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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6) 별 하나 인우재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오랜만의 일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곳곳에 풀을 베고, 베어놓은 나무를 정리하다 보니 금방 하루해가 기울었다. 대강 때우려던 저녁이었는데, 병철 씨가 저녁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했다. 마침 내리는 비, 우산을 쓰고 아랫작실로 내려갔다. 마을길을 걷는 것도 오랜만이다. 산에서 따온 두릅과 취나물, 상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성찬이었다. 비도 오는데 어찌 걸어서 가느냐며 트럭을 몰고 나선 병철 씨 차를 타고 다시 인우재로 올랐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빗물 떨어지는 마루에 앉아 바라보니 앞산에 비구름이 가득하다. 누구의 집일까, 불빛 하나가 붉은 점처럼 빛났다. 사방 가득한 어둠속 유일한 불빛이었다. 비오는 마루에 걸터앉아 그 불빛 바라보.. 2020. 4. 26.
국수와 바람 신동숙의 글밭(137) 국수와 바람 국수를 먹다가 국물을 마시다가 콧잔등에 땀이 맺히고등더리에 땀이 배이려는데 등 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다 어려선 아빠 손에 든 부채가 사랑인 줄 알았는데 오늘은 저절로 부는 바람이 사랑인 걸 2020. 4. 26.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5)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8주째 주일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렸다. 긴 시간이었다. 문을 닫아건 예배당은 적막강산과 다를 것이 없었다. 늘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신앙도 돌아보고, 교우도 돌아보고, 이웃도 돌아보고, 교회됨도 돌아보아야 했다. 5주째였던가, 영상예배를 드리며 대표기도를 맡은 장로님이 기도 중에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 짧은 한 마디 속에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한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말은 화살처럼 박혔고,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버릇처럼 드린 기도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2020. 4. 26.
사진 찍는, 꽃 한 송이 신동숙의 글밭(136) 사진 찍는, 꽃 한 송이 딸아이 뒤로 징검다리 건너다가 유채꽃이 환한 태화강 풍경이 어여뻐서 가던 걸음 멈추어 사진에 담았어요 뒤따라오던 청춘 남자가 여자에게 "니도 저렇게 찍어봐라." 들려오는 말소리에 넌지시 뒤돌아보니 조금 옛날 내가 머물던 그 자리에 어여쁜 여자가 꽃 한 송이로 피었어요 2020. 4. 24.
겹벚꽃 할머니 신동숙의 글밭(135) 겹벚꽃 할머니 오일 장날에 참기름집 앞에 서 있는데 앉으신 할머니가 몸을 틀어서 내 있는 쪽으로 손만 뻗고 계신다 할머니의 손이 향한 곳을 보니까 딸기 바구니에 담긴 푸른 엉개잎 바로 지척인데 강 건너 쯤 보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갖다 드릴까요?" 여쭈니 할머니는 눈으로 살풋 미소만 지으신다 참기름병을 가방에 넣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를 헤아리다가 선뜻 몸을 일으키시지도 고맙단 말도 또롯이 못하시면서 할머니는 그 몸으로 장사를 하시네 차가운 바닥에 종일 앉아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해서 해가 뜨면 몸 일으킬 일이 무거워서 나무처럼 할머니의 몸도 입도 무거워서 주름진 얼굴에 핀 수줍은 미소가 겹벚꽃 같아 2020. 4. 23.
갈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4) 갈망 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벽에 걸려 있는 옛 시 하나가 눈에 띄었다. 竹影掃階塵不動 月輪穿沼水無痕 ‘죽영소계진부동 월륜천소수무흔’, 더듬더듬 뜻을 헤아리니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고, 둥근 달이 연못을 뚫어도 무엇 하나 흔적 남지 않네.’ 쯤이 될 것 같았다. 문득 대나무 그림자 앞에 선 듯, 호수를 비추는 달빛 아래 선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대나무 그림자 출렁이듯, 순한 달빛 일렁이듯 마음으로 찾아드는 갈망이라니. 먼지 하나 없이 마음 하나 쓸고 싶은. 물결 하나 없이 마음 하나 닿고 싶은. 2020. 4. 23.
그때나 지금이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3)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상 지금보다 더 자주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도, 그분의 삶의 내용과 가르침을 이토록 철저하게 무시한 때는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브래넌 매닝의 번역본 초판이 발행되었을 때가 2002년, 그가 위의 문장을 쓸 때가 정확히 언제쯤이었을지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속박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속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규명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번영의 복음’(Prosperity Gospel)이다.”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것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2020. 4. 21.
소나무와 차나무 신동숙의 글밭(134) 소나무와 차나무 강변 둑으로 어린 쑥이 봄 햇살에 은빛으로 살랑이던 2월의 어느 날. 4살 딸아이의 조막손을 잡고 찾아간 곳은 다도원茶道院입니다. 그날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한 손엔 앵통(차 바구니)을 한 손엔 딸아이의 손을 잡고서 차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다법이 제 몸에 익숙했던 건 어려서부터 귓전에 울리는 일명 부모님의 잔소리,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껏 귓전을 따라다니는 부모님의 음성인 터라 형님들은 처음인데도 잘한다며 이뻐해 주셨고요. 제 나이 32살 무렵이라 다들 저한테는 어머니나 이모 연배셨기에, 선생님이 애초에 저보고 형님이라 부르라 하시며 미리 호칭을 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언니도 아니고 이모도 아닌 그 형님이라는 호칭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 2020. 4. 21.
감나무와 가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2) 감나무와 가지 감은 새로운 가지에서만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옛 가지에서는 절대 안 맺는다는 것이다. 옛 가지에서는 촉만 나올 뿐, 촉에서 나온 새로운 가지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도시의 삶을 등지고 시골로 들어가 성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가, 그간 눈여겨 본 것을 들려주는 것이니 충분히 신뢰할 만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퍼뜩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우리가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옛 가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지난해에도 맺었으니 올해에도 맺을 거라 안일하게 생각하며 새 가지를 내지 않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열매 맺기를 원한다면 옛 가지에서 촉과 같은 눈을 떠야 한다. 그 눈에서 .. 2020.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