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85

봄(18) 겨우내 집안에 있던 화분들을 어느 날 아내는 밖으로 낸다. 일광욕 시키듯 나란히 내 놓았다. 고만고만한 화초들이 옹기종기 모여 모처럼 볕을 쬔다. 일찍 핀 몇몇 꽃들이 해맑게 웃고 눈이 부신 듯 이파리들은 환한 윤기로 반짝인다. 더욱 곱고 따뜻하게 내리는 별 조심스레 볕이 문을 두드린다. 봄이다. - (1996년) 2021. 4. 4.
봄(17) 애써 묻지 마세요 맞아요 흔들린 적 있어요 바람에도 별빛에도 무시로 흔들렸지요 그래도 한 가지 당신을 떠난 적 없답니다 그럴수록 더 깊이 당신 향해 뿌리를 내렸으니까요 - (1996년) 2021. 4. 3.
평범한 행복의 꿈을 내려놓고 “내적 자유와 진정성에 대한 물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이 땅에서 구현되는 하나님의 통치를 부인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잡으십시오.”-브루더호프 공동체 설립자 하인리히 아놀드 그리스도의 자비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어느덧 우리는 사순절 순례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늦추위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느새 벚꽃이 만개하여 잿빛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계절의 흐름은 이렇게 유장하건만 사람 홀로 유정하여 희망과 절망 사이를 분주하게 오갑니다. 가만히 꽃 앞에 멈추어 서면 우리 속에서 들끓던 소리가 비로소 잠잠해지고 결삭은 마음에 따뜻한 기운이 스며듭니다. 지난 40일 동안 늘 책상머리에 두었던 사순절 달력.. 2021. 4. 2.
봄(16) 난간에 서서 이불을 터는 것은 먼지를 터는 것만이 아니어서 어둡고 무거웠던 마음 구석구석 눅눅했던 마음 어설프고 엉성했던 마음 생각만큼 사랑하지 못했던 마음 모두 털어내는 것이니 펄럭펄럭 하늘을 향해 마음의 날개 하나 다는 것이니 - (1996년) 2021. 4. 2.
둘레길 둘레둘레 민둘레 둘레길에 민둘레 민둘레가 피어서 둘레둘레 둘레길 2021. 4. 1.
봄(15) 묻지 않을래요 당신 어디 계신지 보이지 않아도 아니 계신 곳 따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2021. 4. 1.
봄(14) 아침 햇살 담쟁이넝쿨처럼 예배당 벽을 거반 오른 시간 계단을 올라 목양실 문을 여니 와락 햇살이 먼저 안으로 든다 내내 웅크리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더는 참기가 어려웠다는 듯 한 순간에 든다 맘껏 들어오렴 맘껏 숨을 쉬렴 말굽을 세워 문을 열어 둔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책상에 앉아 짧은 기도 바칠 때 문득 마음 문 덩달아 열고 싶은 가난한 마음 2021. 3. 31.
꽃춤 꽃이 춤을 춘다 하늘 하늘 하늘 꽃이 웃음 짓는다 하늘 하늘 하늘 2021. 3. 31.
모두 다 가져갔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72) 모두 다 가져갔다 “시위대(侍衛隊) 장관(長官)이 또 잔(盞)들과 화로(火爐)들과 주발(周鉢)들과 솥들과 촛대(燭臺)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물(金物)의 금(金)과 은물(銀物)의 은(銀)을 가져갔는데 솔로몬 왕(王)이 여호와의 전(殿)을 위(爲)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 있는 열 두 놋소 곧 이 모든 기구(器具)의 놋 중수(重數)를 헤아릴 수 없었더라”(예레미야 52:19~20) 피에르 신부가 쓴 《단순한 기쁨》이라는 책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첫 손에 꼽았던 사람이다. 책에는 피에르 신부가 남미의 한 대도시에서 경험했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소개된다. “어쩔 수 없이 있어야 하는 교회의 통치조직과 그 대표들 가운.. 2021.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