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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20)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善)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行)하라 너희 심령(心靈)이 평강(平康)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對答)이 우리는 그리로 행(行)치 않겠노라 하였으며”(예레미야 6:16) 신학생 시절, 친구가 살던 한남동을 찾을 때마다 자주 들르던 찻집이 있었다. 2층에 자리 잡은 ‘태’(胎)라는 이름의 작은 찻집이었는데, 창가 쪽에 앉으면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로 순천향대학병원 정문이 마주 보였다. 붉게 물든 사람 얼굴만 한 플라타너스 잎이 툭 툭 지는 모습을 창문 밖으로 내다보는, 찬비 내리는 늦가을의 정취가 특히 뛰어난 곳이었다. 후덕한 인상의 찻집 주인이 연극배우였는데.. 2015. 9. 1.
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것 두런두런(29) 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것 강원도 단강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어느 날 새집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어릴 적 우리는 새집을 발견하면 새집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맡다’라는 말이 묘합니다. ‘맡다’라는 말에는 ‘차지하다’는 뜻도 있고, ‘냄새를 코로 들이마셔 느끼다’ 혹은 ‘일의 형편이나 낌새를 엿보아 눈치 채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릴 적 말했던 ‘맡는다’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담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집이 어디 있는지를 눈치 챘다는 뜻도 있고, 내가 차지했다는 뜻도 담겨 있었을 테니 말이지요. 저녁 무렵 교회 뒤뜰을 거닐다가 새 한 마리를 보게 되었는데, 날아가는 모양이 특이했습니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럽게 이 가지 저 가지를 .. 2015. 8. 27.
어떤 새 두런두런(29) 어떤 새 한 마리 새가 있었습니다. 그는 밤이 되면 하늘로 날아오르곤 했습니다. 다른 새들이 잠이 들면 슬며시 혼자 깨어 일어나 별들 일렁이는 밤하늘을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쉬는 법이 없었습니다. 날이 밝기 전 그는 어김없이 둥지로 돌아왔고, 잠깐 눈을 붙였다간 다른 새들과 함께 일어나 함께 지냈습니다. 아무도 그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리 새가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밤중에 깨었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의 뒷모습을 우연히 본 것이었습니다. 이내 눈에서 사라지는 까마득한 높이였습니다. 다음날 새벽, 막 둥지로 돌아온 새에게 물었습니다. -어딜 갔다 오는 거니? -하늘. -모두들 하늘을 날잖니? -하늘은 깊어. -왜 하필.. 2015. 8. 27.
귀가 거룩해야 말씀이 거룩하게 들린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9) 귀가 거룩해야 말씀이 거룩하게 들린다 “만군(萬軍)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葡萄)를 땀 같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者)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葡萄) 따는 자(者)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警責)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割禮)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自己)에게 욕(辱)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예레미야 6:9~10) 오래 전에 번역된 성경을 일부러 찾아 읽는 것은 그것을 번역할 당시, 즉 오래 전 하나님을 믿었던 이들은 성경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의도하지 않는다 하여도 성경에 담겨 있는 단어, .. 2015. 8. 26.
기괴하고 놀라운 일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8) 기괴하고 놀라운 일 “이 땅에 기괴(奇怪)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先知者)들은 거짓을 예언(豫言)하며 제사장(祭司長)들은 자기(自己) 권력(權力)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百姓)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結局)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예레미야 5:30~31). 오래 전의 일이다.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 내가 속한 지방에서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지방연합성회’라는 것을 열었다. 지방 내에 있는 모든 교회의 교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다. 그 때마다 외부에서 강사 한 명씩을 초대하였다. 어느 핸가 집회 중 사회를 맡은 적이 있다. 강사는 설교를 시작하며 뜬금없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례비가 얼마인데(입이 벌어질 액수를 서슴.. 2015. 8. 23.
옥수수 수염 두런두런(28) 옥수수 수염 - 동화 - 이제부턴 흙길입니다. 차가 덜컹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하자 민구가 잠에서 깼습니다. 아침 일찍 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이 나서 창에 코를 박고 밖을 구경하던 민구가 따뜻한 햇살에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잘 잤니? 이제 곧 할아버지 댁이다.” 운전하는 아빠 옆에 앉아 있던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아직 졸음기가 남아있는 민구는 큰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습니다. 기지개를 켜며 막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민구뿐이 아니었습니다. 나무마다 아기 손톱 같은 작은 이파리들이 조잘조잘 돋아나고 있었고, 논둑과 밭둑으로는 누군가 크레용을 칠한 것처럼 굵고 힘찬 초록색 선들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창문을 열자 확, 시원한 바람이 밀려.. 2015. 8. 18.
모래로 바다를 막으신 하나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7) 모래로 바다를 막으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界限)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永遠)한 계한(界限)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波濤)가 흉용(洶湧)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예레미야 5:22). 오래 전 농촌에서 목회를 할 때, 이따금씩 마을 어르신들과 여행을 했다. 연배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지만 마음으론 친구처럼 지내던 분들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조용한 바다를 찾은 적이 있었다. 같이 모래사장을 거닐던 중에 문득 마음이 뜨거워져서 그분들에게 모래와 바다 이야기를 했다. “보세요, 바다를 막고 있는 것은 모래지요!” 마을 분들.. 2015. 8. 15.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두런두런(25)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지난 여름 독서캠프를 통해 만난 분 중에 나태주 시인이 있습니다. ‘풀꽃’이란 시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지요. 시골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분답게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을 처음 뵙는데, 그 분은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한 신문에 쓰고 있는 칼럼을 눈여겨 읽어오고 있다 했는데, 금방 친숙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이 쓴 시 중에 최근에 알게 된 시가 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썼다는 시였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 2015. 8. 9.
콩 고르는 하나님 두런두런(24) 콩 고르는 하나님 오래 전 농촌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며칠째 비가 내리던 오후, 겸사겸사 방앗간 아래에 살고 있는 할머니 집사님 집을 찾아갔습니다. 편한 걸음 편한 마음이었지요. 특별한 이유 없이 차 한 잔을 나누는, 그런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계세요, 계세요?” 아무도 없는 듯 집안이 조용하여 몇 번을 불렀을 때에야 부엌문이 열렸고, 부엌에 있던 집사님이 환히 웃으며 맞아주었습니다. 귀가 어두운 집사님은 날이 흐려 집안이 어둑한데도 불을 따로 켜지 않은 채 부엌 창문께 바닥에 앉아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콩을 고르던 중이었습니다. 가을에 콩을 털고 콩대를 한쪽 구석에 쌓아 두었는데 겨울을 지나며 보니 콩대 아래 떨어진 콩이 보였습니다. 콩을 본 집사님은 다시 한 번 .. 2015.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