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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하늘 저 너머에는 신동숙의 글밭(235) 붉은 하늘 저 너머에는 달밤을 떠올리면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 베네딕토회 왜관 수도원에 수련장으로 계시던 진 토머스 신부님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샌 독일인 신부님입니다. 이 이야기는 진 토머스 신부님을 아주 존경하시는 한국인 박 안셀모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카톨릭 수도승으로 구도의 삶을 살고 계시는 진 토머스 신부님은 젊은 시절부터 한국의 불교에도 관심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스님들을 직접 만나뵙고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는데, 그 중에는 그 옛날 가야산의 호랑이 성철 스님도 계십니다. 그렇게 많은 스님들과 만나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말다툼이 되고 꼭 자기하고는 싸움이 되더라는 얘기를 하십니다. 그런 스님들과의 만남 중에서 가장 좋았.. 2020. 9. 15.
나누는 마음 한희철의 얘기마을(84) 나누는 마음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받았다. 그저 심부름만 했을 뿐이라고 인사 받을 때마다 대답했지만 계속되는 인사엔 남이 받아야 할 인사를 내가 대신 받는 것 같아 송구스럽기도 했다. 물난리 소식을 들었다며 수원에 있는 벧엘교회(변종경 목사)와 원주중앙교회(함영환 목사)에서 성금을 전해 주었다. 지하 셋방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신혼부부가 드린 결혼반지가 포함된 정성어린 손길이었다. 어떻게 써야 전해 준 뜻을 살릴 수 있는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다가 라면을 사기로 했다. 크건 작건 수해 안 본 집이 없는 터에 많이 당한 집만 고르는 건 아무래도 형평성을 잃기 쉬울 것 같았다. 먹거리가 아쉬운 집에 겨울 양식으로 전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일은 나중에 다시 관심을 갖.. 2020. 9. 14.
고구마 속이 익기까지 신동숙의 글밭(234) 고구마 속이 익기까지 마당에 모처럼 숯불을 피웠다. 검은 숯 한덩이가 알이 굵은 감자만 해서 불을 지피는데도 시간이 배나 걸리지만, 한 번 불이 옮겨 붙기만 하면 오래오래 타오르기에, 불을 지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도 굽고 햄도 굽느라 모처럼 남동생 손이 바쁘다. 마당 가득 하얗게 피어오르는 숯불 연기가 어스름한 저녁 하늘로 평온한 이야기 물길을 터 서로의 가슴으로 잔잔한 물길을 내어준다. 남동생은 처음 회사에 들어갈 때부터 스스로 고기를 구웠는데, 아직도 굽고 있다고 한다. 이제와서 안 구으면 승진했다고 그러는가 건방지다고 생각할까봐 집게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는 얘기에, 어려서부터 누나보다 헤아리는 속이 깊은 남동생이.. 2020. 9. 14.
목사라는 말의 무게 한희철의 얘기마을(83) 목사라는 말의 무게 목사라는 말의 무게는 얼마큼일까?때때로 스스로에겐 너럭바위 얹힌 듯 무거우면서도,때때로 사람들의 회자 속 깃털 하나만도 못한 가벼움이라니. - (1991년) 2020. 9. 13.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 신동숙의 글밭(233)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 먼 별을 보듯 바라본다별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석에도 갈 수 없는 고향집을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벗님을 온라인 등교로 저쪽 방에서 뒹구는 아이들을오도가도 못하여 집안을 서성이고 있는 나를 먼 별을 보듯 바라본다별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가슴에는 언제나 하늘이 흐르고추억 같은 별 하나쯤은 있어서 마음으로 바라볼 수록 빛나는 별을그리워할 수록 더 가까워지는 별을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에는커다란 침묵이 흐르고바람이 멈추고 너도 나도 아름다운 별 하나가 되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만큼 평화가 숨쉰다 2020. 9. 13.
기꺼이 빠져들기 기꺼이 빠져들기 “온전함은 다른 사람과 연결된 느낌, 우리가 사는 장소에 속해있는 느낌이며 공동체에서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무의식적 자각이다. 따라서 개인의 온전함과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라는 두 가지 잣대로 우리는 우리의 건강을 가늠한다. 건강이란 분리되지 않은 상태임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웬델 베리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된 여러분께 인사를 올립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안이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을 두루 감싸주시기를 청합니다. 또 한 주가 이렇게 흘렀습니다. 절서는 속일 수 없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백로 절기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제법 시원합니다. 어떤 때는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한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어느 분이 여름에서 가을로의 이행을 헤비메탈의 시간에서 재즈의 시간으로.. 2020. 9. 12.
상처 한희철의 얘기마을(82) 상처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힘든 일이지 싶어 저녁 어스름, 강가로 나갔다.모질게 할퀸 상처처럼 형편없이 망가진 널따란 강가 밭, 기름진 검은 흙은 어디로 가고 속뼈처럼 자갈들이 드러났다. 조금 위쪽에 있는 밭엔 모래가 두껍게 덮였다.도무지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아물 길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들.한참을 강가 밭에 섰다가 주르르 두 눈이 젖고 만다. 무심하고 막막한 세월.웬 인기척에 뒤돌아서니 저만치 동네 노인 한분이 뒷짐을 진 채 망가진 밭을 서성인다.슬그머니 자릴 피한다.눈물도 만남도 죄스러워서. - (1991년) 2020. 9. 12.
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 신동숙의 글밭(232) 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 언젠가부터 스쳐 보이는 것이 있다그것은 잠이 깨려는 순간눈도 채 뜨지 못한비몽사몽 간에새벽녘이나 아침 나절에 잠들 무렵이면낮동안 있었던 일 중에서마음에 걸리는 일해결되지 못한 일후회스러운 일아쉬운 일잘못한 일그리운 일 다 기억나지 않는 꿈 속의 일이지만밤새 내 몸은 웅크린 채지나온 하루를 품는다 그렇게 내 안의 나는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잠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고 꿈 속에서 게워내고 게워내고 해가 뜰 무렵이면가장 커다란 한 알로 오롯히 영글어잠시 스치듯 감은 눈으로 보이는 것은얼굴이기도 하고장면이기도 하고빈 가슴에 태양처럼 떠 안겨 주고는돌아온 새날을 또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용서 해 주세요살려주세요함께 해 주세요 나는 매일 아침눈도 뜨지 못한 채간.. 2020. 9. 12.
글 쓰는 손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한희철의 얘기마을(81) 글 쓰는 손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짜증날 정도로 무더운 날, 아예 마당에 나가 풀을 뽑았다. 집안에 앉아 축축 처지느니 ‘그래, 네가 더울 테면 어디 한번 더워 봐라’ 그러는 게 낫겠다 싶었다. 풀 돋기 시작한 봄 이후 교회 주위로 몇 번은 뽑았지만 여전히 풀들은 돋아났다. 비 한번 오고나면 쑥 자라 오르곤 하는 풀들, 풀의 생명력이란 여간 끈질긴 것이 아니다. 뒤따라 나온 소리와 같이 한나절을 풀을 뽑았다. 흠뻑 젖은 온 몸의 땀이 차라리 유쾌했다. 밤 늦은 시간 책상에 앉아 주보 원고를 쓴다. 어깨도 쑤시고, 잘려 나간 새끼손톱하며 돌멩이가 깊숙이 배겼다 빠져버린 손가락 끝의 쓰라림 하며, 맨손으로 잡아 뽑느라 힘 꽤나 썼던 손마디가 쉽게 펴지질 않는 불편함 하며, 글을 쓰기가.. 2020.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