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염치(廉恥)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9) 염치(廉恥) ‘염치’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지난 해 겨울 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사순절을 맞으며 작은 책 한 권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사순절 묵상집과 대림절 묵상집 원고를 몇 번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아예 단행본으로 출판하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글의 주제도 정해진 터였다. 지켜야 할 마음 20가지와 버려야 할 마음 20가지를 묵상하자고 했다. 제안을 받으며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짧은 일정이 마음에 걸렸다. 글을 쓸 기간도 넉넉하지 않은데다가 연말연시는 교회에 여러 가지 일들이 몰려 있는 때, 마음을 집중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보다 더 조심스러운 것이 있었는데 주 독자층을 젊은이들로 생.. 2020. 2. 1. 작은 십자가를 보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8) 작은 십자가를 보며 고마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리라. 우리로서는 작은 것을 당연함으로 나누었을 뿐인데, 그 일을 고맙게 여겨 귀한 마음을 보내왔다. 상자 안에는 마음이 담긴 인사말과 함께 성구를 새긴 나무판과 십자가가 담겨 있었다. 두 가지 모두 직접 만든 것이었다. 성구가 새겨진 나무판은 교우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아가페실에 걸어두었고, 작은 십자가는 목양실 책장에 올려두었다. 평범한 십자가라 여겼는데, 오늘 새벽에 들어서며 보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슨 나무였을까, 껍질을 벗긴 나무의 흰빛은 알몸처럼 다가왔다. 십자가의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은 가시면류관을 쓰고, 못이 박히고, 창으로 찔리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무 위에 매달려 발가벗겨지는 것보다 더 .. 2020. 1. 31. 날 때부터 걸어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7) 날 때부터 걸어서 설 명절을 맞아 흩어져 있던 식구들이 어머니 집에서 모였을 때, 어머니가 봉투 하나를 가지고 오셨다. 봉투 안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사진 중에는 오래된 흑백사진들도 있었는데, 특히 예배당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에 눈이 갔다. 내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모두 보낸 고향교회의 옛 예배당과 새벽마다 종을 쳤던 종탑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었다. 당연히 사진 속 인물들에 관심이 갔는데, 옛 예배당 앞에서 찍은 두 장의 흑백사진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이제는 93세, 하지만 사진 속 한창 젊은 어머니는 두 장 모두 아기를 안고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안고 있는 아기가 누구인지를 떠올려보니 한 명은 바로 위의 형이었고,.. 2020. 1. 30. 밝은 눈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6) 밝은 눈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한국이 우승을 차지했다. 열광적 까지는 아니더라도 운동을 좋아하여 두어 중계는 지켜보았다. 젊은 선수들이 참 잘한다 싶었다. 주눅 들거나 오버하지 않고 자기 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학범 감독의 리더십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승에 칭찬이 뒤따르는 것이야 인지상정이지만, 김감독에겐 특별한 리더십이 있다고 한다. 시골 아저씨를 닮은 외모에 경기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에 앉아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어(박항서 감독과는 많이 달랐다) 언제 어떤 지시를 하나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선수들은 감독을 100퍼센트 이상 신뢰한다고 하니 그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하곤 했다. 가능하면 선수들을 골고루 기용하고, .. 2020. 1. 29. 치명적 농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5) 치명적 농담 서재 구석에 꽂혀 있던 책이 있었다. 읽고 싶어 구입을 하고는 책을 펼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사 후 되는대로 꽂은 책의 위치도 하필이면 책꽂이 구석이어서 더욱 눈에 띄지 않고 있었다. 이라는 책이었다. 분량이 제법인 원고쓰기를 마치고 모처럼 갖는 한가한 시간, 우연히 눈에 띈 책을 발견하고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얼마쯤 읽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책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내용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단어로 연결되어 그런가 싶어 눈여겨 읽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오자 아니면 탈자일까 싶어 문맥을 살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게 뭐지 하다가 페이지를 확인했더니 이런, 페이.. 2020. 1. 28. 섬년에서 촌년으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4) 섬년에서 촌년으로 짜장면이 배달되는 곳에서 살았으면. 오지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의 바람이 의외로 단순할 때가 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첫 목회지였던 단강도 예외가 아니어서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곳이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짜장면이 오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곤 한다. 강화서지방에서 말씀을 나누다가 한 목회자로부터 짜장면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섬에서 목회를 해서 당연히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곳에서 살았는데, 이번에 옮긴 곳이 강화도의 오지 마을, 그곳 또한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란다. 목사님의 딸이 학교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그랬단다. “섬년에서 촌년으로 바뀌었구나!” 고맙다, 짜장면도 배달되지 않는 곳에서 .. 2020. 1. 27. 빛바랜 시간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3) 빛바랜 시간들 첫 목회지 단강에서 지낼 때 매주 만들던 주보가 있다. 이란 소식지였다. 원고는 내가 썼고, 옮기기는 아내가 옮겼다. 특유의 지렁이 글씨체였기 때문이었다. 은 손글씨로 만든 조촐한 주보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적었다. 내게는 땅끝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물론 적을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누군가의 아픔을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늘 마음을 조심스럽게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동네에선 젊은 새댁인 준이 엄마가 주보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목사님, 욕이라도 좋으니 우리 얘기를 써 주세요.” 민들레 씨앗 퍼지듯 이야기가 번져 700여 명이 독자가 생겼고, 단강마을 이야기를 접하는 분들도 단강을 마음의 고향처럼 여겨 단강은 더욱 소중한 동네가 .. 2020. 1. 22. 초승달과 가로등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2) 초승달과 가로등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겠구나. 후미진 골목의 가로등과 새벽하늘의 초승달 어둠 속 깨어 있던 것들끼리. 2020. 1. 22. 북소리가 들리거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1) 북소리가 들리거든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무리들, 바라바가 흉악범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도 그들은 한결같다. 무리가 그렇게 외친 것을 두고 마가복음은 대제사장들이 그들을 선동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마가복음 15:11) 대제사장들의 선동, 충동, 사주, 부추김을 따랐던 것이다. 그런 무리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태엽을 감으면 감은 만큼 움직이는 인형이다. 그리도 엄청난 일을 그리도 가볍게 하다니. 말씀을 나누는 시간, 나 자신에게 이르듯 교우들에게 말한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목소리를 높이거나 춤을 추지 마세요. 그 북을 누가 치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세요.” 2020. 1. 22. 이전 1 ··· 68 69 70 71 72 73 74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