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4 삶을 모르고서야 한희철의 얘기마을(3) 삶을 모르고서야 “제가 열 살 때 샘골로 글을 가르치러 댕겼어요. 국문이죠. 그때 칠판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샘골 노인들이 참 지혜로웠어요. 어떻게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면서 쟁반에다 좁쌀을 담아 준비를 해 둔 거예요. 손가락으로 좁쌀 위에 글을 썼다가 흔들면 지워지니 아, 그 얼마나 편하고 좋아요.” “요샌 큰일이에요, 시골에도 도둑이 많으니. 며칠 전엔 성희 네도 도둑을 맞을 뻔 했대요. 자가용 타고 온 웬 남자들이 서성거려 그 집에 온 손님인 줄로 알았지 도둑인 줄 생각이나 했겠어요.” “바로 그날 부놋골에서 도둑을 맞았데요. 금반지 다섯 개와 쌀 두가마를 잃어버렸대요.” “흥호리에선 경운기 앞대가리만 빼갔대요. 값나가는 쪽이 앞쪽이니까 대가리만 빼서 차에 싣고 갔나 봐요... 2020. 6. 19.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한희철의 얘기마을(2)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계시니까 솔직히 말이지, 난 세상에서 목사님이 제일루 편한 줄 알았어유. 일요일 날 예배만 보구선 맨날 쉬는 줄루 알았어유.” 교통사고를 당한 딸 간호를 위해 딸네 집에 다녀온 이서흠 성도님이 예의 두 눈이 다 감기는 웃음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사고를 당한 따님은 사모님입니다. 고향을 떠나서 시작된 믿음이 사모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가서 며칠 있어보니까유, 세상에, 목사 사모만큼 힘든 일두 읍드라구유. 자기 몸이 아파두 교인이 아프다문 거기 쫓아가야지, 시간 나문 기도하구 책 봐야지유. 괜히 옆에서 지켜보니까 자꾸 눈물이 나드라구유.” “전 농사 짓는 사람이 제일 힘든 것 같은데요?” 했더니 “저두 그랬어유. 세상에 농사짓는 일만큼 힘든 게 또 .. 2020. 6. 18. 분노할래요 신동숙의 글밭(167) 분노할래요 분노할래요모르는 아이의 작은 소리에도 욕심부릴래요어진 어른의 큰 가르침에도 땅에 닿으려는 옷자락의 끝을 추스르듯제 모든 의식을 추스려서 이 모든 분노와 욕심도 오롯이 진리 속이라면쓸모가 있을 테니까요 사랑하지 않을래요제 가족의 정다운 사랑에도 믿지 않을래요제 자신의 확고한 믿음에도 입가에 묻은한 방울의 물기를 닦듯이제 모든 마음을 닦아서 이 모든 사랑과 믿음도오롯이 진리 속이 아니라면쓸모가 없을 테니까요 2020. 6. 17.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한희철의 얘기마을(1)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따뜻한 봄볕이 좋아 소리와 규민이를 데리고 앞개울로 나갔다. 개울로 나가보니 버들개지도 벌써 피었고, 돌미나리의 새순도 돋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밭둑에 어느새 풀들이 쑥 자라 있었다. 개울물 소리 또한 가벼운 몸짓의 새들과 어울려 한결 명랑했다. 겨울을 어떻게 났는지 개울 속에는 다슬기들이 제법 나와 있었다. 다슬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논둑을 지나다보니 웬 시커먼 덩이들이 군데군데 논물 안에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개구리 알이었다. “저게 뭔지 아니?” “몰라요.” “개구리 알이야, 저 알에서 올챙이가 나오는 거야.” 소리와 규민이가 신기한 눈빛으로 개구리 알들을 쳐다본다. “올챙이가 커서 뭐가 되는지 아니?” “개구리요.” 책에.. 2020. 6. 17. 하나님도 별 도리가 없으시다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57) 하나님도 별 도리가 없으시다 나는 확신합니다. 만일 나의 영혼이 준비가 되어 있고,하나님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와 마찬가지로나의 영혼 안에서도 드넓은 공간을 찾아내기만 하신다면,나의 영혼을 이 강물로 가득 채우시리라는 것을. 글을 쓰다가 뒤뜰로 나가 밝은 달 아래 서니, 소동파의 에 나오는 시 한 수가 문득 떠오른다. “저 강상(江上)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이여,귀로 듣노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노니 빛이 되도다.갖고자 해도 금할 이 없고 쓰자 해도 다 할 날 없으니이것이 조물주의 무진장(無盡藏)이다.” 이 무진장한 바람과 달빛도 사람이 그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면 스며들 길이 없다. 맑은 바람을 마시면서도 누군가에.. 2020. 6. 15. 같은 말이라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12) 같은 말이라도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말의 의미와 무게는 달라진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형태로만 존재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서와 사람을 향한 의로운 행동에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말이다. 그의 말이기에 위의 말은 더 큰 의미와 무게를 갖는다. 2020. 6. 13.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신동숙의 글밭(166)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반바지에 반팔 셔츠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학교에 갑니다. 등에는 가방을 메고 누구나 얼굴엔 마스크를 쓰고서, 학교에 가는 중·고등학생들이 유월의 푸른 잎사귀 같습니다. 교실 안에서는 제 책상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저 푸릇한 귀를 열고서 선생님들의 말씀에 잔잔히 귀를 기울이겠지요. 특히 교실에서도 온종일 쓰고 있어야 하는 마스크에,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지 안타깝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함은 다름 아닌,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일과 거듭 새기는 일이 됩니다. 옛어른들은 머리에 새기라고 하였지만, 그보다 더 앞선 옛어른들은 마음에 새겨 자신의 참마음과 세상의 참이치를 밝히는 공부를 참공부라 하였.. 2020. 6. 12. 말과 말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11) 말과 말씀 혼돈과 공허와 어둠을 빛으로 바꾼 한 말씀도 있지만, 빛을 혼돈과 공허와 어둠으로 바꾼 한 마디 말은 얼마나 많을까. 2020. 6. 12. 모든 순간은 선물이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10) 모든 순간은 선물이다 하루 종일 일하며 흘린 땀 때문이었을까, 인우재에서 보내는 두 번째 밤, 자다가 말고 목이 말라 일어났다. 잠을 자다가 물을 마시는 일은 좀체 드문 일이었다. 물을 마시며 보니 창밖으로 달빛이 훤하다. 다시 방으로 들어오는 대신 툇마루에 앉았다. 마루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 한 새벽이다. 보름이 지난 것인지 보름을 향해 가는 것인지 하늘엔 둥근 달이 무심하게 떠 있다. 분명 대지를 감싸는 이 빛은 달일 터, 그런데도 달은 딴청을 부리듯 은은할 뿐이다. 어찌 이 빛을 쏟아놓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눈부시지 않는 것일까, 세상에 이런 빛의 근원이 있구나 싶다. 그런 달을 연모하는 것인지 별 하나가 달에 가깝다. 누가 먼저 불러 누가 대답을 하.. 2020. 6. 11. 이전 1 ··· 120 121 122 123 124 125 126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