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콩 고르는 하나님 두런두런(24) 콩 고르는 하나님 오래 전 농촌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며칠째 비가 내리던 오후, 겸사겸사 방앗간 아래에 살고 있는 할머니 집사님 집을 찾아갔습니다. 편한 걸음 편한 마음이었지요. 특별한 이유 없이 차 한 잔을 나누는, 그런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계세요, 계세요?” 아무도 없는 듯 집안이 조용하여 몇 번을 불렀을 때에야 부엌문이 열렸고, 부엌에 있던 집사님이 환히 웃으며 맞아주었습니다. 귀가 어두운 집사님은 날이 흐려 집안이 어둑한데도 불을 따로 켜지 않은 채 부엌 창문께 바닥에 앉아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콩을 고르던 중이었습니다. 가을에 콩을 털고 콩대를 한쪽 구석에 쌓아 두었는데 겨울을 지나며 보니 콩대 아래 떨어진 콩이 보였습니다. 콩을 본 집사님은 다시 한 번 .. 2015. 7. 31. 어느 날 새벽 두런두런(25) 어느 날 새벽 새벽예배를 마치고 제단에 올라 기도 카드를 넘기다 만난 한 교우의 기도제목 “추위를 잘 지내는 이웃이 되세요.” 기도를 적은 날짜를 보니 지난해 연말 이웃들이 춥지 않게 겨울을 나기를 집사님의 기도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는데 맨 아래 적은 마지막 기도 “직장을 잃어서 실직자이오니 꼭 일자리를 주세요.” 갑자기 숨이 턱 막혀 고꾸라지는 것 같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다시 한 번 읽는데 생선가시 목에 걸리 듯 마음이 찔려오고 깨진 유리조각 손가락마다 박히는 듯 다음 카드로 넘기지 못한다. 멍하니 앉아 있다 고스란히 제단 위에 펼쳐 놓는다. 나로서는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눅눅한 이불 말리듯 젖은 빨래 말리듯 다만 그 분 앞에 펼쳐놓는 것 외엔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2015. 7. 30. 고삐 풀린 망아지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6) 고삐 풀린 망아지들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卑賤)하고 우준(愚蠢)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自己) 하나님의 법(法)을 알지 못하니 내가 귀인(貴人)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自己) 하나님의 법(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一齊)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結縛)을 끊은지라”(예레미야 5:4~5). 어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알면서도) 하나님을 등질 수가 있는 것일까, 예레미야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아는 법’(이사야 1:3)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짐승만도 못하단 말인가? 내남없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 사는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예레미야는 이.. 2015. 7. 27.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5)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往來)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萬一) 공의(公義)를 행(行)하며 진리(眞理)를 구(求)하는 자(者)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城)을 사(赦)하리라”(예레미야 5:1). 좋아하는 노래 중에 ‘내가 찾는 아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가사도 곡도 모두 예뻐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맑아지는데,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내가 찾는 아이 흔히 볼 수 없지 넓은 세상 볼 줄 알고 작은 풀잎 사랑하는 워~ 흔히 없지 예~ 볼 수 없지 내가 찾는 아이 흔히 볼 수 없지 내일 일은 잘 모르고 오늘만을 사랑하는 워~ 흔히 없지 예~ 볼 수 없지 내가 찾는 아이 흔히 볼 수 없지 내 마음이 .. 2015. 7. 16. 그럴 수 있다면 한희철의 두런두런(24) 이불 말리듯 예배당 옆 영안아파트 후문 담장을 따라 누군가 이불을 널어 말리는데 한낮의 볕이 이불 위에 맘껏 머문다 지나가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것은 마음 널어 말릴 곳 보이지 않기 때문 눅눅한 마음 지울 곳 보이지 않기 때문 눈부신 볕에 온몸을 맡기고 단잠에 빠진 이불을 두고 그럴 수 있다면 너희들 이름 하나에 별 하나씩을 바꿔 이름 하나 부르는데 별 하나 사라지고 기억 하나 붙잡는데 별자리 하나 지워진다 해도 그러느라 우리 어둠에 갇히고 어둠 속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해도 그 어둠 견뎌야 하리 그 울음 울어야 하리 그래야 칠흑 같은 어둠 속 빛 다시 스밀 터이니 스민 빛 별자리로 모여 비로소 끊긴 길 이을 터이니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2015. 7. 7. 하늘은 빛을 잃고 땅은 흔들리고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4) 하늘은 빛을 잃고 땅은 흔들리고 “내가 땅을 본즉 혼돈(混沌)하고 공허(空虛)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내가 산(山)들을 본즉 다 진동(震動)하며 작은 산(山)들도 요동(搖動)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空中)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荒蕪地)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城邑)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猛烈)한 진노(震怒) 앞에 무너졌으니”(예레미야 4:23~26). 멸망으로 기울어진 절망의 시대, 예언자가 세상을 둘러본다. 어둠의 시대, 그나마 어둠 속에서 잠들지 않고 어둠을 응시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일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보이느니 어둠 밖에 없는데 하릴없이 어둠을 바라보느냐며 절망하지 않는 사람, 절망.. 2015. 7. 2. 저린 발, 저린 마음의 기도 두런두런(14) 저린 발, 저린 마음의 기도 새벽 예배를 드리고 제단에 올라 무릎을 꿇으면 이내 저려오는 발 온몸의 무게가 발끝으로 모이는데 저린 만큼 마음이 간절해지기라도 하는 양 작은 불빛 아래 기도 카드를 넘긴다 아픔과 눈물 없는 삶이 없어 더듬더듬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다 보면 길 잃듯 뚝뚝 끊기는 마음 그나마 같은 심정으로 같은 기도 바칠 수 있는 길이 더는 없는 듯 저린 발 저린 마음 그것밖엔 없다는 듯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2015. 6. 25. 내 창자여, 내 창자여!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3) 내 창자여, 내 창자여!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沓沓)하여 잠잠(潛潛)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心靈)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戰爭)의 경보(警報)를 들음이로다”(예레미야 4:19).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던 날 예레미야는 가마가 끓고 있는 환상을 보았다(예레미야 1:13). 끓는 물이 북쪽에서부터 넘쳐흐르고 있었다. 불길한 환상이 환상으로 그쳤다면 좋았을 것을, 마침내 환상은 현실이 되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스라엘을 삼키려 하는 자들이 북쪽으로부터 몰려온 것이다. 적군이 먹구름처럼 몰려오듯 몰려오고, 그 병거들이 회오리바람처럼 밀려오며, 그 군마들이 독수리보다도 더 빨리 달려오고 있으니(4:13), .. 2015. 6. 24. 그럴듯한 지팡이 지녔다 해도… 그럴듯한 지팡이 지녔다 해도… 바닥까지 말라버린 개울가에 주저앉아 울어본 적 없다면 고단한 길 끝에 만난 풀밭 위를 마음껏 뒹굴러 본 적 없다면 서로 몸을 기대 단잠을 자는 모습을 보며 웃어 본 적 없다면 류연복 판화 어둠을 가르는 별똥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폭풍우 속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울음소리 듣지 못한다면 사나운 짐승과 싸우느라 생긴 상처 보이지 않는다면 목자 아니다 그럴듯한 지팡이 지녔다 해도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2015. 6. 21. 이전 1 ··· 122 123 124 125 126 127 128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