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4 규성이 엄마 한희철의 얘기마을(78) 규성이 엄마 작실에서 내려오는 첫차 버스에 규성이가 탔습니다. 엄마 품에 안긴 어린 규성이의 두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습니다. 감기가 심해 원주 병원에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엊그제 들에 나가 고추며 참깨를 심었는데, 점심을 들에서 했다고 합니다. 솥을 돌 위에 걸고 나무를 때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인 것이지요. 먼 들판까지 점심을 이어 나르기 힘든 것도 이유였겠지만, 시어머니며 남편이며 몇 명의 품꾼이며, 어쩜 일하시는 분들께 따뜻한 점심을 차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새댁인 규성이 엄마가 점심을 차리는 동안 어린 규성이는 밭둑 위에서 혼자 버둥거리며 누워 있어야 했는데 흐리고 찬 날씨, 감기가 되게 걸린 것입니다. 어린 규성이가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어린 .. 2020. 9. 8. 그리운 햇살 한희철의 얘기마을(77) 그리운 햇살 가물어 물을 대던 기다란 호스가 곳곳에 그대로인데 이번엔 물난리다. 그칠 줄 모르는 빗속에 삽을 들고 물꼬 트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비도 좀 어지간히 와야지. 밤새 빗소리에 한잠도 못 잤어.” 간밤에 잠을 못 이룬 건 투정하듯 말하고 있는 한 사람만이 아니다. 김영옥 집사님 네 강가 밭은 또 물에 잠겼다. 뽑을 때가 다 됐던 당근이 그대로 물에 잠기고 말았다. 드넓은 강가 밭의 대부분은 당근, 당근을 팔 때가 되었는데 다시 물난리다. 하루가 다르게 굵어가던 당근이 빗속에서 짓무른 탓인지 뿌리로부터 썩어 들어오는 것이다. 미리 선금을 주고 이 밭 저 밭 밭떼기로 산 사람은 아예 앓아누웠다. 사정이야 어찌됐건 팔았으니 됐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2020. 9. 7. 마스크를 쓴 얼굴이 아름다워요 신동숙의 글밭(228) 마스크를 쓴 얼굴이 아름다워요 마스크를 쓴 얼굴이 아름다워요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우리를 지키기 위한 안전띠지요 마스크를 쓴 눈빛이 사랑스러워요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고마운우리를 살리기 위한 생명띠지요 버스와 지하철에서식당과 카페에서광화문 광장에서산과 바닷가에서단 둘이 있을 때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고내리지 않으려고언제나 오래 참는 마스크 속의 인내와 절제는 감사와 기쁨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낮아진우리들 사랑의 새로운 호흡법이지요 화평과 온유의 고요해진 숨결로가슴속 아주 작은 소리까지 언제나 귀를 기울여요 2020. 9. 7. 우리 삶의 벼릿줄 우리 삶의 벼릿줄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부지런히 일하여라. 어떤 것이 잘 될지, 이것이 잘 될지 저것이 잘 될지, 아니면 둘 다 잘 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전11:4, 6) 좋으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또 한 주가 흘렀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이 어두운 터널의 끝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조바심도 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유쾌하고 즐거운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난감한 이야기만 자꾸 우리 귓전을 어지럽힙니다. 증오와 혐오를 선동하는 이들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거짓 뉴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이들이 사회를 갈등 상황으로 몰아가.. 2020. 9. 6. 치악산 오르기 한희철의 얘기마을(76) 치악산 오르기 치악산에 올랐다가 탈진해서 내려왔다. 아무려면 어떠랴 했던 건강에 대한 과신이 문제였다. 아침 점심 모두 거른 빈속으로 치악은 무리였다. 그럭저럭 물도 떠 마시며 올라갈 땐 몰랐는데, 내려오는 길에 몸이 풀어지고 말았다. 같이 올라간 김기석 형과 손인화 아우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민망했다. 기대한 대로 마음이 텅 비기는커녕, 빈속엔 밥 생각이 가득했다. 그나마 형이 들려주는 신선한 이야기가 흐느적대는 몸을 지탱해 주었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의 어리석음과, 도전할 만한 정상을 스스로 포기한 채 살아가는 내 삶의 무력함을 절실히 깨달은 하루였다. - (1991년) 2020. 9. 6. 眞人, 참된 사람의 우정 신동숙의 글밭(227) 眞人, 참된 사람의 우정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걸어가는 길이 더 풍요로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 만남이란 사람과의 만남일 때도 있고, 책이나 다른 인연의 스침으로 만난다고 해도 그 울림이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면 한순간이 영원이 되기도 한다. 개인과의 만남을 넘어 조금 더 크고 넓은 범위에서 보면, 동양과 서양의 만남 만큼 풍요로운 울림도 없는 것 같다. 200년 전 미국의 시인이자 초절주의 자연주의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동양의 을 만났다. 미국에 유학을 간 인도의 간디는 소로의 책을 읽은 영향으로 비폭력 평화주의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간디와 톨스토이를 스승으로 삼아 일평생 존경했으며, 법정스님은 책에서 만난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 2020. 9. 6. “뭘 해도 농사보다야 못하겠어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5) “뭘 해도 농사보다야 못하겠어요?” 버스에서 정용하 씨를 만났다. 작은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있었다. 용하 씨는 요즘 문막농공단지에 취직을 하여 다니고 있다. 기골이 장대한, 30대 중반이긴 하지만 작실마을에선 힘쓸만한 몇 안 되는 젊은이였는데 농사를 그만두고 얼마 전에 취직을 했다. “힘들지 않아요?” 버스에서 내려 같이 들어오며 용하 씨에게 물었다. “할만 해요. 근데 딴 건 다 괜찮은데 배고파서 힘들어요. 새참 먹던 버릇이 있어 그런가 봐요.” 웃으면 두 눈이 감기는 그 너털웃음을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흙 일궈 삼십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 공장에 나가 쇠를 깎는다는 게 어찌 할 만 한 일이겠는가. 어머니 가슴 같은 흙 일구던 손으로 쇳조각을 깎아대니, 어찌 .. 2020. 9. 5. 어느 수요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4) 어느 수요일 광철 씨가 아프단 말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폐가처럼 썰렁한 언덕배기 집, 이미 집으로 오르는 길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잡풀이 수북이 자라 올랐고, 장마 물길에 패인 것이 그대로라 따로 길이 없었습니다. 흙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좁다란 방에 광철 씨가 누워있었습니다. 찾아온 목사를 보고 비척 흔들리며 힘들게 일어났습니다.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더욱 야위었습니다. 퀭한 두 눈이 쑥 들어간 채였습니다. 이젠 학교에 안 가는 봉철이, 아버지 박종구 씨, 광철 씨, 좁다란 방에 둘러 앉아 함께 두 손을 모았습니다. 빨리 낫게 해 달라 기도하지만, 내 기도가 얼마나 무력한 기도인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며칠의 몸살보다는 몸살이 있기까지의 어처구니없는 삶이 더 크기 때.. 2020. 9. 4. 어수선한 마당 뒷설거지 신동숙의 글밭(226) 어수선한 마당 뒷설거지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후 잇달아 올라오는 태풍 피해 소식에 마음이 무거운 날이다. 난생 처음으로 밤새 무섭게 몰아치는 강풍에 잠이 깨어서 내내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벽을 맞이하였다. 날이 밝은 후 내가 살고 있는 집 마당에도 어김없이 밤새 태풍이 할퀴고 간 흔적들로 마음이 어수선하기만 하다. 언제 다 치울까 싶다. 자정 무렵 태풍이 지나가기 전 그날 오후에 친정 엄마가 마당에 있는 깻잎대와 고춧대를 뽑아내시면서 한바탕 마당 대청소를 하시느라 땀 흘리신 정성은 흔적도 없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을 수습하느라 최전선에 계신 분들의 마음도 이와 같을까? 이제 겨우 숨돌리는가 싶었는데.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올 2월에 신천지 교인으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울산에서.. 2020. 9. 4. 이전 1 ··· 104 105 106 107 108 109 110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