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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3) 다 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며 남겨 두기로 한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편안한 일인가. 다 가지려 하지 않는다. 갖지 못할 것을 인정하며 비워두기로 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넉넉한 일인가. 다 말하려 하지 않는다. 말로 못할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며 침묵하기로 한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푸근한 일인가. 다 가보려 하지 않는다. 가닿을 수 없는 미답의 세상이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발길 닿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아늑한 일인가. 2020. 5. 15.
때로 복음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2) 때로 복음은 어릴 적에 귀를 앓은 적이 있고, 그 일은 중이염으로 남았다. 의학적으로 맞는 소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한다. 동네 철둑너머에 있는 저수지를 찾아 물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길, 뜨거워진 철로 레일에 귀를 대고 물기를 말렸던 기억들이 있다. 하필이면 군생활을 한 곳이 105mm포대, 싫도록 포를 쏘기도 했으니 귀에 좋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언제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왼쪽 고막에는 작은 구멍이 생겼고, 드물지만 귀에서 물이 나올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일주일 가까이 귀에서 물이 나온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어서 그 일은 걱정이 되지 않는데, 정작 걱정이 되는 증세는 따로 있다. 양쪽 귀가 먹먹해진 것이다. 마치 솜으로 양.. 2020. 5. 14.
세상에 이런 글이 있구나 신동숙의 글밭(148) 세상에 이런 글이 있구나 - 허공처럼 투명한 다석 류영모 선생의 글 - 세상에 이런 글이 있구나 글쓰기에 틀이 있다면 그 틀을 초월하는 글 글에 울타리가 있다면 그 울타리가 사라지고 경계도 무색해지는 글 가령 시 한 편을 적을 때, 같은 단어를 두 번 이상 쓸 경우 필자는 긴장을 하곤 한다. 자칫 강조의 말이 강요의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 단어들까지도 탄력을 잃어버리거나 의미가 퇴색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같은 단어를 두 번 쓰기가 늘 조심스러운 것이다. 다석 류영모의 글에선 같은 뜻의 다양한 표현으로 '얼의 나', '얼나', '참나', '영원한 생명', '진리의 성령', '하느님 아버지'라는 단어를 써도 너무 많이 쓴다. 그것도 한 단락 안에서만 찾아 보아도 .. 2020. 5. 13.
빈 수레가 요란하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1) 빈 수레가 요란하다 우리 속담 중에는 신앙과 관련이 있는 속담들이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신앙적인 의미가 충분히 담겨 있다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콩 심은데 콩 나고, 밭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이 그렇다. 콩 심어놓고 팥 나기를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 팥 심어 놓고 팥 안 날까 안달을 하는 것도 신앙이 아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도 마찬가지다. 피와 쭉정이는 제가 제일인 양 삐쭉 고개를 쳐들지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인격과 신앙이 익는 만큼 겸손도 따라서 익는다. 잘 익은 과일이 그렇듯이 그의 삶을 통해서는 향기가 전해진다. 신앙과 연관이 있다 여겨지는 속담 중의 하나가, ‘빈 수레가 요란하다’이다. 빈 수레일수록 삐거.. 2020. 5. 13.
독주를 독주이게 하는 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0) 독주를 독주이게 하는 것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유튜브 영상을 통해 듣는다. 듣는다 생각했지만 실은 보고 듣는다. 연주와 함께 연주자와 지휘자 혹은 청중의 표정을 대하면, 소리만 듣는 것과는 또 다른 감흥을 느끼게 된다. 연주 현장에 있다는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호흡을 같이 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고 마침내 지휘자 옆에 서서 자신의 때를 기다리던 바이올린 솔리스트가 연주를 시작한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들을 때면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문득 눈보라가 치는 광활한 시베리아 대지 위에 서 있는 듯하다. 화가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한다면 작곡가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2020. 5. 12.
경전이 참고서라면 교과서는 신동숙의 글밭(147) 경전이 참고서라면 교과서는 지식의 잎새가 무성해도 하늘을 다 가릴 수는 없습니다. 지혜의 잎새가 풍성해도 마음을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의 를 읽다 보면 화두처럼 가슴에 인이 박히는 말들이 있습니다. 제 마음에도 걸림이 없는 말들입니다. 류영모 선생의 제자인 함석헌 선생이 말하기를 '"선생님의 두뇌는 천부적이지만 대단히 과학적이다." 이어서 박영호 선생이 말하는 류영모의 사상은 대단히 신비하지만 미신적인 데가 없이 허공처럼 투명하다.'(박영호, , 교양인, 104쪽) 예전에 박재순 선생의 를 감동과 놀라움으로 다 읽은 후 지금껏 남아 있는 한 가지는 허공처럼 투명한 하나님입니다. 참나, 얼나, 영원한 생명이라고도 부르고, 불교에선 불성, 참자.. 2020. 5. 12.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신동숙의 글밭(146)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딸아이가 영어학원에 간다며 엄마 방으로 들어옵니다. 현관문 앞에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할 때가 많은데, 구석진 방에까지 온 이유는 알고보니 용돈입니다. 읽고 있던 다석 류영모 선생의 내용 중에서 한 단락을 들려주어야겠단 마음이 실바람처럼 불었습니다. 중 3 딸아이에게 '성서조선'과 '조선어학회 사건'이라고 들어봤느냐 물으니, "어, 조선어학회는 들어봤어." 합니다. 그리고 읽고 있던 내용 중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 들어간 한국인이 일본인 간수에게 개인 교사가 되어 공부를 가르쳐줘서 승진 시험을 치르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얘기를 들려주며 지갑에서 이천 원을 꺼내 건네주는데 딸아이의 눈이 번쩍하.. 2020. 5. 11.
말로 하지 않아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9) 말로 하지 않아도 비가 오는 토요일, 교우와 점심을 먹고 예배당으로 돌아올 때였다. 예배당 초입 담장을 따라 줄을 맞춰 걸어둔 화분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하얀 비닐 우비를 입고 있어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무실 간사인 장 집사님이었다. 비를 맞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를 물었더니, 화분 아래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다고 했다. 비가 오자 화분마다 물이 차는데, 그러면 꽃의 뿌리가 썩어 죽는다는 것이다. 화분에는 물구멍이 두 개가 나 있지만 화분의 흙이 구멍을 막아 물이 제대로 빠지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 화분에는 구멍을 뚫을 자리가 몇 개 더 있다면서 일일이 송곳으로 화분 아래에 구멍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손이 많이 갈 텐데요.” 우비를.. 2020. 5. 11.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신동숙의 글밭(145)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두 자녀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은 어버이날 전야제 저녁밥을 먹고 나서 아빠의 얼굴을 꼭 닮은 딸아이 중학생 딸아이와 아빠가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떠들썩하다가 개구진 딸아이가 손바닥으로 아빠 이마를 바람처럼 스치며 제 방으로 숨는다 커피 내리던 아빠가 반짝 자랑스레"아빠 이마는 태평양"이라고 하니까 딸아이가 방문을 열며"그러면 나는 울산 앞바다" 하며 웃느라 넘어간다 뒷정리 하던 엄마가 "그러면 동생은?" 하니까 신이 난 딸아이가 생각하더니 "동생은 태화강, 엄마는 개천"이라고 한다 엄마는 식탁을 빙 둘러 닦으며 "가장 넓은 건 우주, 우주는 하나님 얼굴이니까 우주 만큼 넓은 마음으로 살아라"고 말해 주는데 떠들썩 돌아오던 대답이 없다 하나님처럼 없다 2020.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