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49

슬픔을 극복하는 길 한희철의 얘기마을(11) 슬픔을 극복하는 길 박종구 씨가 맞은 환갑은 쓸쓸했다. 늘 궁벽한 삶, 음식 넉넉히 차리고 부를 사람 모두 불러 즐거움을 나누는 여느 잔치와는 달리 조촐하게 환갑을 맞았다. 친척 집에서 준비한 자리엔 가까운 친척 몇 명이 모여 아침식사를 했을 뿐이다.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환갑 맞기 얼마 전 부인마저 먼저 보낸 환갑이었기에 쓸쓸함은 더했다. 식사를 마치고 건너편 응달말 언덕배기 박종구 씨 집으로 건너가 식구들과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마침 그 날이 주일, 예배 시간 우리는 박수로써 환갑을 맞는 박종구 씨를 축하했다. 예배를 마쳤을 때, 여선교회장인 이음천 속장은 교회에서 떡을 준비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 얼마나 좋은 생각이냐며, 우리는 서둘러 서로에게 연락을 했다... 2020. 6. 27.
술샘 신동숙의 글밭(174) 술샘 술을 마시고 글을 쓴 적이 없다. 글을 쓴 후에도 마신 적이 없고, 먼 데서 찾아온 반가운 남동생이나 남편이 바로 옆에서 막걸리나 맥주를 한 잔 기울일 때도,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니, 평소에 술을 아예 먹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가족 모임과 벗들의 모임에서도 그저 물잔에 물을 따라서 함께 하는 자리를 즐기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일이나 술을 마시지 않는 일이나 모두가 한 마음 먹기에 달린 일이지만, 나의 선택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것이다. 술 기운에 의지하지 않기로 결심을 한 것이 대학 신입생 시절 학과 동기, 선배들과 함께한 뒤풀이 자리였다. 어려선 종종 아빠의 술 심부름을 하곤 했었다. 아빠의 "소주 한 병, 콜라 한 통 사와라." 돈을 받으면 신나.. 2020. 6. 26.
땅내 한희철의 얘기마을(10) 땅내 ‘땅내를 맡았다’고 한다.논에 모를 심고 모의 색깔이 검푸른 빛으로 변해 뿌리를 내린 걸 두고 모가 땅내를 맡았다고 한다.땅 냄새를 맡았다는 말이 귀하다.내 삶은 얼마나 땅내를 맡은 것일까. (1989년) 2020. 6. 26.
풀밭 신동숙의 글밭(173) 풀밭 신발 벗어 놓고들어가는 풀밭 바람과 빗물이 쓸고 닦는 방 푸릇푸릇 풀잎손들이 새벽 이슬 모아 간질간질 발 씻겨 주는 개운한 아침 2020. 6. 25.
뒤풀이 한희철의 얘기마을(9) 뒤풀이 은진이 아버지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전에 본 적이 없다. 한 동네서 6년을 같이 살아오면서도 말 한마디 속 시원히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터에 노래라니. 은진이 아버지의 노래는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게다가 흥이 더하자 덩실덩실 청하지도 않은 춤마저 추는 것이 아닌가. 이거 내가 꿈을 꾸나 싶었다. 박수와 웃음소리, 그리고 환호소리가 노래와 춤을 덮었다. 일주일 동안의 농촌봉사활동을 마치고 마지막 날 저녁 예배당 마당에서 열린 '마을주민잔치', 이른바 뒤풀이 시간이다. 자리를 깔고 천막을 치고 푸짐한 상을 차리고, 그야말로 신명나는 잔치가 열렸다. 모르는 대학생들이 일주일 동안이나 단강을 찾아 귀한 땀을 흘리다니, 농약을 치다 어지럼증을 느끼면서도, 풀독이 뻘겋게.. 2020. 6. 25.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신동숙의 글밭(172)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살아오면서 가끔씩 좋은 벗, 좋은 사람,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잠시 제 곁에 머물러 있는가 싶으면, 어느덧 혼자 있게 됩니다. 제게는 늘 함께 있어 좋은 벗, 좋은 사우(師友)가 있습니다. 밤하늘에 뜬 몇 안되는 별이라도, 먼 별을 바라보는 내가 좋습니다. 밤이면 매일 변하는 밤하늘의 달이 오늘은 어디에 떴는지, 건물들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찾는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합니다. 아침이면 하늘 낯빛을 수시로 살피어 마음의 결을 고르는 내가 괜찮습니다. 나무 아래를 지나며, 가슴 설레어 하는 내 모습에, 혼자서 어쩔줄 몰라 하고, 여름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환하게 꽃을 피우는 박꽃을 보며,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순합.. 2020. 6. 24.
마른땅, 그대들의 땀방울은 약비로 내리고 한희철의 얘기마을(8) 마른땅, 그대들의 땀방울은 약비로 내리고 살아가며 그중 어려운 건 외로움입니다. 얼마쯤은 낭만기로 들리는 그 말이 때론 얼음처럼 뼛속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시간을 야위게 합니다. 농사일이 힘든 거야 당연한 일입니다. 변함없이 가는 세월 앞엔 한해 한해가 달라 기운이 쇠하고, 마음은 그렇질 않은데 몸이 따르질 못합니다.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몸을 이끌고 예전처럼 농사일을 꾸리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갈수록 경운기 부리기도 겁이 나고, 쌀가마 두개쯤은 거뜬했던 지게질도 이젠 소꼴 얼마큼에 힘이 벅찹니다. 늙으면 손도 발도 따라 굼떠져 같은 일도 더딜 수밖엔 없습니다. 쑥쑥 단번에 뽑히던 잡초들도 이젠 우리들을 비웃어 여간한 힘엔 꿈쩍을 않습니다. 없는 새벽잠에 깨는 대로 .. 2020. 6. 24.
약속 신동숙의 글밭(171) 약속 산길을 걷다가엄마가 새순처럼 말씀하신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1박 2일로 해인사에 가기로 하셨다고 누구랑 가시냐고 물으니"니하고" 하신다 한번 드린 말씀인데엄마는 이미 마음밭에 심어두셨다 2020. 6. 23.
열흘간의 휴직 계 한희철의 얘기마을(7) 열흘간의 휴직 계 열흘간의 휴직 계를 내고 성문 씨가 단강에 내려왔다. 지난번 사고로 몸이 불편해진 아버지,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직장에 열흘간 휴직 계를 냈다. 논밭 갈고 못자리를 해야 하는데,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으로선 힘에 부치다는 걸 왜 몰랐으랴만, 몸마저 불편하신 아버님 전화 받곤 안타까움을 마음에만 둘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수요예배를 마친 뒤 사택에서 차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성문 씨가 병철 씨와 함께 예배에 참석한 것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웃으며 한 이야기였지만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들어와야죠. 마음속엔 늘 그 생각뿐이에요. 그러나 들어오면 내 인생은 희생되는 거구요... 2020.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