘들 나와라! 여자는 필요 없고 남자 나와라!” “야, 야, 얘들 나와라! 여자는 필요 없고 남자 나와라!” 거의 매일 저녁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동네를 몇 바퀴씩 돌았다. 그 일은 언제나 숙제를 먼저 마친 아이들 몫이었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지면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이 달려 나왔다. 제법 마당이 넓은 나무로 된 전봇대 아래, 우리가 늘 모이는 곳은 이내 아이들로 북적댔다. 그렇게 모인 우리는 만세잡기, 술래잡기, 다방구 등 신나는 놀이를 했다. 매일 해도 정말로 신이 나는 놀이들이었다. 그 놀이는 어둠이 한참 깔려서야 끝이 나곤 했다. 상호야, 웅근아, 호진아, 병세야, 저녁 먹으라 불러대는 엄마들 목소리가 또 한 차례 동네를 울리고 나서야 아쉽게 놀이가 끝나곤 했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그 소리들이 남아있다. 매일 저녁 동네를 돌며 애들 나오라.. 2021. 11. 14.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들 1원이면 주먹만 한 눈깔사탕이 두 개였다. 박하향 진한 하얀 사탕을 입이 불거지도록 입안에 넣으면 행복했다. 그러나 그 1원짜리 구리 동전 한 개가 아쉬웠다. 학교로 가는 길목엔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한번 발길질에 솔 씨들은 춤을 추며 제법 날렸다. 점 찍힌 듯 박혀있는 까만 솔 씨들을 잘도 빼먹었다. 노란가루로 날리기 전, 한참 물오른 송화도 마찬가지였다. 쉽지 않은 그 맛을 즐겼다. 찔레순도 흔했고, 제법 높다란 학교 옆 벼랑을 따라서는 산딸기도 탐스럽게 매달리곤 했다. 초봄 잔설이 남아있는 산에 올라선 마른 칡 순을 찾아 칡뿌리를 캤다. 이 사이에 씹히는, 동글게 느껴지는 알칡의 맛을 입이 시커멓도록 맛보았다. 집 뒤뜰 언덕배기엔 돼지감자가 있었다. 가죽 벗겨내듯 언 땅을 들어내면 올망졸망한 .. 2021. 11. 12.
사라진 우물, 사라진 샘에 대한 이 큰 아쉬움이라니! 어릴 적, 동네엔 우물이 있었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깊이가 제법 깊은 우물이었다. 우리는 우물 속에 얼굴을 비춰보기도 했고, ‘와!’ 소리를 질러 메아리로 돌아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두레박에 물을 채운 뒤 누가 손을 적게 쓰고 물을 끌어올리나 시합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쌀이며 나물을 가져 나와 씻었고, 간단한 빨래도 했다. 우물은 좋은 냉장고도 되어 오이나 토마토를 우물 속에 집어넣기도 했다. 그런 뒤 꺼내 먹으면 시원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둥둥 떠 있는 오이와 토마토를 두레박에 담는 데는 나름대로의 기술이 필요했다. 한여름에는 윗옷을 벗고 등물하기도 좋았다. 이따금씩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우물물을 푸기도 했다. 커다란 통에 줄을 매달아 물을 푸고, 거의 바닥이 들어날 쯤이면.. 2021. 11. 11.
생의 소중한 자리 “커피를 타고 있을 때만큼 편안한 시간은 없다”고 태자아저씨가 그랬습니다. 음악이 좋아서, 그보단 사람이 좋아서 경력도 붙을 만큼 붙은 좋은 직장 하루아침 그만두고 찻집을 차린 아저씨. ‘나잇살이나 먹어 커피나 타고 있다’고 흉볼지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은 그때가 제일 편하고 좋은 시간이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많은 걸 느끼고 많은 걸 배웁니다. 지난 늦가을, 새벽부터 쏟아진 장대비를 우산도 없이 맞으며 광철 씨는 이른 아침 일을 나갔습니다. 김장 무 뽑으러 간다고 전날 해 놓은 약속 때문에 조귀농, 그 먼 길을 찬비 맞으며 나선 것입니다. 그만한 비엔 일을 미룰 만 하고, 안 나가도 비 때문이려니 할 텐데 광철 씬 길을 나섰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하나처럼 비쩍 마른 몸 이끌고 비척걸음을 옮겼습니.. 2021. 11. 10.
직행버스 풍경 귀래를 돌아 원주로 나가는 직행버스. 남은 자릴 하나 두고 노인네 몇 분이 싸우듯 양보한다. 백발에 굽은 허리, 제법 긴 수염에 허전하게 빠진 이. 그만그만한 노인네 몇 분, 서로가 서로에게 측은한지 서로를 잡아당긴다. 일어날 젊은이 없는 직행버스가 빈자리 하날 두고 힘겹게 양아치 고개를 넘는다. - 1991년 2021. 11. 8.
강아지 두 마리 안갑순 속장님이 몸져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고 끝정자로 내려갔습니다. 아직껏 가슴이 뛴다는 속장님 얼굴은 많이 수척해 있었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깟 강아지 두 마리에 웬 수선이냐 할진 몰라도 얘길 들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일 년 내내 번 돈을 아껴서 집사님 내외분은 강아지 두 마리를 샀습니다. 쉽게는 구할 수 없는, 사람 주먹보다도 작은 귀한 강아지였습니다. 인형같이 생긴 강아지 두 마리를 방안에 키우며 며칠 동안은 고놈들 귀여운 맛에 하루해가 짧았습니다. 들인 거금이 아깝지 않을 만큼 강아지들은 귀여움 투성이였습니다. 자식 없이 살아가는 노년의 외로움을 그렇게 이겨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사고가 나던 날, 마침 겨울 볕이 따뜻하기에 강아지 먹일 우유를 데우는 동안 .. 2021.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