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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주소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보고 웃는 웃음보다 더 행복한 모습은 흔하지 않습니다.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웃음, 서로의 눈 속으로 까마득히 파묻히는 연인들의 웃음, 뒤따라오는 할머니를 지긋이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웃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웃음 속엔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다. 어둠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사진/김승범 주님, 우리는 웃음을 잃어버린 땅에 살고 있습니다. 아기의 기저귀가 사라진지 오래며, 동네 처녀총각의 사랑과 설렘이 사라진지 오래며, 노인들의 여유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웃음을 회복시키소서. 웃음 없는 주님의 나라는 감히 생각할 수 없으니 주님, 부디 이 땅에 웃음을 회복시키소서. - (1996년) 2021. 3. 11.
단상 쉽게 구한 것이 우리를 망친다. 쉽게 얻은 것이 우리를 무너뜨린다. - (1995년) 2021. 3. 10.
아침 참새 이른 아침. 노란꽃 환하게 피어난 개나리 가지위에 참새가 날아와 앉는다. 가느다란 가지가 휘청 휜다. 그래도 참새는 용케 가지 위에 앉아 출렁거림을 즐긴다. 가벼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따로 있다. - (1995년) 2021. 3. 9.
삶이라는 신비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창세기 8:22).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들에게 편지를 쓰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사실 사별의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자칫하면 아물어 가고 있던 상처를 후벼파거나, 슬픔의 기억을 소환하는 일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편지를 올리는 것은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슬픔에 공감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삶은 다양한 만남의 점철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태도와 지향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라는 단어는 ‘빗장’이라는 뜻의 ‘관關’과 ‘잇다’라는 뜻의 ‘계係’가 결합된 것입니다. 누군가.. 2021. 3. 8.
호박꽃 호박꽃이 불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거름더미 담벼락 논둑 빈터 어디다 심어도 여기가 내 땅 뿌리를 내리고 쑥쑥 순을 뻗어 꽃을 피울 뿐이다. 조심스러울 것도 없는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부르고, 누가 어떻게 먹어도 탈이 없을 미끈한 호박을 맺을 뿐, 왜 내가 여기 있냐고, 하필 이름이 호박꽃이 뭐냐고, 호박은 자기를 불평하는 법이 없다. 호박꽃! - (1995년) 2021. 3. 8.
할아버지의 아침 이른 아침, 변관수 할아버지가 당신의 논둑길을 걸어갑니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꼬부랑 논둑길을 꼬꾸라질 듯 걸어갑니다. 뒷짐 지고 걸어가며 벼들을 살핍니다. 간밤에 잘 잤는지. 밤새 얼마나 컸는지, 물이 마르지 않았는지, 피가 솟아나진 않았는지 이른 아침 길을 나서 한 바퀴 논을 돕니다. 그게 할아버지의 하루 시작입니다. 할아버지는 논을 순례하듯 하루를 시작합니다. 곡식이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은 참말입니다. - (1995년) 2021. 3. 7.
싱그러움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목말랐던 땅이, 나무와 풀이 마음껏 비를 맞는다. 온 몸을 다 적시는 들판 모습이 아름답다.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 적실 때, 그때 나는 냄새처럼 더 좋은 냄새가 어디 있겠냐 했던 옛말을 실감한다. "타-닥. 타-닥. 타다닥" 잎담배 모 덮은 비닐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없이 시원하다. 땅속으로 스며들어 뿌리에 닿을 비, 문득 마음 밑바닥이 물기로 젖어드는 싱그러움. - (1995년) 2021. 3. 6.
어느 날의 기도 받으라고 받을 수 있다고 때때로 당신 뜻 모를 고통과 아픔 주지만 받을 수 있다고 받아야 한다고 인정하지만 그러나 주님 저만치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툭 길 끊기고 천 길 벼랑일 때가 있습니다. 받으라 하시고 받아야 한다고 인정하지만 - (1995년) 2021. 3. 5.
강물도 더듬거릴 때가 있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창 18:19)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빕니다. 큰비가 내리더니 대기가 며칠 청명합니다. 영동 지역에는 폭설이 내려 사람들의 발이 묶였더군요. 피해는 없으셨는지요? 폭설로 불편을 겪은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눈 덮인 산과 들, 그리고 마을은 왠지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동화 속의 나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테르 브뤼헬(1525-1569)의 ‘눈 속의 사냥꾼’이라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화가는 사냥꾼들이 사냥개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 2021.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