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92 폭염이라는 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9) 폭염이라는 호 다급한 목소리였다. 전화를 받자 대뜸 소식을 들었느냐고 먼저 물으셨다. 성격이 급하신 분이 아니기에 더욱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원로 장로님 한 분이 우리나라를 떠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소식을 접한 장로님은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라고 했다. 아침에 통화를 할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느닷없이 우리나라를 떠날 일이 떠오르질 않아 당황스럽기만 했다. 황망한 마음으로 전화를 거신 원로장로님은 당신이 받은 문자를 내게 보내주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는 사이,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장로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찌된 영문이지를 여쭙자 문자를 드릴 테니 읽어보라고만 하신다. 생각하지 못한 다급한 .. 2019. 9. 6. 바위처럼 바람처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8) 바위처럼 바람처럼 송기득 교수님이 이 땅을 떠났다. 냉천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송 교수님으로부터 을 배웠다. 신학을 공부하며 함께 배우는 과목 중에 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안도감을 주었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교수님께 들었던 강의내용을 지금껏 기억하는 건 무리지만 인간답게 사는 것이 신앙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인간다움이 신앙을 담아내는 온전한 그릇임을 진득하게 배운 시간이었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했던 만큼 선이 굵은 삶을 살았던 교수님으로 남아 있다. 강의 중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교수님의 젊은 시절 추운 겨울 무일푼으로 무작정 길을 떠난 일이 있고, 거지꼴을 하고 떠돌다가 비구니들만 거하는 사찰에서 머문 적이 있는데, 하룻밤을 묵고 떠나려는 자신에게 .. 2019. 9. 5. 저들은 모릅니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7) 저들은 모릅니다 불가능한 조항 하나만 아니라면 자신도 기꺼이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가입하여 엄격하고 원시적인 그 모든 규정을 지켰을 거라고, 작가 폴 갤리코(Paul Gallico)가 말한 적이 있다.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규정에는 갤리코가 정말로 원하는 유일한 낙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수준 이하의 그리스도인을 향한 불손한 경멸과 넘치는 멸시였다. 브레넌 매닝의 에 보면 매닝이 1969년 새해 첫날을 ‘예수의 작은 형제들’과 함께 보낼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7명의 ‘작은 형제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몽마르 마을에서 하고 있는 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근처 포도원에서 일하는 형제도 있었고, 목공과 석공 일을 하는 형제도 있었고, 그런 재주가 없는 형제들은 보.. 2019. 9. 4. 전투와 전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6) 전투와 전쟁 오래 전에 읽은 책 가운데 이란 책이 있다. 종종 생각나는 대목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전투와 전쟁에 관한 내용이다. 수도자 두 명이 그들의 사부와 함께 앉아 수도원 생활에 대해 의논한 적이 있었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한 수도자는 늘 장황하게 지껄이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기를 좋아했다. 그에 비해 또 다른 수도자는 그저 더없이 어질기만 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 그 날도 공부를 많이 한 수도자는 특유의 논리와 논법을 기술적으로 사용하여, 형제를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 묶으며 공박했다. 그러나 수도원 전통은 토론에서 이겨 만족해하는 것을 결코 승리라고 보지 않으며, 그런 사람을 수재라고 보지도 않는다. 토론이 계속되는 동안 침묵을 지키며 주의.. 2019. 9. 3. 행하는 자와 가르치는 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5) 행하는 자와 가르치는 자 “할 수 있는 자는 행한다. 할 수 없는 자는 가르친다.” (He who can, does. He who cannot, teaches.) 명쾌하게 다가오는 이 말은 역설의 대가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가 한 말이다. 정곡을 찔린 듯 아프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말로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닐까 했던, 오래된 의구심을 제대로 찌르는! 2019. 9. 1. 개미 한 마리의 사랑스러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4) 개미 한 마리의 사랑스러움 탁월한 이야기꾼인 앤소니 드 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 개미 이야기가 있다. 한 죄수가 독방에 갇혀 여러 해를 살고 있었다. 그는 아무도 못 보았고 말도 못해 보았으며, 식사는 벽에 나 있는 구멍으로 들어왔다. 어느 날 개미 한 마리가 그의 감방에 들어왔다. 그는 그 개미가 방을 기어 돌아다니는 것을 황홀해서 바라보며 묵상했다. 그는 그 개미를 좀 더 잘 관찰하기 위해서 손바닥에 놓고, 밥알을 한두 알 주고, 밤이면 자기 깡통 컵 아래 넣어 두었다. 어느 날 문득 그는, 자기가 개미 한 마리의 사랑스러움에 눈을 뜨기 위해 그 기나긴 세월을 독방에 갇혀서 보내야 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그는 다행이다. 비록 독방에 갇혀 긴 세월.. 2019. 9. 1. 꽃에게는 거절할 손이 없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3) 꽃에게는 거절할 손이 없다 예배당 입구 담장을 끼고 있는 공터에 키 큰 해바라기가 서 있다. 코스모스와 잡초가 자라는 공터에서 가장 키가 큰 해바라기가 담장 너머 세상을 구경하듯, 예배당을 찾는 사람들을 바라보듯 삐쭉 서 있다. 언제부턴가 나팔꽃이 해바라기를 타고 자라 올랐다. 돌돌 해바라기를 휘감으며 조금씩 자라 오르더니 마침내 해바라기 꼭대기에 이르렀다. 꽃에게는 손이 없다. 거절할 손이 없다. 사나운 비가 오거나 거센 바람이 불어도, 나비가 찾아오든 벌이 찾아오든 꽃은 한결같은 표정이다. 모두를 받아들일 뿐이다. 해바라기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몸을 휘감고 오르는 나팔꽃을 거절하지 않았다. 나라면 뱅뱅 어지러웠지 싶고 숨이 막혔을 것 같은데, 해바라기는 싫다는 표정 없.. 2019. 8. 31.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2)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정릉교회는 8월 한 달 동안 속회방학을 한다. 무더위도 무더위지만, 재충전의 의미에 더 가깝다. 방학 기간에 갖는 프로그램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힐링 콘서트로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에 콘서트를 연다. 올해에는 ‘좋은날 풍경’ 박보영 집사님과, 성악을 전공하고 목회자 아내의 길을 걷는 있는 황은경 사모님, 산청 지리산 자락에서 사목 활동을 하고 있는 성요한 신부님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었다. 평소에는 대하기 힘든 신앙과 삶에 대한 새로운 결과 마음들, 세상을 이런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구나 하는 마음을 전해준 신선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방학 기간에 갖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은 책읽기이다. 책을 한 권 정해서 다함께 읽는다. 책을 구입하여 속별로 한 .. 2019. 8. 30. 무소유욕(無所有慾)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1) 무소유욕(無所有慾) 책을 주문하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을 내가 다 읽을 수 있을까? 옷을 입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지니고 있는 옷을 내가 다 입을 수 있을까? 음악을 듣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음반을 내가 다 들을 수 있을까? 오래 전 내게 ‘무소유욕’이란 말을 들려준 이가 있다. 나를 보면 그 말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마음으로 살라는 격려로 새겼다. 소유욕은 본능적이지만, 무소유욕은 본능을 역행한다. 거대한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자연스럽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일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온갖 소유욕을 버릴 수 있다면, 마침내 무소유욕까지 버릴 수 있다면, 그래서 그냥 훌훌 가벼울 수 .. 2019. 8. 29. 이전 1 ··· 172 173 174 175 176 177 178 ··· 30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