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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사 계곡,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신동숙의 글밭(178) 밀양 표충사 계곡,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소리가 맑은 벗님이랑 찾아간 곳은 맑은 물이 흐르는 밀양 표충사 계곡입니다. 높은 듯 낮은 산능선이 감싸 도는 재약산 자락은 골짜기마다, 어디서 시작한 산물인지 모르지만, 계곡물이 매 순간 맑게 씻기어 흐르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주말이라 그런지, 표충사에 가까워질수록 휴일을 즐기러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런 날, 어디 한 곳 우리가 앉을 만한 한적한 물가가 남아 있을까 싶어 내심 걱정도 되었습니다. 해가 어디쯤 있나, 서쪽으로 보이는 바로 저 앞산 산능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기 전에, 하늘이 어둑해지기 전에는 산을 내려와야 하는 여정입니다. 널찍하게 누워서 흐르는 계곡물 옆에는, 줄지어 선 펜션과 식당과 편의점과 널찍한.. 2020. 7. 1.
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 한희철의 얘기마을(14) 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 오늘도 해는 쉽게 서산을 넘었다.말은 멍석 펴지듯 노을도 없는 어둠산 그림자 앞서며 익숙하게 밀려왔다. 밤은 커다란 솜이불모두를 덮고 모두를 집으로 돌린다. 몇 번 개들이 짖고 나면 그냥 어둠 뿐,빛도 소리도 잠이 든다. 하나 둘 별들이 돋고대답하듯 번져가는 고만고만한 불빛들저마다의 창 저마다의 불빛 속엔저마다의 슬픔이 잠깐씩 빛나고그것도 잠깐 검은 바다 흐른다. 그렇다.밤은 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날마다살아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일으킨다. 검은 바다를 홀로 지난 것들을. (1992년) 2020. 7. 1.
어둔 밤의 불씨 신동숙의 글밭(177) 어둔 밤의 불씨 붉은 노을로저녁 하늘에 밑불을 놓아 까맣게 태우는어둔 밤 낮의 모든 밝음을 태우시는 어진 손길 가난한 집 지붕 위에불씨처럼 남겨 둔 하얀 박꽃 한 송이 어둔 밤에 있을지라도낮의 밝은 해를 잊지 말으라시며 까맣게 기름진 밤하늘에 씨알처럼 흩어 둔 하얀 별들 그리움을 지피는 어둔 밤에 불씨 하나 있어 없음을 향하여 제 몸을 지우다가다시금 피어나는 달 2020. 6. 30.
왜가리 할아버지 한희철의 얘기마을(13) 왜가리 할아버지 느긋한 날갯짓으로 내려앉아 어정어정 논가를 거니는 한 마리 왜가리인 줄 알았어요.널따란 논 한복판 한 점 흰 빛깔.흔한 일이니까요.허리 기역자로 굽은 동네 할아버지 피 뽑는 거였어요.난닝구 하나 걸친 굽은 등이 새처럼 불쑥 오른 것이었지요.내려앉은 새처럼 일하시다 언젠지 모르게 새처럼 날아가고 말 변관수 할아버지. (1990년) 2020. 6. 30.
무심한 사람들 한희철의 얘기마을(12) 무심한 사람들 어스름을 밟으며 동네 아주머니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지나가던 자가용 한 대가 서더니만 창밖으로 고갤 내밀며 한 아주머니한테 묻더란다. “저런 아주머니들도 집에 가면 남편이 있나요?” “지들이 우리가 농사 안 지면 무얼 먹고 살려고?” 한낮 방앗간 그늘에 앉아 쉬던 아주머니들이 그 이야기를 하며 어이없어 한다. 무슨 마음으로 물었던 것일까, 아무리 지나가는 길이기로서니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가뜩이나 서러운 삶을 그런 식으로 받다니. 무식한 사람들, 무심한 사람들. 2020. 6. 29.
하나의 노래를 불러요 신동숙의 글밭(176) 하나의 노래를 불러요 하나의 노래를 불러요하나의 노래를 울 할아버지들은쌀 한 가마니에 오원의 노래를 부르셨지요 내 어린 날에는과자 한 봉지에 백원의 노래를 불렀고"엄마~ 백원만" 내 어린 아들은배가 불러도 천원의 노래를 부르고"엄마~ 천원만" 중학생 딸아이는아침부터 만원의 콧노래를 부르지요"엄마~ 저녁밥 사 먹게 만원만" 허기진 청춘들은한 달 꼬박 일해서 번 돈 백만원에 휘파람을 부는지 길을 잃은 어른들은숨 넘어가는 억소리에 어깨춤을 추어도 허리뼈가 굽으신 할머니는폐지 1키로에 이십원을 주우셔야 해요 세월의 강물은 흘러만 가는데우리들은 왜 이렇게 하나에서 멀리 떠나왔는지 나는 오늘도 이슬 한 방울의 힘으로세월의 물살을 거슬러 피어올라 그 하나를 찾으려 밤하늘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2020. 6. 29.
해바라기 한희철의 얘기마을(12) 해바라기 교회 마당 주변에 해바라기들이 서 있다. 키 자랑 하듯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 너무 바투 자라 제법 솎아냈지만, 크는 키와 함께 잎 또한 크게 자라 교회를 빙 둘러 해바라기가 손에 손을 잡았다. 이파리 하나 뚝 따서 얼굴 가리면 웬만한 비엔 우산 되겠다 싶다. 기다랗게 목 빼어든 노란 얼굴들이 해를 바랄 올 가을은 더 멋있을 게다. 지난해 여름 비 오던 날, 승혜 할머니가 심어주신 몇 포기 해바라기가 이렇게 불어난 것이다. 가을이 되어 까맣게 익은 해바라기 씨를 따로 따지 않고 그냥 두었다. 새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남은 것이 땅에 떨어진 것이었는데, 그 씨들이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어 싹을 낸 것이다. 작은 시작, 큰 결과. 언제나 씨 뿌리는 일은 그러하건만, 사.. 2020. 6. 28.
물길 신동숙의 글밭(175) 물길 비가 내립니다가슴에도 비가 내립니다 메마른 가슴에떨어진 빗방울마다 안으로 홈이 파이고그리움으로 머물다가 실개천 물길을 내어흐르게 하소서메마른 가슴으로 맑게선하게아름답게 2020. 6. 27.
슬픔을 극복하는 길 한희철의 얘기마을(11) 슬픔을 극복하는 길 박종구 씨가 맞은 환갑은 쓸쓸했다. 늘 궁벽한 삶, 음식 넉넉히 차리고 부를 사람 모두 불러 즐거움을 나누는 여느 잔치와는 달리 조촐하게 환갑을 맞았다. 친척 집에서 준비한 자리엔 가까운 친척 몇 명이 모여 아침식사를 했을 뿐이다.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환갑 맞기 얼마 전 부인마저 먼저 보낸 환갑이었기에 쓸쓸함은 더했다. 식사를 마치고 건너편 응달말 언덕배기 박종구 씨 집으로 건너가 식구들과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마침 그 날이 주일, 예배 시간 우리는 박수로써 환갑을 맞는 박종구 씨를 축하했다. 예배를 마쳤을 때, 여선교회장인 이음천 속장은 교회에서 떡을 준비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 얼마나 좋은 생각이냐며, 우리는 서둘러 서로에게 연락을 했다... 2020.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