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85 막연한 소원 어둠이 한참 내린 저녁, 아내가 부른다. 나가보니 작실에서 광철 씨가 내려왔다. “청국장 하구요, 고구마 좀 가지고 왔어요. 반찬 할 때 해 드시라고요.” 그러고 보니 광철 씨 옆에 비닐봉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그 중 하나엔 허옇게 덩이진 청국장이 서너 개 담겨 있었다. “청국장을 누가 했어요?” 아버지와 광철 씨 뿐 청국장을 띄울만한 사람이 없다. “제가 했어요. 그냥 했는데 한번 먹어보니 맛이 괜찮던데요.” 사실 난 청국장을 잘 안 먹는다. 아직 그 냄새에 익숙하질 못하다. 그러나 광철 씨가 띄운 것, 비록 광철 씨 까만 손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 정을 생각해서라고 맛있게 먹으리라 생각을 하며 받았다.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광철 씨와 편하게 얘기 나눈 지도 오래 되었다. 중학.. 2021. 4. 9. 사건을 일으키는 만남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고후 13:11)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부활절을 지나면서 마치 오래 입은 상복을 벗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구별되게 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삼감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사순절 기간 동안 저를 사로잡았기 때문일 겁니다. 시편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입고 있는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신다고(시 30:11) 고백하지만, 아직 기쁨의 나들이옷은 준비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며칠 청명하더니 또 다시 미세먼지가 우리 시야를 가리고 있습니다... 2021. 4. 9. 꽃잎비 꽃잎이 꽃잎을 감싸며 꽃잎이 꽃잎을 안으며 작고 순한 이름들이 꽃잎비로 내린다 가장 작은 목소리로 가장 순한 몸짓으로 서로를 감싸며 서로를 안으며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산을 감싸며 한 잎의 시가 되고 들을 안으며 한 잎의 노래가 된다 2021. 4. 8. 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 시편 1편 6절b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공동번역》) 我主識善人〔아주식선인〕 우리 주님 선한 이 알아주신다(《시편사색》, 우징숑)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에 대한 사실적인 앎을 지(知)라고 합니다. 그와 달리 그의 사람됨을 알아주고 그의 마음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은 식(識)이라고 합니다. 지(知)는 일방적 관계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식(識)은 상호적이고 더 나아가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 가득한 사건들로 이어집니다. 당신을 인정해주고, 삶에서 걸어온 걸음과 지향(志向)을 귀히 여기면서 수용해주는 이를 만날 때 그제서야 당신은 당신의 삶의 의미를 더 깊이 확신할 수 있지요. 잘못살지 않았구나! 때로 지칠 때 그런 이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2021. 4. 8. 봄(22) 꽃으로 피었으니 꽃으로 져야지 요란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걸음걸음들 다시 한 번 눈부시다 - (1996년) 2021. 4. 8.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길 시편을 순서대로 읽되 한 시편 안에서 마음에 닿는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차례와 관계없이 공동번역과 개역개정, 오경웅의『성영역의』(《시편사색》으로 번역출간)를 중심으로 더 입에 붙는 구절을 중심으로 한땀한땀 닿으려 합니다. 시편 1편 5절 야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죄인들은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공동번역》) 天心所不容 群賢所棄絶〔천심소불용 군현소기절〕 하느님 싫어하시는 것을 믿음의 사람들은 버리고 멀리하네(《시편사색》, 우징숑) 신앙이란 여러 모양으로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것을 곰곰히 살피면서 이걸 내가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내 삶의 일부로 삼을 것인가를 묻는 연습입니다. 이 연습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자리로 이끌어줍니다. 삶에서 받아들일 것과 멀리할 것을 결정하시는 분은 우.. 2021. 4. 7. 봄(21) 너무 쉽게 진다고 너무 쉽게 밟진 마세요 언제 한 번 맘껏 웃은 적 있는지 애써 묻지 않잖아요 - (1996년) 2021. 4. 7. 봄(20) 감탄할 새도 없이 목련이 터지고 안쓰러울 틈도 없이 목련이 지고 우리 생 무엇 다를까 괜스레 꽃잎 밟는 발끝 아리고 - (1996년) 2021. 4. 6. 봄(19) 모두가 본 것을 보았다면 모두가 들은 것을 들었다면 덩달아 말했겠지요 두 팔 벌려 그냥 웃는 이유를 당신이야 아시겠지요 - (1996년) 2021. 4. 5. 이전 1 ··· 67 68 69 70 71 72 73 ··· 2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