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어느 날의 기도 어느 날의 기도 말씀 준비를 마치고 준비한 말씀 앞에 앉으면 언제라도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천천히 아득히 말이지요. -죄송합니다, 감히 말씀의 준비를 ‘마쳤다’ 하다니요! 그래도 설렘이 아주 없지는 않아 마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식구를 기다리는 엄마의 심정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뿌듯한 기다림이지요. 그게 전부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많은 순간 부실함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걸 먹고 탈이 나진 않을까,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것 아닐까, 노심초사 마음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일러스트/고은비 주님, 주님의 말씀 앞에 무얼 더 보태고 뺄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정성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어느 해 저무는 저녁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작고 외진 마을 허기를 달래려 찾은 허름한 식당에서 생각지 못한 정갈한 음식 대하.. 2015. 6. 19. 마음 가죽을 베라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2) 마음 가죽을 베라 “유다인(人)과 예루살렘 거민(居民)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割禮)를 행(行)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屬)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行惡)을 인(因)하여 나의 분노(忿怒)가 불같이 발(發)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者)가 없으리라”(예레미야 4:4). 몸에 지닌 흔적보다 더 좋은 표지가 어디 있을까? 누군가가 하는 백 마디 말보다도 그의 몸에 남은 흔적은 그가 누구인지를 더 분명하게 말해준다.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볍씨를 넣는 바쁜 철에 마을 이장인 병철 씨가 원주시청을 다녀왔다. 병철 씨가 논을 샀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묻는다는 것이었다. 바쁜 철에 사람을 오라 가라 한다며 툴툴거리고 나간 병철.. 2015. 6. 17. 더 기다리지 못한 죄 한희철의 두런두런(11) 더 기다리지 못한 죄 나직한 건 할머니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손을 들 때부터 그랬다. 아주 먼 곳, 아득히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듯 조심스레 손을 드는 할머니의 모습은 눈에 띄게 고요했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할머니의 삶이 그 작은 몸짓 하나에 오롯이 담긴 듯도 싶었다. 여러 해 전 춘천노인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다. 일제며 난리며 보릿고개며 유난스러운 생의 고개를 숱하게 넘어오신 연로하신 분들, 그것이 아픔이든 기쁨이든 지나온 세월은 보석과 같은 시간이니 쓸모없다 여기시지 말고 내 이야기를 시작해 보시라고, 학생으로 참석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이야기를 했다.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아 있.. 2015. 6. 11. 묵은 땅을 갈아엎어라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1) 묵은 땅을 갈아엎어라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播種)하지 말라"(예레미야 4:3). 학원을 운영하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 학원으로 들어서는 아이들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짐작할 수가 있다고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오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가볍고 뜀박질을 하듯 경쾌하단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모의 강요에 떠밀려서 오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무겁고 처진단다. 마지못해 오고 있다는 것이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이다. 표현이 뭣 하지만 풀을 뜯기 위해 햇살 좋은 들판으로 나가는 소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발걸음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농촌에서 .. 2015. 6. 4. 민들레 한희철의 두런두런(10) 민들레 - 동화 - “얘들아, 오늘은 엄마가 너희들에게 중요한 얘기를 들려줄게.” 엄마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낮고 차분합니다. “뭔데요, 엄마?” 엄마 가슴에 나란히 박혀 재잘거리던 씨앗들이 엄마 말에 모두들 조용해졌습니다. “머잖아 너희들은 엄마 곁을 떠나야 해. 제각각 말이야.” “엄마 곁을 떠나야 한다고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씨앗들이 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래. 너희들은 떠나야 해. 떠날 때가 되었어. 보아라. 너희 몸은 어느새 까맣게 익었고, 너희들의 몸엔 하얀 날개가 돋았잖니?” 엄마 곁을 떠나야 한다는 말에 모두들 놀란 얼굴이 되었습니다. “싫어요, 엄마. 우린 언제나 엄마랑 함께 살 거예요.” “우리들끼리도 헤어져야 한다니 너무 무서워요.” “엄마 곁을 떠나.. 2015. 5. 28. 뻔뻔함을 지워라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0) 뻔뻔함을 지워라 - 수욕에 덮이울 것이니 - “소리가 자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子孫)의 애곡(哀哭)하며 간구(懇求)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하며 자기(自己)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배역(背逆)한 자식(子息)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背逆)함을 고치리라 보소서 우리가 주(主)께 왔사오니 주(主)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작은 산(山)들과 큰 산(山) 위의 떠드는 무리에게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사(虛事)라 이스라엘의 구원(救援)은 진실(眞實)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의 어렸을 때로부터 우리 열조(列祖)의 산업(産業)인 양(羊)떼와 소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우리는 수치(羞恥) 중(中)에 .. 2015. 5. 18. 글자 탓 한희철의 두런두런(9) 글자 탓 요 며칠은 예배당 주위의 풀 뽑는 일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예배당 마당 구석구석에 풀들이 제법 자라 올랐다. 잡초는 밤에도 잠을 안 잔다더니, 잠깐 잊고 있으면 어느새 욱 자라 있고는 한다. 저녁나절 괭이로 풀을 긁고 있는데 예배당 옆집에 사는 승혜가 책 하나를 끼고서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예쁜 여자 아이다. 옆구리에 끼고 온 책을 보니 이다. 다음날 배울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읽어가는 것이 선생님이 내준 숙제라고 했다. 지난번 받아쓰기 때 좋은 성적이 아니었던 승혜에겐 바른 생활 과목이 썩 내키는 과목은 아닌 듯싶었다. 승혜가 한 자 한 자 손으로 짚어가며 책을 읽는다. 그러나 곳곳에서 막힌다. 어둘 녘까지 승혜는 내가 풀을 뽑는 곳을 따라다니.. 2015. 5. 14. 일요일에만 살아계신 하나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9) 일요일에만 살아계신 하나님 “그들이 나무를 향(向)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向)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向)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向)치 아니하다가 환난(患難)을 당(當)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救援)하소서 하리라”(예레미야 2:27).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늘 그를 바라보는 것이다. 해바라기가 종일 얼굴을 돌려가며 해를 바라보듯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도 모르게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야말로 오매불망하게 된다. ‘오매불망寤寐不忘’이 ‘잠 깰 오’(寤)에 ‘잠 잘 매’(寐), ‘아닐 불’(不)에 ‘잊을 망’(忘)이 합해진 것이니, 말 그대로 자나 깨나 잊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2015. 5. 6. 창날 위를 맨발로 걷듯 한희철의 두런두런(8) 창날 위를 맨발로 걷듯 아랫마을 단강리에 살고 있는 분 중에 한효석 씨가 있다. 부론을 나갈 때면 자주 만나게 되는데, 만나면 꼭 차를 사신다. 한문은 물론 동양사상이나 동양종교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도 해당되는 구절이 있으면 원문을 줄줄 외우신다. 그 모든 것을 독학으로 이뤘다니 놀랍기만 하다. 얼마 전 원주를 다녀오며 흥호리에서 버스를 같이 타게 되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 분은 ‘실천’이란 말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거나 믿고는 있는데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실’(實)은 ‘갓머리’와 ‘어미 모’(母)와 ‘조개 패’(貝)가 합해진 말이라 했다. 갓머리는 ‘하늘’이라는 뜻을 담고 있고,.. 2015. 4. 28. 이전 1 ··· 123 124 125 126 127 128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