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믿는 구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2) 믿는 구석 다가온다는 태풍 앞에서도 거미가 저리 태평은 것은, 태풍의 위력을 몰라서가 아닐 것이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촘촘하게 거미줄을 치면서도 실상은 비워놓은 구석이 더 많다. 그것이 비를 견디고 바람을 견디는 길임을 거미는 알고 있는 것이다. 다가온다는 태풍 앞에서도 거미가 저리 태평인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2019. 10. 8. 그레발을 두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2) 그레발을 두자 ‘그레발’은 집 지을 재목을 다듬는 일과 관련이 있다. 보, 도리, 서까래, 기둥 등 집을 지을 때 쓰는 재목을 다듬기 위해서는 ‘마름질’을 한다. 마름질이란 재목을 치수에 맞추어 베거나 자르는 것을 말한다. - 그림/국민일보 재목을 길이에 맞춰 자르기 위해서는 재목에 표시를 하는데, 그렇게 표시를 하는 도구를 ‘그레’라 한다. 그레발이라는 말은 그레와 관련이 있다. 재목을 자를 때 원래의 치수보다 조금 더 길게 늘려 자른 부분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레발을 두는 것은 혹시라도 오차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처음부터 길이를 딱 맞춰 잘라 놓았다가는 나중에 바로잡을 길이 없어질 수가 있다. 재목의 길이가 길면 잘라 쓰면 되지만 행여 짧을 경우엔 .. 2019. 10. 6. 아름다운 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1) 아름다운 일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누군가가 나누는 우정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저만치 앞서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오래된 우정인 양, 오래갈 우정인 양 흑백으로 찍는다. 나중에 보니 사진이 좋다. 한 장에는 두 팔을 벌린 모습이 담겼고, 다른 한 장에는 슬그머니 옆을 보며 빙그레 웃는 웃음이 담겼다. 함께 하는 즐거움이 오롯이 전해진다. 아름다운 우정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2019. 10. 4. 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0) 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운 누군가의 설교를 듣는 일은 내게 드문 일이다. 바쁜 탓이기도 하고, 혹시라도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비교하려는 마음을 스스로 차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심사가 못된 탓이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듣게 된 설교가 있다. 새문안교회 이상학목사의 설교였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4)–사랑과 정의 사이에서’(마태복음 5:20)라는 제목이었다. 자신이 속한 교단 안에서 일어난 M교회의 담임목사 세습 문제를 다루는 설교였다. “성경적 설교를 기대하시는 분들은 용서해 달라”며 시작했지만, 내게는 더없이 성경적으로 들렸다. 목소리를 높이는 법 없었지만 위선과 탐욕과 무지의 견고한 벽을 깨뜨리는 설교이기도 했다. 설교자는 이번에 벌어진 일이 193.. 2019. 10. 4.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9)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린 손자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하나님을 본 적이 있으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도 진지하게 손자에게 대답을 했다. “얘야, 나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단다.” 성 베네딕토는 말했다. “수도원의 부엌세간과 헛간의 연장을 다루는 것은 제단의 제구를 다루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도로테오의 말은 지극히 단순하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진다.” 로렌스의 말은 가슴에 쿵 하고 떨어지는 바윗덩어리 같다. “낙원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참으로 하나.. 2019. 10. 4. 대뜸 기억한 이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8) 대뜸 기억한 이름 지난주일 2부 예배를 앞둔 시간이었다. 예배실 앞에서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안내를 보던 권사님이 찾아와선 예전에 단강에 계시던 분이 오셨다고 일러주었다. 누굴까, 누가 이곳을 찾았을까, 아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에 나타난 두 사람, 누군지를 대번 알 수 있었다. 최일용 집사님과 아들 안갑수였다. 단강을 떠난 지가 20여 년 되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그만한 세월이 지나갔지만 대뜸 두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고, 이름도 금방 떠올랐다. 집사님은 말투도, 웃으면 두 눈이 감기는 모습도 여전했다. 허리가 약간 굽은 것과 집사였던 직분이 권사가 된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저만치서.. 2019. 10. 3. 범퍼의 용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7) 범퍼의 용도 교우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올 때였다. 운전을 할 전도사가 주차한 차를 후진하다가 뒤에 있는 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와보니 그런 일이 있었다. 부딪친 차를 보니 별 티가 나지 않았다. 워낙 부딪친 흔적이 많은 차였다. 교회 승합차에는 어떤 흔적도 보이질 않으니 경미한 충돌이라 여겨졌다. 그래도 사고는 사고, 게다가 우리는 교회 차가 아닌가. 주인을 찾았고 한참을 기다려 만났다. 이야기를 듣고 차를 이리저리 살핀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그냥 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인데, 슬그머니 사라지니 당황스러웠다. 일단 보험사에 연락을 했다. 사진을 찍은 뒤 사고를 당한 차 주인에게 보험으로 처리한다는 말을 하고 가라고 했다. 다시 .. 2019. 10. 2. 거오재 노오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6) 거오재 노오재 냉천동에 있는 감신대에 입학하여 만난 친구 중에는 한남동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서울에 머물 일이 있으면 친구 집을 찾곤 했다. 한남동을 찾으면 즐겨 찼던 곳이 있었는데 ‘胎’라는 찻집이었다. 순천향병원 맞은편에 있는, 가로수 플라타너스 나무가 2층 창문 바로 앞에 그늘을 드리우는 찻집이었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했고, 손님이 없을 때는 연극을 하는 주인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당시만 해도 찻집에는 성냥을 선물로 준비해 두곤 했다. 찻집 이름이 새겨진 작은 성냥이었다. 그런데 ‘胎’에 있는 성냥은 특이했다. 한쪽 면에 한문으로 된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居惡在 路惡在’라는 구절이었다. 신학생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뜻을 묻는 .. 2019. 10. 1. 보이지 않는 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5) 보이지 않는 길 한동안 새들로 인한 고민이 컸었다. 날아가던 새가 목양실 창문에 부딪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했던 것이다. 한쪽 면이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으니 새들에게는 치명적인 구조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책상에 앉아있다 보면 “퉁!” 하며 유리에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그러면 어떤 새는 용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날아갔지만 모든 새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창문 아래 바닥에 죽은 새가 보일 때가 있었다. 새가 부딪치는 것을 막아보려고 블라인드를 낮게 내리고, 가능하면 창문을 열어두었고, 공터에 키가 빨리 크는 나무를 심을 궁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새가 부딪치는 일이 없어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새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이.. 2019. 9. 30. 이전 1 ··· 79 80 81 82 83 84 85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