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이제 우리 웃자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6) 이제 우리 웃자고 도대체 웃을 일이 없어, 그보다 쓸쓸한 말이 어디 있을까. 쓸쓸한 말이 어디 한둘일까만, 그보다 더 쓸쓸한 말이 무엇일지 모르겠다. 도무지 웃을 일이 없던 한 사람이 있었다. 다 늙도록 아기를 낳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생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아기가 없다는 것이 웃음을 잃어버린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이유라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숨은 이유도 있다. 내게 주셨던 주님의 약속이 소용없어지고 만 것이다. 너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알처럼,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겠다고 했던 빛나는 약속이었다. 모래알은커녕, 별들은커녕 단 한 명의 자녀도 태어나지를 않았던 것이다. 기대도, 가능성도, 어쩌면 믿음까지도 닫히고 말았.. 2019. 7. 7. 밝아진 눈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5) 밝아진 눈 사고라고 했다. 주물공장에서 일하다가 입은 사고라 했다. 사고를 직감하고 현장으로 달려갈 때 하필이면 뜨거운 주물이 눈으로 튀었다는 것이다. 한창 젊은 나이에, 한순간에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자 상실감일까. 단지 두 눈의 시력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앗기는, 자칫 영혼의 시력까지 빼앗아가는 난폭하고 거친 상실이었을 것이다. 연합성회를 앞두고 후배 목사는 그 교우에게 참석을 권하며 강사에 대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고 한다. 시를 쓰는 목사라고. 자신의 인생에 느닷없이 찾아온 절망을 문학적인 관심으로 이겨내려는 그에게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집회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가 참석을 했.. 2019. 7. 7. 술만 퍼먹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4) 술만 퍼먹은 부산을 다녀왔다. 먼 길이지만, 다녀올 길이었다. 한 지인이 전시회를 열었다. 지인이 전시회를 연다고 불원천리 먼 길을 달려갈 입장은 아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다녀온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종이로 작품을 만드는 종이공예는 한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손이 가야 하지만 별로 티가 안 난다. 하지만 작가의 눈에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칼질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먼 길을 달려간 것은 작가의 그런 수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산고의 고통 없이 작품을 내어놓는 작가가 어디 있겠는가. 고단하면서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 그런데 딸이 아버지의 길을 이어 걷기로 했다. 아버지가 하는 작업을 눈여겨보고 그 길을 함께 걷기로.. 2019. 7. 6. 안락과 안락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3) 안락과 안락사 창문 저 밖 남의 가정은 다 안락해 보이고 창문 저 안 나의 가정은 다 안락사로 보이듯 공 서너 개가 두 손 사이에서 춤을 추는 서커스 단원처럼, 언어를 다루는 시인의 솜씨가 빼어나다. ‘창문 저 밖’과 ‘창문 저 안’이 ‘안락’과 ‘안락사’로 어울리고 있으니 말이다. 말장난이다 싶으면서도 마냥 가볍지만 않은 것은 그 속에 우리의 삶과 심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들 잘 사는데 나만, 우리만 왜 이 모양일까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다들 행복한데 나만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기막힌 순간 말이다. ‘창문 저 밖’과 ‘창문 저 안’은 다르다. ‘안락’과 ‘안락사’처럼 다르다. 그 괴리감은 우리의 마음을 창처럼 깊이 찌른다. 더는 창문 저 밖을 내다보지 않으려.. 2019. 7. 5. 천천히 켜기 천천히 끄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2) 천천히 켜기 천천히 끄기 정릉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는 곳은 ‘중예배실’이다. 정릉교회에서 가장 큰, 그래서 주일낮예배를 드리는 곳은 ‘대예배실’이다. ‘중예배실’과 ‘대예배실’이라는 말은 상상력의 부족으로 다가온다. 적절한 이름을 생각 중이다. 새벽예배를 드리기 전, 일찍부터 기도하러 온 교우들을 위하여 제단의 불만 밝히고 회중석의 불은 밝히지 않는다. 조용히 기도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이다. 당연히 예배를 시작하는 일은 불을 밝히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불을 켜는 모습을 보면 대개가 와락 켠다. 스위치는 모두 6개, 그런데 조작에 익숙한 듯이 한꺼번에 불을 켜곤 한다. 그렇게 한꺼번에 켜면 기도를 하느라 눈을 감고 있다가도 눈이 부시고, 그 짧은 순간 눈을 찡그리게 .. 2019. 7. 4.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1)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길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다가 문득 떠오른 지난 시간이 있었다. 어디서 출발을 했던 것일까, 늦은 시간 밤길을 달려 단강 인우재를 찾은 적이 있었다. 익숙한 출발지가 아니어서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목적지를 단강초등학교로 입력했다. 단강 근처만 가면 인우재야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단강에 도착을 했고, 나는 단강 초입에서 좌회전을 하여 작실마을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비게이션이 뜻밖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이 길로 계속해서 진행하시면 먼 길을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아는 길이기에 멘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작실로 올랐는데, 마치 안타깝다는 듯이 같은 내용을 몇 번 더 반복을 했다. 그런.. 2019. 7. 3. 간도 큰 사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0) 간도 큰 사람 창밖으로 내다보니 권사님이 일을 하고 있었다. 올 들어 가장 무덥다는 날씨, 장마가 소강상태여서 습도까지 높아 그야말로 후텁지근하기 그지없는 날씨였다. 그런데도 권사님은 교회를 찾아와 소나무 다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경위원회 일을 맡으신 뒤론 시간이 될 때마다 들러 예배당 주변을 가꾸신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 두 개를 챙겨 내려갔다. 권사님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일에 열중이었다. “잠깐 쉬었다 하세요.” 손을 멈춘 권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조경 일을 하는 권사님은 하루 일을 마친 뒤 집에 가서 땀범벅인 옷을 갈아입고 다시 교회로 달려온 것이었다. 지금이 소나무를 다듬기에는 적기라며 예배당 초입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를 다듬는 중이었다. .. 2019. 6. 30. 만년필을 고치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79) 만년필을 고치며 만년필을 고치는 곳이 있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만년필이라면 대개가 정이 들고 귀한 물건, 어딘가 문제가 있어 못 쓰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겠다 싶었는데, 실은 나 자신에게 그랬다. 못 쓰는 만년필이 두어 개 있었다. 두어 개라 함은 만년필 하나가 잉크를 넣는 필터가 고장이 나 못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인근에서 모임이 있는 날,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만년필 고치는 곳을 꼼꼼하게 메모해둔 덕분에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찾아갈 수가 있었다. 좁다란 골목에 들어서서 기사에서 본 곳을 찾아가는데, 그새 달라진 상호가 제법이었다. 이쯤이겠다 싶은 건물의 계단을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간.. 2019. 6. 30. 소나무에 핀 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78) 소나무에 핀 꽃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 책상에 앉아 다음날 새벽예배 설교를 준비하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녁 무렵 예배당 초입에 선 소나무를 손질하는 권사님께 시원한 물을 전해드리고 왔는데, 권사님의 작업은 그 때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권사님은 아예 나무 위로 올라가서 전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따로 돕는 이가 없어 혼자서 작업을 하는데도 나무 위로 올라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중심을 잡는 것인지 소나무의 정중앙 꼭대기 부근에 자리를 잡고 가지를 치고 있었다. 올해 권사님의 나이 일흔셋, 그런데도 소나무 꼭대기에 올라 앉아 가지를 치고 있는 권사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소나무가 꽃을 피운 것처럼 보였다. 소나무.. 2019. 6. 29. 이전 1 ··· 89 90 91 92 93 94 95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