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85 동중정(動中靜) 오늘도 나는 달린다 빙빙빙 날아다닌다 사분사분 가벼웁게 사월의 산새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배달의 기사님들처럼 공양간 초발심의 행자처럼 119구급대원들처럼 기도의 타종소리에 뛰어가는 수녀처럼 분과 초 단위로 살아간다 성성적적(惺惺寂寂) 매 순간을 깨어서 땅과 하늘을 빙빙빙 춤을 추듯 날아다닌다 12시간을 앉았던 정중동(靜中動)으로 12시간을 달리는 동중정(動中靜)을 산다 심심한 생각 한 자락이 이마를 스친다 어느 쪽이 더 쉬운가? 12시간의 정중동일까? 12시간의 동중정일까? 2021. 4. 20.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시편 3편 1절 야훼여! 나를 괴롭히는 자 왜 이리 많사옵니까? 나를 넘어뜨리려는 자 왜 이리 많사옵니까?() 吾敵何多(오적하다)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시편사색》, 우징숑) 당신께 나아가기로 결심하거나 마음을 다지면 걸리는 것들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나 저를 덮치면서 말립니다. 아직 때가 아니고, 그건 지금은 무리고, 나중에 해도 된다고 속삭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닥쳐오는 현실의 무게로 내리누르기도 하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런저런 걱정덩어리들을 마음에 던져 휘청이게 하고 팔과 다리를 묶기도 합니다. 주님 사실 제 적은 제 안에 가장 많습니다. 그 적이 제 약점을 잘도 파악하고, 때도 기막히게 잡아서는 저를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적절한 핑계와 합리화라는 그럴듯한 선물을 주며 다음 기회엔 할 .. 2021. 4. 20. 진선미의 사람 집을 나서기 전 아들에게 묻는다 너는 탐진치의 사람이 될래? 진선미의 사람이 될래? 먹방을 보던 아들은 말뜻을 이해를 못해 한시가 급한 엄마는 잘 들으라며 진선미의 말뜻만 얼른 알려주었다 진은 참되고 진실된 진 선은 착하고 선할 선 미는 아름다울 미 그런데 아들은 들은 체 만 체 그래서 엄마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라고 했다 안하면 용돈도 밥도 없을 거라며 아무 것도 없을 거라며 이윽고 아들 입에서 새어나오는 말소리 한낮의 봄바람처럼 장난스럽게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새차게 밤하늘의 별빛처럼 멀어지는 말소리 비록 작지만 한 방울의 물이 바윗돌을 적시듯 아들의 몸에 진선미의 말이 점점 새겨지기를 6학년이 된 아들이 유튜브와 세상을 검색할 때면 진선미의 말이 어둔 세상 별자리가 되어주기를 진선미의 말씨 한 알을 아.. 2021. 4. 19. 노는 재미 요즘 규민이는 한창 노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놀이방 친구들과 한나절을 놀고, 놀이방이 끝나면 선아, 재성이, 규성이와 어울려 어두워질 때까지 놉니다. 교회 마당에서 놀기도 하고, 선아네 집에서 재성이네 집에서, 때론 뒷동산 산비탈에서 놀기도 합니다. 자전거도 타고, 흙장난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고,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어두워지는 것도 모르고 놀다간 찾으러 나간 엄마 손을 잡고 돌아와 때론 저녁 밥상 앞에서 쓰러지듯 잠이 듭니다. 졸리도록 노는 아이, 아이의 천진한 몰두가 내겐 늘 신기하고 적지 않은 자극도 됩니다. - (1992년) 2021. 4. 19. 할머니의 식사 윤연섭 할머니는 무섭게 일을 합니다. 그야말로 쉴 틈이 없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도 그렇고 넉넉히 사는 자식들 살림도 그렇고 이젠 일 놓아도 될 법 한데, 일하는 할머니 손길은 변함이 없습니다. 열흘이 넘게 걸리는 고된 당근 일에도 빠짐이 없고, 혼자 사는 집 좁은 마당과 방안엔 언제라도 일감들이 널려 있습니다. 모처럼 쉬는 겨울, 아주 쉴 수는 없다는 듯 산수유가 잔뜩 입니다. 혼자 사는 할머니는 혼자 식사를 합니다. 식사 하러 방안으로 들어가는 할머니 두 손엔 밥과 짠지가 들렸습니다. 한 손엔 밥 한손엔 짠지, 그뿐입니다. 쥐코밥상도, 그 흔한 쟁반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두 손으로 밥과 짠지를 날라 맨바닥에 놓고 한 술 밥을 뜹니다. 어둘 녘에야 끝나는 일, 찬밥일 때가 많습니다. 그게 .. 2021. 4. 18. 어정쩡함 씨가 굵게 잘 내렸는데도 값은 평당 500원. 허석분 할머니의 탄식이 길다. 강가 밭 당근이 전에 없이 잘 되었는데도 값이 곤두박질, 어이가 없는 것이다. 할머니 탄식 앞에 난 괜히 송구할 뿐이다. 윗작실 정영화 씨는 강가 밭에 배추를 심었다. 그런대로 잘 되어 통이 굵은 배추가 나란히 보기도 좋았다. 뜸하던 장사꾼이 그나마 들어오더니 밭 전체에 22만원, 그러니까 포기당 100원 꼴에 팔라고 했다. 화가 난 정영화 씨는 안 팔고 말았다. 여차하면 밭에서 얼려 죽이고 말일. 그래도 씨 값도 안 되는 그런 값엔 차마 팔 수가 없었다. 몇 군데 연락을 취했고 다행히 배추를 사겠다는 분들이 나섰다. 차를 마련해 원주 시내까지 싣고 나가야 한다. 여기저기 차편을 알아보고 사려는 이들과 값과 날짜를 맞춘다. 그러.. 2021. 4. 17. 창조적 공생의 세상을 향하여 “고난 앞에서 모른 체 돌아설 권리는 없다. 불의 앞에서 사람들은 짐짓 다른 곳을 바라본다. 그러나 누가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우선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다. 고난이 그에게 우선권을 준다.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지금 슬퍼하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의무이다.”(Matthew Fox, Original Blessing, Bear & co, p.286에 인용된 엘리 비젤의 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며칠 사이 제가 아침저녁으로 걷는 효창공원에 흰철쭉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꽃들이 질서 있게 자리바꿈을 하는 것을 보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금할 길 없습니다. 산수유꽃이 다 떨어지고 복사꽃이 시들해.. 2021. 4. 16. 밀려드는 어두운 예감 작실 병직이 네가 이사를 갔다. 지난 여름 성경학교 연극 발표 시간엔 아합 왕 역을 맡아 참 멋있고도 씩씩하게 연극을 잘 했던 병직이, 병직이 네가 문막으로 떠났다. 설정순 집사님 내외가 떠난 것은 의외였다. 곧 환갑의 나이. 아무래도 떠나기엔 늦은 나이 아닌가. 그냥 내 논 부쳐도 남는 게 없는 판에 남의 땅 빌려 붙이려니 그 사정 오죽했으랴만, 두 사람이 이제 나가 무슨 일을 어찌 할까 짐작이 잘 안 된다. 빨갛게 잘 익은 산수유나무를 사이에 둔 아랫작실 양담말 앞뒷집이 모두 텅 비어 버렸다. 며칠 있으면 종하 네가 이사를 간다. 팔십이 넘은 할머니 밑에서 살던 종하 종일이 종석이가 결국은 떠나게 됐다. 다 모여야 열 명뿐인 학생부에 종하, 종일이가 빠지면 그 구멍은 휑하니 클 것이다. 재워 주는 건.. 2021. 4. 16. 새순 내게 있는 모든 의지를 떨구십니다 봄날의 꽃잎처럼 사방 흩어 놓으십니다 이 땅에 내 것이라 할 것 없는 나는 가난한 나무처럼 제 자리에 머물러 가만히 눈 감고 안으로 푸르게 깊어질 뿐입니다 2021. 4. 15. 이전 1 ··· 65 66 67 68 69 70 71 ··· 2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