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4 더딘 출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3) 더딘 출발 요 며칠 동안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사택에 들러 숙제를 했다. 섬뜰의 승호, 종순이, 솔미에 사는 지혜 등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었다. 그들로선 하기 힘든 숙제였다. ‘화장실에 가서 사람이 많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면 ‘줄을 섭니다.’ 하고 답하는 문제는 단순하고 쉬운 것이었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아직 글을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데 있었다. 아이들은 문제가 무얼 요구하는지 읽질 못했다. 아내가 문제를 읽어주면 그제야 아이들은 대답을 한다. 그러나 대답한 내용을 쓰질 못한다. 아내가 써 주면 그걸 보고서야 그리듯 답을 쓰는 것이었다. 학교 들어가기 전 한글은 물론 덧셈, 뺄셈, 피아노 심지어는 영어까지도 미리 배워 학교에 들어가서는 다 아.. 2020. 9. 3. 진실, 마음의 초점 신동숙의 글밭(225) 진실, 마음의 초점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렇다면 온전한 사랑을 위한 그 원수란 나에게 있어 어떤 대상일까? 그러한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이 단순한 말씀이 이어져 생각은 강을 이룬다. 처음같이 영원히 마르지도 그치지도 않는 샘물처럼 이 진리의 말씀에 오늘도 내 영혼이 마른 목을 축이듯 생각의 두레박을 내린다. 오늘날 당장에 원수를 꼽자면, 개인적인 원수보다는 공적인 원수가 먼저 떠오른다. 코로나19의 2차 위기를 다함께 조심스레 지나는 이 시기에 있어서 사회 공적인 원수란, 유독 자기들만의 구원과 욕망을 위해서 온전하신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등지고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 대면하여 떠드는 자들일 것이다. 그런 원수까지도 예수는 사랑하라 하셨.. 2020. 9. 2. 고르지 못한 삶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2) 고르지 못한 삶 “날씨가 고르지 못해서 힘들지요?” 수요 저녁예배 성도의 교제시간, 피곤이 가득한 교우들께 그렇게 인사했을 때 김영옥 집사님이 대답을 했다. “날이 추워 걱정이에유. 담배가 많이 얼었어유.” 잎담배를 모종하고서는 비닐로 씌웠는데도 비닐에 닿은 부분이 많이 얼었다는 것이었다. 날이 추우면 얼어 죽고, 비가 안 오면 말라죽고, 많이 오면 잠겨 죽고, 그나마 키운 건 헐값 되기 일쑤고. 고르지 못한 일기.고르지 못한 삶. - (1991년) 2020. 9. 2. 짧은 여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1) 짧은 여행 마을에 결혼을 하는 이가 있어 모처럼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좋은 날, 아침부터 찬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고생고생 키운 딸을 보내는 어머니의 기쁨과 보람, 그 뒤에 깔린 아쉬움을 보았습니다. 신명나는 춤을 췄지만 춤사위에 담긴 마음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서점에 들렀습니다. 모처럼 찾은 서울, 잠깐이라도 내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찾아간 종로서적엔 책도 많고 사람도 많습니다. 2층 한 쪽 구석에 나란히 쌓인 책도 보았습니다. 내가 쓴 책이 낯선 이를 맞듯 서먹하게 나를 맞았습니다. 이제야 찾아오다니, 내 무관심에 쀼루퉁 화가 난 듯도 싶었습니다. 산책하듯 책과 사람 사이를, 말과 침묵.. 2020. 9. 1. 투명한 길 신동숙의 글밭(224) 투명한 길 투명함으로 왔다가투명함으로 돌아가는 스치는 바람의 손길처럼어진 자비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성실한 햇살의 발걸음처럼따스한 긍휼의 목소리로 다가가는 투명한 마음이 걸어가는 흔적 없는 하늘길 탐욕의 구름이 모였다가 푸르게 흩어져 버리는 길 분노의 불길이 치솟아 오르다가 하얗게 꺼져 버리는 길 어리석음의 강물이 넘실대다가 투명하게 증발해 버리는 길 투명한 마음이 걸어가는산도 강물도 있는 모습 그대로 비추는 투명한 길하늘이 그대로 드러나는 길 2020. 9. 1. 남철 씨의 교회 사랑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0) 남철 씨의 교회 사랑 주일저녁, 초종을 치러 나갔더니 예배당에 불이 켜 있다. 누가 일찍 왔을까 문을 열었더니 남철 씨다. 얼마 전 돌아온 광철 씨 동생 남철 씨, 그가 교회 마루를 청소하고 있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떠나 있는 동안 교회 생각 많이 났다는 그의 말이 빈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떠나서 깨달은, 전엔 몰랐던 교회 사랑을 남철 씨가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광고시간, 그 따뜻한 마음을 교우들께 알렸고 그 마음 박수로 받았을 때, 남철 씨는 히죽 예의 익숙한 표정으로 웃었다. 단강을 떠나 소식 끊겼을 때도 눈에 선했던 그 웃음을. - (1991년) 2020. 8. 31. 엎드려 우러러보는 꽃처럼 - <시편사색>을 읽다가 신동숙의 글밭(223) 엎드려 우러러보는 꽃처럼 - 을 읽다가 을 읽다가, 신앙인의 참된 자세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문장을 만나게 되어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마음 한 켠으로는 필자의 짧은 소견이 덧붙여져 오히려 문장의 본뜻을 가리게 되는 폐를 끼치진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히브리 시인의 시편 16편 6절 -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를 두고서, 의 오경웅 시인은 '님 주신 유업을 누리는 중에 엎드리고 우러르며 님의 뜻 헤아리네' - 優游田園中 俯仰稱心意 (우유전원중 부앙칭심의)로 해설하였다. 송대선 역자의 해설 전문을 그대로 옮기자면, '히브리 시인은 주님이 허락하신 유업에 즐거워하지만 오경웅은 그 유업을 .. 2020. 8. 31. 견뎌야 할 빈자리 한희철의 얘기마을(69) 견뎌야 할 빈자리 여름성경학교가 끝나던 날, 빙 둘러서서 인사를 나누던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하나 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흘간 함께 했던 시간을 두고 벌써 정은 싹터 헤어짐이 아쉬운 것이다. 경림이와 은희가 먼저 눈물을 보였고 그러자 내내 참았던 눈물이 따라 터진 것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풍금 의자에 마이크를 잡고 앉아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던 나 자신도 벌써부터 눈물이 목젖까지 차올라 겨우겨우 참아내야 했다. 나마저 울고 나면 와락 눈물바다가 될 것 같았다. 문득 선생님들이 떠난 뒤의 교회 빈 모습이 떠올랐다. 며칠이긴 했지만 활발하고 의욕 있는 선생님들로 교회는 생기에 넘쳤었는데 모두 돌아가면 남는 건 나 혼자뿐, 다시 빈자리를 견뎌야 한다. .. 2020. 8. 30. 한 그루 나무처럼 신동숙의 글밭(222) 한 그루 나무처럼 한 그루 나무처럼제자리에 머물러 자기 안으로 깊어진 사색의 뿌리 만큼세상 밖으로 저절로 가지를 뻗치는 한 그루 나무처럼하늘을 우러르는 고요히 숨쉬는 나로 인해오늘도 하늘이 푸르도록 2020. 8. 30. 이전 1 ··· 105 106 107 108 109 110 111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