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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속 검은 사람일수록 비단 두루마기를 입는다 속 검은 사람일수록 비단 두루마기를 입는다 따끔이 속에 빤질이, 빤질이 속에 털털이, 털털이 속에 얌얌이, 이게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따끔이, 빤질이, 털털이, 얌얌이, 각각의 의미도 짐작하기 쉽지 않은 터에 그것들이 서로의 속에 있다니 마치 말의 미궁에 빠져드는 것 같다. 정답은 밤이다. 캄캄한 밤이 아니라, 가을에 익는 밤(栗) 말이다. 밤을 먹기 위해서는 따끔따끔한 가시를 벗겨야 하고, 두껍고 빤들빤들한 겉껍질을 벗겨야 하며, 그 뒤에는 작은 털이 달린 껍질을 다시 벗겨야 하고, 맨 마지막으로는 떫은맛을 지닌 속껍질을 벗겨내야 비로소, 마침내 고소하고 오들오들한 밤을 얌얌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 2016. 4. 2.
묻기 전에 따르고, 따른 뒤에 묻는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1) 묻기 전에 따르고, 따른 뒤에 묻는 “주(主) 여호와여 주(主)께서 내게 은(銀)으로 밭을 사며 증인(證人)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城)은 갈대아인(人)의 손에 붙인바 되었나이다”(예레미야 32:25). 모든 일엔 때가 있다. 어떤 일을 해야 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일을 하기에 적합한 때가 있고, 어떤 일을 삼가기에 적합한 때가 있다. 어떤 일을 해야 할 때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할 때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밭을 산다. 선지자가 밭을 사는 것 자체가 낯설거니와, 밭을 살 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벨론이 쳐들어와 성을 포위.. 2016. 3. 31.
잊힌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0) 잊힌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北便) 땅에서 인도(引導)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中)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孕胎)한 여인(女人)과 해산(解産)하는 여인(女人)이 함께 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引導)함을 입고 간구(懇求)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河水)가의 바른 길로 행(行)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長子)니라”(예레미야 31:8-9). 여기 내 마음 가라앉을 만큼 가라앉아 거반 눈물에 닿았으니 오십시오, 주님 비로든 바람으로든 폭풍우로든 무엇으로라도 오십시오 파란 떨림 나는 당신을 예감합니다 -어느 날의 기도 늘 그럴 수야 없.. 2016. 3. 24.
비는 데는 무쇠도 녹는다 비는 데는 무쇠도 녹는다 내 책상 위에는 그림 하나가 놓여 있다.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향’이다. 신약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를 형상화 한 그림으로, 거지꼴로 돌아온 아들을 다 늙은 아버지가 끌어안아주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일부러 그렇게 그린 것인지 나중의 해석이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가만히 보면 아들의 등을 감싸고 있는 아버지의 두 손은 서로 다르게 보인다. 한 손은 크고 억세게 보이는데, 다른 한 손은 보드랍고 작다. 마치 한 손은 아버지의 손 같고, 다른 한 손은 어머니의 손처럼 보인다. 거장 렘브란트가 두 손을 똑같이 그릴 재주가 없어 그렇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두 손을 이렇게 이해하곤 한다. 네 모습이 어떠하든지 얼마든지 너를 용서한다는 어머니의 마음과, .. 2016. 3. 20.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9)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너를 사랑하던 자(者)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허물이 크고 네 죄(罪)가 수다(數多)함을 인(因)하여 내가 대적(對敵)의 상(傷)하게 하는 그것으로 너를 상(傷)하게 하며 잔학(殘虐)한 자(者)의 징계(懲戒)하는 그것으로 너를 징계(懲戒) 함이어늘”(예레미야 30:14). 청령포를 찾아가네 가느다란 실핏줄이 동맥처럼 변한 길 다시 찾아가네 손바닥 만한 배 잠깐 사이 몸 비틀면 이내 딴 세상 솔숲엔 바람도 그늘도 달지만 너무 일찍 마음이 쇤 한 소년의 탄식과 눈물 가만 듣고 본 관음송이 말해주듯 어디나 송진 같은 응어리 손과 발 굳이 묶지 않아도 꽁꽁 갇힌 지상에서의 유폐 저 멀리 기차가 지나가고 강물 여전히 푸르게 흘러.. 2016. 3. 18.
술 익자 체 장수 지나간다 술 익자 체 장수 지나간다 삶은 공식이 아니라 신비다. 나이 먹으면서 우리는 그것을 배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평생 생의 학교에 다니는 코흘리개 학생들이다. 열심히 하는데도 일이 안 될 때가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데도 오히려 일이 꼬일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별로 애쓰지 않았다 싶은데도 일이 뜻대로 잘 될 때가 있다. 누가 돕기라도 하듯 술술 풀릴 때가 있다. 일이 술술 잘 되는 것을 두고 ‘술 익자 체 장수 지나간다’고 했다. ‘체’란 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밭거나 거르는데 쓰는 도구였다. 그물이 드물었던 어린 시절에는 체를 들고 나가 개울에서 고기를 잡기도 했다. 동그란 체를 대고 고기를 몰면 미꾸라지 새우 등이 걸려들었다. 대개의 경우 고기를 잡다보면 체에는 구멍이 났고 그러.. 2016. 3. 14.
깊이 뿌리를 내려라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8) 깊이 뿌리를 내려라 만군(萬軍)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捕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居)하며 전원(田園)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娶)하여 자녀(子女)를 생산(生産)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娶)하며 너희 딸로 남편(男便)을 맞아 그들로 자녀(子女)를 생산(生産)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蕃盛)하고 쇠잔(衰殘)하지 않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城邑)의 평안(平安)하기를 힘쓰고 위(爲)하여 여호와께 기도(祈禱)하라 이는 그 성(城)이 평안(平安)함으로 너희도 평안(平安)할 것임이니라 만군(萬軍)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 2016. 3. 12.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다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다 40여 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고 온 지인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꼭 필요하다 싶어 챙긴 짐들 중에서 중간에 버린 물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걷는 것이 워낙 힘들다보니 버릴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버리게 되더라는 것이다.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단다. 눈썹도 짐이 된다니, 눈썹에 무슨 무게가 있다는 것일까 싶다. 눈썹이 없는 사람도 없지만 눈썹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눈썹이라는 말과 무게라는 말은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 말이다. 그러나 ‘백 리만 걸으면 눈썹조차 무겁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눈썹도 먼 길을 걸으면 느낌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다는 것은, 먼 길을 나설 때는 눈썹조차도 빼놓고 가라는 뜻이다. ‘눈썹조차도’라.. 2016. 3. 10.
자로 사랑을 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자로 사랑을 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지금이야 대부분 미터법을 사용하지만 이전에는 치(寸), 자(尺), 척(尺) 등 지금과는 다른 단위를 썼다. 거리를 재는 방법도 달라져서 요즘은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도 기계를 통해 대번 거리를 알아내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측정법이 좋아져도 잴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있다. 하늘의 높이나 크기를 누가 잴 수 있을까. 바라볼 뿐 감히 잴 수는 없다. 그런데도 자기 손에 자 하나 들었다고 함부로 하늘을 재고 그 크기가 얼마라고 자신 있게 떠벌리는 종교인들이 더러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도 잴 수가 없다. 기쁨과 슬픔 등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잴 수가 있겠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잴.. 2016.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