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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의 쇳소리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6) 요단강의 쇳소리 “당신은 누구요?” “나는 광야에서 울부짖는 이의 소리요”(요한복음 1:19-28). “당신은 누구요?” 예루살렘 제관과 레위지파 사람에게 광야에서 서성거리는 미치광이의 대답은 중요치 않았다. 사실이냐 아니냐,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그자가 자기들의 법망에 걸리겠느냐 아니냐가 문제였다. 그자가 누군인들 무슨 대수인가? 요컨대 어떻게 저자의 입만 다물게 할까 그것이 전부였다. 지난 30년, 한국 교회에는 많은 소리가 있었다. 듣기 거북한 쇳소리가 있었다. 마치 양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 목자는 코를 골고 있다며, 목자 대신 싸움을 벌이던 개들의 소리와 같았다. 얼어붙은 강토를 스산하게 휩싸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놀라 달빛타고.. 2016. 2. 18.
김남주, 또 그렇게 눈물이 쏟아진다 김남주, 또 그렇게 눈물이 쏟아진다 - 시인과 나 - 1. 김남주(金南柱, 1946년 10월 16일~1994년 2월 13일) 시인의 시와 생애를 담은 《김남주 평전》(김삼웅 저, 꽃자리, 2016) 출판기념회에 갔다. 서울의 초입(初入)이 늘 그렇듯 정체가 심했다. 전화가 왔다. 함께 가기로 약속한 친구 J전도사였다. 각자 길이 막혀 전화로 수다를 떨기로 했다. “형님, 그런데 전 사실 김남주 시인 선생님이 누군지 몰라요.” 허걱! “......” “전 사실 교회 안에서 신학공부에만 매달려 왔잖아요. 성서신학 외에는 아는 게 없으니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다시 허걱! 난감했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 대답해 주어야할까? 80년대 군사독재의 학살과 억압에 온몸으로 시로 저항한 불멸.. 2016. 2. 17.
밧세바, 다 내 탓이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1) 밧세바, 다 내 탓이다(2) 1. 나단이 다윗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 말씀을 찬찬히 읽어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많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사무엘하 12:7-8). 이 구절은 어떤 사람이 왕위를 빼앗는 경우, 그 왕이 지닌 모든 것, 재산뿐만 아니라 아내들도 빼앗았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러한 일을 하나님이 주도하셨다고 말하는 게 걸린다. 그게 그냥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냉혹한 현실이라고 하면 그럭저럭 받아들이겠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즉 사울의 아내들을 다윗에게 주었다는 것은 받아들이.. 2016. 2. 15.
말씀을 제 멋대로 뒤집고 왜곡하는 이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5) 말씀을 제 멋대로 뒤집고 왜곡하는 이들 “너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兄弟)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應答)하셨으며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하고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嚴重)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各) 사람의 말이 자기(自己)에게 중벌(重罰)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萬軍)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妄靈)되이 씀이니라 하고”(예레미야 23:36). “자전거를 타는 것과 신앙생활 하는 것,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요?” 교우들과 말씀을 나누는 시간, 이따금씩 엉뚱한 질문을 할 때가 있다. 한 번은 교우들에게 자전거와 신앙생활에 대해서 물었다. 질문을 받은 교우들은 갸우뚱했다. 자전거 타기가 제 아.. 2016. 2. 15.
마음의 파수꾼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3) 마음의 파수꾼 영성의 대가는 영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들뜬 바깥일을 멀리하여라. 내적 상념의 격랑을 피해 숨어라. 내적 상념은 평안을 갉아먹을 따름이니.” 그러므로 영혼은 잠잠히 평화 속에 머물러 하나님이 영혼 안에서 말씀하시게 해야 할 것입니다. 유대교의 위대한 랍비인 바알 셈 토브는 저녁 늦게 강가로 나가 명상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강가에서 잠시 명상을 한 다음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그가 다니는 길은 어느 막강한 권력가의 집을 지나게 되어 있었고, 그 집 앞에는 경비 초소가 있었다. 그 초소에서 파수를 보는 보초는 항상 자기가 파수를 보는 집 앞을 지나다니는 이 이상한 남자가 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궁금해 했다.. 2016. 2. 13.
목사와 기자의 러브레터, 가슴 시린 이유는? 꽃자리의 종횡서해(21) 목사와 기자의 러브레터, 가슴 시린 이유는? 칼 바르트의 권고 “한 손에는 성서를,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신학 하는 동네에서는 유명한 말이다. 스위스 출신 신학자 칼 바르트가 한 이 발언은 신학이 추상과 관념의 세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살아 있는 생생한 현실과 만나라는 권고였다.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신문’이 현실을 바로 보여주는 걸 전제로 한 이야기렷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세상과 맨몸으로 만나서 그 세상에 역동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보다는 교회주의에 안주해서 자신을 살찌우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그 종교는 예수가 오래 전 말했듯이 ‘맛을 잃은 소금’이리라. 그러나 한국의 교회는 대부분 바로 이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그걸로 신도를 모으고 자본의 성채가 되는 것.. 2016. 2. 11.
밧세바, 다 내 탓이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0) 밧세바, 다 내 탓이다(1) 1. 밧세바. 그는 누구인가? 목욕하는 한 여인으로 성경에 등장한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사무엘하 11:3)이다. 하지만 성경기자는 그를 밧세바라는 이름 대신 “우리아의 아내”(11:26)라고 부르는데, 다윗이 그를 궁전으로 데려와서 아내로 삼았는데도(27절) 성경기자는 계속해서 “우리아의 아내(12:10, 15)라고 한다.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12:15). 이 요상한 구절을 지나서 12장 24절에서야 성경기자는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라고 부른다.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성경기자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첫째 아이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로 인정한 .. 2016. 2. 11.
순례자로 산다는 것 김기석의 톺아보기(22) 순례자로 산다는 것 ‘즐거운 망각’의 탐닉 에덴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시간에도 이빨이 있음을 자각한다. 시간은 우리 몸과 영혼에 지우기 어려운 흔적을 남긴다. 시간이 우리에게 새겨놓은 무늬를 사람들은 문화라고도 부른다. 사람의 모듬살이는 문화를 형성하지만, 그 문화는 동시에 우리의 존재조건이 되기도 한다. 외부 세계와 낯을 익히는 과정, 그것이 삶이다. 나의 ‘있음’은 늘 ‘~이다’라는 술어로만 표현된다. 나의 있음은 늘 ‘더불어 있음’이다. 누군가와 맺는 관계 속에서만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추한다. 사람은 신 앞에 선 단독자이지만, 그래서 늘 우주의 중심이지만, 그의 있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이들의 존재이다. ‘관계맺음’이야말로 인생이다. 문제는 이 관.. 2016. 2. 10.
병들고 비뚤어진 종교지도자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4) 병들고 비뚤어진 종교지도자들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夢事)를 얻은 선지자(先知者)는 몽사(夢事)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者)는 성실(誠實)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比較)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磐石)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예레미야 23:28-29). ‘사이비’는 어디에나 있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은 ‘같을 사’(似)와 ‘아닐 비’(非)를 ‘그러나’라는 뜻을 가진 ‘말 이을 이’(而)가 연결을 하고 있다.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 사이비다. 그러고 보면 사이비의 중요한 특징은 ‘비슷함’에 있다 하겠다. 분명 가짜인데 진짜와 너무도 비슷하다. 그러기 때문에 구분이 .. 2016.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