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날 때부터 걸어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7) 날 때부터 걸어서 설 명절을 맞아 흩어져 있던 식구들이 어머니 집에서 모였을 때, 어머니가 봉투 하나를 가지고 오셨다. 봉투 안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사진 중에는 오래된 흑백사진들도 있었는데, 특히 예배당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에 눈이 갔다. 내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모두 보낸 고향교회의 옛 예배당과 새벽마다 종을 쳤던 종탑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었다. 당연히 사진 속 인물들에 관심이 갔는데, 옛 예배당 앞에서 찍은 두 장의 흑백사진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이제는 93세, 하지만 사진 속 한창 젊은 어머니는 두 장 모두 아기를 안고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안고 있는 아기가 누구인지를 떠올려보니 한 명은 바로 위의 형이었고,.. 2020. 1. 30. 밝은 눈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6) 밝은 눈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한국이 우승을 차지했다. 열광적 까지는 아니더라도 운동을 좋아하여 두어 중계는 지켜보았다. 젊은 선수들이 참 잘한다 싶었다. 주눅 들거나 오버하지 않고 자기 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학범 감독의 리더십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승에 칭찬이 뒤따르는 것이야 인지상정이지만, 김감독에겐 특별한 리더십이 있다고 한다. 시골 아저씨를 닮은 외모에 경기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에 앉아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어(박항서 감독과는 많이 달랐다) 언제 어떤 지시를 하나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선수들은 감독을 100퍼센트 이상 신뢰한다고 하니 그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하곤 했다. 가능하면 선수들을 골고루 기용하고, .. 2020. 1. 29. 치명적 농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5) 치명적 농담 서재 구석에 꽂혀 있던 책이 있었다. 읽고 싶어 구입을 하고는 책을 펼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사 후 되는대로 꽂은 책의 위치도 하필이면 책꽂이 구석이어서 더욱 눈에 띄지 않고 있었다. 이라는 책이었다. 분량이 제법인 원고쓰기를 마치고 모처럼 갖는 한가한 시간, 우연히 눈에 띈 책을 발견하고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얼마쯤 읽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책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내용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단어로 연결되어 그런가 싶어 눈여겨 읽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오자 아니면 탈자일까 싶어 문맥을 살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게 뭐지 하다가 페이지를 확인했더니 이런, 페이.. 2020. 1. 28. 섬년에서 촌년으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4) 섬년에서 촌년으로 짜장면이 배달되는 곳에서 살았으면. 오지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의 바람이 의외로 단순할 때가 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첫 목회지였던 단강도 예외가 아니어서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곳이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짜장면이 오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곤 한다. 강화서지방에서 말씀을 나누다가 한 목회자로부터 짜장면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섬에서 목회를 해서 당연히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곳에서 살았는데, 이번에 옮긴 곳이 강화도의 오지 마을, 그곳 또한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란다. 목사님의 딸이 학교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그랬단다. “섬년에서 촌년으로 바뀌었구나!” 고맙다, 짜장면도 배달되지 않는 곳에서 .. 2020. 1. 27. 빛바랜 시간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3) 빛바랜 시간들 첫 목회지 단강에서 지낼 때 매주 만들던 주보가 있다. 이란 소식지였다. 원고는 내가 썼고, 옮기기는 아내가 옮겼다. 특유의 지렁이 글씨체였기 때문이었다. 은 손글씨로 만든 조촐한 주보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적었다. 내게는 땅끝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물론 적을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누군가의 아픔을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늘 마음을 조심스럽게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동네에선 젊은 새댁인 준이 엄마가 주보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목사님, 욕이라도 좋으니 우리 얘기를 써 주세요.” 민들레 씨앗 퍼지듯 이야기가 번져 700여 명이 독자가 생겼고, 단강마을 이야기를 접하는 분들도 단강을 마음의 고향처럼 여겨 단강은 더욱 소중한 동네가 .. 2020. 1. 22. 초승달과 가로등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2) 초승달과 가로등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겠구나. 후미진 골목의 가로등과 새벽하늘의 초승달 어둠 속 깨어 있던 것들끼리. 2020. 1. 22. 북소리가 들리거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1) 북소리가 들리거든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무리들, 바라바가 흉악범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도 그들은 한결같다. 무리가 그렇게 외친 것을 두고 마가복음은 대제사장들이 그들을 선동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마가복음 15:11) 대제사장들의 선동, 충동, 사주, 부추김을 따랐던 것이다. 그런 무리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태엽을 감으면 감은 만큼 움직이는 인형이다. 그리도 엄청난 일을 그리도 가볍게 하다니. 말씀을 나누는 시간, 나 자신에게 이르듯 교우들에게 말한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목소리를 높이거나 춤을 추지 마세요. 그 북을 누가 치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세요.” 2020. 1. 22. 퍼즐 맞추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0) 퍼즐 맞추기 몰랐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이끄시는 방법 중에는 새로운 만남이라는 방법이 있지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두 사람과 점심 식사를 했다. 정릉교회에 부임을 한 뒤로 예배 시간에 자주 얼굴을 대하게 되는 젊은 내외가 있었다. 새벽예배는 물론 금요심야기도회에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설교 내용을 열심히 적을 만큼 예배에 집중하는 내외였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다가 두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고, 처음으로 차 한 잔을 나누게 되었다. 남편이 국민대 교수라는 것, 주일에 출석하여 섬기는 교회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점심을 약속하게 되었던 것인데, 함께 식사를 하며 .. 2020. 1. 18. 좀 좋은 거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9) 좀 좋은 거울 고흐가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 중에 거울 이야기가 있다. 지금이야 위대한 화가로 칭송과 사랑을 받지만, 살아생전 고흐는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 가난과 외로움이 그의 밥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형의 처지와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었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며 고흐는 어느 날 이렇게 쓴다. “모델을 구하지 못해서 대신 내 얼굴을 그리기 위해 일부러 좀 좋은 거울을 샀다.”(1888년 9월) 고흐의 이 짧은 한 마디 말을 떠올릴 때면 나는 먹먹해진다. 비구름에 덮인 먼 산 보듯 막막해진다. 울컥, 마음 끝이 젖어온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절대의 고독과, 물감조차도 아껴야 하는 극한의 가난, 그런 상황에서도 놓을 수 없었던 그림, 그림은 고흐와 세.. 2020. 1. 17.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