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3 우리가 당신을 낳을 성스러운 태(胎)라니요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57) 우리가 당신을 낳을 성스러운 태(胎)라니요 하나님은 그 속에 오로지 하나님만을 모신 영혼, 곧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영혼을 찾아 그곳에서 낳고 싶어 하십니다. 아, 그렇군요. 하나님, 당신께서는 여전히 가임(可姙)의 욕구를 지니고 계시군요! 그렇겠지요. 당신께선 늙음이나 쇠락을 모르는, ‘영원한 젊음’을 지니고 계시니까요. 오늘, 지금 이 순간도 당신께선 당신의 형상을 가장 쏙 빼닮은 사람을 통해 ‘당신 자신’을 낳고 싶어 하신다지요.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분주하여, 낳고 싶어 하시는 당신의 뜻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 2016. 8. 3. 현각 스님께 현각 스님께 어느새 10년이 지났습니다. 2006년 초 겨울 어느 날 이른 아침, 스님에게 말없이 삼배를 드리고 화계사 국제선원을 나온 것은 스승으로서 스님과의 인연을 갈무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다 나를 찾던 수행에 목말라 하던 때 스님을 만났고, 1년여 재가자로 참선 수행에 전념할 때는 스님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제 목마름을 읽고, 각별히 수행지도를 해 주셨던 것 지금도 감사로 기억합니다. 부모님과 가족을 속여 가며 인생을 걸었던 수행의 계절이었기에 그 은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줄거나 색 바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출가를 하고, 스님과 지근거리에서 지내면서는 비구 현각 승려에 가려진 ‘미국 남자’ 폴 뮨젠의 거친 모습을 보아야했습니다. 저에게는 도덕적인 잣대로 스님을 재단할 .. 2016. 8. 2. 아버지의 서원, 딸이 죽었다 구약 속 여성돋보기(6) 아버지의 서원, 딸이 죽었다 이스라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의 문화는 유혹거리였다. 그 정점에는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 아스다롯을 비롯해 아람, 시돈, 모압, 암몬, 블레셋의 신들을 섬기며 저지른 악행이 있었다(사사기10:6).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블레셋과 암몬 자손을 이용하셔서 요단강 동편 길르앗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후손을 18년 동안 억압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며 도움을 청했으나 하나님은 여느 때처럼 구원자를 보내지 않으셨다(10:13-14).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길르앗 장로들은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장로들은 ‘입다’라는 남자를 찾아내 고통의 탈출구로 삼는다. 그는 아버지 길르앗과 창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가족 공동체 일원으로 안착하지 못.. 2016. 8. 2. 끝내 떠날 수 없는 땅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63) 끝내 떠날 수 없는 땅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百姓) 중(中)에서 그와 함께 거(居)하니라”(예레미야 40:6). 동화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전라남도 광주, 그 외곽에 있는 송정리, 그곳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평동이라는 곳에서 군 생활을 했다. 105미리 대포를 쏘는 포대였다. 상무대에서 이론 교육을 받은 이들을 위해 실제로 포를 쏘아줌으로 측지, 사지, 사격명령 등 실제적인 훈련을 받게 하는 부대였다. 부대 안에는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예배당이 있었다. 독립대대, 군종장교는 따로 없었다. 포다리라 불리는 포병생활과 함께 군종 역할을 맡은 나는 매주 한 번씩 광주 시내로 나가 교회를 섭외하.. 2016. 7. 29. 수넴 여인, 자식 낳기도 어렵고 키우기도 어렵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46) 수넴 여인, 자식 낳기도 어렵고 키우기도 어렵다(2) 1. 사랑하는 아이,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낳은 아이가 손 쓸 겨를도 없이 죽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아이가 제 무릎에서 죽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수넴 여인은 그저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본능적인 의지만 남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아들이 죽은 다음, 그 아이를 엘리사의 침상에 뉘어놓고, 나귀를 타고 쉬지 않고 갈멜 산까지 달려가서 엘리사를 만난다. 엘리사는 자신의 발을 꼭 껴안은 채 말을 하지 못하는 수넴 여인을 보면서, 뭔가 말하기조차 어려운 일을 그가 당했음을 짐작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엘리사는 신통력이 작동하지 않음을 .. 2016. 7. 28. 고독한 바다와 마주하며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3) 고독한 바다와 마주하며 대학시절에 보았던 바다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동해 경포대의 백사장은 너무나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길고 넓게 펼쳐져 있던 모래 길은 뚝 끊어진 채, 과장하자면 손 뼘 만 한 백사장만 남기고 그대로 바다와 만나고 있었습니다. 여유와 품위를 잃어버린 해변은 우울해 보였습니다. 싸구려 유흥가로 변해버린 바다는 생존의 치열한 경쟁 끝에 기진맥진해버린 민초들의 절망을 닮아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군들 그렇게 바다에 초라한 진을 치고 호객의 자리를 펴고 싶었겠냐는 항변이 들려오는 듯도 했습니다. 모두가 아귀다툼 끝에 뜯어먹은 바다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입니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던 작은 섬들은 이미 점령당한지 오래이며, 맑고 투.. 2016. 7. 27. 삼성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한종호의 너른마당(53) 삼성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돌아가신 법정 스님을 생각하면 “무소유”의 아름다움이 떠오른다. 이 분 앞에서 한국교회는 “과소유”의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불교와 가톨릭계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들이 계신 반면에 개신교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건 다른 종교와의 관계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철저하게 무소유의 삶을 사셨던 나사렛 예수의 길을 우리가 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자꾸 “거탑(巨塔)”이 되어가고 있다. 얼마나 큰 교회인가로 그 목회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스도의 무소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종교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상숭배가 있다. 말로는,.. 2016. 7. 25. 엇갈린 두 여인의 운명,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5) 엇갈린 두 여인의 운명, 구원은 어디서 오는가 억압의 공포가 일상화된 세상이었다(사사기 4:3; 5:6). 그러나 이스라엘은 새로운 신들을 선택했고 누구도 가나안의 억압에 저항하며 전쟁에 나설 용기를 갖지 않았다(5:8). 이때 드보라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은 가나안과의 전쟁에서 일치된 헌신을 보여주었지만(5:9),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메로스 주민들이 있었다. 북 팔레스타인 어디쯤 위치한 메로스를 주님의 천사가 저주하라고 외쳤다. 이유는 여호와를 돕지 않아서다(5:23). 반면에 한 여인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야엘은 여인들 중에서 복 받을 것이요, 그녀는 겐 사람 헤벨의 아내이며, 장막에 거하는 여인들 중에 있다”(5:24). 야엘은 특별한 임무를 받은 적도 .. 2016. 7. 19. 비참한 말로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62) 비참한 말로 “바벨론 왕(王)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목전(目前)에서 그 아들들을 죽였고 왕(王)이 또 유다의 모든 귀인(貴人)을 죽였으며 왕(王)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 하여 사슬로 결박(結縛)하였더라”(에레미야 39:6-7). 독일 속담 중에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은 것이다’(Ende gut, alles gut)는 속담이 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그런 가벼운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속담을 보면 ‘끝만’이 아니라 ‘끝이’다. 끝만 좋으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끝이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과정이 다 중요할 터이지만,.. 2016. 7. 18. 이전 1 ··· 222 223 224 225 226 227 228 ··· 296 다음