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버스

한희철 얘기마을(159)


결혼식 버스


단강이 고향인 한 청년의 결혼식이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이따금씩 전화를 주기도 하는 <얘기마을> 가족인데다, 애써 주일을 피해 평일에 하는 결혼식인지라 같이 다녀왔습니다.


아침 일찍 대절한 관광버스가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잔치가 있는 날에는 의례히 대절하는 버스입니다. 한번 부르는 값이 상당하면서도 버스 대절은 잔치를 위해선 뺄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바쁜 농사철, 게다가 애타게 기다렸던 단비마저 내려 버스엔 전에 없던 빈자리도 생겼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차 안의 스피커에선 신나는 음악이 쏟아지듯 흘러나옵니다. 그 빠르기와 음 높이가 여간이 아닙니다. 이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합니다. 이 바쁜 철 잔치를 벌여 미안하고 참석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말이 물결 번지듯 울려 퍼집니다.



오늘 만큼은 농사 일 잊고 신나게 놀라며 기사 아저씨는 음악을 어느 새 새것으로 바꿉니다. 저런 음악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이어 차례차례 돌아가며 노래를 부릅니다. 치화 씨 차례가 되었을 때 치화 씨는 그럴 듯이 내리깔린 목소리로 노래를 뽑았습니다.


“고요-오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사라-앙을 심어놓고 나비처럼 날아간 사람”


군데군데 가사가 바뀌고 받침이 빠진 노래였지만 노래가 끝나자 앙코르가 뒤따릅니다. 신이 난 치화 씨가 망설임 없이 다음 곡을 시작합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따뜻한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게 치화 씨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 그동안 쌓아온 만남의 결과입니다. 그만큼 치화 씨는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운 샘입니다. 한 아주머니의 노래엔 마음도 아팠고, 나도 몰래 눈가가 젖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왜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다짐하듯, 왠지 모를 앙금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아주머니의 노래는 진지했고 낮은 목소리로 따라 부르는 노래가 왠지 비장하게 들려왔습니다.


여기저기 빗속 모심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요란한 춤과 노래 섞인 관광버스는 빗길을 잘도 달렸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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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목욕, 공정 거래

신동숙의 글밭(287)


엄마와 목욕, 공정 거래



이른 아침 목욕탕에서 나오면 머리카락에 얼음이 꽁꽁 얼었습니다. 언제가부터 목욕탕에 헤어 드라이기가 생긴 것은 훨씬 뒷일입니다. 그 옛날엔 1~2주에 한 번 일요일 새벽이면, 참새처럼 목욕탕에 가는 일이 엄마와 딸의 월례 행사가 되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목욕탕 굴뚝의 하얀 연기가 펄럭이는 깃발처럼, 우람한 나무처럼 새벽 하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졸린 두 눈을 뜨기도, 작은 몸을 일으키기도 제겐 힘에 겨웠던 일요일 새벽,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는 일보다 더 싫었던 건 목욕탕 입구에서 엄마의 거짓말이었습니다. 또래보다 몸집이 작았던 저는 여러 해 동안 목욕탕 입구에서 만큼은 일곱 살입니다. 엄마가 제 나이를 한두 살 깎으면 목욕탕 주인은 일이백원을 깎아주었습니다. 


지금 같아선 어림도 없는 거짓말이지만, 그때는 엄마의 말씀을 거역할 생각도 못했을 뿐더러, 목욕탕 입구에만 서면 제 몸과 마음은 꽁꽁 얼음 눈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딸이 얼음이 된 줄 엄마는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외면한 채 엄마의 일념은 오로지 어린 딸의 몸에서 때를 벗겨내는 일이었습니다. 


비누칠을 한 후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턱 밑까지 푹 몸을 담그고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던 일이, 지금까지도 샘솟는 제 인내심의 원천인지도 모릅니다. 왠만큼 때를 불렸다 싶으면, 엄마와 나란히 앉은 저에게도 이태리 타올을 주십니다. 조막만한 손을 이태리 타올에 넣고서 트실한 왼손부터 때를 밀면 돌돌돌 때가 말려서 나오는 모습을 보시고서야 엄마의 얼굴엔 푸른 새순이 돋습니다. 


그렇게 딸아이의 팔과 다리에서 때가 툭툭툭 떨어지는 걸 보시고서야, 엄마는 때를 미시다 말고 손에 끼고 계시던 이태리 타올을 세숫대야에 툭 던지시곤, 이때다 싶으셨는지 벌떡 몸을 일으키셔서, 제 등과 어깨와 뒷목과 팔과 다리와 온 몸을, 겨울 미역을 빨듯이 빨래를 하듯이 신나게 미셨습니다.


엄마는 제 얼굴과 손바닥, 발바닥까지 그 이태리 타올 하나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일이 끝나면, 엄마는 어린 딸에게 등을 밀어 달라며 등을 내미셨습니다. "조금 더 세게 밀어라." 하는 말씀에 두 손에는 더 힘을 주어 체중까지 실어서 밀면 그제서야, "어, 시원하다." 하시고, 그렇게 등에서부터 시작해서 어깨와 팔과 허리까지 밀어 드릴려고 하면, 엄마는 몸을 벌떡 일으키시며, "거기는 손이 가니까 놔둬라." 하십니다. 


엄마가 제 몸을 다 씻겨 주신 것처럼, 저도 조금씩 몸이 자라면서 가끔은 엄마의 팔과 다리까지 밀어 드릴려고 들면, 못 이기는 척 몸을 맡기시다가도 이내 엄마는 놔둬라 하시며, 금세 몸을 돌리곤 하셨습니다. 엄마와의 때밀기는 언제나 불공정 거래였습니다. 



지나간 일요일 저녁 때만 해도, 다음날 아침에 있을 토마스 머튼 강론 수업 때마다 늘 지각생이라는 제 말에 엄마는 순댓국을 드시다 말고, 설거지 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어김없이 혼자 나서신 새벽 산책길에 사정없이 뒤로 쿵 넘어지셨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후로는, 모든 일상 생활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머튼 신부님의 관상의 기도와 예수님의 사랑의 빛이 더욱 비추어야 할 땅으로, 이제껏 가장 그늘진 곳 엄마에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워 계실 병실창문으로도 이제 머지않아 아침해가 밝아올 테지요. 


늘 새벽 목욕을 가시던 엄마, 깨끗하고 맑은 새벽 목욕탕이 아니곤 몸을 담그지 않으시려던 엄마, 이제는 어린 날의 저처럼, 딸에게 몸을 다 맡기시는 엄마가 두 번째 목욕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이제는 딸보다 몸집이 더 작으신 엄마의 몸은 배만 커다랗지 팔다리는 삐쩍 마른 제 어릴 적 몸 같습니다. 


이제는 겨울에 목욕을 해도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얼지 않는 참 좋은 시절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뜨거운 온탕에 몸을 푹 담그길 좋아하시는 엄마를 위해선 오후의 햇살이 언제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얼룩으로 남아 있는, 목욕탕 입구 엄마의 거짓말처럼 저도 엄마의 나이를 깎아봅니다. 세월에 쌓인 이자 만큼 한두 살이 아닌 열 살, 스무 살도 더 넘게 깎아 내려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몸이 영 살이 될 때까지 언제나 그 빛을 거두지 않으시는 햇살처럼 그렇게.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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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함

한희철 얘기마을(158)


막연함




귀래로 나가는 길, 길 옆 논둑에 한 청년이 앉아 있다.


군데군데 거름 태운 자국이 버짐처럼, 기계충처럼, 헌데처럼 남아있는, 풀 수북이 자라 오른 논 한 귀퉁이, 처박듯 경운기 세워두고 길게 내뿜는 담배연기.


퍼지는 담배 연기 따라 함께 퍼지는, 왠지 모를 안개 같은 막연함.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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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방

신동숙의 글밭(286)


할머니들의 방



어제 밭에서 뽑은 노란 알배추 속 서너 장, 늦가을엔 귀한 상추 두 장, 푸릇한 아삭 오이 고추 한 개, 빨간 대추 방울 토마토 두 알, 주황 귤 한 알이 침대 사이를 오고가는 할머니들의 방은 콩 한 쪽도 서로 나누어 먹는 방입니다. 


아침이면 작은 보온 국통에 오늘은 무슨 따끈한 국물을 담아 갈까 하고 궁리를 합니다. 옛날 학창 시절에 부모님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뼈가 잘 붙으려면 사골국이 좋다 하시며 구포장에서 버스를 타고 장을 보아 오시던 아버지 생각도 납니다. 


넘어지시기 전날, 아이들이 국물만 먹고 남긴 순대국을 맛있게 드시던 엄마 모습이 힌트를 줍니다. 냉동실에 마저 한 팩 남은 순대국을 따끈하게 데워서 보온 국통에 담습니다. 평소보다 열 배 저속으로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신 엄마가 침대에 앉아서 순대국을 드십니다. 뭐든 쉬엄쉬엄 천천히 드시고 천천히 다니시고 천천히 하시라는 딸의 잔소리가 당분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국물은, 불국사의 애기 단풍이 붉던 날, 맑은 벗님과 맛있게 먹었던 맑은 아구탕이 생각납니다. 남해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난 엄마는 탕국과 비빔밥도 하얗게 드시는 걸 좋아하십니다. 한 사발 덜어 놓고, 식구들이 저녁과 아침으로 먹었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잔가시도 다 발라낸 후 따끈하게 데운 아구탕으로 보온 국통을 채웁니다. 곁들여 엄마의 입맛을 돋구는 음식은,  팔만 뻗으면 닿는 옆 침대 밀양 할머니가 건네주신 알배추를 전어 젖갈 쌈장에 찍어 먹는 맛입니다. 


엄마네 냉장고와 우리집 냉장고에도 한 봉지씩 있는 늦가을 배추가 지나가는 동네 마트 앞에 널려 수북이 쌓여 있는 걸 보니, 김장철입니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서도 김치를 담궈야 하는데 하십니다. 김치라면 물김치, 묵은지, 총각 김치, 돌아서면 담궈 둔 김치들이 이미 냉장고마다 가득합니다. 


저녁 나절 돌아오는 집 앞에서 짧은 인사를 드렸더니, 대문 앞 공터에 손바닥만한 텃밭을 가꾸시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손수 농사 지으신 배추 한 통을 돌담으로 무겁게 넘겨 주시며 맛이라도 보라고 하십니다. 




    ( 그림 : < 할머니 혼자 사는 집>, 황간역의 강병규 화가 )


하늘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강변 가로수의 나뭇잎들도 다 떨어진 초겨울이지만, 땅에는 여기저기 푸릇한 배추가 풍성합니다. 이 많은 배추들로 무슨 음식을 할까 싶어 궁리를 하였습니다.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들은 적이 있는 딸아이가 좋아하는 샤브 국물처럼 야채가 많은 밀푀유나베가 집에 있는 재료에 두어 가지만 더 준비하면 간단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그릇 덜어 두고 저녁밥으로 차려주니 아이들이 기뻐합니다. 딸아이는 "어, 사 먹는 그 맛이랑 똑같아."며 좋아합니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부터 아들이 어제랑 똑같이 또 해달라는 말에 이른 아침부터 남편은 깻잎과 소고기 심부름을 다녀옵니다. 


가을 배추와 깻잎과 버섯과 고기가 겹겹이 푹 익은 구수한 국물을 시원하게 드시는 엄마가 고맙습니다. 말끔히 다 비운 보온통은 점심으로 나온 미역국으로 채웁니다. 엄마는 마당에 있는 복순이를 주려고 챙겨 두신 찬밥이 저기 있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십니다. 옆에서 들으시고는 맞은 편 할머니의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냉동실에 넣어둔 찬밥 덩이를 꺼내 챙겨주십니다. 


그러고 보니 밥을 좋아하는 우리 복순이와 탄이가 한 동안 먹고도 남을 만큼 밥덩이가 많이 모였습니다. 수술 후 금식을 하느라 드시지 못한 밥, 가족들이 싸온 음식을 먼저 잡수시느라 드시지 못한 밥, 끼니 때면 꼬박꼬박 나오는 밥이 많아서 덜어둔 밥덩이들이 겨울 눈처럼 쌓여 가는 할머니들 방의 냉동실, 이제는 점점 겨울로 접어 드는지 불어오는 강바람이 제법 쌀쌀한 초겨울 아침입니다.


엄마의 등뼈 하나가 금이 가듯 곱게 부러져 그 자리에 그 모양 그대로 있어서 따로 손을 쓰지 않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많이 누워 계시면서도 끼니 때면 침대에 앉아서 식사를 드신 후 한 시간 정도 화장실도 다녀오시고 아주 천천히 걸으시면서 소화를 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병실 복도끝 창문으로 들어오는 정오의 햇살이 반갑습니다.


엄마는 등이 가렵다며 봐 달라 하십니다. 햇살이 가득한 창으로 등을 대고 돌아서서 옷을 돌돌 말아 올려서 등을 내 드리니, 엄마는 그 옛날 푸른 멍이 든 아빠의 등 이야기를 또 꺼내십니다. 로션을 가져와서 발라 드리니 참 좋아하십니다. 뼈를 생성하는 비타민 D는 이 지구상에 음식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햇살 밖엔 없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해드리니 창문 앞에서 꼼짝도 안하시며, "아! 참 좋다. 뼈가 다 붙겠다." 하십니다.


방에 계신 할머니들 생각이 납니다.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마루를 내려오다가 그만 옆으로 넘어져 넙적 다리뼈가 부러져 수술 후 누워 계신 밀양 할머니, 발목뼈 수술 후 조금씩 스스로 걸으시는 할머니, 담석증 수술로 금식 후 그토록 원하시던 삼계탕을 맛있게 드시곤 배탈이 나서 오늘은 흰죽을 드셔야 하는 할머니, 혼자 있어야 하는 집에는 가기 싫고 여기에 계속 있으면 좋겠다 하시며, 가끔 어린 아이가 되기도 하시는 할머니, 아침해가 넘어간 방에 계신 할머니들이 생각납니다. 


이 겨울날 창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살의 은총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노란 알배추 속 한 장도 서로 나누어 먹으려는 할머니들의 마음이 이 공평한 햇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따스한 마음이 이 겨울날 저녁 어둑해진 우리집 마당에 있는 복순이와 탄이에게도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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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참새

한희철 얘기마을(157)


사라진 참새



교회로 들어오는 입구 양쪽으로는 향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 향나무는 참새들의 놀이터다. 바로 앞에 있는 방앗간에서 놀던 참새들이 쪼르르 날아와 향나무 속에서 뭐라 뭐라 쉴 새 없이 지껄여대곤 한다. 다투는 건지 사랑고백을 하는 건지. 서재에 앉으면 그런 참새들의 지저귐과 푸릅 푸릅 대는 힘찬 날갯짓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게 된다. 그런 참새들의 모습이 얼마나 정겨운지.


며칠 전엔 뜻밖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땅거미가 깔려드는 저녁 무렵이었다. 예배당 마당에 서 있는데 갑자기 이름을 알 수 없는 검은 새 한 마리가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와, 훅 향나무 속을 훑으며 날아가는 것이었다. 


참새들의 비명소리도 잠깐, 순간적으로 향나무를 빠져 날아간 검은 새의 발톱엔 어느새 참새 한 마리가 낚아 채여 있었다. 너무나도 순간적인 일이라 잘못 본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땅거미 속 날아든 검은 새 한 마리에 의해 한 순간 낚아 채인 참새 한 마리, 저러는 수도 있는 거구나, 한 생명이 저리도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거구나. 느닷없는 손길에 꼼짝없이 빼앗기고 마는 생명도 있는 거구나. 


땅거미 깔려드는 예배당 마당, 눈앞에서 벌어진 믿기지 않는 일이 마음속으론 두려움이 되어 가라앉았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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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품은 기다림의 시간

소망을 품은 기다림의 시간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단12:3)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늘 임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력의 새로운 시작인 대림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끝과 시작이 손을 잡고 시간의 한 사이클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합니다.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셨던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창8:22). 계절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고, 그 시간의 갈피에 깃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소망을 품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아직 오지 않는 대상을 우리 삶 속에 모셔 들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대림절기에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을 모실 준비를 착실히 하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종말론적 미래를 앞당겨 살아내는 일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과 공간이라는 밭에 씨를 뿌리는 농부들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뿌리느냐에 따라 세상의 모습 또한 달라질 겁니다.

날이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교회 현관 앞에 나란히 놓아두었던 국화 화분을 다 안으로 들여놓았습니다. 오늘 아침 교육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은은한 국화향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다가오는 모든 이에게 향기를 나눠주는 꽃의 너그러움이 참 고마웠습니다. 향기를 굳이 드러내려고 호들갑 떨지 않는 그 담담함이 더욱 귀하게 보입니다.

방역 단계가 올라가면서 교회 모임이 또다시 어려워졌습니다. 공간 수용 인원의 20% 정도의 출입만 허용한다고 합니다. 주기적으로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럽습니다.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투덜거린다고 하여 상황이 좋아질 리 없으니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대림절 내내 비대면 예배를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영혼이 불안의 물결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영혼의 닻을 단단히 내려야 할 때입니다.

교회를 그리워하는 마음, 교우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김소월의 시 ‘가는 길’은 그리워하는 마음의 풍경을 우련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립다/말을 할까/하니 그리워//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 한 번”. 그립다고 말을 할까 망설이다가 그 말을 발설하는 순간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그냥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주저주저하다가 다시 돌아보는 그 미묘한 마음을 시인은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이런 것이겠지요?

얼마 전 좋은 벗들과 함께 읽었던 다산 정약용의 시가 떠오릅니다. 유배지에 머물면서 썼던 시인지라 그 고적함이 쓸쓸함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가동귀家僮歸’라는 시입니다. 가동은 집안일을 돌보는 하인을 가리키는 말 같습니다. 그는 다산의 가족들이 보내는 편지를 간직한 채 천 리 길이 넘는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를 통해 건네진 편지를 읽으며 다산은 가족들의 따뜻한 온기를 느낍니다. 그러나 가동이 돌아가고 난 후 더 큰 적막감과 쓸쓸함이 몰려와 그를 확고하게 사로잡았습니다.

“편지를 받으니 이야기 나누는 듯하였는데
사람이 떠나고 나니 다시금 적막하다
아무 일도 말도 없으니 하늘은 막막하고
길만은 변함없이 아득하겠구나
새재의 길은 일천 구비요
탄금대 물길은 두 줄기라네“

귀양살이하고 있어 그 땅을 벗어날 수 없지만, 마음은 ‘가동’을 따라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굽이굽이 휘돌며 이어지는 새재 길이며 두 줄기로 뻗어 나가는 탄금대의 물길도 눈에 선합니다. 그 재를 넘으면 한양길이 활짝 열릴 터이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그저 한 쌍의 제비가 머물며
온종일 울어대니 사랑스럽구나
집소식 들어서 좋다 했는데
새로운 근심 갈래갈래 일어나네
못난 아내 날마다 운다고 하고
어린 자식 볼 날은 그 언제일까
박한 풍속 참으로 안타깝구나
뜬 말에도 아직은 불안하기만“

무심히 바라보니 금실 좋은 제비 한 쌍이 처마를 넘나들며 온종일 재재거립니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니 그리움이 더욱더 깊어갑니다. 차라리 소식을 듣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집안 소식 듣고 나니 오히려 근심이 더 깊어갑니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날마다 우는 아내며, 죄인의 아들인지라 앞길이 막막하기만 한 자식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염량세태炎涼世態입니다. 좋은 시절에는 뻔질나게 드나들던 이들도 형편이 어려워지자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야박한 세상에 눌려 행여 가족들의 마음에 그늘이라도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스스로 자기 마음을 다독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서라 이 또한 달게 받으리
세상살이 본래부터 괴로운 것을”

염려한다고 하여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니, 지금은 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푸접없는 세상이라 하여 울분을 터트리다가는 자신이 먼저 망가질 수 있음을 그는 알아차린 것입니다. 삶은 본래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가끔은 견뎌야 할 만큼 괴로울 때도 있는 법입니다. 괴로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히려 우리 내면을 허약하게 만듭니다. 괴로움은 회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뚫고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러합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우리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에 접속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대림절은 영원한 생명의 회임기懷妊期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몸을 빌려 이 땅에 오려 하십니다. 불확실함과 혼돈과 공허가 가득한 세상이지만, 영혼이 맑고 따뜻한 사람들이 더욱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숨이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부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병중에 계신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치유 손길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차가운 날이 당분간 계속된다고 합니다.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목도리도 꼭 두르고 다니시면 좋겠습니다. 몸은 멀리 있어도 우리가 한 몸 공동체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 맑고도 선선한 미소로 시대적 우울을 몰아내십시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2020년 11월 26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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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눈물

한희철 얘기마을(156)


할아버지의 눈물 



정작 모를 심던 날 할아버지는 잔 수 모르는 낮술을 드시곤 안방에 누워버렸습니다. 훌쩍훌쩍 눈물을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달랠 수도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모를 심기 훨씬 전부터 할아버지는 공공연히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모심는 날을 일요일로 잡았고, 흔해진 기계모를 마다하고 손모를 택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일곱 자식들이 며느리며, 사위며, 손주들을 데리고 한날 모를 내러 내려오기로 했던 것입니다. 두 노인네만 사는 것이 늘 적적하고 심심했는데 모내기를 이유로 온 가족이 모이게 됐으니 그 기쁨이 웬만하고 그 기다림이 여간 했겠습니까.


기계 빌려 쑥쑥 모 잘 내는 이웃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논둑을 고치고 모심기 알맞게 물을 가둬놓고선 느긋이 그날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모심기로 약속한 날, 정작 모심으러 들어온 건 둘째 딸네뿐이었습니다. 모두 온다고, 오겠다고 전화론 그랬는데, 그런 전화 믿고 자랑도 했고 일꾼도 그만큼 적게 맞췄는데 결국은 둘째 딸네뿐이었던 것입니다. 


속상한 할아버지 마음 말 안 해도 알기에 술 드시는 할아버지를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 마음 위로하듯 하루해론 벅찬 일을 벅차게 해냈을 뿐입니다.


모심기 전날 밤, 신작로 곳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자식들 밤늦도록 기다리며 어둠 속 줄 담배 피우던 할아버지 모습을 본 이는 따로 없었다 해도.....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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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사랑고백

한희철 얘기마을(155)


할아버지의 사랑고백



약주만 들면 교회에 들르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허리가 반으로 접힌 꼬부랑 할아버지입니다.


“내가 슬퍼.”


마음 아픈 일들을 장시간 이야기하기도 하고, 당신 살아온 이야기 하며, 마을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나를 향한 호칭도 전도사님에서부터 목사님, 약주가 과한 날은 조카, 때론 자네가 되기도 합니다.


“난 자네가 좋아. 아들 같어.”


평소엔 일마치고 돌아올 무렵 주머니 가득 달래를 캐가지곤 “이런 거 어디 나는지 모를 것 같아 캐 왔다.”시며 건네주곤 하는데, 약주를 하시면 약주 기운에 “난 자네가 좋다.”고 그 어려운 사랑고백 술기운에 기대 하듯 거듭거듭 그 이야기를 합니다.


날 좋아한다는 고백이 누구로부턴들 반갑지 않겠습니까만 한 할아버지로부터 듣는 ‘자네가 좋다’는 고백은 그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 말랐지 싶었던 샘에 샘물 고이게 합니다. 그 샘물 한 바가지 듬뿍 그 할아버지께 드리고 싶습니다.


뵐 때마다 왠지 목마르지 싶은 할아버지께.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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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모르는 걱정

한희철 얘기마을(154)


남모르는 걱정




종하가 산토끼를 또 한 마리 잡았습니다. 

올 겨울 벌써 일곱 마리째입니다. 

토끼를 잡아들이는 종하를 종하 할머니는 걱정스레 봅니다. 


먼저 간 아들 생각이 나기 때문입니다.

종하 아버지도 산짐승 잡는 덴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종하 아버지가 마흔도 못 채우고 일찍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아버질 닮아 토끼 잘 잡는다고 동네 사람들은 종하를 신기한 듯 말하지만 할머니, 종하 할머니는 남모르는 걱정을 혼자 합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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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종량제 봉투

신동숙의 글밭(285)


엄마의 집, 종량제 봉투




앞으로 2주 동안 

엄마의 집은 빈 집입니다.

냄비에 남은 찌게를 버릴까 하다가 냉장고로 보냅니다.


수저 한 벌, 밥그릇 하나, 작은 반찬 접시

아침 밥그릇이 담긴 설거지통을 비웁니다.


엄마가 여러 날 동안 

우겨 담으셨을 종량제 봉투에

화장실 쓰레기통 휴지까지 마저 눌러 담습니다.


그러고 보니 

몇 해를 지내오면서도

엄마의 아파트 종량제 봉투 버리는 데를 모릅니다.


문을 나서며 처음 마주친 아주머니께 여쭈니

"앞쪽에 버려도 되고, 뒷쪽에 버려도 되는데,

이왕이면 가까운 뒷쪽에 가세요." 하십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뒤로 하며 뒷쪽으로 가니

태우는 쓰레기통, 안 태우는 쓰레기통이 나란히 두 개


태우는 쓰레기통 손잡이를 위로 당기니 열리지 않아서 아파트는 쓰레기통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되나 싶어서

쓰레기통 주위를 사방으로 살피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좀 전에 아주머니가 

저 멀리서 내 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두 팔을 번쩍 들어 보이시며

힘차게 하늘을 밀어올리십니다.


내가 쓴 힘이 약했구나 싶어서

태우는 쓰레기통 뚜껑을 힘껏 

하늘로 밀어올리니

커다란 뚜껑이 머리 위로 활짝 열립니다.


종량제 봉투가 무사히

툭 바닥에 닿는 걸 확인하곤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돌아서며

한 번 더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려 찾으니

아주머니의 모습이 아무래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내어주기만 하시고 

받을 줄 모르시는 울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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