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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한우충동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6) 한우충동 책을 읽다가 ‘한우충동’(汗牛充棟)이라는 말을 만났다. 낯설어서 찾아보니 ‘棟’이 ‘용마루 동’이었다. ‘소가 땀을 흘리고 대들보까지 가득 찬다.’는 뜻으로, 책을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리고 집에 쌓으면 대들보까지 닿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만큼 지니고 있는 책이 많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글을 쓰며 피식 웃음이 났던 것은 ‘한우충동’이 ‘한우를 먹고 싶은 충동’은 아니었군, 생뚱맞은 생각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어디 한우충동을 부러워할 일이겠는가? 한두 권이라도, 한두 줄이라도 내 것으로 삼아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터, 아무리 집안 가득 책을 쌓아두어도 그것이 내 삶과 상관이 없다면 책은 무용지물, 다만 나를 꾸며줄 액세서리일 뿐이다. 성경책.. 2020. 2. 10.
함께 사는 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5) 함께 사는 한 생생했다. 꿈을 꾸는 내내 꿈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있었다. 그가 살고 있는 미국이었다. 무슨 급한 일이었는지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채 나는 미국에 있었고, 덕분에 친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일이 많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친구는 자연스럽고도 넉넉하게 모든 것들을 도와주었다.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든든했고 고마웠고 즐거웠다. 그러다가 깼다. 무엇 그리 급한지 훌쩍 곁을 떠난 친구, 하지만 꿈으로 찾아와선 여전한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었다. 죽음이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라 했던 모리 교수의 말을 떠올린다. 함께 사는 한,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죽은 것이 아니다. 2020. 2. 9.
스미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4) 스미다 식물을 가꾸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기도 하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새롭게 보였다. 목양실 안에 있는 몇 몇 화분 중에는 난도 있는데, 어느 날 보니 난 화분이 물을 담은 양동이 안에 들어가 있었다. 사무실의 장집사님이 한 일이다 싶은데, 난 화분에 물을 주는 대신 화분을 물에 담금으로 물이 스미도록 한 것이지 싶었다. 난 화분에 물을 부어주는 것과 물이 스미도록 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나는 모른다. 하지만 단번에 쏟아 붓는 것보다는 조금씩 스미도록 하는 것이 난에 필요해서 그리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난 뿐일까? 믿음도, 은혜도, 함께 나누는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단번에 넘쳐나도록 쏟아 붓는 것보다는 시간을 잊고 알게 모르게 스미는 .. 2020. 2. 8.
깊은 두레박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3) 깊은 두레박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하루의 일과는 일정하게 시작이 되고 진행이 된다. 4시 45분 기상, 5시 30분 새벽예배, 한 시간 쯤 후에 책상에 앉는다. 새벽잠을 물리고 책상에 앉는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아침식사까지 삼가면 조용한 시간이 꽤 길게 이어진다. 2020년 들어서며 아침마다 갖는 시간이 있다. 김기석 목사님이 쓴 묵상집을 읽는다. 일용할 양식을 대하듯, 그날그날의 묵상을 따라간다. ‘365일 날숨과 들숨’이라는 부제가 적절하게 여겨진다. 참으로 두레박의 줄이 길다. 두레박의 줄이 이리도 기니 깊은 물을 길어 올린다. 맑고 시원한 물이다. 어두운 샘에서 물을 길어 환한 데 쏟아 붓는 두레박(루미), 탁하고 미지근한 물과는 다르다. 함께 길을 걷듯 천천히.. 2020. 2. 6.
가로등을 밝히는 것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2) 가로등을 밝히는 것은 정릉교회 마당으로 들어서는 초입에는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다. 국민대와 길음역 사이의 대로변에서 빠져나와 청수장으로 올라가는 길, 또 한 번 가지가 갈라지듯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롯데리아를 끼고 우회전을 한 뒤 좁은 길을 따라 올라오다 만나게 되는 예배당으로 들어서는 초입, 전봇대 바로 옆 벽돌을 쌓아 만든 허름한 기둥이 서 있다. 하필이면 교회로 들어서며 제일 먼저 만나는 되는 것이 허름한 기둥일까 생각을 하다가, 기둥 위에 등을 세우기로 했다. 기둥을 헐거나 기둥을 단장하는 대신 택한 선택이었다. 비나 눈이 와도 괜찮은 등을 찾아 기둥 위에 세웠더니 보기가 그럴듯하다. 허름한 기둥 위에 등을 얹자 기둥은 그럴듯한 가로등 받침대가 되었다. 어둠이 내.. 2020. 2. 5.
노란 손수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1) 노란 손수건 헌신이 자발적이어야 하듯 분노도 자발적이어야 한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조장 위에 분노가 서면 안 된다. 그것은 분노의 정당함을 떠나 남의 조정을 받는 것일 뿐이다. 우한에서 비롯됐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감염자가 다녀간 곳과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이 있는 곳은 한 순간에 절해고도(絶海孤島)가 된다. 누구도 다가가서는 안 되는 곳, 서둘러 문을 닫고 피해야 하는 곳으로 변한다. 현대판 나병과 다를 것이 없지 싶다. 목에 방울을 달고 다님으로 성한 이들을 피하게 해야 했던. 우한에 살던 교민들로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세상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막히고, 병의 진원지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고 말았느.. 2020. 2. 3.
나도 모르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0) 나도 모르게 군인들이 끌고 간다. 모시고 가는 것과는 다르다. 재미 삼아 내리치는 채찍에도 뚝 뚝 살점은 떨어져 나간다. 피투성이 몰골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흥미로운 눈요기일 뿐이다. 자주색 옷으로 갈아입히고 면류관을 씌운다. 희롱이다. 희롱은 당하는 자가 가장 먼저, 분명하게 느낀다. 갈대로 머리를 치며 침을 뱉는다. 속옷을 나눈다. 찢기엔 아까웠던 호지 않은 옷, 제비뽑기를 위해 속옷을 벗기는 순간은 발가벗겨지는 순간이다. 나를 가릴 것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양손과 발목에 박히는 못은 연한 살을 단숨에 꿰뚫고 들어와 뼈를 으스러뜨린다. 순간 나는 떨어지지 말아야 할 물건이 된다. 죄인들의 두목이라는 듯 두 강도 사이에 매단다. 악한 이들의 의도는 얼마나 교활하.. 2020. 2. 2.
염치(廉恥)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9) 염치(廉恥) ‘염치’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지난 해 겨울 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사순절을 맞으며 작은 책 한 권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사순절 묵상집과 대림절 묵상집 원고를 몇 번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아예 단행본으로 출판하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글의 주제도 정해진 터였다. 지켜야 할 마음 20가지와 버려야 할 마음 20가지를 묵상하자고 했다. 제안을 받으며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짧은 일정이 마음에 걸렸다. 글을 쓸 기간도 넉넉하지 않은데다가 연말연시는 교회에 여러 가지 일들이 몰려 있는 때, 마음을 집중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보다 더 조심스러운 것이 있었는데 주 독자층을 젊은이들로 생.. 2020. 2. 1.
작은 십자가를 보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8) 작은 십자가를 보며 고마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리라. 우리로서는 작은 것을 당연함으로 나누었을 뿐인데, 그 일을 고맙게 여겨 귀한 마음을 보내왔다. 상자 안에는 마음이 담긴 인사말과 함께 성구를 새긴 나무판과 십자가가 담겨 있었다. 두 가지 모두 직접 만든 것이었다. 성구가 새겨진 나무판은 교우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아가페실에 걸어두었고, 작은 십자가는 목양실 책장에 올려두었다. 평범한 십자가라 여겼는데, 오늘 새벽에 들어서며 보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슨 나무였을까, 껍질을 벗긴 나무의 흰빛은 알몸처럼 다가왔다. 십자가의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은 가시면류관을 쓰고, 못이 박히고, 창으로 찔리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무 위에 매달려 발가벗겨지는 것보다 더 .. 2020.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