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벚꽃 할머니

신동숙의 글밭(135)


겹벚꽃 할머니




오일 장날에
참기름집 앞에 서 있는데


앉으신 할머니가 몸을 틀어서
내 있는 쪽으로 손만 뻗고 계신다


할머니의 손이 향한 곳을 보니까
딸기 바구니에 담긴 푸른 엉개잎


바로 지척인데
강 건너 쯤 보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갖다 드릴까요?" 여쭈니
할머니는 눈으로 살풋 미소만 지으신다


참기름병을 가방에 넣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를 헤아리다가


선뜻 몸을 일으키시지도
고맙단 말도 또롯이 못하시면서


할머니는 그 몸으로 장사를 하시네
차가운 바닥에 종일 앉아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해서
해가 뜨면 몸 일으킬 일이 무거워서


나무처럼 할머니의 몸도 입도 무거워서
주름진 얼굴에 핀 수줍은 미소가 겹벚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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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차나무

신동숙의 글밭(134)


소나무와 차나무


강변 둑으로 어린 쑥이 봄 햇살에 은빛으로 살랑이던 2월의 어느 날. 4살 딸아이의 조막손을 잡고 찾아간 곳은 다도원茶道院입니다. 그날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한 손엔 앵통(차 바구니)을 한 손엔 딸아이의 손을 잡고서 차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다법이 제 몸에 익숙했던 건 어려서부터 귓전에 울리는 일명 부모님의 잔소리,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껏 귓전을 따라다니는 부모님의 음성인 터라 형님들은 처음인데도 잘한다며 이뻐해 주셨고요. 제 나이 32살 무렵이라 다들 저한테는 어머니나 이모 연배셨기에, 선생님이 애초에 저보고 형님이라 부르라 하시며 미리 호칭을 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언니도 아니고 이모도 아닌 그 형님이라는 호칭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말을 잘 따르는 제 성격에 그리고 무슨 일이든 서너 번만 하면 익숙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일이든 마음이든 한 마음 먹기가 저에겐 영원의 숙제로까지 다가오는 것입니다. 시작보다 되돌리는 일이 더 무겁기 때문입니다.


다도원 맞은 편으로는 선생님께서 손수 가꾸시는 차밭이 있었습니다. 허리 높이의 년 수가 오래지 않은 차나무 고랑 사이로 비닐 천막천이 깔려져 덮여 있는 모습이 제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것입니다. 비만 오면 무성히 올라오는 잡초를 감당치 못해 그리하셨다며 얘기를 꺼내시는 선생님의 표정도 가볍지 못했답니다. 찻잎이 갈색 붉은빛을 띈 연유를 여쭈니, 겨울 동안 냉해를 입어서 그렇다고 하십니다. 그때부터 차나무의 잡초와 냉해가 저에겐 숙제로 다가왔답니다. 선생님이 내주신 적 없는 혼자만의 숙제인 것입니다.


쑥이 제법 키가 오르고, 형님들은 여기저기 쑥을 캐러 가신답니다. 쑥을 많게는 쌀 푸대 자루 한가득 담아서 방앗간으로 가지고 가면 쑥찰떡이나 쑥설기를 해서 가족과 지인들과 나누어 드시기도 하고요. 그러고도 남는 것은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가 일년 내내 녹여서 드시는 재미가 솔솔하다며 쑥캐러들 가십니다. 


하지만 제 시선을 끄는 것은 이맘때 4월 곡우 무렵의 차밭에 오르는 어린 찻잎입니다. 세작(새의 혀)이 연둣빛으로 제 연한 가슴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 연하고 푸른 어린 찻잎이 가슴으로 들어오는데, 그날부터 잠자리에 누우면 떠오르는 얼굴이 되었답니다. 왜 그런지 제 스스로도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일기보다는 그냥 좋은 것입니다. 그 마음 안에서 설레기도 하고 혼자서 충분히 행복한 것입니다.



책을 뒤졌습니다. 차나무의 생장 환경, 차나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차나무에 대한 자료라면 두루두루 살펴보았습니다. 다실과 선생님의 차밭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서 동洞에서 운영하는 작은 주말 농장이 있어요. 텃밭을 따라서 차밭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텃밭 너머로 산자락이 비스듬히 따라옵니다. 산에는 소나무가 산을 지키고 서 있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의 산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소나무 아래에 있는 사철나무가 바로 차나무였던 것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서라벌의 왕에게 진상하던 차 제배 마을, 제가 사는 마을은 차마을이었던 것입니다. 릴케의 말처럼 차와 닿은 우연한 인연이 필연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선생님의 차밭은 비가 오던 날을 잡아서, 지리산에서 차 모종을 조심스레 공수를 해오셔서 심고 가꾸시는 노지의 차밭인 것입니다. 그동안 책을 뒤지며 고민하던 잡초와 냉해 숙제가 눈 앞에서 해결 되던 순간입니다. 목장갑을 끼고 쭈글쭈글한 쌀 푸대 자루를 챙겨서 소나무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전엔 예사로 보았던 소나무 아래는 솔갈비로 비옥한 옥토밭입니다. 솔갈비를 긁어 모으는 손끝에서부터 솔향이 피어올라 가슴을 맑게 씻겨 줍니다. 저는 꾸미지 않은 소나무가 좋습니다. 그리고 소나무를 닮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떨어져 있더래도 만난 적 없더래도 가슴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맑은 솔바람에 솔향이 전해져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려올 때는 불룩해진 푸대자루를 끌고서 내려왔습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부자가 된 마음으로 겨우 겨우 한발짝씩 떼어 놓으며 선생님의 차밭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천막천을 걷어낸 자리에는 지렁이와 작은 지네들이 날벼락을 맞은 듯 화들짝 놀라서 몸을 비틀며 어쩔 줄을 몰라하고, 내려다보는 저도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라 미안한 마음에 잠시 멍해지던 순간입니다.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인 차나무 아래로, 긁어온 솔갈비를 흩뿌려줄 때의 마음은 짠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요. 하나님이 세상에 비를 흩뿌려 주실 때의 마음도 이런 마음일까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100여 평 되는 차밭 전체에 솔갈비를 두둑하게 깔아주는 일은 한동안 계속된 제 하루의 소중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혼자서 행복한 시간입니다. 타지역으로 출강이 잦으셨던 선생님이셨기에 오롯이 저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답니다. 참, 딸아이를 또 깜빡할 뻔 했네요. 그때처럼요. 심심한 딸아이를 하나님이 좀 데리고 놀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 마음 한 구석엔 그런 마음 한 조각 품었더랬습니다. 엄마 곁을 한시도 떨어진 적 없는 딸아이가 호젓한 시간 동안 하늘을 보고 흙도 보고 꽃도 보면서 어린 마음이 자연으로 물들어가기를요. 


비가 오는 날, 흐린 날은 찻잎을 따지 않고, 밤에도 따지 않습니다. 이슬 머금은 아침 나절에 따는 찻잎이 싱그럽지만 저는 아침을 먹은 후 천천히 집을 나섭니다. 주로 정오를 전후로 해서 찻잎을 땄습니다. 연둣빛 찻잎을 받친 떡잎과 줄기를 오체라고 하고요. 깨알만한 오체라도 섞이면 전체 차맛을 헤친다고 합니다. 나중에 골라내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라도 찻잎을 따는 그 순간에 집중을 하기로 했습니다. 세작과 두 잎까지만 세심한 손끝으로 찻잎을 따기로 마음을 먹고 시작한 찻잎따기입니다. 딸아이는 저도 엄마를 따라서 찻잎을 따다가 나중에는 지겨운지 멀찍이 앉아서 노는 모습을 스치듯 보고는 계속 찻잎을 땄습니다. 그렇게 대여섯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르고서.


그 다음날부터 딸아이는 차밭 입구에서부터 땅바닥에 드러누워 두 다리를 구르며 공중 자전거를 탔습니다. 놀아주던 엄마를 차나무한테 빼앗긴 것이 억울한 것인지 답답하기만 한데. 그런 와중에도 제 마음엔 온통 찻잎을 따서 덖을 생각에 마음은 구름처럼 부풀어 있는 것입니다. 잠자리에 누으면 온통 푸릇푸릇 연둣빛 찻잎이 가득한데 딸아이의 마음은 온통 먹구름인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눈물까지 흩뿌립니다. 미안한 마음이 강 운무처럼 자욱해지던 날입니다. 


십 년이 지난 이제까지도 저에게서 연둣빛 푸릇한 향이 난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때 어린 찻잎에 물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손끝에서도 그때 찻잎을 따던 그 설레임으로 푸릇푸릇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은 세월이 갈수록 시간에 닦여서 점점 더 빛나는 보석별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바람을 등지고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서 부탄가스에 불을 켭니다. 그 위에 작은 무쇠 가마솥을 올려 뜨겁게 달굽니다. 깨끗한 목장갑을 낀 손으로 빠르게 덖어서 찻잎에 센 열을 가합니다. 첫불에 달군 차향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푸른향 너머로 단향과 구수한 차향. 만약 향에도 길이 있어서 끝까지 따라갈 수 있다면 본향에 닿을 것만 같은 차향은 아련한 그리움입니다.


솔갈비를 깔아주는 숙제를 다 마치고도 선생님의 노지 차밭을 볼 때면 아쉬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바로 옆 산으로 야생 차나무를 품어 안듯이 지키고 선 소나무들의 듬직한 모습 때문입니다. 강바람이 매서운 한 겨울날에도 소나무 아래 차나무는 냉해를 입지를 않으니까요. 소나무 아래 산비탈에서 일년 내내 강 운무를 가득 머금은 찻잎에는 윤기가 돕니다.


하나의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고 돌의 냉기를 먹고 자라는 차나무. 비옥하지만 무른 흙밭에선 그 뿌리가 녹아서 살 수가 없다고 하는 차나무. 대개의 식물들이 비옥한 흙밭에 뿌리를 내려 제 몸에 살을 찌우는 삶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삶입니다. 늦가을에서 겨울 동안 하얀 차꽃을 피워 알싸한 향을 풍기는 차나무는 어디를 보나 차갑고도 고독한 식물입니다. 


그런 차나무에게는 소나무 만큼 좋은 사우師友도 없는 것입니다. 차나무에게 소나무는 매서운 강바람으로부터 냉해를 막아줍니다. 차나무는 소나무를 우러러 보며 일년 내내 늘 푸른 맑은 미소를 잃지 않고요. 차가운 겨울엔 온몸으로 시를 쓰며 푸른 바람 노래를 함께 부를 소나무와 차나무. 그리고 제가 선 자리에서 때가 되면 저절로 떨군 솔잎으로 차나무의 잡초도 막아주고, 좋은 양분까지 되어주니 서로에게 이보다 더 좋은 만남은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만남이 있다면 소나무와 차나무 같은 푸른 만남이 귀할 것입니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맑고 좋은 손길을 만나면 차는 최상품의 차가 됩니다. 사람에게도 그런 좋은 차와 좋은 책과 좋은 벗과 좋은 스승과의 행복한 만남이 있습니다. 또한 스승이면서 벗인 사우師友와의 만남이 더없이 소중하고요. 그런 두 개의 샘물과 샘물이 서로 만나서 함께 흘러 생명을 살리는 강물이 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저에게 그런 맑은 벗이란 자연을 좋아하고 진리를 등불 삼아서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문득 드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마음을 간직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몸엔 유독 힘을 잔뜩 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저는 그렇게 온몸에 힘을 빼고 있는 사람 앞에선 흔들리는 것입니다. 바이올린 명장 마틴 슐레스케가 얘기하는 하나님의 공명체가 된다는 것. 그런 공명체가 되는 맑고 푸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앞에선 어린 찻잎 앞에 섰을 때처럼 순하고 연한 여린 떨림이 가슴으로 전해져 내 안에 울리는 듯합니다. 상대로부터 내 마음 거울에 비친 그 마음을 관통해서, 그 마음과 의식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헤아리는 시간은 고요합니다. 자연을 닮은, 예수의 성품을 닮은 영혼 앞에선 저는 한 잎의 연한 잎사귀가 되어 때론 물방울이 되어 흔들리는 것입니다.


찻잎은 구증구포(九蒸九曝). 아홉 번 열을 가하고, 아홉 번 손으로 비벼야 비로소 까실한 차茶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한 김 식힌 따뜻한 물을 만나야 비로소 푸르고 구수한 아득한 그리움의 차향을 머금은 한 잔의 차가 됩니다. 옛부터 책을 벗 삼은 선비들의 벗이 되어주던 고마운 차茶. 피를 맑게 하고 정신을 깨워주는 한 잔의 차茶. 여전히 그 끝에 닿은 적 없는 그리움의 차향을 따라서 이 4월의 봄날에도 하늘은 환하게 푸르고 맑고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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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잎사귀

신동숙의 글밭(133)


푸른 잎사귀




봄바람에 지는 꽃잎은
고요히 눈을 감는다


꽃 진 자리에 돋는 새순은
순한 귀를 연다


가만가만 꽃잎이 눈을 감으면
공평하게 열리는 푸른 잎사귀


여리고 순한 귀를 기울여
투명한 하늘에 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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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은 의리, 누나는 정의, 가정엔 평화를

신동숙의 글밭(132)


남동생은 의리, 누나는 정의, 가정엔 평화를


여야의 거센 돌풍 속에서 21대 총선을 치른 후 이전보다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결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지도상으로는 파란색이 더 많이 보였기에 그래도 한국은 희망이 있습니다. 선거 전에 울산의 어느 시장 상인의 인터뷰에서 "나라를 팔아 먹어도 저는 새누리당이예요."라고 해서 파문을 일으킨 곳이, 바로 제가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처음엔 상인의 말에 저 역시 참 기가 찬다 싶었습니다. 어리석어도 그 만큼 어리석을까 싶은 답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울산은 다른 세상,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마을입니다.


총선 전날 부산에 살고 있는 남동생의 네 식구가 울산으로 놀러왔습니다. 누나 곁에 살고 있는 엄마댁을 찾은 것입니다. 남동생은 매형을 보며 반갑게 악수를 하더니, 걸어 오는 폼과 얼굴이 윤석열 검찰 총장을 닮았다며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코로나19로 수영장이 문을 닫으면서 남편은 살이 제법 찐 것입니다. 처남의 말에 남편은 웃기만 합니다. 내심 식은 땀이 날 거 같은 남편에게 희망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여기서 더 찌면 윤석열이고, 빼면 소지섭이라고". 그랬더니, 옆에 앉은 올케가 웃으면서, "에이~ 그 정도는 아니예요!"합니다. 


이어서 누나인 제가 윤석열 검찰 총장 장모의 부동산 비리 얘기를 꺼내려고 했더니, 남동생과 올케는 똑같이, "장모가 한 일을 사위가 어떻게 아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조국 전 장관과 그의 아내에 대해선 비난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남동생은 자기는 윤석열 총장이 좋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들 안에서만 해도 이렇게 서로가 뜻이 다른 것입니다. 그렇게 뜻이 달라도 친정엄마가 정성스레 차려주신 갈비찜과 제피장과 봄나물 반찬은 맛있기만 합니다.


눈치를 채셨겠지만 제가 태어나서 학창시절을 보낸 곳은 부산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보았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서대신동 로터리에 그 만큼 많은 인파를 처음 보고 놀랐던 일입니다. 김영삼 후보의 연설을 들으려 몰려든 수많은 인파에 마음이 들뜨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태우 후보의 "우리가 남이가!" 유행어에 진한 결속력을 느끼던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살던 집이 대학교 근처에 있다 보니 최루탄 냄새가 나기도 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또 대학생들 데모하는갑다." 하시던 얘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부산의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무조건 그 당시의 여당을 지지했습니다. 저도 그런 모습을 자연스레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을 국어국문학과를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학과방에선 한겨레 신문만 받아 보았고, 선배들이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입생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동제를 하던 가을에는 모르고 선배들을 따라서 거리 행진을 나갔다가 얼떨결에 놀라서 함께 뛰기도 했습니다. 1학년 성적은 학사 경고를 안받을 정도만 하면 된다는 선배님들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루의 수업을 마치면 1학년이었던 우리 동기들은 열심히 학회 선배들을 조용히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다음 학년부터 학부제가 시행되면서, 97학번들부터는 1학년 때 성적순으로, 2학년부터 국문과와 한문과로 나뉘게 되면서, 차츰 그런 공의로운 모습들은 학교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학년 학과방과 졸업 때까지 시를 쓰던 동아리방에서 선배들의 기타 반주에 맞춰 따라 불렀던 민중노래들이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개표를 하던 밤이었습니다. 친정집 거실에서 저녁밥을 먹은 후, 밥상에 이어서 조촐한 술상을 놓고 온식구가 둘러 앉아 있었습니다. 지금의 남편과 저는 노무현 후보를 찍었고, 엄마와 남동생은 무조건 아버지를 따라서 한나라당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텔레비젼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 앉으시고, 저는 마주앉다 보니 등 뒤로 힐끔 힐끔 개표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서로가 원하는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한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저도 모르게 그만, '만세'를 외치며 함박웃음을 터뜨린 것입니다. 그때는 제 나이가 어려서 일순간 남동생과 아버지의 표정을 먼저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 잠시 싸늘해졌습니다. 남동생이 먼저 조용히 말문을 열었습니다. "누나 니는 눈치도 없나." 그제서야 아버지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시진 않으셨지만, 제 눈을 못 마주치시며 고개를 떨구시고는 침통해 하시는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로 2013년 18대 대통령 선거 운동 때 길거리에서 받으신, 박근혜 후보의 전단지 얼굴 사진을 아버지는 거실벽에 붙이셨습니다. 평소에 니스칠을 주기적으로 하시며, 못질도 아껴서 꼭 필요한 자리에만 하시던 말끔한 거실의 나무벽에 테이프로,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면 눈높이 정도에 붙여진 박근혜의 웃는 얼굴. 친정집에 내려갈 때마다 저는 박근혜의 웃는 얼굴을  봐야만 했습니다. 2014년 세월호가 터지고 촛불 집회를 할 때에도 박근혜의 얼굴은 늘 그 자리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해가 잘 들지 않던 거실이라 그런지 몇 해가 지나도록 전단지 사진은 색도 바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박근혜가 탄핵이 되었을 때에도, 아버지가 교통 사고로 돌아가신 후에도,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사진을 떼지 않았습니다. 동*개발의 무자비한 재개발로 마지막으로 몇 안남았던 우리집이 철거가 되던 날이 되어서야, 박근혜의 사진은 불과 20여 년 전에 지어진 나무벽과 하나가 되어 함께 뜯겨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21대 총선을 치르면서 친정엄마에게 제 나름 최선을 다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드렸습니다. 코로나19 대응으로 외국에선 한국의 문재인 정부를 두고 지구를 지켜주어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친정엄마는 "그래 그래" 잘 들으시고는 결국 딴소리를 하십니다. "난 그래도 하늘나라에 있는 너거 아부지 따라한다."가 굽히지 않으시는 친정엄마의 뜻입니다. 젊은 남동생도 생전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 자녀의 도리이자 의리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누나가 정의를 말하면, 남동생과 친정엄마는 의리를 얘기합니다. 남동생이 탤런트 김보성 못지 않은 의리파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학 시절에 학생 회장으로 추천된 남동생은 극구 사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의원이라도 해야한다면서 선후배 동기들이 밀어준 일이 있었습니다. 경합을 붙었던 상대 후보는 이미 그 전 해에 대의원 경력도 있는 유능하고 유력한 선배였다고 합니다. 투표 결과는 남동생의 승리였습니다. 그날 함께 투표 운동을 했던 한 팀의 학우들이 축하주를 마시러 가자며 모두가 승리의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생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유능한 선배가 떨어지고 자기가 당선이 된 것이 아닌데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낙선한 그 선배의 마음에 얼마나 상심이 클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지들을 다 돌려보낸 후, 대의원에 당선이 된 남동생은 그 낙담한 선배 곁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말없이 그렇게 둘이서 밤을 지새었다고 합니다.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평소에도 마음이 어질고 그렇게 따뜻하고 의리가 있습니다. 어쩔 때는 정의만을 외치는  누나가 부끄러울 만큼 남동생의 마음은 어진 것입니다. 대의원 시절 연말 정산에선 가장 큰 2절지에 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두고 10원 단위까지 꼼꼼이 적어서 학우들 앞에서 발표를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날의 사건으로 학우들로부터 더욱 신뢰와 존경까지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졸업을 한 달 남겨 놓고 서울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된 남동생이 집에 와서 감동 받은 얘기를 해온 적이 있습니다. 면접 보러 가던 날 학우들이 대학교 정문 위에 가로로 대형 플랭카드를 붙여 주었다며... <장하다! 신동ㅇ! ㅇㅇㅇ대학의 자랑!>


그런 자랑스러운 남동생이 21대 총선 전에 울산 누나 곁에 사는 친정엄마께 꼭 미통당을 찍어야 한다며 당부한 후 내려간 것입니다. 누나에겐 총선에 대해선 한 마디 말도 안하고, 웃으며 막걸리도 마시고 옹심이 칼국수가 맛있다며 재밌게 어울려 놀던 남동생과 올케는 결국 열렬한 미통당인 것입니다. 한 가정 안에서도 이렇게 서로가 뜻이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서로의 투표 자유권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을 만큼 성숙한 가정이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이미 갈등과 다툼의 터널을 지나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은 평행선과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할 지도 모릅니다. 가족들과의 반가운 만남이 코로나19 위기 상황 안에서, 서로가 접촉을 조심하면서, 그럼에도 남동생과 올케와 조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저 반갑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한 것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 살아 생전에 넌지시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왜 그리 싫어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맨날 허~ 웃기만 하고 바보아이가!" 저는 속으로 우리 아부지가 사람 하나는 참 잘 보시네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서 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런 바보가 참 좋다고, 바보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바보 이태석 신부님처럼, 우리나라에는 정치인 중에서도 바보가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살맛 나고 행복하다고. 참으로 사람 냄새 나는 사람, 사람다운 사람이라서, 대통령이면서 국민 앞에서 지혜로운 바보가 될 수 있다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있던 날, 남편은 저녁 퇴근길에 검은 비닐 봉투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막걸리 한 병과 캔 사이다 하나가 나옵니다. 평소에는 술을 입에도 안 대던 사람입니다. 텔레비젼이 켜진 방문 밖 벽에 기대어 두 개를 섞어 마시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 한 번 울고, 출가하려고 떠났던 저 때문에 두 번 울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에 눈물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저녁 반주로 막걸리와 와인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울산에 올라오는 날이면 남동생은 매형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잊지 않고 사갖고 옵니다. 그리고 함께 마십니다. 남편은 넌지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김해 봉하마을에 내려가서 노무현 대통령님이 따라주시는 막걸리를 꼭 한 번 마시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인터넷에서 사진을 뒤진 적이 있습니다. 논둑길 앞에 앉아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따라주시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평소 제가 그리워하며 좋아하는 모습입니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울산, 부산, 대구, 경상, 강원 지역의 분홍색을 보고서 저 역시 순간 실망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염려가 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예상대로 파란색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한 것입니다. 저는 비록 민주 정의파 파란색이지만, 옛어른들의 의리를 이용해 거짓 선동한 분홍색 당원들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분홍색 안에서 살아가는 선한 사람들은 가족과 이웃으로 끌어 안으려 합니다. 


어쩌면 자칫 파란색이 오만으로 탈선하려고 할 때마다, 견인과 견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분홍색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사회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나라 안에는 여당과 야당이 둘 다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더불어 정의와 의리가 나란히 함께 걸어가는 평화로운 가정과 평화로운 나라를 그려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누구나 주인이 되는 자유와 평화의 이 땅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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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은 불편해도 마음만은 행복합니다

신동숙의 글밭(131)

생활은 불편해도 마음만은 행복합니다

생활이 불편해졌습니다. 제 가까이 불편한 것은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것과 경제 활동과 만남이 수축된 일입니다. 그리고 멀리는 코로나19로 다른 나라들에선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땅에 묻히는 이들이 많다는 소식들로 마음이 아프고 불편합니다. 그리고 현 상황이 얼마나 장기화 될 지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과 이 시기가 지나가더래도 이후에 많은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마음을 무겁게 누릅니다. 이런 상황은 제 개인의 불편함을 넘어서 전세계인들의 생활이 다 함께 불편해졌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의 한 가운데서 더욱 빛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것들로 인해 마음만은 행복합니다. 

한국의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시골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건물들 틈새로 보이는, 부드러운 산능선과 너른 들녘과 실핏줄처럼 뻗은 물줄기들, 눈만 돌리면 산은 있는 모습 그대로 한 폭의 수묵화가 되는 나라. 전세계의 공장 생산 활동이 중단되거나 줄어들면서 유난히 맑은 맨얼굴을 드러낸 봄하늘은 가을에만 푸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올 봄에 피어난 꽃들은 모처럼 맘껏 맑은 숨을 쉬었구나 생각하니 늘 자연에 미안하던 마음 한 구석이 구름 걷히듯 순간 맑게 개이기도 하였습니다. 건물들이 빽빽한 보도블럭 틈새에서도 해맑게 피어나는 민들레와 제비꽃을 보면서, 척박한 땅 아프리카와 남인도인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위기 속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고통 받고 있을 그들의 눈물이 이역만리 떨어진 제 마음까지 무겁게 누르는 것입니다. 지구인들은 모두가 하나의 태양과 하나의 하늘과 하나의 바다 그리고 바다 속 깊이 하나의 땅으로 연결되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이기 때문입니다. 저 멀리 있는 나라에 정부의 탐진치(욕심, 분노, 어리석음)가 든 몽둥이와 발길질로 속절없이 쓰러지고 제압을 받고 있는 불쌍한 국민들이 눈에 밟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나라가 아름다운 것은, 제가 살고 있는 먼 변방에까지 다정한 사람의 온기처럼 느껴지는, 한국 현 정부의 개방성과 투명성입니다. 마치 숨 쉬기에 맑고 푸른 하늘 같아서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루를 살다가 문득 팔꿈치 안쪽으로 눈물을 훔칠 만큼 고마운 마음이 제 안에 출렁이는 것입니다. 세월호 6주기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의 '누구도 속절없이 보내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사실은,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제 안에서 이미 끊임없이 들려오던 소리였습니다. 한국의 현 정부가 국민들 한 사람의 손도 놓치 않으려 고된 노동의 길을 선택했구나 하는데서 오는 든든함과 고마움은 한국의 현 정부와 국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점점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며 뿌듯한 마음입니다.

한국의 자연과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한결같은 모습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까지도 마음의 행복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투명성과 개방성으로 한결같이 신뢰와 믿음을 지켜 가고 있는 현 정부의 그 한 마음이 인간적으로 사무치도록 고마운 것입니다. 자연과 정치와 종교와 한 개인의 성장과 건강 지표가 곧 맑음의 투명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열린 개방성임을 지혜로운 선현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얘기해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외신에선 한국의 문재인 정부를 두고, 지구를 지켜주어서 고맙다는 찬사와 지원 요청을 보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대응과 상황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지켜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이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전세계의 관제탑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일본도 발버둥을 치면서도 더는 부인하지 못할 엄연한 사실입니다. 세계 경제와 금융의 관제탑이던 미국에서도 진단키트 지원을 한국에 요청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트럼프 정부의 나약해 보이는 듯한 모습에선, 왜 저럴까 싶은 끝까지 견지하는 입장입니다. 평소에 경제와 문화와 국민 의식이 앞선 유럽의 각국들 프랑스, 독일, 영국, 이스라엘 정부 등도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모범으로 삼아 적절히 따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전세계에 걸쳐진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한 생명과 국가와 지구를 살리는 것은 '누구도 속절없이 보내지 않겠다.'는 정책자의 그 한 마음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 마음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처음이자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본질적인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정책자의 마음이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던 예수의 그 한 마음처럼 빛과 같다면, 아무리 불편한 땅도 마음만은 천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 눈으로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빕빕빕 안내 문자 소리가 빛빛빛으로 자가 번역되는 모습에 혼자서 실없는 웃음을 흘리기도 합니다.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 다소 불편하더래도 마음만은 행복할 수 있는 고마운 세상. 세계의 정상들이 거듭 한국의 정책자로부터 배우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 한 마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정부와 국가의 유일한 존재 이유와 목적은, 국민의 한 사람도 져버리지 않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 처음이자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정책자의 유일하고도 책임감 있는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한 사람의 중요성은 코로나19가 무섭도록 우리에게 상기 시켜주었습니다. 전세계를 뒤덮은 전염은 불과 몇 달 전의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에게 요구되는 개인의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취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사실입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 분량이 적어서 홀가분한 날의 기분처럼, 사실 한국 정부가 국민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정부는 지금껏 봉쇄령과 이동금지령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정책자들과 공무원들과 의료진들과 봉사자들의 발빠른 대응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빨리 움직임으로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와 여전히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제 주위를 둘러보면, 집 안에서는 핸드폰 좀 그만하라며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는 것 빼고는 너무나 평안합니다. 학생들에게는 학업의 부담도 없는 이 자유로운 시기에 핸드폰만 없다면 아이들의 창의성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혼자서 해봅니다. 아이들은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면서, 다시 자더래도 일단은 아침 9시면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앉습니다. 초등학생은 10여 분 정도의 강의를 6개, 중학생은 그보다 좀 더 분량이 긴 강의를 9개 정도 듣습니다. 그 시간 동안은 엄마도 약간 숨통이 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경제 활동과 성장과 수입은 줄었지만, 전세계의 경제가 수축되었음을 이제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틈틈이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매 순간 흔들리면서도 제 스스로가 마음을 조율하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은 제 몸의 건강과 행복과 이웃과 나라와 지구를 지키는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봉쇄령도 이동 제한 명령도 없는 한국 정부의 자유로우면서도 책임감 있는, 자혜로운 방침 속에서 제 자신도 자칫 국가 비상 사태가 맞나 싶은 안일한 마음이 순간 들 정도입니다. 그럴 때면, 개방성과 투명성을 지켜 가고 있는 정부의 마음을 다시금 해처럼 떠올립니다. 이제는 정부가 나를 믿어주고 있구나 하는 마음도 듭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져버리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마음이 '마스크 쓰기'와 이번 21대 총선을 치르며 줄서기의 '사회적 거리두기'에서도 거듭 서로가 확인을 하였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숨은 분들의 어진 마음에서 책임감 있는 사랑을 느낍니다. 고맙고 아름다운 마음들입니다. 자유로운 가운데 여전히 제 자신도 나 한 사람쯤이야 하는 가벼운 마음이 들려고 할 때마다 코로나19가 한 사람으로부터 전파되었다는 무거운 사실을 거듭 상기 시키려고 합니다.

눈만 돌리면 아름답고 고마운 엄마의 품 속 같은 한국의 자연입니다. 코로나19로 지구의 2차 산업 생산 공장이 멈추었더니 올해의 봄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맑습니다. 오늘도 집에서 아이들과 같이 밥과 간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쉽게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대형 비닐봉투에 눌러 담으면서, 한편 죄를 짓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결같은 자연은 이 봄을 구석구석까지 꽃동산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꽃이 진 자리마다 연둣빛 순이 푸릅니다. 묵묵히 아름다운 이 땅에서 어찌 나쁜 마음이 들 수 있을까 싶어서, 선한 이 땅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운 것입니다. 이 봄날에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를 읽다가 더불어 나누고픈 구절이 있어서 올립니다.

'까비르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꽃을 보러 정원으로 가지 말라.
그대 몸 안에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 개의 꽃잎을 안고 있다.
그 수천 개의 꽃잎 위에 앉으라.
수천 개의 그 꽃잎 위에 앉아서
정원 안팎으로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움을 보라.'

안으로 마음의 흐름을 살피는 일, 우리는 이것을 일과 삼아서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최초의 한 생각에서 싹튼다. 이 최초의 한 생각을 지켜보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 문학의 숲,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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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채꽃과 노란 리본

신동숙의 글밭(130)


노란 유채꽃과 노란 리본


노란 유채꽃이 한껏 노랗게 피어나는 4월의 봄날에,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환해지는, 수학여행길에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떠올리다 보면, 깊은 바다 속에서도 봄이 피어오를 수 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바다의 그 깊이 만큼 하늘의 그 공평한 햇살은 깊이 내려가서, 바다도 하늘도 더불어 푸르고 따스한 봄날이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까지 학생 곁을 떠나지 않은 자애로운 선생님이 엄마처럼 함께 계셨기에. 식어가는 친구의 몸을 친구와 친구가 서로를 꼭 끌어 안으며 형제 자매처럼 함께 있었기에. 함께 걸었을 생의 그 마지막 길에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피를 나눈 가족처럼 다 함께 있었기에.


제 프로필 사진에 노란 리본을 달던 날, 시를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지우고 또 고치고 내리 이틀을 세월호 304명의 목숨들과 함께 숨을 쉬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완성한 듯한 시를 결국 수장하고 말았습니다. 그 옛날에도 그랬습니다. 아프게 적었던 시는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시를 쓴 제 자신 조차도 이제는 내용을 모릅니다.



내 안에 출렁이는 바다에는 그들을 위해 건져 올릴 단어가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밀려드는 무력감에 몸도 마음도 식물인간이 된 것 같았습니다. 만약 글에도 숨이 있다면, 숨이 멈추고. 글 한 자 쓸 수 없는, 깊은 잠이 일상을 뒤덮은 듯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 뉴스와 그날의 뉴스가 뒤범벅이 되면서, 높은 해일처럼 제 몸을 뒤덮은 듯했습니다. 슬픔과 아픔과 탐욕과 거짓과 부조리와 일말의 양심과 책임과 진실이 뒤섞인 짠 바닷물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그렇게 제 안에 바다에서는 세월을 모르고 멈춘 듯했습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 흐르는 세월은 그 숨을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강변에는 벚꽃이 흩날렸고, 꽃잎 진 자리마다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연분홍빛이 털어낸 빈 하늘을 노란 유채꽃이 채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민들레, 제비꽃, 꽃마리, 튤립, 철쭉, 유채꽃, 수수꽃다리 4월의 꽃들이 아무리 채워도 푸른 하늘 품은 여전히 넉넉하기만 합니다. 



제 자신도 한동안 바다에 잠겨 있다가 어디서 힘이 났는지, 헤엄을 치듯 미세한 몸짓이나마 파동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4월의 강변에 피어나는 꽃들과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이었습니다.


책꽂이에 꽂혀 있으면서도 펼친 적 없던 <수필>을 수수꽃다리 꽃잎처럼 펼치었습니다. 초점을 잃었던 제 두 눈이 서서히 글줄을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깊은 바닷 속으로 곧은 햇살을 비추듯 점점 더 깊이 비추려 하였습니다. 


인공호흡을 하듯 멈춘 숨에 푸른 숨을 불어 넣으려, 글줄을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 좁다란 산책길을 따라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닫혀져 있던 무거운 가슴으로 푸른 하늘이 봄햇살이 들어옴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짐과 따스함입니다.


문득 4월의 차가운 바다가, 이 생의 마지막 숨에게는, 이 땅에 맨 처음 생명을 잉태한 자궁의 평온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붉은 아침해처럼 떠올랐습니다. 살아 있는 자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 깊은 바닷 속 마지막 숨을, 그 곱디 고운 청춘들의 마지막 숨을 거둔 바로 그 순간 만큼은, 깊고 푸른 바다가 자애로운 엄마의 품이었기를. 


살아 있기에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수많은 이들의 따스한 가슴에 피운 노란 리본이 노란 유채꽃과 무엇이 다를까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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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엔 가시도 순하다

신동숙의 글밭(129)


봄날엔 가시도 순하다





두릅나무에선 두릅나무 순이
엉게나무에선 엉게나무 순이
제피나무에선 제피나무 순이


가시나무에 돋은 어린잎들마다
봄날엔 가시도 순하다


여리고 순한 가시잎을
끓는 물에 데치고
양념장에 버무린다


가끔은 뾰족해진 내 가슴에서 돋아나는 순도
여리고 순할 때 부지런히 뜯어서
씁쓸한 약으로 나물반찬으로


끓는 가슴에 데치고
맑은 눈물로 씻어서
사색의 양념장에 버무릴까


감사와 평화의 기도손 모아
순한 쌈으로 저녁밥상에 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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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안에도 양심이 살고 있어요

신동숙의 글밭(128)


핸드폰 안에도 양심이 살고 있어요


집 밖에선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고, 집 안에선 자녀들 손 안에 든 핸드폰과 전쟁 중입니다. 바이러스와 핸드폰 속의 온라인 세상, 둘 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처럼, 진리의 성령처럼, 부활하신 예수가 공평하게 주고 가신 양심처럼, 이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사라진 적 없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핸드폰 속 온라인 세상은, 없는 듯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입니다. 


요즘 내내 자유로워야 할 양심이 가볍지 않고 바윗돌을 얹은 듯 무거운 이유를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풀리지 않는 체증처럼 답답한 마음을 스스로 헤집어 봅니다. 그 답은 마음 밖에서나 타인이 아닌, 언제나 제 마음에 비친 스스로의 내면에서 찾으려는 게 그 시작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 마음이 올록볼록 거울이 아닌, 되도록이면 왜곡된 굴곡이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투명한 유리창처럼 가능한한 맑으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언제나 하늘을 바라봅니다. 흐르는 물에 마음을 비추어 봅니다. 이제는 눈을 감아도 보이는 산에 나무를 보고, 보도블럭 틈새에 핀 작은 풀꽃에도 제 마음을 수시로 비추어 봅니다. 그러다 보면 풀잎에 앉은 투명한 이슬 앞에서도 경건해집니다.


자연 속에서 제 자신이 먼저 제 발로 바로 서려는 일이 이 세상의 사랑과 평화를 위한 첫걸음임을 늘 잊지 않으려 합니다.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선택할 수록 나중에 후회를 덜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선현의 말씀을 제 어둔 가슴에 별빛처럼 떠올립니다. 자연이 들려 주는 경전의 말씀은 언제나 첫 마음, 근본, 본질, 양심을 가리키고 있으니까요.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는 확진자들을 감당키 버거운 의료진들의 마음이 그래도 제가 느끼는 무게감보다는 더 무거울 것입니다. 몸과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평안을 위한 지지와 응원과 도움의 손길들이 흐르는 강물처럼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에 비해서 주로 자녀들과 집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더 늦잠을 자고 더 많은 밥을 먹고 몸은 더 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저도 사람이다 보니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세상과 깊은 연대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릴 적 골목에서 동무들과 뛰어 놀며, 작은 마음이 한껏 하늘을 날던 어린시절이 자주 생각납니다. 집 안에 있던 기억은 희미해도, 옆집으로 모래 놀이터로 골목으로 뒷산으로 놀러 다니느라 하루해가 짧았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자연 속에서 골목에서 뛰놀던 그때는 그게 행복인 줄도 몰랐지만, 그처럼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집 안에 갇혀서 핸드폰과 컴퓨터만 들여다 보려는 어린 자녀들에게 뭔가 커다란 몹쓸 죄를 짓고 있다는 마음까지 듭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 지 막막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으니까요.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며 또 깊은 소용돌이 속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배움과 사색과 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물질의 풍요를 위해서 숨가쁘게 앞만 보며 달려온, 경제 성장과 기술과 과학과 자본대중문화의 발전이 부려 놓은, 산업쓰레기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핸드폰 중독과 온라인 범죄와 근본과 본질의 양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비본질적인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합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우리네 어른들의 옛 말씀이 가슴 속에서 여린 숨을 쉽니다. 이 답답한 봄날에도 시멘트 바닥 돌 틈을 뚫고 피어 올라오는 민들레와 냉이꽃이 웃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연둣빛 싹이 오르는 뒷산과 강변에 풀들은 그 어디라도 제 발을 딛고 피어납니다. 바윗돌을 부스러뜨리며 피어나는 모습이 착하기만 합니다.


요즘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달고나 커피를 본 딸아이는 밤잠도 안자고 달고나 커피를 만든다며 커피 가루를 휘젓고 있습니다. 보면 본 대로 하고픈 게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음식 먹방 채널에서 간장 게장을 본 아들은 간장 게장을 사달라며 아빠를 조릅니다. 보면 본 대로 하고픈 게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자라나는 아이들의 눈과 의식과 마음을 온통 빼앗는 핸드폰 안에 온라인 세상을, 엄마는 바다처럼 하늘처럼 바라봅니다. 망망대해와 망망대천이라 하더래도 그곳에도 별처럼 꽃처럼 선한 생명들이 살고 있을 테니까요. 이제는 온라인 개학으로 학업까지 핸드폰과 컴퓨터 안에 온라인 세상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씨앗처럼 심어 주고픈 하나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하늘로 오르시면서 꼭 한 가지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과 같은 양심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글을 아는 이나 모르는 이나, 이방인이나 타종교인이나, 믿음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마다 공평하게 주신 양심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무너지려 주저앉으려는, 혼돈과 어둠 속에서 한 점 별빛처럼 빛나는 양심. 바윗돌을 깨부수어도 착하다 용하다 칭찬 받는 한 송이 꽃과 어린 소나무처럼 푸른 양심. 탐욕과 어리석음의 구름에 잠시 가려져 있더래도, 하늘을 가린 부끄러운 제 손바닥 하나 스스로 치울 수 있다면 비로소 드러나는 맑은 하늘 같은 양심을.


빕빕빕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관련해서 수시로 울리던 핸드폰 비상벨 소리는 전국적으로 어느 누구에게서나 평등하게 울렸습니다. 그로인해 내 손 안에 있는 핸드폰이 비밀스러운 독립된 개체가 아님을 거듭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양심의 경종처럼 빕빕빕 소리를 울리게 하는, 양심의 별빛처럼 빛빛빛으로 빛나는, 하나의 중앙 통제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우리들의 가슴에 심어주신 양심으로 통제하시려는 하나님 사랑과 지혜의 방식과 닮아 있는 듯합니다. 내 손 안에 든 핸드폰과 컴퓨터의 온라인 세상은 결코 혼자만의 사적인 영역이 아님을 자녀들에게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매 순간 다가오는 혼돈과 어둔 마음 속에서 저 멀리 빛나는 한 점 별빛 같은 양심을 바라볼 수 있기를.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예수의 말씀을 등불처럼 떠올릴 수 있기를. 예수를 품는 가슴마다 샘물처럼 울컥 눈물이 흐르면 흘러 넘쳐 세상으로 흐르는 물길이 나서 생명을 적실 수 있기를.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온라인 세상의 모든 생명들에게 별빛처럼 때론 해처럼 작은 촛불처럼 양심이 살아갈 수 있기를. 자라나는 어린 자녀들에게 얘기를 해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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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신동숙의 글밭(127)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언젠부터인가 저의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생겼어요. 일어나서, 씻고, 먹고, 비우고, 만나고, 일을 하고, 산책을 하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놀고, 글을 쓰고, 잠을 자고, 꿈을 꾸는 등 어느 것 하나 우리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 없지만요. 


그래도 이 시간을 위해서 먹고, 이 시간을 위해서 읽으며, 이 시간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면서 어느덧 이 시간은 저의 하루가 품은 소중한 알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그처럼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은,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이제는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겠지만, 짧더래도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요. 윤동주 시인의 다 헤아리지 못하는 별처럼, 다 헤아릴 수 없는 봄날의 꽃잎처럼 그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 속의 시간이 될 수 있어요.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속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루에도 틈틈이 가만히 앉아 있으려 합니다. 주위로부터 가까운 기계음과 말소리는 되도록이면 멀리하고, 새소리와 물소리는 가까이 있으면 좋겠지만, 여건이 조금 부족하고 아쉽더래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도심 속이라 해도 조용한 실내 공간이 있다면 충분합니다. 


그동안 제겐 그런 장소가 아침마다 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선 후 조용해진 집이었습니다. 때론 차 안이 되기도 합니다. 맑은 숨을 쉬어야 하니까 창문을 살짝 열어 놓아요. 그리고 허리를 조금 세우고 두 손은 가만히 모아서 내려놓은 후 몸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앉아 있어요. 호흡을 편안하게 숨결을 고르다 보면 몸도 한결 편안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볕이 좋은 아침에는 거실 마루에 투명한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에 등을 쬐며 앉아 있곤 합니다. 따뜻한 햇살이 온몸을 둥글게 감싸면 뼛속까지 따뜻해집니다. 그대로 마음이 녹아서 흘러요. 어둔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뭉쳐 있었는지도 몰랐던, 보이지 않는 모르는 그 무언가가 얼음이 녹는 듯 녹아서 풀리기도 합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서 모두 집에 있다 보니 조용할 틈이 없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집을 나왔습니다. 대문 옆 돌담 옆으로 주차한 차 안에 앉아 있기로 했습니다. 그대로 차를 몰아서 한적한 나무 아래를 찾아서 시골길이든 산길로든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까, 아무렴 홀로 있는 곳이면 그저 차 안이라도 좋습니다. 저 멀리 집 안에선 티비 소리와 아들의 웃음 소리가 담을 넘습니다.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이 누군가에겐 기도의 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무언가를 간구하는 기도가 아닌 침묵의 기도예요.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이니까요. 몸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아무거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단지 숨을 고른답니다. 그저 숨만 편안하게 쉬려는 한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숨이 거칠어지면 몸이 가만 앉아 있지 못하니까요. 숨이 들뜨면 몸도 마음도 들뜨니까요. 시간이 흐를 수록 채우려 하기보다 비우려는 고요와 침묵의 기도가 됩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힘을 빼면서 몸 어딘가에 뭉쳐 있는 근육과 긴장을 하나씩 풀고 또 풉니다. 들뜨는 마음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일어나는 마음과 생각을 물결처럼 흘려 보냅니다. 흐르는 물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마음도 생각도 멈출 수는 없기에 단지 바라보면서 흐르게 할 뿐입니다. 그렇게 고요히 바라보다 보면 몸의 감각과 마음과 의식이 점점 맑아집니다. 


숨줄은 몸을 가만히 한 자리에 앉혀 두는 좋은 줄이 됩니다.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호흡을 고르다 보면 숨을 따라서 그리움이 흐릅니다. 어쩌면 제 그리움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어느 한 점이, 이 세상 첫 마음이, 지금까지 한시도 제 그리움을 놓아준 적이 없으니까요. 영혼의 탯줄인 듯 그리움의 줄은 놓여난 적이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잠자는 시간과 놀이 시간 정도가 휴식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은 누워서 잠을 자고 있지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꿈자리가 사납다는 말을 듣거나 제 자신이 얘기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잠자는 시간도 때론 온전한 휴식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와 뉴스의 강물 위에 둥둥 작은배를 띄운 후 머무는 고요한 시간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오늘을 살아낸 후 잠을 자고 내일을 새롭게 시작하던 자연스러운 일이, 언젠부턴가 둥근 해와 달의 흐름처럼 매끄럽게 굴러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딘가 막히고 어딘가 매이고 마음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몸도 무거워지고 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치유책으로 혼자서 공상 과학 영화 같은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캡슐 같은 통에 들어가서 가만히 누워 있으면, 몸도 마음도 정신도 재생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그런 허무맹랑한 바램이 길을 보여준 것일까요. 어쩌면 몸과 마음과 정신까지 재생시키는 캡슐 안에 누워 있는 일이 문득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하고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가 품은 소중한 알처럼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동안에, 저는 가슴으로 아름다운 마음의 얼굴 하나를 해처럼 별처럼 떠올립니다. 


아름다운 마음의 예수를 품습니다. 또는 예수를 따르는 이의 고운 얼굴을 품습니다. 그러면 춥고 어둡던 방에 촛불을 켠 듯 따뜻해지고 환한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때론 그 따뜻한 사랑에 눈물이 샘물처럼 차오르기도 합니다. 비로소 제 영혼이 온전한 쉼을 얻는 에덴 동산의 안식을 누리는 고요한 사랑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재생된 몸과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를 살아가려 합니다. 


오늘 밤에도 부활하신 예수가 베드로에게 물었던 첫 말씀이 별처럼 빛납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저에게 예수는 구원보다는 사랑입니다.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홀로 고요한 침묵의 시간, 관상의 기도 시간 동안, 온전한 진리와 사랑이신 예수를 제 가난한 가슴에 씨앗처럼 품다 보면, 제 마음에도 사랑이 꽃처럼 피어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봄이 오면 저절로 피어나는 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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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꽃비라 하고

신동숙의 글밭(126)


누구는 꽃비라 하고




누구는 꽃비라 하고
누구는 꽃눈이라 하고
누구는 눈꽃이라 해도


알겠다
알아듣겠다
귀를 열어서


하늘 가득 춤추는
자유로운 꽃바람이나
바람꽃이나


보인다
집에서도 보인다

눈을 감아도


내 안에 펼쳐진 풍경이

푸르른 하늘인 걸


벚님들 

말 한 마디에


마음에도
꽃이 피고 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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