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두 손을 비운다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1) 두 손을 비운다면 해마다 추석 명절이 되면 식구들이 인우재에서 모인다. 길이 밀리기 일쑤고,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고, 씻을 곳도 마땅치 않고, 화장실도 재래식,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불편을 불편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이 단강에 누우셨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도리인 셈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어둠 속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캄캄한 뒤뜰에 파란 불빛이 날았다. 개똥벌레, 반딧불이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언제 봐도 신기하고 신비롭다. 세상에 저런 춤이 다 있구나, 웃으며 바라보다가 가만 다가갔다. 춤사위 앞에 두 손을 펴니 피하려는 기색도 없이 손 안으로 든다. 순간 나는 별을 두 손에 담은 소년이 된다. “어머, 신.. 2019. 9. 16. 버섯 하나를 두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9) 버섯 하나를 두고 독일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이니 오래된 일이다. 하루는 가족들과 엘츠 성(Burg Eltz)을 찾았다. 독일에는 지역마다 성(城)이 있어 어디를 가나 성을 흔하게 볼 수가 있다. 엘츠 성은 라인란트-팔츠 (Rheinland-Pfalz)주의 코블렌츠와 트리어 사이를 흐르는 모젤강 (Mosel)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대개의 성은 산꼭대기에 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엘츠 성은 다르다. 성이 어디에 있지 하며 진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아래쪽으로 성이 나타난다. 감돌아 흐르는 강을 끼고 서 있는 단아하고 예쁘장한 성, 처음 엘츠를 만나는 이들은 숨겨진 보물을 갑자기 만난 것처럼 감탄을 하며 발걸음을 멈춰 서고는 한다. 모젤강 (Mosel) 주변.. 2019. 9. 15. 말 안 하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2) 말 안 하기 며칠 전 ‘더욱 어려운 일’이란 제목으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제 입이 모르게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세상이 놀랄 만한 좋은 일을 남모르게 하는 일도 어렵지만, 그 일을 하고서 입을 다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제 입이 모르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대하는 순간 오래 전에 읽었던 글 하나가 떠올랐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 명의 수도자가 기도를 드리기 위해 동굴로 들어가며 한 가지 서약을 했다. 일 년 동안 기도를 드리되 기도를 마치는 날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이.. 2019. 9. 14. 바보여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0) 바보여뀌 누구 따로 눈길 주지 않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일부러 멈춰 손길 주지 않으니 얼마나 자유로운지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 풀숲이나 벼 자라는 논둑 흔한 곳 사소하게 피어 매운 맛조차 버린 나를 두고 바보라 부르지만 아무려면 어떨까 나는 괜찮다 은은하고 눈부신 누가 알까 내가 얼마나 예쁜지를 하늘의 별만큼 별자리만큼 예쁜 걸 사랑하는 이에게 걸어줄 목걸이로는 사랑하는 사람 기다리는 등불로는 이보다 더 어울릴 것 어디에도 없는데 아무도 눈여겨보는 이 없어 아무도 모르는 몰라서 더 예쁜 이름조차 예쁜 바보여뀌 2019. 9. 14. 무임승차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8) 무임승차 몇 번 KTX를 탄 적이 있는데, 몇 가지 점에서 놀란다. 운행하는 횟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 그런데도 이용하는 승객이 많다는 것, 달리는 기차의 속도가 엄청나다는 것 등이다. 오후에 떠나도 부산 다녀오는 일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또 하나 놀라게 되는 것이 있는데, 기차를 이용하는 과정이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창구에서 따로 표를 끊지 않아도 된다. 기차를 타러 나갈 때 ‘개찰’을 하는 일도 없어, 플랫폼에서 기다렸다가 알아서 타면 된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표 검사를 하는 일도 없고(물론 승무원들이 왔다 갔다 하며 체크를 한다 싶지만), 목적지에서 내렸을 때도 표를 검사하지 않은 채 역을 빠져나간다. 표를 괜히 구매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중고.. 2019. 9. 14. 묻는 자와 품는 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7) 묻는 자와 품는 자 가을이 되면 습관처럼 꺼내 읽는 책이 있다. 릴케의 이다. 겹겹이 친 밑줄들 중 대번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묻는 자는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드러운 눈길로 당신은, 당신을 가슴에 품은 자를 바라봅니다.” 이 가을엔 물음을 멈추고 다만 품게 해달라고, 같은 기도를 바친다. 2019. 9. 14. 겸손의 밑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 만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7) 겸손의 밑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 만이 샤를르 드 푸코는 예수님을 만나 회심을 하고는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만 살겠다고 다짐을 한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르기 위해 성지 나자렛으로 떠났던 그는 사하라의 오지 투아렉 부족들 사이에서 살다가 그들에 의해 피살되고 만다. 하지만 그의 삶은 하나의 씨앗이 되었다. 프랑스의 몇몇 젊은이들이 알제리의 사하라 사막에서 그의 삶을 따라 예수의 작은 형제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받은 샤를르 드 푸코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어찌 그 대답이 쉬울 수 있을까. 사막을 지난 자 만이, 겸손의 밑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 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지 싶다. 2019. 9. 13. 더욱 어려운 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6) 더욱 어려운 일 기회가 되면 교우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세상이 놀랄 만한 일을 하되,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조용히 즐기라고. 그것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마태복음 6:3) 하는 것 아니겠냐고. 목사는 불가능한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선수다. 말이 좋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어떻게 왼손이 모르도록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혹시, 어쩌다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해도 그보다 더 어려운 것 하나가 남아 있게 마련이다. 제 입이 모르게 하는 것! 2019. 9. 12. 시간이라는 약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5) 시간이라는 약 정릉교회 목양실은 별관 2층에 있는데, 창문에 서서 바라보면 바로 앞으로는 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겨우 자동차 교행이 가능한 길 세 개가 서로 만난다. 여러 번 때운 자국이 남아 있는 도로에는 부황을 뜬 자국처럼 맨홀 뚜껑들이 있고, 대추나무에 연줄 걸린 듯 전선이 어지럽게 묶인 전봇대 여러 개, 자동차보다도 애인 만나러 가는 젊은이가 걸음을 멈춰 얼굴을 바라보는 반사경 등이 뒤섞인 삼거리엔 늘 차와 사람들이 오고간다. 삼거리라 했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네 개의 길이다. 예배당으로 들어오는 길까지 합하면 사거리가 되는 셈이어서 열십자 모양을 하고 있다. 정릉에는 유난히 언덕이 많고 골목길이 많은데 예배당 앞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복잡한 길 주변.. 2019. 9. 10. 이전 1 ··· 81 82 83 84 85 86 87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