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46

은하철도와 천일야화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0) 은하철도와 천일야화 서울과 평양, 동경과 베이징이 하나로 이어져서 우리의 삶 속에서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건 우리말과 일본어 그리고 중국어가 소통의 능력으로 보다 자연스럽게 나누어졌던 때의 풍경입니다. 다만 그것이 일제시대의 역사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동아시아는 하나의 생활권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동아시아는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들어서면 주춤거리게 됩니다. 돌아가야 하는 길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은 북경을 거쳐 평양을 갑니다. 하얼빈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원산에서 동경을 가는 것은 왠지 까마득합니다. 오사카에서 신의주로 가는 통로도 단절된 지 오래입니다. 서울역에서 철로로 한참을 달려 압록강을 .. 2015. 9. 1.
나오미, 노년에 진정한 어머니가 되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3) 나오미, 노년에 진정한 어머니가 되다(2) 1. 룻은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보아스 밭에서 곡식걷이를 돕고 이삭을 주우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 나오미가 특별히 할 말이 있는 듯하다. 여기서도 본문기자는 나오미가 룻의 시어머니라는 사실을 일부러 밝힌다. 이제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도 불필요해 보이는 말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런 집요함은 룻과 나오미가 어떤 관계인지, 즉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사람인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 .. 2015. 8. 30.
광야에서의 다윗 다윗 이야기(7) 광야에서의 다윗(1) 1. 구약성서를 읽다 보면 누구나 읽기 싫은 대목이 있다. 레위기가 전하는 제사의 구체적인 방법과 제사장이 갖춰야 할 조건들이 대표적이다. 마음 단단히 먹고 구약성서를 통독하려던 사람도 거기에 이르면 지겨워서 중단하려는 유혹이 빠진다. 정녕 레위기는 구약성서라는 바다에 우뚝 솟은 암초 같은 책이다. 그에 못지않은 암초가 지명(地名, place name)이다. 구약성서의 대부분의 지명들은 익숙하지 않고 발음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런 지명들이 등장하는 대목은 세심히 읽지 않고 대충 지나가기 일쑤다. 안 그런가? 구약성서 독자들 중 익숙지 않은 지명을 만나면 그게 어딘지 확인하려겠다고 지도를 찾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열 명에 한 명도 안 될 거다. 그런데 지명이 .. 2015. 8. 30.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으라 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3)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으라 보이지 않아도, 보고 있어요 도엽을 다시 만났을 때 도엽의 표정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평온해 보였다. 통화나 문자로 자주 접촉해서 그런지 그는 첫 만남 때보다 더욱 편안해 보였다. 모자를 벗어도 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모자를 벗으니 약간 곱슬한 머리카락들이 땀방울처럼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첫 만남 때 도엽은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 몇 가지를 잘 담아 왔었다. 그중 하나가 모자 이야기였다. 그것도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 물론 실명 전의 일이었다. 작년 1월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하고 나서 3개월 만에 암이 재발된 후 어느 여름날, 그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물놀이를 하고 싶었다. 근처 강에서 .. 2015. 8. 28.
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것 두런두런(29) 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것 강원도 단강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어느 날 새집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어릴 적 우리는 새집을 발견하면 새집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맡다’라는 말이 묘합니다. ‘맡다’라는 말에는 ‘차지하다’는 뜻도 있고, ‘냄새를 코로 들이마셔 느끼다’ 혹은 ‘일의 형편이나 낌새를 엿보아 눈치 채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릴 적 말했던 ‘맡는다’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담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집이 어디 있는지를 눈치 챘다는 뜻도 있고, 내가 차지했다는 뜻도 담겨 있었을 테니 말이지요. 저녁 무렵 교회 뒤뜰을 거닐다가 새 한 마리를 보게 되었는데, 날아가는 모양이 특이했습니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럽게 이 가지 저 가지를 .. 2015. 8. 27.
어떤 새 두런두런(29) 어떤 새 한 마리 새가 있었습니다. 그는 밤이 되면 하늘로 날아오르곤 했습니다. 다른 새들이 잠이 들면 슬며시 혼자 깨어 일어나 별들 일렁이는 밤하늘을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쉬는 법이 없었습니다. 날이 밝기 전 그는 어김없이 둥지로 돌아왔고, 잠깐 눈을 붙였다간 다른 새들과 함께 일어나 함께 지냈습니다. 아무도 그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리 새가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밤중에 깨었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의 뒷모습을 우연히 본 것이었습니다. 이내 눈에서 사라지는 까마득한 높이였습니다. 다음날 새벽, 막 둥지로 돌아온 새에게 물었습니다. -어딜 갔다 오는 거니? -하늘. -모두들 하늘을 날잖니? -하늘은 깊어. -왜 하필.. 2015. 8. 27.
처음부터 망쳤구나!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4) 처음부터 망쳤구나! “당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주겠소?”(요한복음 2:13-25). 너무도 변해 있었다. ‘빛의 아들들’과 섞여 사느라 십여 년을 멀리했던 성전이기는 하지만 이건 시장 바닥이었다. 해방절이 다가오는 때라 제관에게는 대목이라겠지만(판공에다 찰고, 십일조 책정에 오죽이나 바쁠까?) 해도 너무들 하다. 열두 살 적 추억을 어떻게 잊는단 말인가? 정말 웅장하고 성스럽고 신기했었다. 온 겨레가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지만 내겐 정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듯한 친근감을 주는 곳이 여기 성전이다. 핏덩어리인 내가 강보에 싸여 왔던 곳, 우리 어머니가 시므온이니 안나니 하는 노인네에게 내 팔자가 기구할 테니 조심하라는 .. 2015. 8. 27.
귀가 거룩해야 말씀이 거룩하게 들린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9) 귀가 거룩해야 말씀이 거룩하게 들린다 “만군(萬軍)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葡萄)를 땀 같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者)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葡萄) 따는 자(者)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警責)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割禮)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自己)에게 욕(辱)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예레미야 6:9~10) 오래 전에 번역된 성경을 일부러 찾아 읽는 것은 그것을 번역할 당시, 즉 오래 전 하나님을 믿었던 이들은 성경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의도하지 않는다 하여도 성경에 담겨 있는 단어, .. 2015. 8. 26.
가난한 노래의 씨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9) 가난한 노래의 씨 육사(陸史)의 본명은 “원록”입니다. 그의 필명이 성을 포함하여 “이육사”가 된 까닭은 1925년 중국에서 항일 독립단체인 의 일원으로 국내에 잠입,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 구금되었을 때 수감번호가 264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29년 출옥 후, 중국 북경대학에서 공부하고 난 뒤 1933년 국, 십년 뒤인 1943년 다시 서울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북경감옥에서 옥사하기까지 그는 “육사”라는 필명으로 시작(詩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삶의 경로를 보면, 그의 시에 과연 무엇이 담겨 있을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필명이 육사, 즉 “대륙의 역사”라는 뜻을 가진 이답게 그의 시는 광활한 대륙의 기상과 민족적 혼의 웅대함이 깃들어 .. 2015.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