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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토작업 한희철 얘기마을(146) 객토작업 객토작업을 합니다. 차라리 탱크를 닮은 15톤 트럭이 흙을 싣고 달려와선 논과 밭에 흙을 부립니다.땅 힘을 돋는 것입니다. 땅에도 힘이 있어 몇 해 계속 농사를 짓다보면 땅이 지치게 되어 지친 땅 힘을 돋기 위해 새로운 흙을 붓는 것입니다. 트럭이 갖다 붓는 검붉은 흙더미가 봉분처럼 논과 밭에 늘어갑니다. 객토작업을 보며 드는 생각 중 그중 큰 것은 고마움입니다. 그건 땅에 대한 농부의 강한 애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농사가 천대받고 농작물이 똥값 된다 해도, 그렇게 시절이 어렵다 해도 끝내 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는 땀 흘려 씨 뿌리겠다는 흙 사랑하는 이의 눈물겨운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흙먼지 날리는 객토작업을 불편함보다는 든든함과 고마움으로 바라봅니다. - (1.. 2020. 11. 16.
제 기도의 응답도 [사랑]입니다 신동숙의 글밭(277) 제 기도의 응답도 [사랑]입니다 "엄마, 울어요?""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술 카드 사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엄마, 왜 울어요?" 늦은 밤에 책상에서 울다가 아들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도 눈물보다는 지인 목사님을 모셔서 천국 천도의 예배를 드리고 챙기느라 제겐 눈물을 흘릴 경황이 없었습니다. "아빠, 예수님 손 잡고 가세요."를 삼일장 내내 호흡처럼 주문처럼 기도처럼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곁에서 어쩔줄 몰라하시던 친정 엄마께도 그 한 문장만 가르쳐드렸습니다. 그냥 지금까지도 혼자 있을 때면, 운전을 하다가도 아버지가 생각 나서 울컥할 뿐입니다. 가족들 앞에서 좀체 보인 적이 없던 엄마의 눈물은 아들의 눈에는 놀라움이었을 겁니다. 자정이 다 .. 2020. 11. 16.
사랑의 안마 한희철 얘기마을(145) 사랑의 안마 어디서 배웠는지 어느 날 소리가 내 등을 두드립니다. 도닥도닥, 작은 손으로 아빠 등을 두드리는 어린 딸의 손길이 여간 정겹지를 않습니다. “어, 시원하다.” 한껏 딸의 수고를 칭찬으로 받아줍니다. 그 뒤로 소리는 이따금씩 등 뒤로 와서 내게 묻습니다. “아빠, 더워요?” - (1992년) 2020. 11. 15.
달빛 가로등 신동숙의 글밭(276) 달빛 가로등 집으로 가는 밤길길 잃지 마라 가로등은고마운 등불 달빛에 두 눈을 씻은 후 달빛 닮은가로등 보면은 처음 만든 그 마음 참 착하다 달과 별을 지으신 첫 마음을 닮은 2020. 11. 15.
종일이 할머니 한희철 얘기마을(144) 종일이 할머니 김 집사님이 아파 심방을 갔더니 종일이 할머니가 와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자 종일이 할머니가 고맙다고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합니다. 지난 단강초등학교 졸업식에 종일이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부론중학교에서 올 입학생부터 입게 되었다는 교복 값이 없어 당신 혼자 맘고생이 많았는데 종일이가 뜻하지 않은 장학금을 타서 걱정을 덜었다는 것입니다. 일흔여덟,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쁜 몸으로 손자 셋을 돌보시는 할머니, 아들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며느리는 어디론가 새살림을 나가고, 그래서 할머니가 손주들을 돌봅니다. 모두가 한창 먹을 때고 한창 개구질 때입니다. ‘부모 읍는 자식 소리 안 듣길려구’ 찬이며 빨래며 할머닌 ‘아파도 아픈 .. 2020. 11. 14.
"엄마, 오다가 주웠어!" 신동숙의 글밭(275) "엄마, 오다가 주웠어!" 아들이 "엄마, 오다가 주웠어." 하며왕 은행잎 한 장을 내밉니다. "와! 크다." 했더니"또 있어, 여기 많아." 하면서 꺼내고꺼내고또 꺼내고 작은잎찍힌잎푸른잎덜든잎예쁜잎못난잎찢어진 잎 발에 밟혀 찢어진 잎 누가 줍나 했더니 아들이 황금 융단길 밟으며 엄마한테 오는 길에 공평한 손으로 주워건네준 가을잎들 비로소 온전한 가을입니다. 2020. 11. 14.
세 겹 줄처럼 든든하게 세 겹 줄처럼 든든하게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도서 4:12)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가을의 막바지인 지금 형형색색의 단풍이 참 아름답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다가 다양한 색이 어울려 꽃보다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저절로 ‘야, 좋다’라는 감탄이 터져나왔습니다. 어쩌다 보니 올해는 가을 산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붉나무를 보지 못한 것이 참 아쉽습니다. 도봉산 오르는 길에 만나곤 했던 나무들도 떠오릅니다. 계절을 낭비한 것 같아 속이 상합니다. 돌아가신 박 목사님께서 웃으며 하신 말씀이 가끔 떠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이 이렇게 물으실 거랍니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소?“ “예, 저는 .. 2020. 11. 14.
찢어진 커튼 바느질 신동숙의 글밭(274) 찢어진 커튼 바느질 거실창 커튼이 찢어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집에 탄이가 오면서부터입니다. 탄이는 털이 새까맣고 작고 귀여운 강아지 포메라니안입니다. 이제는 몸집이 다 자랐는데도 원체 작다 보니 탄이는 계속 강아지로만 보입니다. 새로 산 핸드폰 충전기 줄을 세 개나 물어서 끊어 놓고, 유선 케이블 연결선을 세 차례나 끊어 놓아 통신사 기사님을 성가시게 한 적도 많고, 아무리 미운 짓을 거듭해도, 탄이의 까만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미운 마음이 스르르 녹아서 사라지게 되는, 탄이의 얼굴은 이미 현묘지도(玄妙之道)를 지닌 듯도 합니다. 제 어릴 적 기억에, 겨울이 다가오는 이 무렵이면 부모님에겐 월동 준비로 연탄 100장을 장만하시는 일이 큰 숙제였습니다. 키다리 연탄집 아저씨가 연탄을.. 2020. 11. 13.
선아의 믿음 한희철 얘기마을(143) 선아의 믿음 이젠 선아도 무릎을 잘 꿇습니다. 심방을 가 처음 예배를 드릴 때만 해도 안 꿇리는 무릎 꿇느라 벌어진 두 발을 손으로 잡아당겨 끙끙 애쓰더니, 이젠 무릎 꿇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선아는 꼭 목사인 제 흉내를 냅니다. 무릎 꿇는 것부터 찬송 부르는 모습까지, 말씀을 전할 때의 손 모양까지를 그대로 따라 합니다. 요즘엔 저녁에 식구들이 모여 있으면 저 혼자 성경 찬송을 갖고 나와 책을 펼쳐들곤 흥흥 찬송도 부르고 뭐라고 뭐라고 설교도 합니다. 그러면 온 집안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식구들이 선아의 그런 모습을 ‘아멘’으로 받아 주기도 합니다. 선아가 교회에 나온 건 연초 새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엄마, 아빠를 따라서입니다. 처음엔 엄마 품에 안겨 교회에 .. 2020.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