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4 붙잡힘 한희철의 얘기마을(88) 붙잡힘 체념을 다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뿐인지도 모른다고, 농촌목회의 의미를 묻던 한 선배에게 대답을 했다. 불쑥 내뱉은 말을 다시 수긍하게 되는 건 쌓인 생각 때문이었을까.답답하구, 괴롭구, 끝내 송구스러워지는 삶,이렇게 가는 젊음의 한 시절.무엇일까, 이 붙잡힘이란. - (1991년) 2020. 9. 19. 혼자만의 저녁 한희철의 얘기마을(87) 혼자만의 저녁 동네서 가장 먼 집 출장소를 지나 외따로 떨어진끝정자 맨 끝집, 완태네 집저녁녘 완태가 나와 우두커니 턱 괴고 앉았다. 잘 그려지지 않는 꿈을 그리는 것일까.모두 떠나간 형들을 생각할까. 언제 보아도 꾸벅 인사 잘하는 6학년 완태.흐르는 강물 따라 땅거미 밀려드는완태가 맞는 혼자만의 저녁. - (1991년) 2020. 9. 17. 제풀에 쓰러지는 한희철의 얘기마을(86) 제풀에 쓰러지는 아침 잠결에 풀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밤새 내린 비, 뜨끔했다.설마 예배당, 아니면 놀이방, 그것도 아니면 화장실, 놀라 달려 나갔을 때 무너져 내린 것은 교회 앞 김 집사님네 담배건조실이었다. 지난번 여름 장마에 한쪽 벽이 헐리고 몇 군데 굵은 금이 갔던 담배창고가 드디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제법 높다란 높이, 길 쪽으로 쓰러져도 집 쪽으로 쓰러져도 걱정이었는데 사방에서 힘을 모아 주저앉힌 듯 마당 쪽으로 무너져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문 벽을 쳐서 헛간 한쪽이 주저앉았을 뿐이었다. 그칠 줄 모르는 빗속에서 동네 남자들이 모여 주저앉은 헛간을 일으켜 세웠다. 몇 곳 버팀목을 괴고 못질을 했다. 담배 창고로 끌어간, 흙더미 속에 묻힌 .. 2020. 9. 16. 할머니의 첫 열매 한희철의 얘기마을(85) 할머니의 첫 열매 주일낮예배를 드릴 때 제단 위에 덩그마니 수박 한 덩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수박농사를 지은 분이 없을 텐데 웬일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농사를 지어 추수하면 교우들은 첫 열매를 제단에 드립니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요. 예배 후 알아보니 허석분 할머니가 가져오신 것이었습니다. 텃밭에다 몇 포기 심었더니 뒤늦게야 몇 개 달렸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사택에 모여 수박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할머니 걱정과는 달리 속도 빨갰고 맛도 여간 단 게 아니었습니다. 노인네가 작실서부터 수박을 가져오느라 얼마나 혼났겠냐며 교우들도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을 고맙게 새겼습니다. 씨는 내가 심었지만 키우기는 하나님이 키우셨다며 첫 열매를 구별하여 드리는 할머니의 정성.. 2020. 9. 15. 붉은 하늘 저 너머에는 신동숙의 글밭(235) 붉은 하늘 저 너머에는 달밤을 떠올리면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 베네딕토회 왜관 수도원에 수련장으로 계시던 진 토머스 신부님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샌 독일인 신부님입니다. 이 이야기는 진 토머스 신부님을 아주 존경하시는 한국인 박 안셀모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카톨릭 수도승으로 구도의 삶을 살고 계시는 진 토머스 신부님은 젊은 시절부터 한국의 불교에도 관심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스님들을 직접 만나뵙고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는데, 그 중에는 그 옛날 가야산의 호랑이 성철 스님도 계십니다. 그렇게 많은 스님들과 만나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말다툼이 되고 꼭 자기하고는 싸움이 되더라는 얘기를 하십니다. 그런 스님들과의 만남 중에서 가장 좋았.. 2020. 9. 15. 나누는 마음 한희철의 얘기마을(84) 나누는 마음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받았다. 그저 심부름만 했을 뿐이라고 인사 받을 때마다 대답했지만 계속되는 인사엔 남이 받아야 할 인사를 내가 대신 받는 것 같아 송구스럽기도 했다. 물난리 소식을 들었다며 수원에 있는 벧엘교회(변종경 목사)와 원주중앙교회(함영환 목사)에서 성금을 전해 주었다. 지하 셋방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신혼부부가 드린 결혼반지가 포함된 정성어린 손길이었다. 어떻게 써야 전해 준 뜻을 살릴 수 있는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다가 라면을 사기로 했다. 크건 작건 수해 안 본 집이 없는 터에 많이 당한 집만 고르는 건 아무래도 형평성을 잃기 쉬울 것 같았다. 먹거리가 아쉬운 집에 겨울 양식으로 전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일은 나중에 다시 관심을 갖.. 2020. 9. 14. 고구마 속이 익기까지 신동숙의 글밭(234) 고구마 속이 익기까지 마당에 모처럼 숯불을 피웠다. 검은 숯 한덩이가 알이 굵은 감자만 해서 불을 지피는데도 시간이 배나 걸리지만, 한 번 불이 옮겨 붙기만 하면 오래오래 타오르기에, 불을 지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도 굽고 햄도 굽느라 모처럼 남동생 손이 바쁘다. 마당 가득 하얗게 피어오르는 숯불 연기가 어스름한 저녁 하늘로 평온한 이야기 물길을 터 서로의 가슴으로 잔잔한 물길을 내어준다. 남동생은 처음 회사에 들어갈 때부터 스스로 고기를 구웠는데, 아직도 굽고 있다고 한다. 이제와서 안 구으면 승진했다고 그러는가 건방지다고 생각할까봐 집게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는 얘기에, 어려서부터 누나보다 헤아리는 속이 깊은 남동생이.. 2020. 9. 14. 목사라는 말의 무게 한희철의 얘기마을(83) 목사라는 말의 무게 목사라는 말의 무게는 얼마큼일까?때때로 스스로에겐 너럭바위 얹힌 듯 무거우면서도,때때로 사람들의 회자 속 깃털 하나만도 못한 가벼움이라니. - (1991년) 2020. 9. 13.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 신동숙의 글밭(233)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 먼 별을 보듯 바라본다별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석에도 갈 수 없는 고향집을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벗님을 온라인 등교로 저쪽 방에서 뒹구는 아이들을오도가도 못하여 집안을 서성이고 있는 나를 먼 별을 보듯 바라본다별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가슴에는 언제나 하늘이 흐르고추억 같은 별 하나쯤은 있어서 마음으로 바라볼 수록 빛나는 별을그리워할 수록 더 가까워지는 별을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에는커다란 침묵이 흐르고바람이 멈추고 너도 나도 아름다운 별 하나가 되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만큼 평화가 숨쉰다 2020. 9. 13. 이전 1 ··· 102 103 104 105 106 107 108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