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3 안간힘과 안깐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8) 안간힘과 안깐힘 우리말에 ‘안간힘’이라는 말이 있다. 안간힘은 ‘안깐힘’이라 읽는다. 안간힘을 안깐힘으로 읽는 것은 안간힘이 ‘안’과 ‘간힘’이 합해진 말이기 때문이다. ‘안’이야 ‘밖’의 반대인 내부라는 뜻일 터, 그렇다면 ‘간힘’은 무슨 뜻일까? ‘간힘’이란 ‘숨 쉬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고통을 견디려고 애쓰는 힘’을 이르는 말이다. ‘아무리 간힘을 써도 바위를 움직일 수가 없다’와 같이 쓰일 수 있는 말이다. 끌고 가든지 끌려 가든지, 어쩌면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 혹은 두 가지 가능성밖엔 없지 싶다. 세상 풍조 앞에서, 세상의 흐름 앞에서 말이다. 끌려가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간힘’이다. ‘안깐힘’이라 힘주어 읽어야 할, 바로 그 안감힘! 2019. 8. 26. 평생의 후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7) 평생의 후회 이따금씩 꺼내보는 낡은 책 중에 『박은·이행 시선』이 있다. 박은과 이행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절친한 벗이기도 했다. 평생의 실수는 함부로 선비가 된 것(平生失計慢爲儒) 일찍이 농부 못 된 것을 이제사 후회하네(悔不早作農家夫) 위의 시는 ‘평생의 실수를 뉘우치며’(記悔)라는 이행의 시 한 구절이다. 허균이 우리나라 제일의 시인으로 손꼽을 만하다고 한 사람이 이행이었다. 이행은 무오, 갑자, 기묘사화를 겪으면서 노비로부터 좌의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을 거쳤고 대제학의 자리에도 올랐던 사람이다. 일생 동안 네 차례나 유배되었고, 결국은 57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생을 마치게 된다. 좌의정과 대제학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 어찌 함부로 선비가 되었다고.. 2019. 8. 25. 내 탓 네 덕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6) 내 탓 네 덕 영월에 있는 선배 목사님을 방문하고 왔다. 함께 목회의 길을 걸으며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만나면 좋고 생각하면 마음 든든한 선배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마침 선배가 새로운 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한 터라 반가운 마음은 더욱 컸는데, 간곡한 마음으로 선배를 청한 교우들이 고맙기도 했고 복되다 싶기도 했다. 예배당을 둘러보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을 먹으러 찾아간 곳이 곤드레밥집이었다. 예전에도 들른 적이 있는 곳인데, 외진 곳에 있지만 충분히 찾아갈 만한 밥집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주인내외의 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에게는 식당을 찾는 사람이라면 대번 확인할 수가 있는 취미가 있는데 목공이다. 여러 개의 작품들이 식당 곳곳에 전시가 되어 .. 2019. 8. 23. 기도는 떡메가 아니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36) 기도는 떡메가 아니다 며칠 전 ‘하루 한 생각’에 이정록 시인의 시집 에 실린 서시를 읽고서 쓴 글이 있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에 대한 글이었다. 그 글 아래 임종수 목사님께서 사진을 한 장 올리셨다. 숲속 도토리나무 세 그루가 나란히 섰는데, 세 나무가 모두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어른 키 높이쯤에 커다란 상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는데 맞았다, ‘내놓으라는 폭력이지요. 갑질~ 도토리를 탈취하려는 폭력~’라는 글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기 흉한 상처 자국은 떡메에 맞은 자국이었다. 가을이 되어 도토리를 따러 가는 사람들 손엔 떡메가 들려 있곤 했다. 인절미 등 떡을 만들 때 내리치던.. 2019. 8. 23. 시간 여행(2)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35) 시간 여행(2) 주보 에는 ‘목회수첩’이라는 면이 있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는 자리였다. 애정과 책임감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글을 쓰는 마음이 늘 조심스러웠던 자리였다. 숫자로 표시하던 ‘목회수첩’ 이야기는 2965번에서 멈췄다. 단강에서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쓴 글이 2001년 9월 9일자 에 담겨 있었다. 무슨 까닭일까, 오래 전 쓴 글을 읽는데도 여전히 두 눈이 젖는 것은. 사실 오늘 막걸리를 몇 잔 마셨습니다. 처음 마셔보는 막걸리에 약간의 취기마저 느낍니다.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마련한 저녁을 함께 먹으며 마주 앉은 재철 씨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기꺼이 받았습니다. 59년 돼지 띠, 재철 씨는 나와 동갑입니다. 그러나 농촌에 산다는 이.. 2019. 8. 21. 시간 여행(1)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4) 시간 여행(1) 우연히 발견한 몇 장의 옛 주보는 시간 여행을 하게 했다. 표지에 ‘징검다리’라는 짧은 글을 실었던 2001년 8월 17일자 주보 교회소식 란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 1. 벌침 같이 쏟아지던 볕이 조금씩 순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순한 볕에 들판의 벼들도 패기 시작하네요. 이번 주 목요일(23일)이 ‘처서’, 이젠 찬 공기에 익숙해질 때입니다. 2. 지난 주 섬뜰의 박종관, 변학수, 변완수, 최태준, 김재용 씨가 예배당 화장실의 벽을 넓히는 공사를 해주었습니다. 자원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을 흘렸는데, 그 정성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이어지던 중 마지막 소식은 이랬다. 7. 미국 뉴저지의 길벗교회(담임, 김민웅 목사)에서 창립주일을 맞아 단강으.. 2019. 8. 21. 내 몸이 너무 성하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3) 내 몸이 너무 성하다 거꾸로 걷거나 뒷걸음질을 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정록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의 시를 모두 읽고 싶어 뒤늦게 구한 책 중의 하나가 인데, 보니 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첫 번째 시집을 뒤늦게 읽게 된 것이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책머리에 실린 ‘서시’가 매우 짧았다. 군더더기 말을 버려 끝내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것이 시라면, 시인다운 서시다 싶다. 다시 한 번 곱씹으니 맞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사람 손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몸이 너무 성하다니! 나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고,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삶을 모른다고, 여전히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짧은 말 속에 자신.. 2019. 8. 17. 때 아닌 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2) 때 아닌 때 1981년, 그해 가을을 잊을 수 없다. 짝대기 하나를 달고 포상 휴가를 나온다는 것은 감히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군에 입대한지 넉 달여 만의 일이었으니 그야말로 꿈같은 휴가였다. 논산에서 훈련을 마친 뒤 자대에 배치를 받자마자 배구대표선수로 뽑혔고, 광주 상무대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했다. 9인제 배구였는데 나는 레프트 공격수였다. 아무리 규모가 큰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해도 이등병에게까지 휴가를 줄까 염려했던 것은 기우, 보란 듯이 3박4일간의 휴가를 받은 것이었으니 군 생활 중에 누릴 수 있는 기쁨 중 그만한 것도 드물 것이었다. 구름 위를 날아가는 것 같은 기차를 타고 올라와 수원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부곡역에 내린 나는 먼저 교회를 찾아.. 2019. 8. 17. 징검다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61) 징검다리 오래 전 단강에서 보낸 시간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보와 함께 기억을 하곤 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주보에 담았다. 땅 끝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여겨졌던 일들, 그 일을 기록하는 것은 내가 이웃에게 다가가는 한 방법이었고, 내게 허락하신 땅을 사랑하는 한 선택이었다. 고흐가 그림을 통해 땅의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나는 이야기를 통해 다가갔다. 주보의 이름도 이었다. 지렁이 글씨로 글을 쓰면 아내가 또박또박 옮겨 썼다. 때로는 아내조차 내가 쓴 글씨를 읽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글씨를 읽지 말고 이미지를 읽으라 말하고는 했다. 그렇게 손으로 써서 만든 주보는 민들레 씨앗처럼 조용히 퍼져갔고, 700여 명의 독자가 있었다. 그들은 멀리 .. 2019. 8. 17. 이전 1 ··· 170 171 172 173 174 175 176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