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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살아남기 위해 뭐든지 해야 했다 다윗 이야기(6) 다윗, 살아남기 위해 뭐든지 해야 했다 - 사울 궁전에서의 다윗 1. 구약성서의 서술이 연대순이 아님을 감안해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후일담은 시간적으로 여간 헛갈리는 게 아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후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보냈고(당시 예루살렘은 여부스족의 도시였으므로 이 서술이 이치에 안 맞는다는 얘기를 앞에서 했다) 칼은 자기 장막으로 가져갔다고 했다(사무엘상 17:54). 그런데 55절에서는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싸움이 벌어지기 전 얘기를 한다. 사울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다윗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아브넬 장군, 저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오?”라고 물었단다. 바로 앞에서 자기가 전쟁터에 내보내놓고 말이다. 아브넬이 자기도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사울은 그가 누군지 알아.. 2015. 8. 9.
사교육 해결책?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31) 사교육 해결책? 사람들은 모른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조선조의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사교육 문제 역시 15세기의 가치관이 연장되고 있는 것인데도 그것을 자꾸 21세기의 안목으로 해결해보려 한다. 정부는 밑도 끝도 없이 대입선발 제도 변경 실험을 반복하고 있고, 학부모들은 등골이 휘어가면서도 어떻게든 뭉칫돈을 마련하여 사교육 시장에 쏟아 붓고 있다. 학교의 교사들은 해체되어가는 공교육 현장에서 별다른 대책도 없이 교실을 지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도대체 무엇부터 잘못된 것일까? 엄청난 규모로 성장해버린 사교육시장. 공교육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인이 되어버린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21세기 대한민국 교육현장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많은.. 2015. 8. 9.
시스라의 어머니, 모든 어머니는 존중받아야한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0) 시스라의 어머니, 모든 어머니는 존중받아야한다(1) 1. 시스라의 어머니? 아마 생소할 것이다. 오늘은 대다수 사람들이 처음 들을 “시스라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그 이야기는 전쟁 이야기로 시작한다. 성경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전쟁 이야기다. 전쟁담만큼 신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영웅들도 전쟁영웅들이지 않는가. 참 아이러니하다. 세상이 그만큼 폭력적이라는 것인데, 성경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폭력에 대한 폭력. 사사기도 우리를 그 잔인한 폭력의 현장으로 인도한다. 사사기 4장과 5장은 한 묶음이다. 독자들은 4장과 5장을 읽으면서, 드보라를 주역으로 생각할 텐데, 그렇긴 하지만, 성경을 꼼꼼하게 읽다보면, 의외로 시스라가 주요 인물이라는 것을 알 .. 2015. 8. 5.
“우리의 인텔리겐차는 어디에?”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5) “우리의 인텔리겐차는 어디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나오는 “대심문관 대목”은 신앙으로 포장된 중세의 조작된 신화에 갇혀 있는 사회의 비극을 환상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지상에 내려온 그리스도를 도리어 귀찮게 여기고 배격하는 종교 지도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들도 믿지 않은 교리를 대중들이 신봉하도록 하면서, 자신들만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성채를 수호하려는 자들의 위선적인 정체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들이 정작 원했던 것은 평소에는 그토록 신실한 자세로 고백하고 있는 예수의 재림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세가 대중들의 뇌리에 영원히 뿌리내리는 것임을 우리는 대심문관의 발언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라는 깃발은 단지 이들의 영토를 성역(聖域)으로.. 2015. 8. 5.
저 어스름 때야말로 나의 명함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30) 저 어스름 때야말로 나의 명함 나는 돌파 속에서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모든 활동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돌파 속에서 나는 모든 피조물을 능가합니다. 돌파 속에서 나는 피조물도 하나님도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있던 그대로의 나, 있는 그대로의 나, 앞으로 영원히 있을 나입니다. 어느 젊은 여자가 수도원의 대문을 두드리며 엑카르트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문지기가 물었다. “누구라고 전해 드릴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 당신이 어째서 그걸 모른단 말이오?” “저는 소녀도 아니요, 아줌마도 아니요, 남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인도 아니고, 미망인도 아니고, 처녀도 아니며, 또 신사도 아니고, 하녀도 아니고, .. 2015. 8. 5.
새벽(의) 날개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1) 새벽(의) 날개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개역개정),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공동번역), 여기 시편 139편 9절에 나오는 “새벽의 날개”란 무엇인가? 이것은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의 “칸페이 샤하르”의 직역이다. 찬송가 뒤 교독문에 인용되어 있는 본문이므로 예배 때 자주 만나게 된다. 일반적인 독자들의 경우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겠는 것이 아마도 “새벽의 날개”라는 표현일 것이다. 날이 밝을 녘을 일컫는 신간의 한 대목에 새나 곤충이 날 때에는 펴는 신체의 한 부분을 연결시키는 것이 우리말 독자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할 것이다. 시편 139편 8-10절의 내용은 하나님의 현존을 피하지.. 2015. 8. 5.
영혼의 둔감을 경계하며 기다릴 뿐 김기석의 톺아보기(11) 영혼의 둔감을 경계하며 기다릴 뿐 교회 종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도 기독교를, 아니 기독교인들을 싫어했던 내가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다니. 그날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세상 밖으로 떠밀린 자의 고적감에 짓눌려 죽음을 생각하고 있던 내게 저녁 예배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근원으로부터의 부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유수지에 얼비치고 있었던 석양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잔잔한 물결 위에 드리운 부드러운 햇살은 비현실적인 평안함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때 교회 종소리가 들려왔고, 마침 어머니가 내 곁을 지나가고 계셨다. 문득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기독교와 맺은 인연의 시작이다. 나름대로 꽤 많은 월급을 받던.. 2015. 8. 5.
온유한 자가 차지하는 땅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9) 온유한 자가 차지하는 땅 - 전집 4권 『성서 연구』 「산상수훈」 편 2 - 결국엔 웃었다. 하지만 순간적이나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 걸 보니 마음 한 구석에 ‘교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나보다. 그래도 감정을 추스른 건 잘한 일이었다. 지난 학기말의 일이다. 처음 가본 작은 사학 공간은 그야말로 ‘어이없는 갑질’의 향연이었다. 대학 강사료가 워낙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갑’이었다. 그래도 아이들만 예쁘다면 나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교수’의 역할이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신의 전공 안에서 얻은 깨달음을, ‘프로페스(profess)’하는 직업이니까. 어느 강단이든, 어떤 대우를 받든, 나는 내 소리를 .. 2015. 8. 4.
엇갈리는 운명 다윗 이야기(5) 엇갈리는 운명– 야훼의 영이 사울에게서 다윗에게 옮겨가다 1. 사무엘이 사울의 후임자를 찾아 이새의 집에 갔을 때 그의 맘에 든 사람은 맏아들 엘리압이었다. 그는 엘리압을 보고 맘속으로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야훼 앞에 나와 섰구나.”라고 생각했단다(사무엘상 17:6). 하지만 그는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야훼는 중심[심장]을 본다.”(7절)라는 야훼의 말을 듣고 꼬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독교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하느님은 겉모습이 아닌 중심을 보신다.’는 생각이 여기서 비롯됐다. 그러고 .. 2015.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