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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들판 들판에 가 보았네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은 들판을 가로 질러 아지랑이처럼 달렸네 들판에 가 보았네 조용한 푸름 번지고 있었네 하늘이 땅에 무릎 꿇어 입 맞추고 있었네 들판에 가 보았네 언덕 위 한 그루 나무처럼 섰을 때 불어가는 바람 바람 혹은 나무 어느 샌지 나는 아무 것이어도 좋았네. - (1995년) 2021. 3. 3.
단강의 아침 단강의 첫 아침을 여는 것은 새들이다. 아직 어둠에 빛이 스미지 않은 새벽,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삐죽한 소리가 있다. 가늘고 길게 이어지다 그 끝이 어둠속에 묻히는 애절한 휘파람 소리, 듣는 이의 마음까지를 단숨에 맑게 하는 호랑지빠귀 소리는 이 산 저산 저들끼리 부르고 대답하며 날이 밝도록 이어진다. 새벽닭의 울음소리도 변함이 없다. 그게 제일이라는 듯 목청껏 장한 소리를 질러 댄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참새들이다. 참새들은 소란하다. 향나무 속에 모여, 쥐똥나무 가지에 앉아, 혹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수선을 핀다. 저마다 간밤의 꿈을 쏟아 놓는 것인지 듣는 놈이 따로 없다. 그래도 참새들의 재잘거림은 언제라도 정겹다. 가벼운 음악으로 아침 맞듯 참새들의 재잘거림은 경쾌하고 즐겁다. 오늘 아침엔 후.. 2021. 3. 2.
멀리서 온 소포 Australia Yoo KYONG HAHM (오스트레일리아 함유경). 전혀 낯선 곳, 낯선 이로부터 온 소포를 혹 잘못 배달된 것 아닌가 거듭 수신자 이름을 확인하며 받았다. 커다란 상자였다. 분명 수신자란엔 '단강교회 한희철'이라 쓰여 있었다.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을 때 상자 안에는 커피와 크림, 초콜릿 등 다과가 하나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사연은 없었다. 궁금증은 다음날 풀렸다. 역시 항공우편으로 온 편지에는 전날 받아 든 소포에 대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머나 먼 이국땅에서 한 외진 마을로 부쳐온 쉽지 않은 정. 예배를 드리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다과회를 갖는 자리엔 낯설고 의아한, 그러나 무엇보다 따뜻한 감동이 흐르고 있었다. 이.. 2021. 3. 1.
물 인심 물 한 잔 드릴까요? 하고 얼른 물으면 바빠요! 하며 냉큼 달아나신다 택배 기사님도 배달 기사님도 집배원 아저씨도 물 한 모금 삼킬 틈없는 나무 꼬챙이 같이 삐쩍 마른 뒷모습에 넉넉한 물 인심이 가슴 우물에 먹먹히 고인다 2021. 3. 1.
봄 들판 들판에 가 보았네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은 들판을 가로 질러 아지랑이처럼 달렸네 들판에 가 보았네 조용한 푸름 번지고 있었네 하늘이 땅에 무릎 꿇어 입 맞추고 있었네 들판에 가 보았네 언덕 위 한 그루 나무처럼 섰을 때 불어가는 바람 바람 혹은 나무 어느 샌지 나는 아무 것이어도 좋았네. - (1995년) 2021. 2. 26.
자기답게 산다는 것 사람들이 나를 보고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자” 할 때에 나는 기뻤다. 예루살렘아, 우리의 발이 네 성문 안에 들어서 있다.(시 122:1-2) 한 주간 잘 지내셨는지요? 하루하루 기적 같은 날들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벌써 2월의 마지막 주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무심히 눈을 들어 바라본 달력 위에서 날들은 가지런하지만 그 행간 속에 깃든 삶의 무게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때를 분별하며 사는 것이 지혜라는 지혜자들의 말을 실감하는 나날입니다.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 심을 때와 거둘 때, 찾아나설 때와 포기할 때만 잘 분별해도 삶은 한결 쉬워질 것 같습니다. 목회실에서 이번 주 찬양을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단하지만 전통적인 곡을 선정해 녹음을 했습니다. 교우들에게 교회의 여러 장.. 2021. 2. 26.
무의 새 무한한 날갯짓으로 몸무게를 지우며 무심한 마음으로 하늘을 안으며 새가 난다 하늘품에 든다 2021. 2. 25.
사랑하며 사람 사랑하며 이야기 사랑하며 바람과 들꽃과 비 사랑하며 눈물과 웃음 사랑하며 주어진 길 가게 하소서 두려움 없이 두리번거림 없이 - (1992년) 2021. 2. 25.
로즈마리와 길상사 한겨울을 지나오며 언뜻언뜻 감돌던 봄기운이 이제는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요즘입니다. 길을 걸으며 발아래 땅을 살펴보노라면 아직은 시들고 마른 풀들이 많지만 그 사이에서도 유독 푸릇한 잎 중에 하나가 로즈마리입니다. 언뜻 보아 잎 모양새가 소나무를 닮은 로즈마리는 개구쟁이 까치집 머리칼을 쓰다듬듯이 손으로 스치듯 살살살 흔들어서 그 향을 맡으면 솔향에 레몬향이 섞인듯 환하게 피어나는 상큼한 향에 금새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로즈마리를 생각하면 스무살 중반에 신사동 가로수길과 돈암동 두 곳의 요가 학원에서 작은 강사로 수련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던 고시원 방이 삭막해서 퇴근길에 숙소로 데리고 온 벗이 바로 작은 로즈마리 묘목입니다. 언제나 로즈마리와의 인사법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 2021.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