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47

이가봇의 어머니, 비극의 시대를 통찰하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8) 이가봇의 어머니, 비극의 시대를 통찰하다(1) 1. “이가봇의 어머니.” 우리는 비극적인 시대를 살다간 한 여인, 한 슬픈 어머니 이야기를 하려 한다. 누구보다 예리하게 시대적 상황을 파악하고 신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여인. 어리석고 탐욕스런 남자들이 제 멋대로 주도하다 결국 망쳐놓은 비극적 상황으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바꿀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던, 그러다 몰락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 사라져야 했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2. 사무엘상 2장에서 7장까지는, 당시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다스리던 막강한 엘리 가문이 어떻게 삽시간에 멸망하고, 에브라임 산지 출신으로 어린 시절에 그의 어머니 한나가 성전에 의탁한 사무엘이 어떻게 이스라엘 역사.. 2015. 12. 6.
주님은 그저 신기루입니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5) 주님은 그저 신기루입니다 “나의 고통(苦痛)이 계속(繼續)하며 상처(傷處)가 중(重)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主)께서는 내게 대(對)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예레미야 15:18). 주님 앞에 진솔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숨김없이 털어놓은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주님을 ‘사람의 마음을 통찰하시는 분’ ‘사람 속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라 고백을 하면서도, 그분 앞에 솔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아시는 분 앞에 때로는 충분히 정직하지 않은 말로, 때로는 일부러 말하지 않음으로 마음을 가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는 한다. 그날의 새벽기도를 잊지 못한다. 단강에서 목회를 시작할 때였으니 오래 전.. 2015. 12. 4.
도리어 애틋한 시작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6) 도리어 애틋한 시작 시간이 빈틈을 보이는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어김없는 순서로 계절은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오고,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마치 기습이나 당한 것처럼 여기기조차 합니다. “어느 새”라는 말은 우리의 무방비한 자세를 폭로하는 것이지 시간의 냉혹함을 일깨우는 말은 아닙니다. 활을 한번도 쏘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한해의 마지막 달력을 응시하는 순간, “세월이 쏜 살 같다”는 표현이 전혀 낯설거나 또는 자주 들었다고 해서 구태의연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만큼 그 속도는 비례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리 헛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자세의 차이가 가져오는 속도감의 격차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수는 또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나이보다는 지금 서 있는 .. 2015. 11. 30.
가뭄 끝은 있다고 말하지만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4) 가뭄 끝은 있다고 말하지만 “가뭄에 대(對)하여 예레미야에게 임(臨)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城門)의 무리가 곤비(困憊)하여 땅에 앉아 애통(哀痛)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귀인(貴人)들은 자기(自己) 사환(使喚)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땅에 비가 없어 지면(地面)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者)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들 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豺狼)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예레미야 14:1-6).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2015. 11. 27.
하나님을 자기 종처럼 부려먹으려는 사람들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37) 하나님을 자기 종처럼 부려먹으려는 사람들 내가 하나님을 아는 방법이 아무리 투명하고 치밀하다 해도, 그것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우리는 하나님을 방법 없는 방법, 존재 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은 많다. 종교적 교리도 있고, 철학적 논증도 있고, 명상이나 기도, 금식, 참회, 고행 같은 수행의 방법들도 있다. 물론 이런 방법들이 하나님을 아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을 통해 하나님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어떤 하나의 공경 방법이나 이 방법, 저.. 2015. 11. 26.
하나님을 창밖으로 내던져버린 세상에서 꽃자리의 종횡서해(18) 하나님을 창밖으로 내던져버린 세상에서 이름 석 자로도 충분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있지요. 그의 이름 속에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경우입니다. 제게는 ‘홍순관’이라는 이름이 그렇습니다. 이름 뒤에 그 무슨 호칭이나 설명을 따로 붙이지 않아도 이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홍순관이라는 이름 속에는 그가 걷는 길과, 품은 꿈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상처 입은 이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애정과, 그러면서도 지금의 자신이 맞는지에 대한 아픈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홍순관이라는 이름 뒤에 집사라는 호칭을 붙입니다. 집사라는 호칭으로 교회라는 틀 안에 묶어두려는 마음에서가 아닙니다. 행여 집사.. 2015. 11. 25.
반(反)동성애 전도사에게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18) 반(反)동성애 전도사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복음성가가 있다. 이 노래는 의외로 기독교인뿐 아니라 비(非)신자들도 많이 부른다. 여기서 ‘사랑 받는다’ ‘사랑’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기독교인들에겐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의미일 테지만 비신자들에겐 이 노래를 불러주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보편적 의미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다시 묻고 싶다. 하나님의 사랑이건 인간의 사랑이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박정희를 다니엘의 반열에 올린다? 에로스니 아가페니 하는 분류법이 있지만 사실 사랑은 전부 다 아가페고 에로스가 아닐까? 사랑의 본질은 똑같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사랑의.. 2015. 11. 22.
지하도의 냉기, 그리고 도시의 슬픔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5) 지하도의 냉기, 그리고 도시의 슬픔 지하도를 지나면서 라면 상자로 추위를 막을 준비를 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시울에 아프게 담겨왔습니다. 한 사람이 누워 지낼만한 자리가 머릿속의 허름한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상의 세계에서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해 가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무력하게 잠겨드는 삶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일깨우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도시의 풍경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이는 그 익숙함이 결코 편안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집 없는 이들의 거리 노숙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하나의 깨우침을 던져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결국 자기 한 몸 누일 공간으로 돌아.. 2015. 11. 19.
하나님은 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이브를 지으셨을까?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36) 하나님은 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이브를 지으셨을까? 남편과 아내는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 안에서 평등합니다. 하나님이 남자의 옆구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의 머리나 발로 여자를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이브를 지으셨는지 미주알고주알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한편으론 고맙기도 합니다. 엉뚱하게 상상해볼 수 있는 널찍한 행간을 남겨두었으니까 말이지요. 유태계 소설가인 엘리 비젤은 소설가답게 ‘미드라쉬’를 자료로 삼아 왜 하나님이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창조했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줍니다. 하나님은 이브.. 2015.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