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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오족지유(吾足知唯)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1) 오족지유(吾足知唯) 지난번 말씀축제에 강사로 다녀간 송대선 목사가 본인이 쓴 글씨를 보내왔다. ‘吾足知唯’라는 글도 그 중 하나였다. 대화중 나눴던 말을 기억하고 직접 글씨를 써서 보내준 것이니, 따뜻한 기억이 고마웠다. 가만 보니 글씨가 재미있다. 가운데에 네모 형태를 두고, 4글자가 모두 그 네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족지유, ‘나는 다만 만족한 줄을 안다’라고 풀면 될까? ‘나에게는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로 받으면 너무 벗어난 것일까. 좀 더 시적이고 의미가 선명한 풀이가 있을 텐데, 고민해봐야지 싶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더 높은 곳에 오르려 욕심을 부리며 뒤뚱거리며 기웃거리며 살지 말고 바람처럼 홀가분하게 살라는 뜻으로 받는다. 세월이 갈수록 그럴 .. 2020. 1. 6.
다른 것은 없었어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0) 다른 것은 없었어요 다 빌려 쓰는 것이었어요 다 놓고 가는 것이었고요 신발도 옷도 책도 공책도 연필도 지우개도 햇빛도 바람도 몸도 마음도 웃음도 눈물도 시간도 계절도 모두 빌려 쓰는 것 모두 놓고 가는 것 세상에 다른 것은 없었어요 2020. 1. 5.
하나님의 마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9) 하나님의 마음 스키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규영이였다.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막내가 방학을 맞아 잠시 다녀가며 한국에 나오면 스키를 탈 수 있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식구들 중에 스키를 타 본 경험은 아무도 없었다. 막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독일에서 취직이 되어 직장생활을 시작한 규민이를 제외한 4식구가 처음으로 스키를 배웠다. 신발부터 옷까지, 스키는 장비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장비를 착용하고서 받은 초보자 강습, 재미있게도 스키는 넘어지는 법부터 배웠다. 모두가 왕초보가 되어 스키를 배우며 식구들이 놀랐던 것 두 가지가 있다. 별로 운동과 친하지 않은 큰딸 소리가 금방 스키를 탄 것과, 어떤 운동이든 잘 해서 금방 탈 줄 알았던 아빠(이 몸)가 넘어지기만.. 2020. 1. 4.
오래 가는 향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8) 오래 가는 향기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여인을 두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알려져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가복음 14:9)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2천년 세월을 지난 오늘 우리도 그 여인이 한 일을 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향기를 흉내 내는 향수가 있다. 잠깐 있다 사라지는 향기도 있다. 하지만 오래 가는 향기도 있다. 세월이 지나가도 지워지지 않는, 오늘 우리들의 삶과 믿음이 오래 가는 향기가 될 수 있다면! 2020. 1. 3.
가라앉은 목소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7) 가라앉은 목소리 송구영신예배를 앞두고 끝까지 망설인 시간이 있었다. 도유식이었다. 두어 달 전 성북지방 목회자 세미나 시간에 강사로 온 감신대 박해정 교수는 교회에서 도유식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회복되기를 바라는 시간으로 도유식을 꼽았다. 진정한 예배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경험에 의하면 도유식은 참 은혜로운 예식이다. 기름을 이마에 바르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의 의미가 있겠다 싶다. 물론 내 짐작이다. 하나는 성별이다. 주님은 모세에게 성막과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바르게 하셨다.(레위기 8:10) 다른 하나는, 치유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아픈 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2020. 1. 1.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6)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내게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남은 구절 중에는 윤동주의 ‘서시’도 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지위나 재산 등이 아니라 사소한 것, 의외의 것, 예를 들면 말 한 마디나 어투, 그가 보이는 몸짓이나 태도 등이 그의 존재를 충분히 말할 때가 있다. 윤동주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하는데 내게는 이 한 구절이면 족하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사랑하려고 했던, 사랑과 사랑하려 했던 사이를 부끄러워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전이었다. 예배당과 별관 사이에 있는 중정에 몇 가지 허름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교회 안에 있는 비품 중에서 버릴 것들을 .. 2020. 1. 1.
수처작주(隨處作主)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5) 수처작주(隨處作主) 벌써 여러 해, 한해가 기울어갈 때쯤이면 이어지고 있는 일이 있다. 선생님 한 분이 카드를 보내주신다. 선생님은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이라는 말 앞에 ‘선생님다운’이라 쓰려다가 그만 둔다. 선생님과 선생님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 같은 민망함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말이 오히려 선생님을 거추장스럽게 만든다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늘 자연스럽고 소탈하신 선생님은 필시 그런 수식어를 어색하고 번거롭게 여기실 것이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공부하실 때 외에는 강원도를 떠나지 않고 강원도의 아이들을 가르치셨다. 선생님은 강원도를 사랑하신다. 국어선생님으로 우리말과 우리의 얼, 우리의 문화를 사랑하는 것을 평생 가르치셨고, 몸소 지키셨다. 교장선.. 2019. 12. 30.
검과 몽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5) 검과 몽치 그 때 그 순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둠을 밟고 조심스레 다가오는 한 무리들, 그들의 손엔 검과 몽치가 들렸다. ‘검과 몽치’라는 말은 ‘칼과 몽둥이’라는 말보다도 원초적이고 음험하게 들린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검과 몽치만이 아니었다. 등과 횃불을 빠뜨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빛으로 오신 분을 붙잡기 위해 그들은 어둠 속에서 등과 횃불을 밝힌 채 다가온다.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기름에선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그 모든 것에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보태진다. 횃불보다도 더 강렬했을 눈빛들, 예수가 붙잡히던 그 밤 그 동산에는 온통 광기가 가득하다. 예수의 말씀대로 난폭한 강도를 잡는 현장과 다를 것이 없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다 자기.. 2019. 12. 29.
나는 아직 멀었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4) 나는 아직 멀었다 하필이면 암호가 입맞춤이었을까? 유다 말이다. 예수를 넘겨주며 무리에게 예수를 적시할 암호로 미리 짠 것이 입맞춤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예수를 알릴까를 왜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 끝에 찾아낸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제자가 스승을 만나 입맞춤을 하는 것은 반가움과 존경의 뜻이 담긴 행동,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일이었다. 껄끄러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으니, 그것이 유다의 제안이었다면 그의 머리가 비상하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두려움이 읽힌다.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아서 단단히 끌고 가시오.” 라고 무리들에게 말한다. 단단히 끌고 가라는 말을 왜 덧붙였을까? 예수를 놓칠까 걱.. 2019.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