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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경지의 한 자락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경지의 한 자락 小窓多明 작은 창가에 빛이 밝으니 使我久坐 나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네 제주도 에 걸린 추사의 글 중 마음을 찌르듯 다가온 글자는 ‘窓’이었다. ‘窓’이란 글자 대신 창문틀을 그려놓았으니, 그 자유분방함이 마치 달빛에 취한 사람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모든 글자가 그랬지만 또 하나 눈길이 머문 글자가 있었는데, ‘앉을 좌’(坐)였다. ‘坐’는 ‘흙’(土)에 ‘두 사람’(人+人)을 합한 글자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형상을 담고 있다. 그런데 추사는 ‘坐’를 쓰며 ‘土’ 위에 네모 두 개를 올려둔 것으로 썼다. 네모가 생각보다 큰데, ‘입 구’(口)로도 보이고 창문을 그렸나 싶기도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를 펼쳐 ‘坐’라는 글자를 찾아보았다. 하나의 글자가.. 2019. 9. 28.
창(窓)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3) 창(窓) 때늦은 휴가를 다녀왔다. 교회 안의 여름행사를 모두 마치고, 다른 교직원들이 모두 휴가를 다녀온 뒤에 떠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휴가철이 끝나서인지 가는 곳마다 한적한 것도 좋은 일이었다. 두 분 선배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하필이면 뒤늦게 찾아온 태풍으로 인해 떠나는 것 자체가 아슬아슬했다. 줄줄이 취소되었던 항공편이 우리가 예약한 비행기부터 가능했으니까. 제주도는 갈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오래 머물 일이 없다보니 그럴 것이다. 섬이면서도 늘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온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따로 급할 것도 없고 굳이 지켜야 할 일정도 없이 마음가는대로 움직였는데, 그런 마음을 안다는 듯이 섬은 가슴을 열 듯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자.. 2019. 9. 27.
눈이 밝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00) 눈이 밝으면 이따금씩 책을 선물할 때가 있다. 책을 선물하다보면 받는 이로부터 부탁을 받는 일이 있는데, 서명을 해 달라는 부탁이다. 그러면 그냥 이름만 적는 것이 뭣해 짧게 한 마디를 적곤 하는데, 대부분은 불쑥 떠오르는 말을 적게 된다. 를 선물로 전하고 싶으니 앞에 서명을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책을 열었다. 그리고는 막 떠오르는 생각 하나를 적는다. 눈이 밝으면 세상이 밝고 귀가 환하면 세상이 환하고! 2019. 9. 25.
사랑하는 법을 안다는 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9) 사랑하는 법을 안다는 것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사랑하는 법을 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사랑 아닌 일을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누군가를 숨 막히게 할 때도 적지 않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애지욕기생’(愛之欲基生)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9. 9. 25.
거덜나버린 마른 스펀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6) 거덜나버린 마른 스펀지 왜 우리는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오래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왜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일까, 안 믿는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일까, 오래된 질문이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하여 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신앙적인’ 사람들이 변화에 대해 가장 완강하게 저항한다. 그들은 자신이 이미 변화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메마른 땅에 떨어진 씨와도 같다.”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해야 할 신앙인들이 오히려 변화에 대해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지적이 뜻밖이다. 그 이유가 자신이 이미 변화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참으로 아프다. “언제까지 여러분은 자기.. 2019. 9. 21.
개인여행과 단체여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5) 개인여행과 단체여행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이 있다. 말은 꿀처럼 달게 하지만 속에는 칼을 품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어느 날 예수를 찾아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은 본래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입장이 달랐다. 그런데 예수를 잡는 일에는 손을 잡는다. 그들은 한껏 예수를 추켜세운다. 그들의 칭찬은 존경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은 ‘口蜜’이었다. 속에 시퍼런 비수를 감추고 있다. 그들은 세금에 대해 예수에게 묻는다.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가당한 일인지, 가당치 않은 일인지를 묻고 있다. 몰라서, 배우려고 묻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잡으려고 묻는다. 어느 대답을 해도 꼼짝없이 걸려들 수밖에 없는 교묘한 덫을 놓은 것이다. .. 2019. 9. 21.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4)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이따금씩 책장 앞에 설 때가 있다. 심심하거나 무료할 때, 책 구경을 하는 것이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풍경 지나가듯, 가만 서 있는 내 앞으로 책 제목들이 지나간다. 분명 마음에 닿아 구했을 책들이고 책을 읽으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 책이겠지만, 새롭게 말을 걸어오는 제목들은 의외로 드물다. 특별한 일 아니면 나를 깨우지 마세요, 단잠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오늘도 그랬다. 한 달 여 쉬었던 대심방을 가을을 맞아 다시 시작하여 하루 심방을 마치고 났더니 약간의 오한이 느껴진다. 몸도 마음도 무거운 것이 으슬으슬 춥다. 몇 가지 일이 겹쳐 마음이 편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릴 겸 커피 한 잔을 타며 음악을.. 2019. 9. 20.
공터에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3) 공터에선 노란색 꽃도 피고, 자줏빛 꽃도 피고, 수줍게도 피고, 당차게도 피고, 꽃 아닌 풀도 눈치 볼 것 없이 자라고, 키 좀 크다 으스대지 않고, 키가 작다 기죽지 않고, 풀도 씨를 받고, 꽃도 씨를 받고, 풀과 꽃 사이 이름 모를 벌레들이 맘껏 노래를 하는, 어디에도 잘난 것 따로 보이지 않는, 허름한 공터에선! 2019. 9. 18.
두 손을 비운다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1) 두 손을 비운다면 해마다 추석 명절이 되면 식구들이 인우재에서 모인다. 길이 밀리기 일쑤고,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고, 씻을 곳도 마땅치 않고, 화장실도 재래식,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불편을 불편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이 단강에 누우셨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도리인 셈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어둠 속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캄캄한 뒤뜰에 파란 불빛이 날았다. 개똥벌레, 반딧불이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언제 봐도 신기하고 신비롭다. 세상에 저런 춤이 다 있구나, 웃으며 바라보다가 가만 다가갔다. 춤사위 앞에 두 손을 펴니 피하려는 기색도 없이 손 안으로 든다. 순간 나는 별을 두 손에 담은 소년이 된다. “어머, 신.. 2019.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