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4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2)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잠에서 깨었을 때,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소리, 새들이었다. 필시 두 마리 새가 나란히 앉아 밤새 꾼 꿈 이야기를 나누지 싶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새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여겨지질 않았다.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데도 오히려 정겹게 여겨졌고, 윤기 있는 소리에 듣는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일까? 단지 새소리이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새들이라고 무조건적인 아량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 이른 시간 끊임없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데에는 분명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소리를 들으며 세수를 할 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잠언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2020. 5. 24. 가난하여서 가난함은 아니다 신동숙의 글밭(152) 가난하여서 가난함은 아니다 오늘의 가난함은 가난하여서 가난함은 아니다 하루치의 부유함 속에 씨앗처럼 품고 품은 빈 가슴의 가난함이다 풍성한 밥상 앞에서 밥알처럼 곱씹는 굶주린 배들의 가난함이다 행복의 우물 속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목마른 입들의 가난함이다 오늘 먹고 마신 부유함이 품은 가난함 있음이 품은 없음 모두가 잠 든 후 홀로 앉아서 없음을 알처럼 품는다 없음을 품고 품으며 침묵의 숨을 불어 넣으면 빈 가슴이 속속들이 차올라 없는 가슴을 채우는 건 있음의 부유함도 풍성함도 행복도 아니다 없음을 채우는 건 없는 듯 있는 하늘뿐이다 2020. 5. 23. 몸이라는 도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1) 몸이라는 도구 인우재 방에 깔린 비닐장판을 걷어내고 종이장판을 깔았다. 처음엔 흙 위의 멍석이 전부였다. 멍석이란 짚으로 만든 것, 생각하면 단순했다. 널찍한 돌로 된 구들장을 깔았으니 돌 위의 흙, 흙 위의 풀이 방바닥의 전부인 셈이었다. 방에 누울 때마다 자연 위에 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았지만 인우재를 찾는 이들이 불편해 했다. 엉덩이가 배기는 것보다는 벌레와 친하지 못한 이들의 불편이 참으로 컸다. 어떤 이는 경기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결국은 멍석을 걷어내고 종이를 붙였다. 쌀을 담던 부대의 종이를 붙였다. 그렇게 지내던 중 먼 친척 되는 분이 요양차 1년여 머무는 동안 비닐장판을 깐 것이었다. 비닐장판은 물걸레질을 할 수 있어 편하긴 하지만, .. 2020. 5. 23. 사랑과 두려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0) 사랑과 두려움 사막 교부들의 금언을 읽다가 만난, 압바 이시도루스의 말이다. “제자들은 진정 자기 스승인 사부들을 사랑하고, 자기 지도자인 그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사랑 때문에 두려움을 잃어서도 안 되고,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어둡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의 말이 공감되는 것은 더 이상 두려움도 사랑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 사랑과 두려움 사이의 조심스러운 걸음새를 갈수록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20. 5. 22. 청개구리의 좌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9) 청개구리의 좌선 청개구리가 선에 들었다. 작약 꽃 지고 남은 꽃받침, 그곳에 들어앉아 시간을 잊는다. 바람 거세게 불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들어앉아 세상을 잊을 나의 꽃받침은 어디일지. 2020. 5. 21. 2020년, 파란만장한 역사의 점철 그리고 성서의 시선 한종호의 너른마당(63) 2020년, 파란만장한 역사의 점철 그리고 성서의 시선 우리에게 2020년은 한일합병과 식민지로서의 전락이 이루어졌던 1910년에서 110년이요, 한반도 분단의 결과인 1950년 6·25 전쟁으로부터 70년,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운 1960년 4·19 혁명 60주년, 그리고 군사정권에 맞서 싸운 1980년 5·18 민주항쟁 40주년이다. 실로 파란만장한 역사의 점철이다.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전쟁 체제의 연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간이 희생되었는가를 증언한다. 우리 역시 그런 극단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근현대사를 이어왔고, 21세기는 그런 극단의 시대를 초극할 수 있는 역사를 갈망한다. 그러나.. 2020. 5. 20.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8)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았다. 자식들의 비석을 쓰다듬는 어머니들의 눈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난다 해도 그 눈물이 어찌 마를까. 어찌 뜨거움이 달라질 수 있을까. 어머니 가슴속에 묻은 자식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간다 해도 여전히 꽃다운 청춘들이다. 사진/일요신문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다. 모르기도 했고, 모른 척 하기도 했다. 오히려 광주의 아픔을 헤아리게 된 것은 군 입대 후였다. 입대를 한 것이 신학공부 3학년을 마친 1981년 7월 1일, 5.18이 일어난 지 막 1년이 지날 때였다. 논산에서 훈련을 받은 뒤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이 광주 송정리 평동에 있는 포대였다. 그 해였.. 2020. 5. 20. 5.18에 걸려 온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재모집 전화 신동숙의 글밭(151) 5.18에 걸려 온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재모집 전화 5·18에 극동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에 극동방송에 전파 선교비를 후원하셨는데, 다시 하실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기 너머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편에선, 왜 하필 5·18에 전화를 하셨느냐며 못마땅한 듯 반문을 하였다. 두 자녀 이름으로 두 구좌를 후원했었다. 교회를 다니는 동안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가 자동이체가 되었으니까 4년이 넘는 기간인 것 같다. 당시에 극동방송 측으로부터 선물이 배송된 적이 있다. 책 한 권이었는데 창업자이자 현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의 자서전이다. 그 안에 전두환 대통령이 김장환 목사의 집에 방문한 일화가 나온다. 김장환 목사는 스스로의 행동을 자랑삼아 들려준다. 대통령이 내 집에 .. 2020. 5. 19.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7)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안경을 맞췄다. 어느 날부터인가 책을 읽다보면 글씨가 흐릿했다. 노트에 설교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쓰면서도 받침이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마침 교우 중에 안경점을 하는 교우가 있어 찾아갔다. 일터에서 교우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새롭다. 마침 손님이 없어 같이 기도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집사님이 우선 검사부터 하자고 한다. 자리에 앉아 정한 자리에 턱을 괴자 집사님이 내 눈을 기계로 살핀다. 그런 뒤에 집사님이 가리키는 숫자를 읽는다. 애써 잘 읽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는 두툼한 철로 된 안경을 쓰게 하고는 렌즈를 바꿔 끼우며 다시 글자를 읽게 한다. 글자가 한결 또렷해진다. 다.. 2020. 5. 19. 이전 1 ··· 124 125 126 127 128 129 130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