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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311

평등한 꽃잎 사과 한 알을 사이좋게 나누려는 손길로 평등하게 나누면 사과는 꽃이 되지 네 잎의 꽃 인의예지 다섯 잎의 꽃 화랑의 세속오계 여섯 잎의 꽃 육바라밀 일곱 잎의 꽃 천지창조 안식일 여덟 잎의 꽃 팔정도와 마태 팔복과  대한민국 팔도에서 살짝 떨군  독도 한 조각까지 중용, 중도, 성령, 양심, 진리, 사랑이라 달리 부르는 평등한 꽃잎 날마다 우리집 밥상에서는 둥근 사과가 동그란 접시 위에서 참되고 바르게 화알짝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지 2024. 9. 7.
삶은 감자가 들려주는 오늘도 고마운 하루를 주시는 흰구름 더불어 푸른 하늘이  푹푹 익어가는 여름날 마트 진열대에 투박한 손글씨로  1키로 2,980원  떨어진 감자값에  순간의 반가움 너머로  한 생각  바람 한 줄기 흙밭에서 떨구던 땀방울 채 마르기도 전에 짠 눈물에 시려 더운 한숨 짓지는 않았을까 산골에 사는 사람  감자 구워 먹고 산다던  윤동주 시인의 한 줄 글에  찌는 가슴으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감자는 밥도 된다는데 문득 스친 거울 속 내 얼굴에도 삶은 감자 같은 무상심심 미묘한 빛 어릴까 새벽예불과 일과를 다하고 나서던 아침 양팔 활짝 핀 꽃처럼 나를 부르시며 안으로 들어오라시며 반기시던 시봉 스님 한 분에겐 떠나는 순간 한 분에겐 새로 온 순간 삶은 감자 껍질 같은 수행자의 옷자락 그 스침에  없던 내가.. 2024. 9. 3.
씻은 손 씻은 손 합장하여 하나 둘 셋  물방울 떨구어 종이수건에도 닦지 말고 잠시 그대로 두고 물기가 어디로 가는고 없는 듯 있으면 바람이 말려주고 손이 스스로 손을 말린다 닦지 않아도 닦을 게 없다 2024. 5. 27.
너의 단점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너에게서  보이는 너의 단점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내 안에  없는 것은 티끌 하나도  비추어 보일 수 없다는  거울처럼 선명한 이치를 문득 눈치챈 찰라부터 널뛰던 나의 불평은 멈추고 세상의 모든 빛은 나를 향할 뿐 천상천하  유아독존 내가 눈을 감으면 눈앞의 부처도 볼 수 없고 내가 귀를 닫으면 예수의 복음도 들을 수 없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2024. 4. 30.
약단밤 빨간 신호등에  차를 멈추면 창문을 내리고 무조건 내미는 손 손바닥만한 흰 종이 봉투를 열면 무분별지가 하얗게 열린다 다 맛있다 늘 맛있다 배가 고프면  내가 먹고 배가 부르면 가장 먼저 만나는 이에게 주고 곱씹은 약단밤을 삼키며 오로지 한 생각 뿐 가지산 너머로 해가 지기 전에 약단밤들 모두 다 따뜻한 손으로  순한 날의 태화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평화의 동해바다로 차도 사람의 발길도 닿지 않으나  모든 생명에게 안전한 그 빈 땅에  멈추어 선  오토바이 한 대 봄날인가 했더니 어느덧 여름인 4월 말 계절을 잊고 웃음 짓는  민들레 한 송이 꽃대 같은 아저씨  그 손에서 피어난 약단밤이 달디 달다 2024. 4. 29.
기도비 출입문 구석에 놓인 작은 접이식 탁자 위에는 기도비 삼만 원 종이접기로 만든 돈봉투가 있고 명단을 적는 출석부가 있고 그런데 사람이 없다 기도비를 받는 사람도 없고 돈봉투를 지키는 사람도 없다 각자의 기도비를 종이 돈봉투에 넣고 스스로 자기 이름을 적을 뿐 겨울 밤하늘이 까맣도록 새벽녘 별빛이 또록해지도록 접었던 두 다리를 폈다가 다시 접는 철야정진 법당 안엔 백여 명이 훌쩍 넘는 대중의 독경소리 침묵 간간히 꽃피는 웃음소리 뿐 기도비는 저 혼자서 밤새 제 청정 도량을 지킨다 이제 산등성이 너머 동녘 하늘이 밝아오는데 어제 치운 눈길 위로 또 쌓이기 시작하는 하얀 눈 새벽 예불 길에 싸리 빗자루를 제 몸인 듯 놀리며 눈을 치우는 사람은 있는데 밤새 수북이 쌓인 기도비를 치우는 사람 아무도 없네 기도비는 .. 2024. 1. 8.
마른잎 풍경 언 땅 가지 끝에 매달린 마른잎 풍경 빛나던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색이 바랜 물이 빠진 무심한 몸을 황금빛 햇살이 안아 내 얼굴도 색이 빠진 후엔 맑은 소리 울리는 마른잎 풍경이 될까? 버석한 몸 마르고 닳도록 씨앗을 품고 부르는 자장가 살으리 살으리 사르랑 사르랑 살갗을 스치는 겨울바람 결에 울리는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 귀 있는 자에게 들리는 말씀 오막살이에도 들리는 탄일종 귀 속의 귀에 울리는 법문 빈 가슴 울리는 마른잎 풍경 2024. 1. 5.
목필(木筆) 한 겹의 솜털을 입은 목련 꽃봉오리 붓끝을 닮은 한 겹의 옷 한 겹의 온기 한 겹의 나눔 제아무리 시린 밤도 한 겹의 사랑이면 들숨 한 점에 스르르 실눈을 떠 한 점의 눈길 마주칠 수 있다면 한 점의 별빛 찾아볼 수 있다면 아무렴 서러운 날도 포근히 날 수 있다지 2024. 1. 3.
홀로인 듯 혼자가 아닌 홀로 앉아 차를 마시면 홀로인 듯 혼자가 아닌 우리의 찻자리 차 한 모금에 입가로 번지는 둥근 미소 관세음보살상의 미소를 닮은 길상사의 성모마리아상과 성령님의 진리 차 한 모금에 눈앞으로 펼쳐지는 둥근 하늘을 닮은 마음속 한밝의 하늘 본래면목을 보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홀로인 듯 혼자가 아닌 이곳 흙으로 빚은 이 몸을 어루만지는 손길 이슬처럼 둥근 진리의 몸이 되도록 새로운 숨을 쉼 없이 불어넣고 있는 없는 듯 있는 숨은 숨 2024.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