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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신동숙의 글밭(171) 약속 산길을 걷다가엄마가 새순처럼 말씀하신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1박 2일로 해인사에 가기로 하셨다고 누구랑 가시냐고 물으니"니하고" 하신다 한번 드린 말씀인데엄마는 이미 마음밭에 심어두셨다 2020. 6. 23.
열흘간의 휴직 계 한희철의 얘기마을(7) 열흘간의 휴직 계 열흘간의 휴직 계를 내고 성문 씨가 단강에 내려왔다. 지난번 사고로 몸이 불편해진 아버지,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직장에 열흘간 휴직 계를 냈다. 논밭 갈고 못자리를 해야 하는데,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으로선 힘에 부치다는 걸 왜 몰랐으랴만, 몸마저 불편하신 아버님 전화 받곤 안타까움을 마음에만 둘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수요예배를 마친 뒤 사택에서 차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성문 씨가 병철 씨와 함께 예배에 참석한 것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웃으며 한 이야기였지만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들어와야죠. 마음속엔 늘 그 생각뿐이에요. 그러나 들어오면 내 인생은 희생되는 거구요... 2020. 6. 23.
뜻밖의 손님 한희철의 얘기마을(6) 뜻밖의 손님 ‘어렵게 준비된 잔치일수록 아름다운 법’이라던 생텍쥐페리의 말은 살아가며 늘 새롭게 다가온다. 1989년 부활절은 생텍쥐페리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는 날이었다. 오토바이 뒤에 아내와 딸 소리를 태우고 부활란이 든 봉투를 한 손에 잡고선 강가로 갔다. 부활절 낮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을 때, 강가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팀스피리트 훈련을 끝내고 철수를 기다리고 있는 군인들이 조귀농으로 가는 강가에 주둔하고 있었다. 혹 그들 중 오늘이 부활절임을 기억하면서도 여건상 예배에 참석치 못한 이가 없을까 싶어 부활란 얼마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 영어 할 자신 있어요?” 강가로 나가자는 말에 웃으며 묻는 아내 말에 “까짓것 그거 못 하려고? 그.. 2020. 6. 22.
숨쉼 신동숙의 글밭(170) 숨쉼 숨을 쉰다들숨 날숨 들숨의 채움으로날숨의 비움으로 숨을 쉰다거칠어지지 않게 걸음마다평화의 고삐를 붙든다 날숨마다 살피어몸이 붙든 힘을 풀어 주고 날숨마다 조금씩애씀을 내려놓는다 그리하면들숨은 저절로 깊어지는 것 멈칫 길을 잃어도 좋아 늘처음처럼 숨을 쉰다한 알의 몸으로 날숨을 더 오래 느긋하게숨을 쉰다 느리고 고요한숨은 쉼이 된다 씨앗처럼먼 별처럼 내 어둡고 가난한 가슴에한 알의 하늘숨을 품으며 숨을 쉰다한 점 몸이 점점점 푸른 하늘이 된다 2020. 6. 21.
뜻밖의 소풍 한희철의 얘기마을(5) 뜻밖의 소풍 우리 몇 몇 목회자는 원주에서 라는 찻집을 하고 있는 최종위 씨를 ‘아저씨’라 부른다. 의미로 보자면 ‘형님’ 정도가 될 것이다. 언제 찾아가도 후덕한 웃음으로 맞아 주시는, 기꺼이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주신 고마움을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다. 아저씨라는 호칭 속엔 그분의 나이가 아니라 인품이 담겨 있다. 최종위 아저씨로부터 온 전화는 뜻밖이었다.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지난번 언젠가 에 아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미국에 있는 한 교회에서 말씀집회 강사로 청하며 우리 내외를 같이 청했는데, 아내는 동행하지 않았다. 같이 사는 마을의 젊은 엄마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이야기를 에 옮기는 것 자체를 아내는 원하지 .. 2020. 6. 21.
산안개 신동숙의 글밭(169) 산안개 비가 오는 날에는산안개가 보고 싶어서 밥을 먹다가먼 산을 생각합니다 설거지를 하다가산안개를 생각합니다 푸른산 머리 위에 앉은하얀 산안개가 순합니다 비가 오는 그믐밤에도흰 박꽃처럼 순합니다 하늘도 순하고산도 순하고집도 순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온 마을이 하얀 박 속입니다 2020. 6. 20.
자조 한희철의 얘기마을(4) 자조 버스에 탄 할아버지 두 분이 이놈, 저놈 호탕하게 웃으며 농을 한다. “이놈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어허 그놈, 으른 애도 모르는 걸 보니 갓난애구먼.” “이놈아, 집에 틀어박혀있지 나가길 어딜 나가누. 나갔다 길 잃어버리면 집도 못 찾아올라구.” “고 어린 게 말은 잘하네. 아직 이도 안 난 것이.” “뭐라고?” 어이없어 껄껄 웃고 마는 할아버지, 정말 앞니가 하나도 없다. 친구 같은 두 분 할아버지, 무심한 세월 덧없음을 그렇게 서로 자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얘기마을, 1989년) 2020. 6. 20.
베드로의 눈물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24)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24 베드로의 눈물 마태수난곡 2부 45~46번마태복음 26:69~73음악듣기 : https://youtu.be/YAD8bJc5SPw45(38)내러티브에반겔리스트69.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69. Petrus aber saß draußen im Palast; und es trat zu ihm eine Magd, und sprach:대사 여종1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Und du warest auch mit dem Jesu aus GaIilaa.내러티브에반겔리스트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70. Er leugnete aber .. 2020. 6. 19.
다석, 도올, 머튼, <시편 사색>을 주워서 소꿉놀이 신동숙의 글밭(168) 다석, 도올, 머튼, 을 주워서 소꿉놀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심심해진다. 한때 바깥 일도 해보았지만, 제 스스로가 이 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사람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본과 경제 논리로 형성된 이 사회구조 안에선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물론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이 사회 안에서 있음직한 성공에 대한 꿈을 꾸어본 적 없이, 몸만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서로가 아쉬울 것도 없는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혼자 놀기로 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종종 쪽창으로 창밖을 본다. 마당 위에 하늘을 보고, 나무도 보고, 풀꽃도 보고, 새소리에 귀가 맑아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본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이 세상은, 자연은 참! 신기.. 2020.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