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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무어며 봄은 오느냐고 한종호의 너른마당(44) 봄은 무어며 봄은 오느냐고 벌써 입춘입니다. 오늘의 날씨와 체감온도만 중시하는 요즘의 입춘이야 흘깃 지나가는 뉴스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우리네 옛 선조들은 이 날이면 얼어붙은 땅이 언제 녹고 그 매서운 북서풍이 언제 바뀔지 쉽게 가늠되지 않았던 엄동설한 속에서도 봄기운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묵은 땅을 갈 준비도 하고 새 땅에 뿌릴 씨앗도 챙기면서 한 해의 농사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편 대문짝이나 문지방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또는 ‘세재■■ 만사여의대통’(歲在■■ 萬事如意大通)이라는 춘방(春榜)을 크게 붙여, 한 해 동안 집안일과 농사일이 잘 되기를 축원하였습니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첫머리는 과연 만물에게 겨울동안 칼끝처럼 파고드는 냉기(冷氣)앞.. 2016. 2. 4.
끝이 허망한 이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3) 끝이 허망한 이들 “네가 백향목(柏香木)으로 집짓기를 경쟁(競爭)하므로 왕(王)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公平)과 의리(義理)를 행(行)치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亨通)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者)와 궁핍(窮乏)한 자(者)를 신원(伸寃)하고 형통(亨通)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22:15-16) 당시 유다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나마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안간힘을 쓴 요시야 왕 덕에 무너져가던 나라가 얼마간 버틸 수 있었지만, 결국 요시야는 전쟁에서 전사하고 만다. 앗시리아를 도우려고 유프라테스 강변의 갈그미스로 올라가는 이집트의 느고 왕과 .. 2016. 2. 1.
<서울 1964년 겨울>, 그리고 <서울 2016년 겨울>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9) , 그리고 이제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에 너무 늙어버린다면 그것은 어떤 뜻일까요? 작가 김승옥의 단편 소설 은 그렇게 너무 빠르게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면서, 우울하고 희망 없이 살아가던 세대의 자전적 독백을 담고 있습니다. 한강을 건너는 군화소리가 들리면서 혁명은 안개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가난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추격자처럼 바짝 뒤쫓아 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소설은, 이십대 중반의 청년 둘이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얼핏 그야말로 시시겁쩍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삼십대 중반의 사나이의 마구 헝클어진 인생과 기묘하게 얽혀 하루를 지내다가 그 사나이의 역시 돌연한 죽음과 함께 서로 헤어지게 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사나이의 아내는 그날 죽었으.. 2016. 2. 1.
행동하라는 요구 김기석의 톺아보기(18) 행동하라는 요구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의 기본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 때문에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있지 아니하고, 그 변혁하고 자유하게 하는 힘을 인식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인식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참으로 듣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작용하기 때문이다.(토마스 머튼) 속이 허할수록 말은 부박해진다 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사념이 덧없게 느껴지고, 말의 부질없음이 아리게 다가올 때마다 나는 고진하 시인의 시 을 읽는다. 마치 해독제를 들이키듯…. 하루종일 입을 封하기로 한 날, 마당귀에 엎어져 있는 빈 항아리들을 보았다. 쌀을 넣었던 항아리, 겨를 담았던 항아리, 된장을 익히던 항아리, 술을 빚었던 항아리들, .. 2016. 1. 29.
사랑의 거부(巨富)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2) 사랑의 거부(巨富)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식으로 창조하신 눈부신 피조물 가운데 사람의 영혼만큼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은 하늘나라에도 이 세상에도 없습니다.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고린도전서 2:9).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그 일이 무엇인지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내 경험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그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하고 풍성한 생명을 주셨다’는 선언일 것이다. 이를테면, ‘복’의 선언이다. 엑카르트의 말처럼 우리는 ‘복덩어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덩어리로 지어졌다는 .. 2016. 1. 28.
때늦은 후회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2) 때늦은 후회 “바벨론 왕(王)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請)컨대 너는 우리를 위(爲)하여 여호와께 간구(懇求)하라 여호와께서 혹시(或時) 그 모든 기사(奇事)로 우리를 도와 행(行)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예레미야 21:2). 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중에는 ‘때늦은 후회’라는 것이 있지 싶다. 후회하며 뒤늦게 깨닫게 하는 것이다. ‘철들자 망령’이라는 속담도 있고, ‘물고기가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물이다’라는 말도 있다.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살아온 물고기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물을 알게 된다는 말이 아릿하다. H.D. 소로우는 “오, 맙소사!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한 번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니!” 하며 탄식을 하기도 했.. 2016. 1. 26.
김석기를 기억한다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1) 김석기를 기억한다 -그를 위한 변명이 불가능한 이유- *이 글은 2013년 11월 23일자 세계일보 논설위원 조정진씨의 칼럼 을 읽고 썼던 글이다. 그 글은 여전히 인터넷에 남아있으니 누구든 찾아 읽어볼 수 있다. 조정진이라는 개인 논설위원 조정진씨의 칼럼 을 읽었다. 나는 를 읽어본 일이 거의 없다. 같은 신문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에 대한 어떤 유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용산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남일당 망루에 오르기까지, 자신과 가족들의 힘겨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 치대며 시달려온 가족사에 대해 조정진 논설위원이 무관심한 것과 대략 같은 무관심이다. 내게는 에 대해 할 말이 없었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 2016. 1. 19.
신세대 새들을 보셨나요?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1) 신세대 새들을 보셨나요?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고르게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을 가득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정답게 대해야 합니다. 예전에 이층에서 살던 때의 일이다. 풍물장을 다녀오겠다고 장바구니를 들고 나간 아내가 아래층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보, 빨리 내려와 봐요!” 불이라도 난 줄 알고 나는 속옷 바람으로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무슨 일인데 그 난리요?” “여기 웬 새들이 떨어져 죽었어요.” 그랬다. 알에서 막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듯싶은 새 새끼들이 이층 계단 아래 쪽마루에 널부러져 있었다. 전부 다섯 마리인데, 두 마리는 떨어진 충격이 컸던지 죽어 있었고, 세 마리는 다행히 살아서 꼼지.. 2016. 1. 19.
불멸과 소멸, 자매들의 전쟁에 관하여 딸들에게 주는 편지(5) 불멸과 소멸, 자매들의 전쟁에 관하여 ‘쁘레스뚜쁠레니’와 ‘나까자니에’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라는 소설에는 - 다른 얘기도 많이 나오지만 - 두 자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람은 맏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당연히 맏딸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제일먼저 󰡔구약성서󰡕의 장자(長子)의 권리를 둘러싼 끝없는 암투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선택(選擇)과 유기(遺棄)라는 인간문제의 근본적 조건이 아닐까 싶다. 너희가 읽어보면 알게 될 테지만, 구약성서의 장자 다툼은 대부분 차자(次子)의 승리로 끝난다. 그 기나긴 싸움의 역사는 한 형제의 비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의 첫 번째 사람이었던 아담의 장자는 가인이지만 신께서는 차자인 아벨의 편을 들어주었다. 창세기는 가인과.. 2016.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